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05화
우와아아아아아!
휴게실에서 화면을 보던 학생들이 손을 번쩍 들며 환호했다.
"역시 헥토르! 15분에 200마리라니!"
"어떻게 한 거야?"
"시간분배도 예술인데."
대기장소에 있는 같은 팀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신이 나서 헥토르의 이름을 연호했다.
헥토르는 땀에 흠뻑 젖은 몰골로 모두와 함께 하이파이브했다.
-헥토르 무어 학생. 제한시간 내 200마리의 몬스터 중, 200마리 처치 완료.
-헥토르 무어 학생과 1팀은 200점 획득했습니다.
휴게실 스크린으로 보고 있던 시몬은 헛웃음을 흘리며 털썩 소파에 앉았다.
'대단하다.'
압도되는 느낌.
역시 '가디언'으로 만든 듀라한은 격이 달랐다.
'물론 그것만은 아니겠지.'
헥토르의 소환수니까 강한 거다.
그는 듀라한에 무거운 갑주를 입히는 대신, 용의 비늘로 전신을 덮어서 움직임을 더 가볍게 했다.
다른 가디언 듀라한도 저 정도의 성능은 내지 못할 것이다.
"대단하네."
로레인도 감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15분 동안 숨도 못 쉬고 봤어."
토토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흐흐흥-"
그리고 고개를 돌려보니, 에슈가 눈에 하트가 뿅뿅 박힌 채 두 손을 맞잡고 있었다.
"아, 진짜. 과대 너무 멋있어! 저 땀내 나는 넓고 탄탄한 가슴에 한 번만 폭 안겨봤으면!"
"정신 차려 에슈."
시몬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뒤에서 토토가 잠시 제 좁은 가슴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보였다.
"이게 문제다."
언제 왔는지, 옆에서 피츠제럴드가 안경을 추켜올렸다.
"가디언으로 만든 듀라한과, 일반 아바돈으로 만든 듀라한의 차이는 절대적이야. 이대로는 이길 수 없어."
피츠제럴드 또한 저번 프리고드 자치구에서 가디언을 손에 넣지 못한 한 명이었다. 시몬이 그를 보며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려고?"
"......이건 누가 봐도 듀라한에 유리한 시험이다. 하지만."
피츠제럴드의 안경에 반사광이 일었다.
"저 가디언 듀라한을 이기기 위해, 내 장기로 승부를 보는 수밖에."
토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피츠! 역시 세이렌 키메라를 쓸 거구나!"
"당연하......."
퍽!
그때 뒤에서 나타난 여학생이 교과서로 피츠제럴드의 뒤통수를 때렸다.
"적들한테 정보 줄줄 읊어대고 잘하는 짓이다! 이 설명충 놈아!"
그녀에게 목덜미를 붙잡힌 피츠제럴드가 질질 끌려갔다. 시몬과 토토는 무안하게 웃으며 멀어지는 그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 * *
이후 시험은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헥토르가 속한 1팀의 총 점수는 520점.
그리고 이어지는 2팀과 3팀은 각각 400점, 410점씩을 따냈다.
데이터가 쌓여가며, 지켜보던 학생들도 어느 정도 계산이 섰다.
아바돈 듀라한을 큰 문제 없이 완성했다면 40점 정도.
가디언 듀라한의 경우 100점도 가능하다.
하지만 변수가 너무나도 많았다.
실전에서 예측하지 못한 수식 미스.
듀라한 운용의 숙련도 부족.
참격과 오러의 이해 부족.
그리고 몬스터의 반응으로 인한 변수까지.
"아니 왜!"
가디언 듀라한으로 몬스터들을 잘 정리해 왔던 학생은, 막바지에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는 몬스터들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나만 왜 이러는데!"
가디언으로 만든 듀라한이라고 다가 아니었다.
가디언 듀라한은 일반 듀라한보다 제작 난이도가 훨씬 높았다. 그는 시험일정에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완성했으나, 결국 한쪽 다리가 비정상적이었다.
