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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593화 (593/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93화

도살업자는, 30년 프로 생활 동안 이런 상대는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촤아아아앙-!

촤아아앙-!

세상이 붉은 선으로 채워졌다. 벌어진 공간의 틈으로부터, 붉은 눈의 괴물들이 쏟아내는 공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크우웁!"

주위의 건물들은 이미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벌집처럼 벽면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지붕이 날아다니고 있다.

"빌어먹을!"

도살업자가 고개를 들자 피할 수 없는 타이밍에 두 개의 섬광이 쏟아졌다. 급히 식칼을 앞세웠다.

카각!

쏟아지는 광선이 대형식칼에 부딪히며 도살업자를 밀어냈다. 그의 다리가 주르륵 밀리며 긴 바퀴 자국을 남겼다.

"크아아압!"

그가 거친 함성을 토해냈다. 그러자 쏟아지던 광선이 굴절되더니 마을의 측면으로 뻗어져 나갔다.

키이이잉!

경로 상의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섬광이 마을을 선으로 그었고, 이내 휘몰아치는 열풍과 함께 건물과 지면이 절단되어 무너졌다.

"허억! 헉!"

도살업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식칼을 내렸다.

어둠 속에서 교복을 입은 소녀가 흑단 같은 검은 머리를 휘날리고 있었다. 그 사이로 보이는 두 개의 붉은 눈동자는 야수처럼 빛났다.

"크하하! 키젠 놈들! 학생을 키운다더니 저딴 미친 병기를 만들고 있었나!"

로레인은 물끄러미 상대를 응시했다.

마투 외에도 이상한 기술을 섞어서 사용하는 것 같은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까다롭다.

어두운 분야에 오랫동안 발을 담가온 피비린내 나는 프로 네크로맨서.

수많은 인간의 목숨을 딛고, 무수한 경험과 업을 쌓아왔으리라.

저 끔찍한 자를 친구들이 있는 곳에 보낼 수는 없었다.

"질문 하나 하죠."

로레인의 입술이 열렸다.

"당신은 '결사'의 일원인가요?"

"하하하!"

휘릭휘릭 양손의 식칼을 휘두르던 그가 손잡이를 고쳐잡았다.

"무슨 소릴 하는지 잘 모르겠군!"

"왜 시몬을 노리는 거죠?"

"내가 대답해서 얻을 이득이 있나?"

"네."

그녀가 등 뒤로 손짓하자, 그 악몽과도 같은 공간의 틈이 서서히 닫혀갔다. 마치 괴물의 입을 다무는 듯한 형상이다.

"대답 여하에 따라, 키젠 본부에 당신의 신병을 인도적으로 인계하겠습니다."

"그딴 건 이득이 아니라!"

터엉!

도살업자가 바닥에 떨어진 나무판자를 발로 차서 위로 올렸다.

"강요라고 하는 거야!"

떠오른 나무판자를 식칼의 검면으로 때렸다. 나무판자에 가속이 확 붙더니, 고무공처럼 곳곳에 퉁퉁 튕겨 나갔다.

로레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시크하게 두 손가락을 올렸다. 후방에서 날아온 나무판자가 터업! 소리를 내며 정확히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 껴 멈췄다.

"당신은 키젠의 학생들을 습격한 현행범입니다."

투둑.

반으로 갈라진 나무판자가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계속 비협조적으로 나오시겠다면, 저도 다소 불친절한 설득수단을 이행하겠어요."

로레인은 자신의 아공간에서 유리와 사슬로 만들어진 이상한 소환수를 두 기 꺼냈다. 작동하지 않는 듯 밖으로 나오자마자 털썩털썩 바닥에 엎어졌다.

그녀가 두 손바닥을 펼치고, 이능을 흘려보내 두 소환수에게 부여하기 시작했다.

위잉-!

위이잉!

그녀의 이능과 칠흑을 연료로 소환수들이 서서히 일어났다.

마치 사슬에 묶여 있는 유리인간과도 같은 외형. 그것은 공중에 둥둥 떠올랐고 가슴에는 로레인의 눈동자와 똑같이 생긴 눈동자가 번뜩였다.

"전탄 사격."

두 소환수의 몸이 철컥 소리와 함께 열리더니, 하늘로 붉은 선들을 무수히 쏘아 보냈다. 그것들은 공중에서 왜곡되고 방향이 꺾이기를 반복하더니 중심에 있는 도살업자를 놓고 전 방향에서 날아왔다.

"하, 씨! 이건 추가 요금을 받아야겠는데!"

대형식칼을 고쳐 쥔 도살업자의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 * *

슈우욱!

슈욱!

외눈 신사를 향해 용의 비늘과 본 스피어들이 쏟아졌다.

외눈 신사는 제자리에서 손에 든 지팡이만 휘둘러 그것들을 가뿐히 쳐내고 있었다.

"크아압!"

