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03화
며칠 뒤.
드디어 '단일 언데드 운용' 수행평가 당일이 다가왔다.
소환학과 학생들의 집합장소는 로크섬 내에 위치한 '키젠 지하던전'이었다.
덜컹 덜컹-
흔들리는 마차에 몸을 맡긴 채, 시몬은 피곤한 얼굴로 멍을 때리고 있었다. 주위에는 다른 동기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었다.
"키젠의 지하던전. 유명한 곳이지."
피츠제럴드가 안경을 추켜올렸다.
"대륙 전역에서 생포해 온, 셀 수 없이 많은 몬스터들을 가둬놓은 일종의 초대형 감옥이다."
"나랑 시몬은 한번 가본 적 있어!"
토토가 그렇게 말하고는 시몬을 보았다.
"그렇지? 시몬."
"맞아."
오랜만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저 커다란 동굴. 1년 전, 1학년 A반은 저기서 조별로 '사이클롭스'를 잡는 첫 수행평가를 치렀었다.
"시몬, 너 괜찮아?"
맞은편에 앉아 있던 로레인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하하. 그냥 좀 긴장해서 그래."
시몬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30분밖에 못 잤지.'
마지막 완성의 순간까지 피 튀기는 전투...... 아니, 제작의 과정을 거쳤다.
언데드를 제작한다는 건 무수한 변수의 연속이었다. 한 번만 더 특수한 재료로 언데드를 만들면 목숨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았다.
'어쨌거나.'
시몬은 고무된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완성은 했어.'
어서 이걸 시험에 써보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거릴 지경이었다. 마차로 이동하는 내내 아공간을 열고 새로 만든 듀라한을 꺼내는 상상을 했다.
잠시 후, 마차가 멈추고 학생들이 하나둘씩 내렸다. 지하던전 앞에 마중 나와 있던 조교들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교수님들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동하시겠습니다."
이내 조교들을 따라 지하던전의 입구에 진입하는 순간, 텁텁한 공기가 폐부에 차오르는 걸 느꼈다. 눅눅하고 습기 찬 공간에 곰팡내가 진동했으며, 멀리서 몬스터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학생들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지하던전의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내 목표는, 졸업 전에 여기 최하층에 잠들어 있는 천사를 구경하는 거야!"
시험장으로 가는 길, 에슈는 그런 소리를 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토토가 그 말을 받았다.
"......아, 그 학교 미스테리."
"그 전설을 믿는다는 건 지성의 문제다만."
피츠제럴드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덧붙였다.
"천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성녀도 있는데 천사도 있을 수 있지! 근데 안경남 너 왜 자꾸 우리 조에 있어? 니네 조에 가!"
"......세르네와 같이 다니면 기억이 드문드문 끊기는 기분이 든다."
세르네에게 몇 번 크게 덴 건지, 피츠제럴드는 가끔 시몬의 10조에 놀러 오곤 했다. 시몬과 토토 둘 다 있어서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그렇게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며, 소환학과 학생들은 지하던전 내 텔레포트 마법진을 몇 번을 타고 연달아 이동했다.
감옥 내에 텔레포트 마법진의 구조가 무척이나 복잡했는데, 방향을 기억하려던 학생들도 결국 포기했다.
'엄청 깊이 들어가네.'
1학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깊은 곳까지 왔다.
과연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까.
시몬은 교복 넥타이를 고치며 결의를 다쳤다.
"아!"
"교수님들이다!"
꽤 긴 이동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넓은 지하 공터가 보였고, 그곳에 소환학과의 교수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학과 담당교수이자 중급 소환학을 가르치는 아론, 소환 재료학을 담당하는 그레리온, 그리고 소환 장송학을 맡은 린&룬 쌍둥이 교수까지.
교수들의 뒤로 조교진들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이렇게 한 번에 모여 있으니 새삼 학과의 인원이 꽤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시몬이 고개를 들어 위층을 응시했다.
'키젠 본부 직원들이네. 그리고.'
"원로들까지 와 있어."
로레인이 중얼거렸다. 그녀는 눈에 익은 듯, 검버섯이 핀 노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에슈가 콩콩 뛰며 옆을 가리켰다.
"로레인 님! 저기 까마귀들도 왔어요!"
"저 옆엔 부자들인가 봐. 막 반지를 열 개씩 끼고 있는데?"
2학년 이후, 거의 처음으로 하는 제대로 된 실기 수행평가라 그런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다.
일종의 쇼케이스 성격.
학생들은 대륙의 거물들 앞에서 역량을 내보일 기회였다. 이런 성과 하나하나가 자신의 장래와 커리어에 영향을 줄 거라는 건 당연한 사실이었다.
"주목."
아론이 앞으로 나왔다.
학생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고 아론을 응시했다.
"키젠 지하던전에 온 걸 환영한다. 첫 대형 수행평가 준비는 잘했겠지?"
네에에에!
학생들이 목청껏 대답했다.