몬스터 하나 잡는다고 대검을 든 채 이리 뛰고 저리 뛰었고, 이동에만 너무 많은 칠흑을 사용했다.
결국.
-조지프 바르가 학생, 제한시간 내 100마리의 몬스터 중, 65마리 처치 완료.
같은 가디언 듀라한이라도 사용자에 따라 점수는 천차만별이었다. 어중간한 완성도로 가디언 듀라한을 쓸 바에는, 수업 때 만든 아바돈 듀라한이 더 나았다.
갑자기 0점이 연달아 나오는 걸 보며, 에슈가 불쑥 말했다.
"아바돈은 40점, 가디언은 100점이 안전빵이다! 막 그렇게 생각하는 게 오산이었네."
"맞아. 점수를 정량화하는 건 의미가 없어."
시몬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개인마다 듀라한의 개성과 완성도가 천차만별이니까. 자기 자신의 판단이 가장 중요해."
처음에 다소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현재 1위는 헥토르가 속해 있는 1팀의 520점이었다.
그리고.
"나왔다!"
문제의 8조가 모습을 드러냈다.
* * *
"자, 화이트. 명심해."
딱딱.
아세라즈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듀라한 대신 네 '이능 소환수'를 쓰겠다는 건 존중할게.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야. 15분이라는 시간은 머릿속에서 지워 버려."
최근 들어 그녀는, 본인의 공부보다 화이트의 활용법을 더 열심히 연구한다고 자부할 지경이었다.
"네게 중요한 건 '첫 4분'이야. 페이스 조절은 필요 없어. 무조건 4분 안에 모든 힘을 다 쓰고 퍼질러진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말하던 그녀가 인상을 확 구겼다.
"너 지금 내 말 듣고 있니?"
화이트는 멍한 표정으로 천장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세라즈가 신경질적으로 따악 딱 손가락을 튕기며 주의를 끌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제길."
아세라즈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이마를 덮었다.
'내가 이딴 바보 놈 상대하려고 소환학과에 온 게 아닌데.'
속이 천불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8조는 딱 네 명만으로 시험을 치른다. 한 명이라도 실수해서 '0점'이 나오면, 다른 팀으로 치면 두 명이 '0점'이 되는 것과 같다.
단 한 명이라도 포기할 수 없었다. 아세라즈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시작해."
짹짹짹짹짹.
갑자기 들린 새소리에 동공이 흐리멍덩하던 화이트의 눈에 빛이 들어왔다.
새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짹짹짹짹.
물론 진짜 새는 아니었다.
몸을 바짝 숙인 8조의 조원들이 새 그림을 붙인 막대기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화이트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입으로 새소리를 내는 건 덤이었다.
"아, 진짜...... 현자타임 온다."
"닥치고 똑바로 해!"
화이트의 시선이 새 그림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때 아세라즈가 한순간 새 그림을 붙들어 제 얼굴에 붙인 채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화이트!"
화이트의 시선도 뒤따라 아세라즈 쪽으로 향했다.
"4분! 4분 안에 200마리를 다 잡아야 해! 준비시간은 길게 잡고, 시험이 시작하면 네 힘을 방전될 때까지 다 쏟아부어! 알았지? 알아들었어?"
끄덕.
화이트의 고개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그러고는 집중력이 다한 건지 다시 흐리멍덩한 눈으로 돌아왔다.
"하이 씨."
아세라즈가 지긋지긋하다는 듯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등을 돌렸다. 새 그림이 붙은 작대기를 들고 있던 다른 조원들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내가 이러려고 키젠에 들어왔나."
"나도 우리 집에서는 귀한 아들인데."
"쫌. 니들까지 왜 그래."
아세라즈가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응시했다.
'반드시.'
이내 8조의 차례가 되었다.
화이트가 제일 먼저 시험장소로 걸어갔다.
