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01화
그날 새벽.
시몬은 동아리 지하실에서 완전히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오늘 안에 마누스 듀라한을 만들고 말겠다는 열정은 좋았으나, 오전 오후 내내 듀라한 제작으로 피로도가 쌓인 상태에서 더 어려운 듀라한 제작에 들어가는 건 무모했다.
시몬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바닥에 드러누워 자고 있었다.
.......
.......
지하실에는 적막한 정적만이 흘렀다.
테이블 중앙에는 시몬이 연구하는 마누스의 두개골과, 온갖 언데드 재료들이 어질러져 있었다.
공중에는 마법진이 허공에 떠 있었는데, 여전히 효과가 발휘되어 파직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도 있었다.
파직!
공중에 떠 있는 마법진은 주위의 마나를 끌어모으고 방출하기를 반복했다.
파직!
파직!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다가, 마법진은 지속시간이 다해 스스로 분해되었다.
그 잔해 몇 점이 마누스의 스켈레톤의 눈구멍으로 들어갔다.
우웅-
틀림없이 마법적 전원을 꺼두었던, 스켈레톤 마누스의 동공에 불이 들어왔다. 그 붉은 점 같은 동공이 잠들어 있는 시몬을 응시했다.
스스스스스―
마누스의 머리가 공중으로 치솟으며 사방으로 칠흑을 뿜어냈다. 곳곳에 무분별하게 널려 있던 스켈레톤의 뼈들이 마누스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이내 절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뼈들끼리 연결되기 시작했다.
삐걱-
삐거거걱-
마누스에게 육신이 생겼다.
파츠가 군데군데 빠져 있고, 뼈의 순서도 엉망이라 움직임이 엉성했지만 간신히 걸을 수는 있었다.
삐걱-
삐걱-
괴이한 소리와 함께 스켈레톤의 몸이 삐걱거리며 걸어갔다.
발을 절 듯한 걸음으로 천천히.
느리지만 정확하게.
시몬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슥.
마누스가 걸어가면서 테이블에 놓여 있던 작업용 칼을 붙잡았다.
그의 두개골에서부터 흘러나온 칠흑이 작업용 칼에 맞닿자, 그 검신이 치솟으며 새까만 롱소드의 형태로 변했다.
삐걱-
삐걱-
시몬이 깨어난 건 그즈음이었다.
피부가 저릿저릿한 느낌에, 결국 시몬은 눈을 떴다.
'아, 잠깐 졸았.......'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본 광경은.
자신을 향해 검을 들어 올리고 있는 스켈레톤의 모습이었다.
"우왓!"
시몬이 급히 다리를 벌렸다. 스릉! 하고 날카로운 칼날이 시몬의 다리 사이에 긴 검상을 남겼다.
시몬은 식겁하며 몸을 일으켜 물러났다.
[.......]
제대로 베었어야 할 터인데.
그렇게 생각하는 듯 마누스는 자신의 엉성한 팔을 못마땅하게 한 번 보다가 다시금 시몬에게 걸어갔다.
'뭐야 저게! 어떻게 움직이는 거지?'
시몬은 식은땀을 흘리며 마누스의 두개골과 스켈레톤의 뼈를 보았다.
'내 스켈레톤의 통제권을 가져갔어.'
저건 제대로 된 스켈레톤으로서 '인력'을 발휘하는 게 아니라, 그냥 칠흑으로 뼈를 휘감아 띄워서 자신의 몸에 억지로 맞췄을 뿐이다.
졸지에 몸을 빼앗긴 스켈레톤의 두개골이, 저 멀리서 억울하다는 듯 웅웅거리고 있었다.
스릉!
마누스가 재차 검을 휘둘렀다. 시몬이 급히 자세를 낮췄고, 머리카락 몇 자락이 잘려 나가 허공에 휘날렸다.
심장이 철렁하는 기분을 느끼며, 시몬은 팔을 뻗었다.
"자, 잠깐! 왜 나를 공격하는 거야?"
에이션트 언데드들과의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시몬이 그렇게 내뱉었지만, 바로 이어지는 생각이 바보 같은 물음이었다는 사실을 자각시켜 주었다.
저것이야말로 언데드의 본질.
살아 있는 자를 증오하는 망자의 본능에 휘둘리고 있다. 저건 마누스가 아니라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짐승에 가깝다.
척.
마누스가 자세를 낮추더니 양손으로 검을 붙잡고 턱 아래로 당기는 자세를 취했다. 시몬은 전신의 솜털이 쭈뼛 서는 느낌을 받았다.
저건 제대로 된 '검술'의 자세다.
'이 거리에서 소드마스터와 싸우는 건 자살행위야!'
시야가 흐물거리는 최악의 컨디션임에도 불구하고, 위기감이 뇌를 깨우고 집중력이 번뜩였다.
<클라우드>
클라우드를 채찍처럼 내보내 마누스 등 뒤에 있는 테이블을 붙든 다음, 힘껏 잡아당겼다.