"이번 수행평가의 중요성이야 두말할 것도 없다. 내가 가르치는 중급 소환학뿐만 아니라, 그레리온 교수님과 린, 룬 교수님도 각자의 과목에서 수행평가 점수를 매기실 거다."
학생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전공 세 과목 모두 연동된다. 괜히 대형 수행평가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번 수행평가에 대해선, '단일 언데드 운용'이라고 공지한 바가 있다."
그가 학생들을 쭉 둘러보다가 불쑥 말했다.
"코이터 피즌."
주위가 조용해졌다. 이내 한 학생이 자신의 이름인 걸 깨닫고 번쩍 손을 들어 올렸다.
"코, 코, 코이터 피즌입니다!"
"자가진단이다."
아론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번 시험을 위해 준비한 네 언데드에 등급을 매긴다면, F~A 등급 중 어느 정도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나."
"......네?"
주위에 묵직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동급생들은 물론, 교수들의 시선, 그리고 2층에서 흥미로운 듯 지켜보는 각계의 거물들과 원로들, 본부 직원, 까마귀 선배들까지.
진땀을 줄줄 흘리던 코이터가 이내 주먹을 꽈악 쥐며 호기롭게 소리 질렀다.
"무, 물론 A등급입니다!"
마지막 글자는 음이 튄 채로 삑! 하는 삑사리가 튀어나왔다.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코이터는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면서 대답했다.
"진짜로 자신 있습니다! 이번 수행평가를 위해 잠도 제대로 안 자고 준비했어요! 중간고사도 뒷전으로 미루고 여기에 올인......!"
"중간고사는 대충 봤다는 소리냐."
아론이 툭 내뱉은 말에, 코이터의 얼굴이 한층 더 벌게졌다.
"아, 아니! 진짜 대충 봤다는 게 아니라 은유적 표현일 뿐이고! 그만큼 이번 수행평가를 위해 노력했다는 의미입니다!"
오올―
몇몇 학생들이 장난스럽게 휘파람을 불었다. 헥토르의 파벌들은 실실 웃으며 '띨빵한 새끼'하고 중얼댔다.
"그렇다면 좋다."
아론이 고개를 돌렸다.
"엘라린 루오."
"우왓! 네, 네네넵! 엘다린 루오입니다!"
한 여학생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긴장했는지 손끝이 교복 소매로 삐쳐나온 손끝이 바들바들 떨리는 모습이 보였다.
"자가진단."
"아, 저, 저는......!"
먼저 발표한 코이터 쪽을 힐긋 보던 그녀가 이내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저도 A급이에요! 제 듀라한은 어떤 시험도 통과할 수 있는 만전의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이어서 아론은 한 명 한 명 시선이 가는 대로 학생들을 지목했다.
"라우벨 브엔머스."
"에슈 아르젤."
"기네비어 벤너스."
대다수의 학생들이 손을 들고 자신 있게 A급을 불렀다.
아론의 어투도 가벼웠고, 무엇보다 조교들도 학생들이 말한 등급을 기록하지 않고 있었다. 시험 전에 긴장도 풀 겸 간단한 각오 한마디를 듣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야. 네크로맨서라면 두려움에 떠는 것보다는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게 낫다.
그나마 양심적으로 B급을 부른 학생들이나, 토토처럼 눈치를 보면서 C급을 부른 학생들이 최하치였다.
그 아래는 전혀 없었다.
"헥토르 무어."
이름을 불린 헥토르가 무심한 얼굴로 대답했다.
"S급은 없습니까."
하하하하!
그의 파벌들이 유쾌하게 웃으며 헥토르의 등을 툭툭 쳤다. 가디언을 확보해서 듀라한을 만든 헥토르는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헥토르는 입꼬리를 올리며 시몬을 응시했고, 마침 아론도 말했다.
"시몬 폴렌티아."
시몬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저도 최고등급으로 매기고 싶습니다."
"알겠다."
아론이 시몬을 마지막으로 끊고 학생들을 쭉 한번 둘러보았다.
"대부분이 'A급'을 말했다. 그렇다면 여기 있는 전원이 공평하게 최고 성적이겠군. 안 그런가?"
"......."
주위에 살짝 긴장한 듯한 정적이 깔렸다.
"자신감과 패기는 좋다. 하지만 네크로맨서는 어느 때나 냉정해야 하지. 소환수의 성능은 실전에 들어가기 전에 충분한 예측이 가능하다.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가, 어떤 수식을 사용해 만들었는가, 제작 과정에 손상은 없었는가, 누락된 요소는 없는가, 움직임이 부드러운가, 칠흑의 운용량은 어느 정도인가."
그렇게 말한 아론이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사냥꾼은 자신이 다루는 무기에 해박해야 밥을 굶지 않는다. 화살이 얼마나 멀리 나가는지 알아야 사냥감의 적정거리까지 다가가서 맞출 수 있겠지. 네크로맨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열정을 다해서 만든 소환수라도, 그 능력을 냉정하게 측정해야 한다. 과소평가한 경우는 칠흑이 낭비되는 건 물론 효율이 떨어지게 되고, 과대평가된 경우."