물소처럼 돌진한 헥토르가 칠흑을 휘감은 주먹을 휘둘렀고, 외눈 신사는 뒤로 물러나 피하며 지팡이로 그의 머리를 후려쳤다. 뻐억! 하는 소리와 함께 헥토르의 몸이 공중에 떠올라 우당탕 쓰러졌다.

지켜보던 학생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헥토르가......."

"밀려?"

외눈 신사는 느긋하게 모자챙을 붙잡았다.

그의 주위에는 이미 헥토르가 쏜 것으로 보이는 비늘들과 뼈들, 그리고 그을린 흔적과 저주의 잔해가 남아 있었다.

"무어 가문의 장남이라고는 하나, 아직은 학생 수준."

헥토르가 덜덜 떨리는 팔로 상체를 일으켰다.

"앞으로 몇 년만 지나면 나 정도는 입김 한 번에 잿더미로 만들겠지만, 지금은 그게 그대의 한계라오."

헥토르가 두 손바닥으로 바닥을 터업! 짚고는 강제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아까 그 '드래곤'의 정체가 그대인 모양인데, 변신 직후 힘이 떨어진 몸으로 날 상대하는 건 현명하지 않소."

"......떠벌떠벌 말이 많다."

헥토르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전투 자세를 취했다.

"덤벼라."

누가 봐도 헥토르의 위기.

보다 못한 주위의 학생들이 지원을 위해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근처의 가할족 전사들도 활을 장전하거나 창을 던질 준비를 했다.

그러나.

[역시 그대는 시몬 폴렌티아에 대해 잘 아는 모양이오.]

외눈 신사가 칠흑을 일으켰다.

"!"

주위의 학생들과 가할족 전사들이 하나같이 목을 부여잡았다.

'숨이......!'

뒤이어 외눈 신사의 몸에서 흘러나온 칠흑이 대기마저 장악하듯 주위를 새까맣게 물들였다.

학생들과 가할족 전사들은 전의를 상실하며 털썩털썩 주저앉았다. 입에 거품을 물거나 오줌을 지리는 자들도 있었다.

압도적인 공포.

그 앞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헥토르마저도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져 있었다.

[말하시오.]

외눈 신사가 공포의 칠흑을 일으키며 하늘을 날아 헥토르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전신이 굳어진 헥토르의 턱을 지팡이로 올려세웠다.

[시몬 폴렌티아가 있는 곳을. 그리하면 그대들은 무사할 것이오.]

"......."

헥토르의 입이 열렸다.

"고맙다."

쩍!!

대뜸 헥토르가 박치기로 외눈 신사의 이마를 들이박았다. 신사의 이마가 찌그러지듯 일그러졌다.

"끄헉!"

덥석!

터업!

헥토르가 외눈 신사를 끌어안듯 붙잡았다.

"접근해 줘서."

헥토르의 몸에 비늘이 촤르륵 돋아났다.

<헥토르 오리지널 - 가시비늘>

촤아아아아악!

끌어안은 채로 전신의 비늘이 가시처럼 날카롭게 솟았다.

외눈 신사가 고통스러운 소리를 냈다. 핏방울이 뿜어져 나와 하늘로 비산했다.

[네놈!]

키이이이잉!

외눈 신사가 다시 한번 공포로 헥토르를 장악하려 했지만.

[같잖다!]

쩌렁! 쩌렁!

외눈 신사의 한쪽뿐인 동공이 급격히 커졌다.

'드래곤 피어?!'

공포를 다루는 외눈 신사는 처음 느껴보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내가 지금.

나 외의 상대에게 공포를 느낀 건가?

쩌억!

헥토르가 고개를 뒤로 쭉 빼더니 외눈 신사의 머리를 머리로 들이받았다.

쩌억! 쩍! 쩍! 쩍! 쩍!

이내 무차별로 반복했다. 외눈 신사의 얼굴이 우악스럽게 찌그러졌고, 헥토르가 시룡의 날개를 펼치며 공중으로 치솟더니, 최고점에 이르러 몸을 빙글 돌려 낙하했다.

꽈아아아아앙!

외눈 신사의 머리부터 성벽의 바닥에 떨어지며 주위에 커다란 균열이 일어났다.

"X같은 새끼들이!"

으적!

"이번 방학이 끝나고, 나는 완벽해졌다고 생각했다! 놈에게 겪은 패배 따위 생각나지 않았다!"

쩍!

"2학년은 다를 거라고 확신했다!"

꽈드득!

"그런데 놈은 학생회장을 꿰찼다! 나는 고작 과대 자리 하나로 놈과 대립해야 했다!"

쩍!

"매번 수행평가에서도! 날 배려하는 듯한 놈의 행동도! 새롭게 놈과의 승부를 자처하며 시비를 거는 놈들도! 모든 게 거슬려! 짜증 난다!"

빠악! 퍽! 쩍!

"왜 내게 지휘관을 양보했나! 시몬 폴렌티아아아!!"

꽈아아앙!