[.......]
마누스가 뒤를 돌아보며 검을 휘둘렀다.
스릉!
테이블이 소름 끼칠 만큼 깨끗한 단면으로 갈라졌다.
바로 그사이, 시몬은 입구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싸울 수야 있었지만, 그래 봐야 결국 연구 중인 마누스를 제 손으로 파괴하는 꼴이다.
일단 마누스를 여기에 가둬놓고 탈출하는 게 급선무였다.
'저 몸은 마누스가 억지로 형태를 유지하는 것뿐이야! 달릴 수는 없을......!'
그 순간.
시몬은 등에 소름이 쫘아악 돋는 감각을 느끼며 뒤를 돌아보았다. 마누스가 검격을 날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위험해!'
텁!
시몬은 달리면서 근처에 놓여 있던 관뚜껑을 붙잡아, 칠흑으로 강화한 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쩌어어어어어억!
세상이 반으로 갈라진다.
검격이 몰아치고, 물리법칙과 자연현상에 역행하는 검격에 스친 조명의 반사광이 사방을 한순간 밝게 비췄다가 돌아온다.
시몬이 손에 든 관뚜껑이 깔끔하게 절단되고.
촤아아악!
뒤를 이어서 시몬의 어깨에 피 분수가 솟구친다.
'일격에 키젠 교복의 배리어를......!'
그 뒤를 이어, 시몬의 등 뒤에 있던 지하실의 벽이 입을 벌린 것처럼 쩌어억 벌어졌다.
벌어진 틈으로 허연 단면이 보였다.
털썩.
시몬은 그대로 어깨를 붙잡고 주저앉았다.
상처가 깊었다. 피가 줄줄 흘러 교복셔츠를 새빨갛게 물들였다. 허억 허억 시몬의 숨결이 거칠어지고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방금 일격의 리스크는 있는지 마누스의 오른팔도 걸레짝이 되어 일그러졌다.
마누스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며, 바닥에 떨어진 검을 남은 왼팔로 쥐었다.
끼릭!
끼릭!
그러고는 마무리를 위해 천천히 다가왔다.
"뭐."
피가 흐르는 어깨를 붙들며, 시몬이 희미하게 웃었다.
"시간은 끌었어."
콰앙!
[군단장니이이임!]
문의 봉인마법이 해제되고, 에르제베트가 지하실로 뛰어 들어왔다.
시몬의 어깨에 피가 쏟아지는 모습을 본 그녀의 눈깔이 확 뒤집혔다.
[감히!]
그녀가 거칠게 팔을 뻗었다. 주로 사용하는 거미줄 기술도 아닌, 단순히 응축된 칠흑을 방출하는 행위.
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마누스가 칠흑으로 붙들고 있던 뼈들이 칠흑의 강한 압력에 날아가 버리고, 순식간에 마누스는 두개골만 남아 바닥에 툭 떨어졌다.
콰앙!
바닥에 떨어진 마누스의 두개골을 에르제베트가 곧장 짓밟았다. 금방이라도 두개골을 부숴 버릴 듯, 힘을 준 그녀의 구두 굽에 칠흑이 일렁거렸다.
[이딴 건 당장 없애 버리겠어요!]
"그만해!"
시몬이 다급히 소리쳤다.
"......나, 난 괜찮아. 너무 흥분했어, 에르제."
[군단장니임!]
에르제베트는 만의 하나의 상황에 대비해 마누스의 두개골을 거미줄로 칭칭 감아 봉인하고는 시몬에게 뛰어 들어왔다.
[크흐흐! 딱 제시간에 맞췄군.]
피어의 분신이 말했다. 시몬이 고개를 내렸다.
"피어가 불러준 거예요?"
[그래. 잠든 채 대답도 안 하기에 혹시 모르니 에르제베트를 보냈다.]
"덕분에 살았어요."
에르제베트는 시몬의 어깨에 난 검상과 흐르는 피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난...... 괜찮아.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잠깐 떨어져 줄래?"
에르제베트가 순순히 뒤로 물러서고, 시몬은 눈을 감았다.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
우우웅-!
몸에 흐르던 칠흑이 빠지고 성스러운 에너지가 몸에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프리스트가 된 시몬이 상처에 손을 올렸다.
<힐링(Healing)>
파아앗!
치유학의 기본기인 힐링으로 급하게 긴급조치를 했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는지 머리도 어지러웠다.
[으흑! 군단장님! 군단장니임! 소녀를 두고 죽으시면 아니 되옵니다!]
시몬의 상태가 돌아오지 않자 에르제베트가 통곡했다. 시몬이 싱거운 웃음을 흘렸다.
"안...... 죽어. 그, 그보다. 파라한 교수님."
[네?]
"파라한 교수님한테...... 데려다줘."
* * *
명령대로, 에르제베트는 즉시 시몬을 업고 파라한의 집으로 향했다.
