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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586화 (586/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86화

"우리는 놀러 온 게 아니다."

파악!

아론은 가볍게 손을 들어 눈덩이를 막아냈다. 그가 주먹을 쥐자 눈덩이가 으스러졌고, 지켜보던 조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침 식사와 수업을 준비하도록. 그리고 시몬 폴렌티아."

몰래 에르제베트를 만나고 온 시몬은, 갑작스러운 부름에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네, 넷! 교수님."

"잠시 나 좀 보지."

아론은 그 말만 남기고 몸을 돌려 걸어갔다.

로레인과 토토, 에슈가 무슨 일이냐는 듯 다가왔지만, 시몬도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아론을 뒤따랐다.

* * *

두 사람은 베이스 캠프에서도 조금 외진 곳에 도착했다.

사람 한 명 들어가기에도 빠듯해 보이는 작은 창고건물 하나가 보였고, 그 뒤에는 장작들이 쌓여 있었다.

시몬과 아론은 그루터기를 의자 삼아 앉았다. 수석조교가 다가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코코아를 한 잔씩 나눠주었다.

'무, 무슨 일로 부르신 거지?'

시몬은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설마 에르제베트를 감지한 건가? 그녀는 키젠 교정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결계의 스페셜리스트였지만, 상대가 아론이라면 또 모른다.

이내 수석조교가 떠나자, 아론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부터 직속제자 상담 및 수업을 진행하려고 한다."

"......아!"

시몬은 속으로 안도하고는, 눈을 반짝였다.

아론은 2학년부터 시몬을 직속제자로 받아주기로 했지만, 아직까지 특별한 교육이나 상담을 해준 건 아니었다.

커다란 행복감을 느끼며, 시몬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아론이 등을 기울였다.

"뭔가 물어볼 점이나 고민 같은 게 있나? 혹은 직속제자 수업 시간에 배우고자 하는 게 있다면 그쪽으로도 수업을 진행해 줄 수 있다."

"있습니다!"

시몬이 즉답했다.

"저, 본드래곤을 만들고 싶어요!"

푸훕!

아론이 마시던 코코아를 흘렸다. 사레가 들린 듯 콜록거리던 그가 눈동자를 굴려 시몬을 보았다.

"그건 또 무슨 미친 소리지?"

시몬은 조용히 품에서 진주처럼 생긴 구슬을 꺼냈다.

"네프티스 님께 받았습니다. 이 안에 드래곤의 시체가 있어요."

시몬은 네프티스로부터 본 드래곤을 받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고.

"네프티스 님 앞에서 약속했어요. 2학년이 끝나기 전까지 반드시 본 드래곤을 완성하겠다고요!"

설명을 듣고 있는 아론의 입가에는 경련이 생기고 있었다.

'......이 녀석에게 또 무슨 바람을 불어넣은 겁니까.'

본인이 특례 1번으로 뽑은 학생에게 신경을 써주고, 동기를 부여하는 건 좋다.

하지만 좀 현실성이 있는 걸로 하던가.

그녀야 그냥 한마디 휙 던지는 걸로 끝나겠지만, 저 천재의 열정을 감당하면서 목적을 구체적으로 현실화해야 하는 건 오롯이 아론 본인의 몫이었다.

'하여간, 그 인간은.'

아론은 코코아를 한 모금 마시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다."

"네, 말씀하세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아론이 코코아 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1학년 말에 리치를 만들어낸 네 성과와 재능은 인정한다. 하지만 본 드래곤은 차원이 달라. 전설의 생물을 언데드로 만들어 부린다는 건 모든 소환술사의 로망이지만, 꿈은 꿈일 때 아름다운 법이다. 어지간한 고위계 네크로맨서들도 본 드래곤은 손댈 엄두도 못 내."

"그렇게 어려운가요?"

"단순히 어렵다는 수준이 아니다."

아론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재료의 희귀성 때문에 연구나 표본도 적고, 제작법이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도 않지. 보유한 네크로맨서들도 극도로 적다."

시몬이 고개를 갸웃했다.

"교수님도 못 만들 정도인가요?"

'......이놈이.'

아론의 웃는 얼굴이 한 차례 떨렸다. 네크로맨서는 아주 정직한 생물이었다.

"물론, 나는 만들었고 실전에서 운용도 하고 있다."

