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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591화 (591/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91화

"막아! 어떻게든 막아!"

"조지프까지 쓰러졌어!"

"데려가! 교복을 입었으니 죽진 않았을 거 아냐!"

서쪽 성벽은 난리도 아니었다.

하필이면 '가디언'이 성벽으로 뛰어 들어오는 바람에 학생들의 시선이 분산됐고, 그사이에 다른 흉내잡이들이 빈틈을 비집고 성벽 위로 올라왔다.

"징글징글하군."

피츠제럴드가 깃발처럼 세워 든 두 팔을 중간으로 모았다. 옆에 있던 여섯 개의 팔을 가진 세이렌도 똑같은 동작을 따라 하며 마법진을 펼쳤다.

여섯 개의 각기 다른 마법이 사출되어, 흉내잡이들을 불태우고 가르고 얼렸다.

세이렌 키메라는 가히 마법사 여섯 명분의 역할을 해주고 있었지만.

'제길, 칠흑이.'

이제는 한계였다.

피츠제럴드가 작전의 유지와 자신의 생명을 저울질하고 있는 그때.

꾸에에에에에엑-!

난잡스러운 울음소리와 함께, 지면에서 커다란 지렁이 괴물 같은 게 튀어나왔다.

피츠제럴드가 안경을 추겨 올렸다.

'토토의 데스웜! 그렇다는 건.'

데스웜의 입안에서 뻗어 나온 검은 인형이 성벽에 올라왔다. 동시에 공간이 벌어지며 초대형 아공간이 벌어졌다.

<블레이드 스톰>

촤아아아아아아악!

네 개의 소용돌이가 뻗어 나와 성벽 위를 질주하며 닿는 몬스터들을 모조리 갈아버렸다.

"괜찮아? 피츠제럴드."

"아, 그래. 마침 좋은 타이밍이었다."

다리에 힘이 빠졌는지, 피츠제럴드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시몬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네가 맡은 구역이 뚫릴 줄은 몰랐는데."

"한 명이 부족한 채로 방어를 시작해서 부담이 가중됐다. 다른 한 명도 당해서 기절했고."

"누가 안 왔는데?"

"세르네 아인다르크."

"아......."

시몬이 땀을 삐질 흘렸다.

"부, 분명 내가 보냈는데."

"또 한눈 팔려서 딴 길로 샜겠지. 그래도 덕분에 살았다."

"응."

고개를 끄덕인 시몬은 다소 찜찜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피츠제럴드가 말했다.

"왜 그러지?"

"아니, 아까 데스웜을 타고 올 때 지하에서 뭔가 수상한 진동을 느껴서."

피츠제럴드가 안경을 추켜올렸다.

"찜찜하다면 가보는 게 어떤가."

"응. 성벽은 대충 정리된 것 같으니까―"

쿠구구구구구구구구!

그러나.

지축이 뒤흔들리는 거대한 폭음과 진동이 울려 퍼졌다. 시몬이 인상을 구겼다.

'한발 늦었나!'

"남쪽 성벽이다!"

콰콰콰콰콰콰콰!

지반이 무너져 내리며, 동시에 그 위에 세워진 성벽 한쪽이 무너져내렸다. 뒤늦게 그 광경을 돌아본 학생들이 입을 벌렸다.

"성벽이......!"

"무너졌어!"

멀쩡하던 성벽이 저렇게 간단히 무너질 리가 없다.

시몬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옆에 서 있던 피츠제럴드는 뭔가를 계산하는 것처럼 손가락으로 허공을 긋고 있었다.

"저 방향, 틀림없다."

"뭔가 알아냈어?

"요새의 지하수로가 지나는 지점이다."

시몬이 얼른 고개를 되돌렸다.

"지하수로가 있었어?"

"이 정도로 큰 요새니까 당연히 있지. 소수의 가할족 병사들이 지키고 있는 걸로 안다. 다만."

"다만?"

"흉내잡이들 스스로 지하수로를 통해 요새 내부로 침투한다는 전술적인 판단을 내리는 건 불가능해."

덧붙이는 피츠제럴드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지하수로에 마나폭탄을 넣고 터뜨리는 건 더더욱."

시몬이 급히 통신수정구를 들었다.

"토토! 내가 바로 현장으로 갈게! 데스웜으로 저기에 데려다줘!"

-미, 미안 시몬!

토토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데스웜과의 사념연결이 끊겼어!

'뭐?'

시몬은 잠시 굳어 있다가, 이내 성벽을 박차고 달렸다.

'하아, 뭐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거야?'

* * *

성벽 위를 잘 지키고 있던 학생들의 입장에선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격이었다.

