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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598화 (598/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98화

"제군아. 준비됐니?"

벤야가 받침대에 올려둔 마누스의 두개골을 향해 다가가며 말했다.

걸어가면서 머리를 묶는 그녀의 모습이 어쩐지 결연해서, 시몬도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네."

벤야는 팔을 휘둘러 마누스와 연동된 마법진들을 연달아 허공에 띄운 다음, 손끝으로 뭔가를 작동시켰다.

그런데.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잔뜩 긴장하며 기다리고 있던 시몬이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을 걸려는 순간.

쿠르르르르-!

대기가 떨리고 바닥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새하얀 백골만 남은 마누스의 두 눈구덩이에 안광이 번뜩였다.

두개골의 내부에서 극도로 복잡한 마법진들이 작동했다. 각종 다변체가 위치를 옮겨가며 맞물리고, 중심으로부터 밖으로 뻗어 나가는 회로들이 정갈하게 자리잡혔다.

이제, 전 소드마스터 '마누스'의 스위치가 켜진다.

키이잉―!

번뜩이는 안광이 점점 더 커져간다. 이내 두개골의 입이 쩌억 벌어지더니.

-!@&!^*$@%&!!!

격렬한 괴성을 내질렀다. 시몬은 다급히 칠흑방패를 펼쳤다. 마치 칼날과도 같은 칠흑이 지하실 곳곳에 할퀸 흉터들을 그렸다.

"윽! 작동만 시켰는데 이게 무슨!"

[크흐흐흐! 이거 흥미롭군!]

언제 왔는지, 시몬의 교복에 매달려 있는 피어의 분신이 말했다.

[아주 조금 남아 있던 잔류사념으로 여기까지 구축했나! 인간들의 흑마법도 상당히 발달했군.]

'하, 하지만 결괏값이 뭔가 이상한 것 같은데요!'

[그럴 수밖에.]

피어의 음성이 착 가라앉았다.

[저건 더 이상, 데스랜드에서 봤던 그 소드마스터가 아니다. 그저―]

들썩들썩 움직이던 마누스의 두개골이 공중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새까만 스파크가 튀어 오르고, 휘몰아치는 광풍이 주위를 뒤흔들었다.

[폭주한 살육병기일 뿐이다.]

끼기기기기긱!

이대론 위험했다. 시몬이 다급히 외쳤다.

"벤야 선배님! 더 이상은 지하실이 버티지 못해요!"

"알았어!"

결국 그녀가 소환 마법진의 전원을 강제로 껐다. 마누스의 두개골에 번뜩이던 안광이 서서히 옅어지고, 다시 받침대로 내려왔다.

폭주가 끝나고, 시몬과 벤야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털썩 주저앉아 가쁜 숨을 내쉬었다.

"......보다시피 이런 상황이야."

벤야가 말했다.

"자연형 언데드로서의 자아와 사념을 상실한 채, 거름으로 돌아가려던 시체를 강제로 붙들어 소환형 언데드로 끌어올리는 데까지는 성공했어. 하지만."

그녀가 복잡한 시선으로 마누스의 두개골을 바라보았다.

"칠흑을 불어넣어 기동하는 순간부터, 이 언데드는 자신의 모든 자원을 '폭주'에 사용해. 최후에는 자신을 유지하는 소환 마법진까지 소모해서 끓어오르겠지."

"......."

"만약 그렇게 자멸한다면, 두 번 다시 복구하는 건 불가능해."

시몬이 표정을 굳혔다.

이대로는 통제 불가능한 위험한 소환수. 피어의 말대로 의지 없는 살육병기에 가까웠다.

'하지만 강력한 재료인 것도 사실이야.'

프린스와 호각. 혹은 그 이상이었던 에이션트 언데드다.

지금 저 막대한 출력을 보니 네크로맨서로서 흥미가 생기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걸 어떤 용도로 쓸 생각이니?"

"아, 그게......."

시몬이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듀라한의 머리로 만들 생각입니다."

"????"

벤야가 얼빠진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 * *

"가디언의 몸통에, 마누스의 머리를 단 듀라한을 만든다고?"

"네, 선배님!"

"......다시 생각해 봐, 제군아."