"화이트! 기억해! 4분에 200마리!"
"4분이야!"
아세라즈와 조원들이 외쳤다. 화이트는 여전히 멍한 눈으로 걸음을 옮겨 던전지기 앞에 섰다.
"이름."
"화이트."
"몬스터 수는?"
화이트는 여기서 잠시 멍하니 있었다.
몇 마리를 하라고 했더라?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몬스터 수는?"
던전지기가 재차 물었고, 화이트는 갸우뚱갸우뚱하다가 툭 내뱉듯 말했다.
"4분."
"4분? 정확하게 '마리'로 말해라."
"음."
화이트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다시 말했다.
"400마리."
대기장소에서 아세라즈의 커다란 탄식이 들려왔다.
뒤이어 빠직! 하고 작대기가 무릎에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다.
하하하하하-!
휴게실에서 지켜보던 학생들 사이에서는 대폭소가 터져 나왔다.
"미친! 400마리라고?"
"8조가 이렇게 나락으로 가네! 잘 가시고!"
"멀리 안 나갑니다!"
아바돈 듀라한이 평균 '40마리'를 잡는 걸 생각해 본다면 말도 안 되는 숫자였다.
그것도 화이트는 듀라한이 아닌 이능 소환수를 쓰기로 했다. 처음엔 당황했던 학생들도 하나같이 이건 사고라며 웃고 있었다.
'음.'
하지만 시몬은 여전히 진지하게 화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화이트는 본인의 특별한 이능 때문에 준비시간이 꽤 길었다. 칠흑 웅덩이처럼 생긴 소환수를 꺼내서 이능으로 칠흑을 쪽쪽 빨아들인 다음, 바닥에 마법진을 그리고 그 위에 텅 빈 갑주를 떨어뜨렸다.
우웅!
어느새 텅 빈 갑주에 팔다리가 형성되며, 화이트 오리지널의 '이능 병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 기술이구나.'
시몬은 이미 돌연변이 동아리 면접 때 본 적이 있었지만, 처음 저 소환수를 보는 학생들은 하나같이 그 특이한 외형에 놀라는 반응이었다.
"......시작."
화이트가 중얼거렸다.
-화이트 학생. 시험 시작입니다.
철컹! 철컹!
몬스터들이 무수히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려 400마리의 몬스터들이 순식간에 방을 새까맣게 채웠다.
화이트는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렸다.
"커져라."
우웅!
그러자 이능병사의 몸이 거대한 구의 형태로 부풀어 올랐다. 인간의 형상은 온데간데없고, 갑옷이 하얀 구에 낀 듯한 형상이 되어버렸다.
스크린을 보던 학생들이 수군댔다.
"저거로 어쩌려고?"
"화이트가 평소 쓰던 기술이랑 비슷하네."
화이트가 팔을 거칠게 휘둘렀고, 하얀 구체도 똑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꾸드드드드드드드득!
구체에 부딪힌 몬스터들은 그대로 짓이겨지고, 깔려서 핏덩이가 되었다. 화이트가 팔을 연신 좌우로 휙 휙 휘둘렀다.
부-웅!
부-웅!
부풀어 오른 이능병사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며 시험장 전체를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그때마다 몬스터들이 피떡이 되어 사라지는 건 당연했다.
그렇게 15분 뒤.
-화이트 학생, 제한시간 내 400마리의 몬스터 중, 400마리 처치 완료.
-화이트 학생과 5팀은 800점 획득했습니다.
지켜보던 모두 말이 없어졌다.
"허."
"......내,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520점으로 1등이었던 헥토르 팀이 순위에서 내려가고.
화이트의 팀이 단독점수 800점 만으로 1위에 올랐다.
"캬하, 역시!"
"믿고 있었어 화이트!"
8조는 축제 분위기였다. 이어지는 차례의 아세라즈가 침착하게 자신의 듀라한으로 250마리를 쓰러트리고 500점을 획득.