"그럼 제게 가르쳐 주실 수 있죠?"

시몬이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제기랄.'

저 초롱초롱한 눈만 보면, 아론은 자꾸 본인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 괴로웠다.

애써 제자의 시선을 피한 그가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렇게 속 편하게 말할 문제가 아니다. 전공공부는 물론, 오로지 본 드래곤을 위한 학문을 갈고닦아야 한다. 만에 하나 이걸 완성할 수 있다고 해도, 네가 다루지 못할 수도 있어."

시몬은 당당하게 말했다.

"그래도 꼭 도전하고 싶습니다!"

'......그래.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일말의 망설임도, 흔들림도, 주저함도 없다.

저 열정과 터질 듯한 젊음.

현실성이 없다느니, 표본이 적다느니, 그런 걸 재는 타입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으니까 하고, 기어코 해낸다.

사실 아론은 자신이 시몬을 말리지 못할 거란 것도 알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과거로 돌아가서 어린 시절의 본인을 만난다고 해도, 설득할 자신이 없는 것처럼.

"앞으로 남들보다 공부량이 세 배는 더 늘 거다."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각오하고 있습니다."

"......네 뜻은 알겠다."

아론이 눈을 꾹 감으며 팔을 늘어뜨렸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뭐든 말씀해 주세요!"

"본 드래곤을 만들겠다면서 듀라한 정도에 지지부진하다면 말이 안 되겠지. 적어도 이번 중간고사까지 내가 놀랄 만한 '규격 외의 듀라한'을 만들어 오도록. 그렇게 하면 중간고사 이후로 본 드래곤 수업도 준비해 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아론이 말을 바꾸기 전에, 시몬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중간고사 시즌만큼은 듀라한에 집중하라는 이야기였다.

"동기들 중에서 최고의 듀라한을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기대하지."

두 사람이 이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뒤에서 묵직한 발소리가 들렸다.

시몬이 뒤를 돌아보았다.

'두 번째 직속제자인가?'

이내 모습을 드러낸 건 다름 아닌 헥토르였다.

시몬은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조용히 웃었다.

헥토르 또한 시몬의 뒤통수를 보고 예상했다는 듯 인상을 구겼다.

"앉도록."

"예."

헥토르가 자리에 앉았고, 상담을 끝낸 시몬은 뒤로 물러났다. 아론이 말했다.

"시몬 폴렌티아. 돌아가서 다음 학생을 불러오도록."

규정상 직속제자는 세 명.

시몬과 헥토르라면 다음 한 명은 아세라즈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세르네야 그런 걸 할 성격이 아니고, 로레인은 네프티스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는 걸로 알고 있으니까.

"아세라즈를 데려오면 될까요?"

"아쉽지만, 아세라즈는 1학년 때 이미 다른 교수님의 직속제자로 들어갔다."

"아. 그럼 누구로......."

아론은 덤덤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화이트를 불러와라."

"?!"

* * *

아론이 화이트를 직속제자로 결정한 건, 시몬의 예상외였다.

왜 하필이면 화이트일까?

뭔가 화이트만 보면 아론이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지던 게 떠올랐다.

'흠.'

하지만 그렇다고 키젠 교수의 결정에 뭐라 왈가왈부할 수는 없었다.

시몬은 그대로 돌아가서 화이트를 찾았다.

"......."

어렵지 않게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학생들이 북적북적 아침 준비를 하거나 눈싸움을 하며 노는 와중에, 화이트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하늘을 보고 있었다.

"화이트."

시몬이 그를 불렀지만, 화이트는 돌아보지 않았다. 이름처럼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아론 교수님이 부르셔."

그래도 말은 제대로 알아듣는 걸까.

화이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박 사박-

눈 밟는 소리가 들렸다.

시몬은 화이트가 걸어가는 걸 확인하고 고개를 돌리려는데.

'!'

갑자기 화이트가 시몬의 등 뒤에 나타나 있었다. 너무 놀란 시몬은 하마터면 반사적으로 그를 제압할 뻔했다.

"너."

화이트의 입이 열렸다.

"두 명이야?"

"......뭐, 뭐?"

이게 무슨 소리야.

시몬이 멍한 표정으로 서 있자, 화이트가 고개를 돌렸다.

"아니구나."