발을 지탱하던 벽돌들이 무너져 내리고, 주위는 매캐한 회색 먼지구름으로 가득했다.

'......으으!'

떨어지기 직전, 간신히 성벽 끝에 튀어나온 벽돌을 붙잡은 여학생이 인상을 찡그리며 아래를 보았다.

먼지구름 너머로 흉내잡이들이 눈을 번쩍이며 몰려들고 있었다.

'빠, 빨리 올라가야......! 아?'

쏙 하고.

그녀가 붙잡고 있던 벽돌이 이음새에서 빠져나왔다. 그녀의 동공이 허망함으로 물들고, 벽돌과 함께 그녀의 몸이 추락해 갔다.

차악!

눈을 질끈 감았던 그녀가 다시 눈을 떴다.

눈앞에 새빨간 스켈레톤이 보였다. 스켈레톤은 그녀의 몸을 감싸 안듯 본 아머를 입히더니, 그대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차자작!

착!

같은 방식으로 하늘을 나는 붉은 스켈레톤들이 추락하는 학생들을 구조하고 있었다.

"?!"

구조되는 학생들이 고개를 들었다.

뼈로 이루어진 하늘의 공중전함으로부터, 무수한 붉은 스켈레톤들이 낙하하고 있었다.

"아론 교수님의 지원이다!"

"살았어!"

처억!

척!

무너진 성벽 근처로 불개미처럼 쫙 깔린 스켈레톤들이 활을 들어 올렸다.

-케르르르륵!

-케에에!

흉내잡이들이 무너진 성벽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스켈레톤들이 활시위를 놓았다. 살벌한 파공음과 함께 붉은 선들이 쏟아지고, 몰려드는 몬스터들의 파도가 크게 한번 내려앉았다.

차자자작!

차자작!

뒤이어 아론의 언데드 전함에서 쏟아져 내린 스켈레톤들이 여러 파츠로 분해되더니 무너진 성벽의 틈을 채우기 시작했다.

"교수님이 뭘 하시는 거지?"

"펜스야! 뼈를 이어서 펜스를 만들고 있어!"

눈 깜짝할 사이에 스켈레톤의 뼈로 간이 성벽이 만들어졌다. 아처들이 뒤로 돌아와 다시 한번 일제사격을 가했고, 몬스터들의 파도가 또 한 번 주저앉았다.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라는 걸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빈틈없고 완벽한 대처였다.

-임시 조치는 했지만 오래 버티진 못할 거다.

학생들이 가진 통신수정구에서 아론의 목소리가 들렸다. 화살을 뚫고 들어온 몬스터들이 뼈로 만든 펜스에 들러붙었다.

-무너진 성벽을 방어할 고화력의 네크로맨서가 필요하다.

-저 혼자면 충분합니다.

펄럭!

전장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새까만 시룡(屍龍)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전방을 응시하고 있었다.

<드래곤 브레스>

화르르르륵!

용으로 변한 헥토르가 입을 벌려 불의 숨결을 뿜었다.

펜스에 들러붙은 흉내잡이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고열에 녹아내렸다.

* * *

지하수로 입구.

"Ðⴘⴇ!"

"ⳖØⴋⴠⴇ?"

가할족 경비들은 놀란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커다란 폭음이 연달아 들려왔지만, 그들은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지하수로의 어딘가가 무너져 내렸다고 추측할 뿐이었다.

"안녕, 가할족 친구들."

그때.

지하수로의 어둠 속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할족 경비들이 움찔하며 창을 들어 올렸다.

서겅!

빛이 직선으로 번뜩이는 듯하더니, 두 개의 대형식칼을 교차한 남자가 그들의 뒤에 서 있었다.

"너무 느려."

경비들의 목이 높이 날아올랐다. 육체를 지탱할 힘이 사라진 몸통은 실 끊어진 인형처럼 털썩털썩 주저앉았다.

"아, 너무 느리다고! 거, 빨리빨리 좀 오지?"

도살업자가 대형식칼을 어깨에 얹으며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몬스터의 몸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건 알겠는데! 이래서야 도착하기도 전에 전쟁 끝나겠다!"

지하수로에서 동료인 외눈 신사가 달려오고 있었고, 그 뒤로 흉내잡이로 변한 한 무리의 암살자들이 뒤따랐다.

"당신이 너무 빠른 거라곤 생각 안 해봤소?"

외눈의 신사가 챙 높은 모자를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명심하시오. 우리는 혼란을 틈타 조용히 시몬 폴렌티아를 확보하러 온 거지, 학살을 하러 온 게 아니오. 학생들은 최대한 죽이지 마시오. 일이 더럽게 꼬일 수가 있소."