아론이 무겁게 덧붙였다.
"최악에는 전투에서 죽을 수도 있다."
"......."
"냉정하게 소환수의 역량을 평가하고, 100% 활용할 수 있을지 없을지 이번 시험에서 지켜보겠다."
아론이 손가락을 튕겼다.
조교들이 준비해 둔 출력장치를 가동시켰고, 허공에 커다란 마나 스크린이 펼쳐졌다.
"지금부터 이번 수행평가의 룰을 공개하겠다."
마나 스크린은 지하던전 내 시험장의 모습을 출력했다. 그 안에는 무수한 몬스터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저기가 너희들이 시험을 치를 장소다."
시험장 안에 바글거리는 몬스터를 본 시몬이 눈을 빛냈다.
막 압도적으로 강한 개체는 없어 보인다. 위험도로 치면 2급에서 3급 사이. 그렇다는 건.
'일 대 다수전이구나.'
1학년 수행평가에서는 학생 다섯 명이 강력한 몬스터 하나를 상대했다.
그리고 2학년 소환학 전공을 선택한 지금.
학생 혼자서 소환수 하나로 저 몬스터들을 상대해야 하는 시험이었다.
"제한시간은 한 명당 최대 15분이다. 15분 안에 너희들은 시험장 안의 모든 몬스터들을 제거해야 한다. 앞서 공지한 '단일 언데드 운용' 룰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소환수 하나뿐. 너희들은 저 안에 들어갈 수 없다."
여기까진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였기에, 학생들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할 만한데?"
"응! 응!"
"듀라한의 화력이면 저 정도야 쉽지."
듀라한은 짧은 시간 내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몬스터다. 중간고사 직전 린&룬 교수의 특강 시간에 듀라한으로 오러를 쓰고 참격을 일으키는 방법도 배웠다.
특강 시간에 착실히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대부분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새로운 규칙이 적용된다."
아론의 그 말에 학생들이 얼른 고개를 되돌렸다.
"저 방안에서 사냥할 몬스터의 수를 정하는 건, 바로 너희들이다."
학생들이 급격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몬스터의 수를 내가 정한다고?'
학생들은 균등한 수의 몬스터를 얼마나 빨리 잡을 수 있느냐를 평가하는 '타임어택' 룰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미묘한 룰이 끼어들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아론이 설명을 이어갔다.
"시험 직전, 너희들이 사냥할 '몬스터의 수'를 던전지기에 말하면, 던전지기는 해당 숫자의 몬스터들을 무작위 종류로 시험장 안에 풀어 넣을 것이다. 너희들은 언데드 하나로 그 모든 몬스터를 사냥하고, 잡은 몬스터의 수에 따라 점수를 받는다."
마침 스크린에서 예시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조교가 조종하는 스켈레톤 아처가 몬스터를 사냥하는 모습이 보였다.
스켈레톤 아처는 능숙한 모습으로 몬스터를 하나하나 쏴 맞춰 없애기 시작했고, 제한 시간 15분 동안 20마리의 몬스터를 파괴했다.
"이 경우, 해당 시험자는 제한 시간 내에 20마리의 몬스터를 파괴했으므로 20점을 얻는다."
직관적인 룰에 학생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울 거 없는데?"
"그러게."
이내 마나 스크린의 광경이 바뀌었다.
무거운 갑옷을 입은 '스켈레톤 나이트'가 몬스터들을 뒤따라 쫓고 있었는데, 갑옷의 무게 때문에 속도가 느려 보였다. 제한시간 15분이 지났고, 끝내 몬스터 하나를 놓쳤다.
"해당 시험자는 30마리의 몬스터를 잡겠다고 선언했으나, 몬스터 한 마리를 놓쳤다."
시몬의 눈가가 좁혀졌다.
'그렇다면 1점 감점으로 29점이겠.......'
"이 경우."
아론이 무겁게 말을 이었다.
"0점이다."
웅성 웅성 웅성!
학생들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나만 놓쳐도 0점이라고?"
"이,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아론이 손뼉을 한 번 치는 것으로 학생들을 진정시켰다.
"불만이 있을 이유가 있나? 몬스터의 수를 정하는 건 너희들이다."
"......!"
장내의 소음이 일순간 잦아들었다.
"이런 불상사를 겪지 않으려면 너희들의 소환수를 평가해 '적정한 숫자'를 부르면 된다. 너무 적게 부르면, 너희들은 더 높은 수를 부른 경쟁자들을 이길 수 없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높게 부르면, 만용과 오만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단지 그뿐인 이야기지."
아론이 입꼬리를 올렸다.
"앞서 'A급'을 부른 학생들이 많더군. 과연 리스크가 걸린 상황에서도 얼마나 패기 있게 결단할 수 있을지, 지켜보도록 하마."
그렇게.
잔혹한 소환학과 첫 대형 수행평가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