두 사람만으로 팀 점수만 도합 1,300점이었다. 나머지 두 학생이 안전하게 각각 40마리씩 80점을 쌓는 것으로 1,460점.
이제는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어졌다.
"이건...... 크네."
스크린으로 지켜보던 로레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하필이면 바로 다음 차례.
"6팀! 10조와 4조 앞으로!"
* * *
드디어 시몬이 속한 6팀의 차례였다.
이들의 순서는 시몬을 마지막 주자로 두는 것 외에 크게 특별할 건 없었다. 나머지는 그냥 본인이 원하는 순서를 고르기로 했다.
다만 8조의 활약 직후라서 학생들의 사기는 다소 꺾여 있었다.
"자, 키젠답게 목표는 무조건 1등! 최선을 다하자!"
4조 조장이 활기차게 소리쳤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후회 없이 하자."
시몬이 차분하게 말했다.
8명 모두가 서로의 손바닥 위에 손을 올렸다.
"화이팅!"
이내 손을 위로 올리는 것으로 전의를 다졌다. 학생들이 물러갔고, 던전지기가 다가왔다.
"첫 번째 순서 입장."
첫 순서는 4조 측 인원.
사냥꾼 아버지가 있어서 몬스터를 디테일하게 설명해 준 그 남학생이었다.
"1등을 따라잡아야 한다."
그가 눈을 감고 중얼중얼했다.
"학생회장, 로레인, 그리고 우리 조장. 이 세 명이 화이트와 아세라즈의 점수에 근접할 수 있다면......."
"몬스터의 수."
던전지기가 말에, 학생은 눈을 크게 뜨며 대답했다.
"80마리로 부탁드립니다."
숫자를 들은 에슈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너, 너무 많아. 자신 있는 거 맞지?"
그리고.
-로링턴 콜로치니 학생, 제한시간 내 80마리의 몬스터 중, 61마리 처치 완료.
-잔여 몬스터 19마리.
-로링턴 콜로치니 학생과 6팀은 0점 획득했습니다.
아아아-
대기장소에서 탄식이 쏟아졌다. 80마리를 부른 학생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좌절했고, 시몬은 진땀을 흘렸다.
'다들 앞선 점수를 너무 의식하고 있어!'
앞 차례보다 뒤 차례가 더 좋은 건 당연한 사실이지만, 단점은 있다.
앞선 경쟁자가 잘하면, 그 점수에 신경을 쓰다가 자신의 기준이 흔들린다는 것. 거기에 다들 화이트의 400점과 아세라즈의 250점을 눈앞에서 보다 보니 감각이 흐려졌다.
"얘들아 조금만 침착하자."
로레인도 같은 생각인 듯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차기 총장인 그녀의 말에 모두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지는 차례인 토토가 주력 언데드인 데스웜으로 40마리를 처치.
에슈가 아바돈 듀라한으로 60마리를 처치하며 분투했다.
그리고 4조 조원들도 40~70마리 정도로 평균 이상의 실력을 보였다.
그리고.
"와아아아아아!"
"역시 네프티스 님의 딸!"
로레인은 '아바돈 듀라한'으로 20초를 남겨놓고 100마리를 처치했다.
그녀의 특기인 단독 언데드 컨트롤이 활약할 수 있는 무대였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10조와 4조 모두 분위기가 화끈 달아올랐다.
"그나마 10조 애들이 8조랑 비빌 만하네!"
"이러면 진짜 해볼 만한 거 아냐?"
휴게실에서 보고 있던 학생들도 흥미진진하게 굴러가는 상황에 눈을 빛냈다.
그리고 사실상 에이스라고 할 수 있는, 8명 중에서 유일하게 '가디언' 듀라한을 가지고 있는 4조 조장이 나섰다.
"이름."
"비센테 보로메오입니다."
"몬스터 수는?"
4조 조장은 눈을 감았다.
목표는 당연히 1위.