그러고는 다시 저벅저벅 걸음을 옮겼다.

"???"

여전히 알 수 없는 녀석이라고, 시몬은 생각했다.

* * *

합숙 특강답게 무척이나 하드한 일정이 계속되었다.

"룬어가 완전히 작동해야 한다. 작동에 성공한 학생들만 다음 장소로 이동하겠다. 실패하면 할 때까지 계속 시도하도록."

"생체기관에서 칠흑이 수도꼭지처럼 줄줄 쏟아져야 한다. 양이 충분하지 않으면 마나의 전환력도 떨어진다."

"제대로 원이 맺히지 않으면 듀라한이 오러를 쓸 때 문제가 생긴다. 맺힐 때까지 반복하도록."

학생들은 숨을 헐떡이며 정신없이 수업을 따라갔다. 일주일 안에 듀라한 제작은 물론, 컨트롤까지 마스터하는 게 목적이었기에 지금까지 했던 수업들보다 빡센 편이었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되자, 다들 퀭한 눈으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으어어, 밥해야 하는데 몸에 힘이 없어."

에슈가 죽어가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러나 쉴 틈도 없었다. 학생들이 완전히 퍼져 버리기 전에, 조교들은 남은 시간을 외치며 학생들을 닦달했고 학생들도 움직였다.

"그런데 계속 아론 교수님만 수업하시네."

시몬이 이번에 사 온 순록 고기를 굽고 있는데, 로레인이 말을 걸어왔다.

"다른 교수님들은 이번 합숙엔 안 오시는 걸까?"

"이론이 우선이니까 그런 것 같아."

소환 재료학은 언데드 재료를 다루고 키메라를 만드는 수업이지만, 듀라한 실전 제작에 들어가기엔 아직 일렀다.

소환 장송학도 이미 완성된 언데드를 더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 필요한 수업이었다.

옆에서 채소를 씻고 있던 토토도 고개를 들었다.

"나 조교 선생님들이 회의하시는 거 들었어! 곧 한 분 넘어오실 것 같다던데?"

"그래?"

토토의 말 대로였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학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다.

"주-목!"

선글라스를 쓴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남자, 소환 재료학 교수 그레리온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우리 소환학과 52명은 오늘 저녁! 전장으로 이동한다!"

갑자기 튀어나온 '전장'이라는 표현에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피츠제럴드는 안경을 추켜올렸다.

"역시 뭔가 있을 줄 알았다."

"쉽게 넘어갈 리가 없지. 분명 대형 수행평가야."

이미 듀라한을 중심으로 한 대형 수행평가가 있을 거라는 이야기는 학생들 사이에서 확정적인 사실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들이 웅성거리고 있는 사이, 그레리온이 다시 입을 열었다.

"듀라한 제작기술은 잘 갈고닦고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기왕 듀라한을 만들 거라면 최고의 재료로 듀라한을 만들어야겠지. 안 그런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가할족의 성터로 이동한다!"

그레리온은 프리고드 차치구에 있는 '가할족'의 성터가 몬스터들에게 공격받고 있으니 구원하러 간다고 말했다.

저번에 구울의 재료를 손에 넣기 위해 골칫덩어리인 랫쳐를 잡으러 사막에 간 것도 그렇고, 그레리온은 늘 네크로맨서들의 긍정적 활동과 사회 기여를 중시했다.

"가할족의 성터를 지원하고 그들과 함께 싸울 것이다. 물론 단순히 지원을 위해서만 가는 건 아니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기사들이 멸종한 지금, 현재 네크로맨서가 구할 수 있는 최상급의 듀라한 재료 '가디언'이 그 전장에 출현한다."

"!!"

흔들리던 학생들의 눈에 빛이 들어왔다.

듀라한의 3대 재료인 '오거로드-아바돈-가디언'에서, 가장 최고의 재료인 가디언을 구할 수 있다고 그레리온은 말하고 있었다.

이건 돈을 주고도 구하지 못하는 몬스터 재료였다.

"이 52명 중에 한 명이라도 가디언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디언 듀라한을 가질 기회를 놓치지 마라. 오늘 저녁 늦게 출발할 예정이니 철저히 준비해라!"

"네!"

던져진 당근은 파격적이었다.

학생들은 바짝 정신을 차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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