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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596화 (596/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96화

결사의 하수인들이라는 '불청객'이 끼어들긴 했지만, 프리고드 자치구의 요새 전쟁은 인간의 승리로 끝났다.

가할족 주민들은 기적 같은 승리를 노래했다.

하지만 흉내잡이들은 다시 올 것이다. 이번에 전력을 크게 깎아내렸어도, 남은 39개 요새에 숨어 있을 흉내잡이들의 씨를 말리지 않는 이상, 이 전쟁은 언젠가 인간이 패배하리라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때 나서준 사람이 있었다.

전혀 의외의 인물이었다.

-민생을 돌보는 것도 귀족의 의무 아니겠어요? 손상된 상아탑의 명예를 차근차근 회복해야 했는데, 마침 좋은 기회네요.

바로 세르네였다.

그녀는 상아탑 본부에 연락해서, 무너진 시간의 탑에서 회수한 몇몇 타임 아티팩트들을 이곳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그녀가 다음으로 한 일은 간단했다.

그냥 요새에 타임 아티팩트를 뿌려놓은 것이다. 흉내잡이들은 우르르 몰려들어 아티팩트에서 보여주는 인간들의 행동을 멍하니 관찰했다.

그리고 다음 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흉내잡이들이 자기들끼리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권력을 쟁탈하기 위해,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재산을 손에 넣기 위해.

요새 내에서 서로 죽고 죽이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요새를 차지하며 권력이 확고해진 개체는,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흉내잡이들을 이끌어 다른 요새를 공격했다.

39개 요새들 간의 대전쟁이 벌어졌다.

10개 이상의 요새를 차지하며 강력한 세력을 구축한 흉내잡이도 나타났지만,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흉내잡이의 손에 배신당해 목숨을 잃었다.

강력한 흉내잡이 하나의 카리스마로 유지되고 있던 세력은 와해됐고, 자기들끼리 또 싸우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관찰한 몬스터 학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기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느라 흉내잡이들의 개체 수가 믿기 힘들 만큼 크게 줄어든 것이다.

그들은 세르네에게 물었다. 대체 흉내잡이들에게 뭘 보여준 거냐고.

그녀는 웃는 얼굴로 답했다.

-인간의 역사예요.

물론 상아탑 측에서 인간의 긍정적인 부분은 제하긴 했겠지만, 흉내잡이들이 본 것은 엄연히 실제 있었던 역사이자 사건들.

인간을 따라 해서 흥한 몬스터들은, 인간을 따라 하는 것으로 자멸의 길로 빠져들고 있었다.

* * *

2박 3일간의 듀라한 합숙은 끝이 났다.

시몬이 쓰러뜨린 도살업자는 키젠 본부에 압송되었으며, 학생들은 힘든 둘째 날 밤을 보내고 조금 쉬었다가 바로 셋째 날 일정까지 소화해야 했다.

그렇게 소환학과 학생들이 로크섬에 도착한 건 3일 날 저녁.

다들 녹초가 되어 기숙사에 돌아왔다.

"그런데 결국 린, 룬 교수님들은 안 오셨네."

토토가 침대에 털썩 쓰러지며 중얼거렸다. 시몬도 옆 침대에 앉으며 말을 받았다.

"합숙이 끝났지, 듀라한 특강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

이번 합숙도 듀라한 특강에 포함되는 커리큘럼 중 하나일 뿐이다. 다음 주부터는 정상적으로 로크섬에서의 듀라한 특강이 시작될 것이다.

"그보다."

졸린 얼굴로 하품을 한 토토가 말을 이었다.

"요새에서 열심히 싸웠는데 가디언을 못 구해서 아쉬워. 시몬은 어때?"

"구하긴...... 했는데."

시몬이 쓰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머리통이 없어."

"엉?"

토토가 벌떡 일어났다.

"그, 그럼 어떻게 해? 듀라한은 제 목을 들고 있을 뿐이지. 진짜 목이 없는 언데드는 아니잖아!"

그 말이 맞았다.

사실상 아무런 쓸모가 없는 과손상된 시체.

그냥 폐기해 버리고, 듀라한의 다른 재료인 '오거로드'나 '아바론'의 시체를 네크로맨서 상점에서 구해오는 게 현명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해보려고."

시몬은 쉬운 길을 걸을 생각이 없었다.