지하실의 봉인을 꼼꼼하게 확인한 벤야가 계단을 오르며 말을 이었다.

"듀라한을 정복하는 방법이라면 많아. 반출 자체가 금지된 가디언까지는 무리겠지만, 내 인맥으로 A+급의 오거로드나 아바돈 시체는 구해줄 수 있어."

"말씀은 감사드려요."

시몬도 뒤따라 계단을 오르며 빙긋 웃었다.

"제 연구가 실패하면 그때 부탁드릴게요."

"......하하."

벤야가 못 말리겠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황천고래 새끼의 뼈로 언데드를 만들고, 폭발하는 구울을 만들 때부터 알아봤지만 말야."

그녀가 시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역시 제군이야말로 '돌연변이'의 정신에 가장 걸맞은 사람이야."

"그렇게 봐주셨다면 영광이네요."

"좋아! 네 엽기 듀라한 정복을 위해 필요한 재료는 내가 지원해 줄게!"

"아, 그래 주신다면 감사하죠!"

시몬이 그녀에게 인사하며 동아리 방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아, 나오셨다!"

"학생회장 선배님!"

문을 열자마자 1학년들이 병아리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학생회장 선배님! 벤야 선배님!"

"다친 곳은 없으세요?"

"괜찮으세요?"

시몬이 부드럽게 웃었다.

"미안, 갑자기 바닥이 진동해서 놀랐지? 별일 아니었어."

벤야도 입을 벌리며 활짝 웃었다.

"우리 애기들! 걱정해 준 거야?"

잠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피츠제럴드는 벌써 1학년들의 관심에 밀려났는지 저 멀리서 눈물을 삼키며 책을 끄적이고 있었다.

"시몬 오빠. 근데 이 밑에 뭐가 있는 거야?"

사샤가 물었다.

생각해 보니 숨길 일은 아니었기에, 시몬은 담백하게 답했다.

"이번 중간고사에 쓸 듀라한의 재료."

와아아아-!

곳곳에서 탄성이 쏟아졌다.

"듀라한! 목 없는 기사죠? 알아요!"

"2학년이 되면 듀라한도 만들어요?"

"나도 만들고 싶다!"

"넌 스켈레톤 게다리 춤추는 거나 고쳐."

"야악! 말하지 마!"

시몬이 슬쩍 웃었다.

그래도 마누스의 힘을 확인해서 그런지, 오늘은 기분이 좋았다.

"그럼 모르는 문제들 계속 봐줄까?"

"네에!"

* * *

키젠에서는, 시험기간 중의 수업은 하나같이 빡센 걸로 유명했다.

물론 몸을 주로 쓰는 마투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로크섬의 산 중턱 위에서, 체육복 차림의 시몬이 숨을 헐떡이며 달리고 있었다.

"다 왔다! 다 왔어!"

"조금만 더 힘내요! 학생들!"

이번 홍펭의 마투학 수업 주제는 '종합 장애물 코스'였다. 시몬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힘내, 카미!"

"하아! 하아! 네, 시몬!"

마찬가지로 체육복을 입은 그녀가 눈을 질끈 감고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시몬은 그녀를 다독이며 앞을 보았다.

이제 다음 코스다.

선반에 꽂혀 있는 병장기들이 보였는데, 철퇴, 창, 방패, 활, 채찍 등 그 종류가 다양했다.

"갑자기 웬 무기?"

"여기 이거 봐! 한 명당 하나씩만 고르라는데?"

잠시 조용하던 학생들은, 이내 앞다투어 달려가 무기를 손에 쥐었다.

'대검이다!'

시몬은 바로 원하는 무기를 발견했다.

선반에 커다란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대검을 집으려 팔을 뻗으려는데.

척!

한발 앞서 커다란 손이 대검의 손잡이를 붙들었다.

"뻔하지."

헥토르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 또한 홍펭의 마투학 수업을 듣고 있었다.

"네놈이 빤히 주력 무기를 쓰는 걸 내버려 두겠나."

'윽!'

간발의 차로 대검을 빼앗긴 시몬은 하는 수 없이 다른 무기를 살폈다. 뒤늦게 도착한 학생들은 익숙한 날붙이 위주로 가져가는 중이었다.