성벽의 한쪽이 크레이터처럼 무너져 내렸다. 뒤통수를 발로 짓밟은 채 헉헉대는 헥토르의 두 눈에는 귀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외눈 신사는 직감했다.

'잘못 걸렸......!'

"마지막에 이기는 건!"

그의 고개가 광인처럼 뒤로 젖혀졌고, 이빨 사이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나다!"

새까만 드레곤 브레스가 외눈 신사에게 직격하며 대폭발을 일으켰다. 헥토르는 두 팔을 떨치며 힘껏 괴성을 질러댔다.

"$@!&^%@!!"

초 광범위 드래곤 피어가 작렬하며 성벽으로 올라오던 흉내잡이들이 털썩털썩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대로 성벽에서 물러나는 몬스터들도 있었다.

저주에 단련된 학생들은 칠흑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며 버텼지만 가할족은 그대로 실신하는 자들까지 속출했다.

촤라라락!

그 난리통을 틈타, 검은 웅덩이로 변한 외눈 신사는 폭발 연기를 뚫고 내려왔다.

웅덩이는 성의 벽면을 비스듬히 타고 이동했다.

"이것 참. 의도치 않게."

경사진 벽면을 타고 달리던 외눈 신사의 얼굴이 그림자 속에서 빠져나왔다.

그의 일그러진 안면이 펴졌다.

"용의 역린을 자극한 모양이군."

그의 입장에서는 난감할 따름이었다.

어차피 무어 가문을 적으로 돌릴 생각은 없었다.

그냥 공포를 곁들여 시몬 폴렌티아의 위치를 물어봤을 뿐이었는데, 저렇게 극단적으로 반응할 줄이야.

예상치 못한 시점에서 체력과 힘만 소모했다.

"!"

그때 외눈 신사의 한쪽뿐인 동공이 커졌다. 성벽을 타고 이동하는 그의 몸 위로 거대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펄럭!

썩은 시체 냄새를 풍기는 검은 시룡이 날개를 펄럭이며 그의 옆으로 나란히 비행하고 있었다.

'여, 여기까지 따라왔다고?'

콰악!

시룡으로 변신한 헥토르가 튼튼한 두 다리로 외눈 신사의 안면을 붙잡았다.

카가가가가가가가각!

그러고는 성벽에 대고 갈아버리며 고속으로 이동했다.

[빌어 처먹을 새끼가!!]

헥토르의 분노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 * *

요새 내부, 도시의 1/4이 로레인과 도살업자의 전투로 날아가 있었다. 그녀의 파멸적인 화력은 작은 마을이 견디기에는 너무나 강력했다.

"흐하하!"

쑥대밭이 된 폐허 한복판에 도살업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서 있었다. 다리가 삐걱거렸고 팔이 부르르 떨렸다.

하지만 로레인의 호흡은 여전했다.

뒷걸음치는 도살업자는 자신의 생각이 처음부터 틀렸음을 인정해야 했다.

'저런 거대한 화력을 마구 남발해 대는 네크로맨서니, 장기전으로 이끌면 유리하리라 생각했건만.'

고작 18살에 저 정도인가.

가히 대륙을 지배할 만한 재능이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당하는 건 나다.'

하지만 여기서 18살 꼬마에게 붙잡히는 건, 그동안 자신에게 목이 달아난 무수한 거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단순히 피하기만 한 건 아니다.

그녀의 등 뒤에 펼쳐진 공간의 틈에서 다시 붉은 섬광이 쏟아졌고, 방향에 대한 예측을 마친 그가 식칼을 세워 들며 외쳤다.

"이런! 친구가 위기에 빠지겠는데!"

카앙!

식칼에 부딪힌 붉은 섬광이 뒤로 빗겨 나갔다.

섬광이 향하는 곳은 성벽 위, 한 여학생이 좀비들을 움직여 흉내잡이들과 싸우고 있었다. 여학생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터어어엉!

로레인이 이를 악물고 이능을 일으켜 날아올랐다. 그러고는 여학생에게 붉은 섬광이 닿기 직전, 그녀의 등 뒤로 도달해 단검을 들어 막아냈다.

"옆의 친구도 위험하지!"

부아아아앙!

도살업자가 던진 대형식칼 하나가 반대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이번엔 그 옆의 남학생을 노리고 있었다.

로레인은 여학생의 옷깃을 붙잡고 강제로 몸을 숙이게 한 다음, 칠흑을 일으키며 몸을 날렸다.

"하앗!"

그녀가 단검을 휘둘렀고, 뻗어 나간 검격이 가까스로 날아가는 대형식칼과 부딪혀 옆으로 튕겨냈다.

촤아아아악-!

성벽을 미끄러뜨리며 도착한 그녀가 고개를 돌려 도살업자가 있는 곳을 보았다.

그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녀가 다급히 통신 수정구를 들었다.

"여기는 로레인입니다! 지금 바로......."

-로레인.

그때 통신 수정구에서 느긋한 중년 남성의 음성이 들렸다.

-수고했다. 뒤는 맡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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