"다른 언데드의 머리로 대체할 거야."

"그게 무, 무슨 소리야?"

이야기를 들은 토토가 펄쩍 뛰었다.

"너도 배웠잖아 시몬! 듀라한의 '연동의 룬'은, 머리와 몸통이 떨어져 있지만 같은 언데드의 신체이기에 연동돼! 그런 걸로 듀라한을 만드는 건 불가능해!"

시몬은 천천히 침대에 등을 기대었다.

"그리고 이런 것도 배웠지."

-지금은 나를 비웃겠지만 역사가 내 연구를 증명할 것이다.

"처음 듀라한을 만든 네크로맨서. 당시엔 목 잘린 시체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게 그 시대의 상식이었지만, 그는 상식을 뒤엎고 기사의 시대를 끝냈어."

천장을 올려다보며, 시몬이 눈을 반짝였다.

"나도 상식을 바꾸고 싶어."

* * *

다음 날 아침.

전공수업 이후, 오랜만에 일반과목인 제인의 '칠흑역학' 수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도 중간고사를 치르기 전의 마지막 칠흑역학 수업.

일찍 강의실에 등교한 시몬은 적당한 자리에 앉아 기지개를 쭉 켰다.

오랜만에 평화로운 일상을 만끽하면서 느릿한 동작으로 교과서를 꺼내고 있는데.

"시몬~"

고개를 돌린 시몬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아, 카미!"

카미바레즈가 앙증맞은 박쥐 날개를 파닥이며 도도도 뛰어오고 있었다. 그의 옆자리에 멈춰 선 그녀가 활짝 웃었다.

"정말 오랜만이에요! 시몬!"

"응."

시몬이 쓰게 웃었다.

"파견평가 다녀오자마자 연달아 합숙이어서 인사할 틈도 없었네. 잘 있었지?"

"네! 중간고사 기간이라 학생회에서도 크게 대단한 일은 없었어요!"

"다행이네."

반가움에 방긋방긋 웃으며 말하던 카미바레즈의 날개가 슬쩍 내려갔다.

"호, 혹시...... 상아탑에서 별일 없으셨어요?"

"아."

시몬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건 나중에 딕이랑 메이린도 오면 차근차근 설명할게. 그런데 왜?"

"그게......."

카미바레즈가 손발을 꼼지락거렸다.

"상아탑 사태 이후, 메이린이 조금 이상해요."

시몬의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고 보니 메이린은 파견평가 이후, 바로 상황을 알아보러 상아탑에 넘어갔다고 했다. 키젠에 복귀한 뒤로도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았다.

"이상하다는 건 무슨 의미야?"

"......아. 그, 평소처럼 잘 웃어주고 그러는데요. 조금 생각이 많아 보인달까. 얼굴에 시름이 깊어진 것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시간을 내서 메이린과 차근차근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았다.

일단은 강의실에 일찍 도착해서 아직 시간이 남았다. 시몬은 미리 화장실을 다녀오려 강의실 밖으로 나왔다.

"오, 시몬! 오랜만이야!"

제인의 칠흑역학 수업은 전 A반 학생들이 많이 듣기에 익숙한 얼굴들이 많았다. 학과생들이 시몬을 '회장'이나 '수석'으로 부르는 것과는 별개로, 전 A반 학생들은 순수하게 이름으로 불렀다.

시몬도 그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걸어가고 있는데.

타다다닥-!

익숙한 하늘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시몬은 움찔하며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메이린이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손목을 잡아끌고 있었다.

"메이리인! 세리 손목 아파~"

끌려가는 쪽은 다름 아닌 세르네였다. 메이린이 무섭도록 굳은 얼굴로 세르네를 어딘가로 데려가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시몬도 얼른 기척을 죽이고 뒤따라가 보았다.

그녀들은 밖으로 나와서 인적이 드문 건물 뒤편으로 들어왔다.

쿵!

세르네를 벽으로 몰아붙인 메이린이 날카롭게 말했다.

"상아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확실히 말해."

"무서워~ 메이린."

세르네가 겁먹은 시늉을 하며 어깨를 떨었다.

"그렇게 거칠게 세리를 몰아붙이면, 나올 말도 못 말하겠어."

"......하아."