카미바레즈는 방패를 골랐다.

'나는.......'

남은 병장기가 별로 없었다.

시몬은 하는 수 없이 가장 인기가 없고, 학생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채찍을 골랐다. 슥슥 잡아당겨 보니 탄력이 제법이었다.

철컥!

철컥!

그때 주위의 바닥이 갈라지더니, 석궁이 연결된 장치들이 올라와 학생들을 겨누었다.

학생들은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지만, 다행히 장전된 건 진짜 화살은 아니었다. 끝이 뭉툭했다.

"이번엔 화살 피하는 건가 보다."

"살았네."

학생들은 안도하는 눈치였다. 사실 화살 정도야 굳이 무기를 쓰지 않아도 맨몸으로도 가뿐히 피할 수 있었으니까.

-C팀, 그럼 다음 과제예요!

그때 홍펭의 목소리가 들렸다.

-화잘을 가장 많이 '격추하는' 10명만 통과!

"?!"

피하는 게 아니었어?

그런 의문이 들기 무섭게 화살이 사방팔방에서 쏟아졌다.

"윽!"

학생들은 어눌한 동작으로 검과 창을 휘둘렀지만, 폭이 좁은 날붙이 무기로는 화살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본인에게 날아오는 것도 막지 못하고, 연달아 몸에 얻어맞아 나가떨어지기 일쑤였다.

카미바레즈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방패 뒤에 몸을 숨기고만 있었다. 그녀의 체구가 작아서, 방패 뒤로 몸을 완전히 쏙 가릴 수 있었다.

그녀는 가만히 방패를 들고 화살을 막는 것 만으로도 상위권이었다.

"에이 씨! 공격 무기가 아니라 방패를 들었어야 했는데!"

"이 와중에 카미 귀여워!"

부앙! 부앙!

한편 헥토르는 신경질적으로 대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다른 날붙이 무기들보다 폭은 넓지만, 무거워서 제대로 화살을 맞추기 힘들었다.

"제기랄!"

헥토르도 단순히 시몬을 견제하기 위해 대검을 고른 건 아니었다. 그 또한 대검술에 자신이 있었으나, 화살을 맞추는 규칙은 상정 외였다.

그리고.

"와아아아아!"

"뭐야? 쟤는!"

시몬은 언어 그대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채찍을 칠흑의 강선으로 감싸서 휘어지는 컨트롤을 자유롭게 한 다음, 사방으로 휘둘렀다.

퍼벅!

퍽!

자신에게 오는 화살뿐만 아니라, 공중으로 날아가는 화살까지 자유자재로 맞추고 있었다.

시몬이 한 번 채찍을 휘두를 때마다 화살이 3~4개씩 떨어졌다.

"빌어 처먹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헥토르의 몸에 새까만 방울들이 연이어 흘러나왔다. 단시간 육체를 강화시키는 '체내 칠흑 분화'.

강화된 힘으로 무거운 대검을 붕붕 쇠젓가락처럼 휘둘러대는 헥토르를 보며 시몬이 빙긋 웃었다.

"벌써 '분화'를 쓰면 지치지 않을까?"

"닥쳐라!"

두 소년의 치열한 경쟁에 다른 학생들이 아우성을 냈다.

"이 미친놈들아! 보고 휘둘러 좀!"

이번 장애물 코스도 1등 시몬과 2등 헥토르의 독무대였다.

* * *

다음 수업은 프리스트 출신의 '파라한 교수'가 가르치는 신성방어학.

신선처럼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교재를 보던 파라한이 학생들에게 하나둘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교재의 그림처럼 위아래로 긋는 성호의 의미는-"

그러자.

누구보다 번쩍 올라가는 손이 있었다.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상급자에 대한 복종'입니다."

"가리도의 의미는?"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성찬의 전례'입니다."

"해당 수식에서 아우디오 룬어의 용도는-"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축복학 계열의 청각강화 백마법입니다."

1학년 때도 그랬듯, 2학년 때도 신성방어학은 시몬의 독무대였다.

A반 출신들은 익숙했지만, 다른 학생들은 하나같이 놀라자빠지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아니. 저걸 다 어떻게 알아?"