파라한도 어떻게 알았는지 본인의 집 앞에 마중 나와 있었다.
에르제베트는 잽싸게 '엘리자베스 웨퍼'라는 컨셉의 분홍색 머리 여학생으로 변신해서 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시몬은 바로 파라한의 침실로 이동했고, 그의 신성마법이 펼쳐지는 것을 끝으로 기억을 잃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야옹 야옹!
-냥냥냥!
얼굴에 뭔가 꾸물거리는 털의 감촉을 느끼며 시몬은 눈을 떴다.
'아.'
여기는 파라한의 집이었다.
가슴에 올라와 장난치는 하양이와, 얼굴에 올라와 냥냥펀치를 날리고 있는 까망이가 보였다.
시몬이 눈을 뜨자 일제히 '애옹'거리는 소리를 내며 시몬의 뺨에 얼굴을 비볐다.
"하하."
신수 고양이들의 애교에 시몬의 얼굴도 풀어졌다. 창가로 신선한 바람이 불어왔고 짹짹 평화로운 새소리가 들렸다.
"아직 움직이지 말게."
신성방어학 교수 파라한이 하얀 수염을 쓸며 방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상처가 벌어질 수 있으이."
"......아."
시몬이 고개를 내려 뒤늦게 자신의 몸을 보았다. 마누스에게 당한 상처 부위가 붕대로 칭칭 감겨 있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
"허허! 아닐세. 아끼는 제자이니 이 정도는 당연한 것이지."
-우어엉!
아래에는 곰 신수, 아칼리온이 머리에 쟁반과 물수건을 들고 있었다. 파라한이 시몬의 이마에 올려둔 물수건을 갈아주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나?"
시몬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언데드 실험을 하다가 잠시 졸아버렸고, 그사이 눈을 뜬 언데드에게 공격당했다고.
이런 사고는 키젠에선 희귀한 일도 아니었기에 파라한도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언데드를 만들고 있길래 자네 정도의 학생이 이런 꼴을 당했을꼬."
"......아하하."
시몬이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너무 방심했나 봐요."
파라한은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주말일세. 시험공부도 좋지만, 휴식이 가장 중요하지. 있고 싶은 만큼 푹 쉬다 가게나."
"감사합니다!"
* * *
시몬은 오전 내내 파라한의 집에서 요양하며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애를 써도 꿈쩍도 안 하더니.......'
새벽엔 어떻게 마누스가 일어난 걸까?
무엇보다 마누스는 에이션트 언데드일 때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지만, 깃든 검술은 여전했다.
마지막에, 자신을 베었던 마누스의 검격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하하, 나 아직 정신도 못 차렸나.'
그렇게 당하고도 다시 수식을 수정해서 도전해 보고 싶은 열망이 불타오르는 걸 보면, 네크로맨서 다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시몬은 오전에는 파라한의 집에서 요양하고, 오후에 기숙사로 들어왔다.
휴식을 취하니 조금 머릿속이 비며 여유가 생겼다.
일단은 마누스 제작보다는 중간고사와 필기공부에 집중하기로 했다. 주말 저녁에 학생회 멤버들과 학생회실에서 같이 공부하기로 했기에, 시몬은 책을 챙겨 들고 나섰다.
달칵.
"나왔어."
시몬이 학생회실 안으로 들어왔다.
"헤이, 왔냐!"
"안녕하세요 시몬!"
"야! 왤케 늦었......!"
각자 개성대로 인사하던 학생회 멤버들이 시몬이 몸에 두른 붕대를 보고는 휘둥그레졌다. 메이린이 벌떡 일어났다.
"너 몸이 왜 그래?"
시몬이 뜨끔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별거 아냐. 이미 다 나았어."
"제가 한번 볼게요!"
카미바레즈가 도도도 뛰어와 시몬의 상처를 확인했다.
그녀는 크게 안도하며 무척 깨끗하게 나았다고 말했다.
무려 신성연방 주교 출신인 파라한의 치유마법을 받았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거기에 대부분의 네크로맨서들과는 달리, 시몬은 백마법의 회복효과가 상당히 잘 듣는 체질이었다. 가히 연구대상으로 삼을만한 괴이한 몸이었다.
"야! 그래서 왜 다친 건지 말 안 해?"
메이린은 걱정이 되는지 자꾸 보챘고, 시몬은 하는 수 없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듀라한을 만들다가......."
"그 듀라한에게 공격당했다고?"
카미바레즈와 메이린과 표정이 멍해졌다.
"이야아~ 하하! 너도 아직 그런 실수를 하는구나! 인간적이어서 좋은데?"
딕이 키득거리며 시몬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때렸다.
다들 언데드가 만들어진 직후에 생명체를 공격하는 '사후본능'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조금 달랐다.
'......마누스.'
시몬은 전 에이션트 언데드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거였다.
'어떻게 하면 다룰 수 있을까.'
조금 더 핵심적인 깨달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