평소라면 경멸하는 눈빛으로 쏘아봤겠지만, 메이린은 이마를 짚으며 긴 한숨을 내쉰 다음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말해. 나도 이 사태에 대해 알 권리가 있어."

"그치만, 메이린. 상아탑에 갔었다며?"

세르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다니엘라 경한테 다 들었을 거 아냐? 그게 내가 아는 전부야."

"글쎄."

메이린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얼어붙은 시계에 대해서라면 어떨까?"

처음으로 세르네의 웃음에 살짝 균열이 갔다. 몰래 듣고 있던 시몬도 심장이 철렁했다.

"다 알고 왔으니 발뺌하지 말고 말해."

메이린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말했다. 두 자그마한 주먹은 으스러져라 쥐고 있었다.

"얼어붙은 시계의 절대봉인을 해제하는 게 상아탑의 숙원사업이었다지? 내가, 아니. 우리 아빠랑 할아버지가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계획. 상아탑을 중립지대로 옮기는 프로젝트."

세르네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고, 메이린의 푸른 눈동자는 이채를 발했다.

"하지만 절대봉인을 해제할 수 있는 건 절대봉인뿐. 그리고 절대봉인을 풀려면 시전자의 목숨을 희생해야 한다."

"......."

"내 말 맞지?"

세르네가 자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맞아. 그런데?"

"혹시 너."

메이린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상아탑주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던 거, 혹시......."

세르네는 말없이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촤르르르르르륵!

마법진이 그려지더니, 갑자기 방대한 양의 빙결계 수식들이 공중에 띄워졌다. 메이린은 흠칫하며 고개를 들어 그것들을 보았다.

"절대봉인을 깨는 수식이야."

세르네가 생긋 웃었다.

"전 상아탑주 베르무드가 직접 개발했어. 빙결계에 재능이 있다면 이 수식으로 부작용 없이 절대봉인을 해제할 수 있지. 이번에 절대봉인을 푼 것도 이 수식 덕분이었고."

"......."

"새삼스럽게. 절대봉인은 절대봉인만으로 해제할 수 있다는 건 300년 전의 상식이야. 이제 궁금한 건 해결됐어?"

메이린은 복잡한 표정으로 동공을 흔들다가.

"아, 짜증 나아아아아!"

버럭 소리 질렀다.

"조금이라도 네가...... 네가......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내가 멍청했어!"

다시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온 메이린이 등을 홱 돌려 버렸다. 세르네가 얼른 다가와 그녀의 팔에 팔짱을 꼈다.

"어머, 그럴지도 모른다는 게 뭔데?"

"야! 징그럽게 달라붙지 마!"

"용무는 그게 끝이야? 벌써 갈 거야? 세리랑 같이 놀자아~"

"꺼져!"

메이린이 세르네를 밀어내고는 검지로 척! 그녀의 얼굴을 가리켰다.

"너! 이번에 상아탑주 임명을 유예한 건 실수야! 두고 봐! 키젠을 졸업한 뒤에 상아탑주가 되는 건 나일 테니까!"

세르네가 훗 하고 웃으며 혓바닥으로 입술을 훑었다.

"열심히 해봐~ 범재."

"닥쳐!"

메이린이 씩씩거리며 떠나갔다. 시몬은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털썩!

그때 시몬의 고개가 돌아갔다. 세르네가 벽에 등을 기대어 미끄러지듯 내려가다가, 이내 자리에 주저앉아 긴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긴 머리카락에 가려,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

위로해 줄 자격은 없었다.

이 대륙의 그 누구도.

'힘내, 세르네.'

시몬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쪼그려 앉아 어깨를 떨고 있는 하늘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보였다.

'힘내, 메이린.'

* * *

같은 시각.

로크섬 선착장.

"잠시만 비켜주십시오!"

"지나가겠습니다!"

막 커다란 배에서 내린 한 무리의 선원들이 포장에 감싸진 뭔가를 신속하게 옮기고 있었다.

위험한 물건인지, 포장에는 봉인마법이 몇 겹으로 펼쳐져 있었다.

"딱 맞춰왔네."

그리고 그 뒤에는 크림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소녀가 서 있었다.

무사히 물건을 받았다는 사인을 마친 그녀가 봉인마법이 걸린 상자를 보며 미소 지었다.

"제군이 수업이 끝나기 전까지, 늦지 않게 준비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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