"......이쯤 되면 본인이 프리스트인 거 아니냐."

차곡차곡 상점과 수행평가 점수를 쌓아가는 시몬을 보며, 파라한은 쓴웃음을 흘렸다.

"학생은 수업 끝나고 나 좀 보게."

"네!"

중간고사 마지막 신성방어학 수업을 마치고, 시몬과 파라한은 함께 교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파라한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집은 산을 한참 올라가야 나왔다. 거리는 멀어도 꽤 괜찮은 산책코스였다.

"왜 그렇게 열심히 하나?"

파라한이 웃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신성방어학은 자네가 1등일 텐데 말일세."

신성연방에도 가보고 심지어 신성을 직접 쓸 수 있는 시몬을, 이론으로만 공부한 다른 네크로맨서 학생들이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시몬도 뒤따라 웃으며 말했다.

"방심할 수 없으니까요."

-야옹! 야오옹!

-냥! 냥! 냥!

집이 가까워지니 멀리서부터 요란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시몬의 신수가 된 하양이, 까망이가 마중 나와 있었다.

"안녕! 잘 있었어?"

시몬이 달려가 두 새끼 고양이들을 끌어안았다. 고양이들은 연신 버둥거리며 앞발로 시몬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왜 이렇게 자주 안 오는 거야?

-나빴어!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시몬도 빙긋 웃으며 새끼 고양이들을 달래주었다.

"미안, 그동안 정신없이 바빠서. 좀 더 자주 올게."

어느새 곰돌이처럼 생긴 신수인 아칼리온도 다가와 다리에 제 뺨을 비볐다.

시몬은 세 마리의 신수들을 데리고 파라한의 집으로 들어갔다.

간단히 차를 한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몬은 시간의 탑에 있었던 일들. 특히 혼돈과, 보이드에 대한 이야기를 파라한에게 들려주었다.

"미래의 자네는 그 힘을 자유자재로 다뤘다는 게군."

"네."

시몬이 양손에 희고 검은 기운을 일으켰다.

"하지만 여전히 두 요소를 온전히 섞을 수는 없어요."

"너무 서두르진 말게."

파라한이 손에 든 부채를 천천히 흔들며 말했다.

"자네는 아직 칠흑과 신성, 어느 쪽도 완전히 숙달한 게 아니지 않나. 자네의 역량이 쌓이다 보면, 보이드로 향하는 길은 자연스럽게 열리게 될 걸세."

시몬도 그 말에 동의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칠흑과 신성을 섞는다.

방식은 단순해 보였지만,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깨달음과 높은 경지가 필요할지 헤아리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신성 쪽이 더 급하군."

파라한이 말했다.

"신수들 덕분에 신수학의 수준은 높지만, 공격계열 신성마법은 가르친 게 전무하니."

"아, 저 하나 알아요."

시몬은 바로 백마법을 펼쳐 보였다.

<레테 오리지널 - 라 에스크림>

신성의 선이 펼쳐지고, 축복의 띠가 창대를 휘감아 드릴의 형태로 변한다.

"오오, 이건 무슨 기술인가!"

파라한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아름답고 효율적인 기술이 있나! 신성역학과 축복학의 결합이로군! 그래, 홀리 스피어 계열의 단순한 성능을 5종의 축복으로......."

키젠에서 일하면서 이런 수준의 백마법을 보기는 힘드니 파라한도 흥분한 것 같았다.

그는 왔다 갔다 하며 라 에스크림을 관찰하기에 바빴다. 시몬은 턱을 괸 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창밖으로 하얀 구름이 떠다니고 있었다.

'레테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으려나.'

* * *

신성연방의 성지이자 에프넬의 본진.

하늘섬.

"그라툴라 미 키빌리스(cíbĭlis)."

"여신의 가장 가까운 딸을 뵙사옵니다."

"전투에 나간 우리 아들에게 축복을......."

이곳의 주민들은 하나같이 깊게 고개를 숙이거나 자리에 엎드려 경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드님께서 부디 무사히 귀환하길 기도하겠습니다. 여신께서도 살펴주실 거예요."

먼지 한 톨 없는 깨끗하게 닦인 길.

그곳에 별무리를 일으키며 걸어오는 백발의 소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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