"그거 들으면 300번은 들었겠네!"

도살업자가 귀를 후비적거렸다.

"그럼, 나가보자고!"

"잠깐......!"

차박! 차박!

도살업자가 바닥에 고인 물을 밟고 작업용 앞치마를 휘날리며 달려나갔다. 순식간에 수로에서 빠져나온 그가 처음으로 본 광경은.

"엥?"

화살과 무기를 정신없이 옮기고 있는 가할족의 모습이었다. 어딘가의 창고로 올라온 것 같았다.

그들은 갑자기 지하수로에서 올라온 남자를 보고는 무기를 세웠다.

"Ðⴘⴇ!"

"ⴃⴟⴶⴀⴋ!"

"뭐라는 거야."

도살업자의 입꼬리가 쭈욱 찢어졌다.

스겅!

창을 겨눈 두 가할족의 머리가 단숨에 공중으로 떠올랐다.

"가할족은 썰지 말란 법은 없었으니까?"

자세를 기이할 만큼 바짝 아래로 낮춘 도살업자가 자신의 몸통을 회전시켰다.

촤앙!

촤아앙!

대형식칼이 반사광을 번뜩이며 춤을 추었고 가할족들의 목이 날아가거나 상하체가 분리되었다.

"크-합!"

그가 공중으로 떠오른 식칼을 고쳐 쥐고는 아래로 강하게 내리그었다. 달려온 가할족 전사의 몸이 반으로 갈라져 좌우로 벌어졌다.

"Ðⴆŀº!"

창고 밖에 있던 전사들까지 소란을 듣고 다가왔다.

그들은 즉각 활을 붙잡아 시위를 당기며 마나를 싣더니 도살업자에게 쐈다.

"호."

도살업자가 대형식칼을 교차한 채로 몸을 낮췄다. 날아온 두 발의 화살은 비스듬히 세운 식칼의 경사면을 따라 미끄러졌고, 도살업자가 기합성과 함께 팔을 떨쳤다.

날아간 화살들의 방향이 꺾이며, 도살업자의 뒤를 덮치려던 두 명의 전사에 몸통에 틀어박혔다.

"죽은 척한 거 모를 줄 알았나!"

도살업자가 광소하며 뛰어들었다.

"ⴘⴋÐⴘ!"

근육질의 한 전사가 뛰어들어 마나를 실은 장창을 던졌다. 도살업자가 히죽 웃으며 식칼을 움직였다.

촤라라라라락!

식칼의 끝이 위아래로 세밀하게 움직이더니, 다가오던 장창이 마치 잘 썰어진 당근처럼 여러 뭉치로 썰어졌다.

도살업자가 몸을 빙글 회전시키며 반대쪽 식칼의 검면으로 균등하게 잘린 장창을 붙들고는, 힘껏 스윙했다.

퍽! 으적! 빠가아악!

장창 잔해들이 사방으로 튀어나가 벽에 부딪혀 꺾이면서 전사들의 머리와 뒤통수에 틀어박혔다. 그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휘유."

도살업자가 식칼을 빙그르르 돌려 고쳐 쥐고는, 습관처럼 어깨에 얹었다.

그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무너진 창밖으로 거대한 생명체가 불을 뿜으며 몬스터들을 불사르고 있었다.

"와, 드래곤이야 저거? 키젠 놈들 스케일 장난 아닌데!"

"벌써 이 난리를 벌인 것이오?"

외눈 신사가 지팡이를 짚으며 나타났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파란 머리카락의 확보와 백금발 머리카락의 사살! 알아!"

그가 뛰어나갔다.

"놈들을 찾을 때까진 놀아도 되는 거겠지?"

순식간에 멀어져 가는 도살업자를 보며, 외눈 신사가 한숨을 푹 쉬었다.

"역시 저자를 끌어들이는 게 아니었는데."

그렇게 중얼거린 그가 지팡이를 허공에 그었다. 극도로 복잡한 마법진을 연달아 펼치고는 지팡이를 내리고 주문을 외웠다.

우우웅!

허공에 공간이 찢어지며, 그 안에서 요새 밖에 있던 흉내잡이들이 물밀 듯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이상 크게 벌이는 수밖에. 그대들도 가시오."

흉내잡이들로 변한 암살자들도 몬스터들 틈에 섞여 달려 나갔다.

갑자기 본진에서 몬스터들이 튀어나오자, 밖에 있는 학생들과 가할족 전사들의 놀란 음성이 들려왔다.

"이제는 파국을 피할 수 없게 됐소."

그 또한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외눈 신사의 몸이 칠흑의 웅덩이 안으로 들어가더니 바닥에 잔해를 남기며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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