물론 힘들겠지만, 만에 하나 시몬이 화이트의 400마리, 그 이상을 따라잡을 수 있다면.
"200마리로 부탁드립니다!"
오오오오오-!
200마리라면 헥토르와 같은 수준.
휴게실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반면 시험장 앞 대기장소에 있는 다른 조원들은 다소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진짜 괜찮겠어? 조장."
4조 여학생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조장이 척 엄지를 치켜세웠다.
"나만 믿어."
그는 당당하게 자신의 듀라한을 꺼냈다.
* * *
-비센테 보로메오 학생, 제한시간 내 200마리의 몬스터 중, 182마리 처치 완료.
-잔여 몬스터 18마리.
-비센테 보로메오 학생과 6팀은 0점 획득했습니다.
모든 칠흑과 힘을 쏟아부었지만, 역부족이었다.
4조 조장은 하얗게 질린 채 주저앉았다.
"조장!"
"괜찮아?"
의료진들이 들것을 들고 달려왔지만 4조 조장은 손을 들어 거절했다.
"괜찮...... 습니다."
제힘으로 걷던 그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몬의 앞에 엎어졌다.
"......미안하다. 진짜 미안해."
그가 떨리는 눈으로 말했다.
"네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는데, 티끌 같은 가능성이라도 어떻게든 희망을 띄워보고 싶어서......."
"괜찮아. 수고했어."
시몬이 빙긋 웃었다.
"회장."
4조 조장이 떨리는 눈으로 시몬을 보았다.
"다 망쳐놓은 내가 이런 말 하기도 뭣하지만, 팀 점수는 이미 끝났어. 그러니-"
시몬은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할게."
드디어.
시몬의 차례가 왔다.
휴게실에서 졸고 있거나 퍼질러져 있던 학생들도, 드디어 네임드의 등장에 냅다 모니터 앞으로 모여들었다.
"학생회장도 '가디언 듀라한'이던가?"
"그냥 아바돈이야. 바닐라 브랜드."
"아냐, 아냐. 소문을 듣자 하니 가디언 있다던데? 머리는 없고 몸통뿐이지만."
"뭐? 그럼 뭔 소용이야?"
시몬은 가볍게 팔을 움직여 스트레칭을 마친 다음, 준비하고 있던 마법진을 체크했다.
이내 시험장 앞으로 갔다.
"저 아이로군!"
"원로님, 일어나시죠. 2학년 학생회장이 나왔습니다."
드디어 오늘의 메인 이벤트.
시몬 폴렌티아의 등장에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재밌겠군. 과연 몇 마리나 부를까."
그레리온이 팔짱을 꼈다.
"궁금하다!"
"궁금해!"
린, 룬, 쌍둥이 교수가 손바닥을 맞잡고 산새처럼 수다를 떨었다.
"......."
아론은 그저 조용히 시가를 입에 문 채 스크린을 응시했다.
"이름."
던전지기가 말했다.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몬스터의 수."
드디어 이 순간.
시몬은 고개를 돌렸다.
현재 6팀의 점수는 360점.
앞선 주자들이 잘했지만, 두 명의 0점이 튀어나오며 완전히 망한 수준이었다.
현재 1등인 8조의 1,460점을 손에 넣으려면 필요한 점수는―
1,100점.
무려 시몬 혼자 1,100마리의 몬스터를 사냥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1,000마리 이상 부를까?"
"무리겠지. 화이트도 400마리였는데."
모두가 웅성거리는 가운데.
드디어 시몬이 말했다.
"제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겠습니다."
타인의 등수에는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개인 점수만을 위해 시험을 치르겠다는 뜻.
그 말을 들은 원로들과 까마귀들이 아쉬운 듯 혀를 찼다.
"현실적이군."
"딱 그 정도의 그릇이겠지."
던전지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몬스터의 수."
진지한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던 시몬의 입이 마침내 떨어졌다.
"10,000마리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