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06화
"10,000마리로 부탁드립니다."
시몬의 충격선언에, 지하던전이 뒤집어졌다.
"쟤, 쟤 방금 뭐라고 했어?"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거지?"
학생들의 휴게실은 순식간에 혼란의 도가니로 변했다.
대기장소에 있던 같은 팀 학생들도 커다란 충격에 입을 벌리고 있었다.
털썩.
4조 조장이 허망한 눈으로 벽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로레인은 할 말을 잃었고, 에슈는 나라 잃은 표정으로 머리를 박박 긁어대며 소리쳤다.
"회장 이 미친놈아아아아악!"
토토의 동공이 흔들렸다.
"자, 잘못 말한 걸 거야. 뭔가 착오가......."
비상식적인 숫자였다.
던전지기 또한 다시 한번 숫자를 물었고, 시몬은 쐐기를 박아넣듯 모두에게 당당하게 선언했다.
"10,000마리로 도전하겠습니다."
큽.
크하하하하하하하!
모두가 얼이 빠져 있는 그때.
높은 곳에서 올려다보던 원로가 큰 소리로 웃어댔다.
"그래! 그래! 키젠의 학생회장이라면 저 정도는 돼야지!"
"제정신이 아니군."
반대쪽의 또 다른 원로는 인상을 썼다.
"15분에 1만이야. 1만이라는 숫자가 우스운가? 저 아이는."
잔뼈 굵은 원로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었고, 학생들은 드디어 시몬이 미쳐서 자포자기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는 숫자였으니까.
"준비하겠다."
하지만 던전지기는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하러 걸어갔다.
-아론입니다.
그때 통신 수정구에서 아론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하 던전에서 몬스터 1만 마리를 준비할 수 있습니까?
"......뭐. 바닥에 있는 것까지 박박 긁어서 내보내면 어떻게든."
던전지기가 내려갔고, 시몬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눈을 감았다.
'집중.'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여기까지 왔다. 시몬은 제일 먼저 그레리온의 말을 떠올렸다.
-네 구상은 틀림없이 파격적이다. 그런데 왜 방식은 파격적이질 않지?
-답은 네 머릿속에 있다.
그레리온의 그 말은 시몬에게 커다란 울림을 주었다.
시몬은 곧바로 소환 장송학 담당인 린, 룬 쌍둥이 교수에게 찾아갔다.
-에이션트 언데드의 두개골?
시몬은 에이션트 언데드인 두 사람에게 에르제베트가 봉인해 둔 '마누스의 두개골'을 꺼내 보였다.
쌍둥이들은 책상에 두개골을 올려놓고 구경하듯 빙글빙글 돌았다.
-재미있네! 이미 코어도 뭣도 다 파괴된 개체지만, 원체 원한이 강했는지 잔류사념이 두개골 끝에 미세하게 붙어 있었던 거야.
-그 잔류사념을 소환 마법진에 끌어들이고, 긴 시간을 들여 되살린 게 바로 이거야.
-이건 네가 말하는 그 '마누스'가 아니야. 시몬.
-물론 '마누스의 파편'이라고도 할 수 없어. 시몬.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 변질된 파편을 잠깐이라도, 딱 10분 정도만이라도 통제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야!
-우리가 나서야겠네!
두 언데드 소녀가 분필을 들고 칠판으로 다가갔다.
-훠얼씬 옛날부터 존재했던 에이션트 언데드로서!
-이 아이의 교육법을 알려주도록 할까!
이후.
최소한의 통제책만 마련한 채, 시몬은 구상을 시작했다.
어떻게 서로 다른 언데드의 머리와 몸을 '듀라한'으로서 합칠 것인가.
연동의 룬에 집착하고.
수식에 집착하고.
상식을 뒤엎는다는 것에 집착할 필요는 없었다.
시몬은 듀라한을 처음 만든 그 네크로맨서가 아니었다.
'상식은 뒤엎는 게 아니야.'
발상을 바꾸었다.
'상식을 초월한다.'
혼돈.
시몬이 옆구리에 그려놓아 준비한 혼돈 마법진. 이 힘이 모든 과정에 귀결될 것이다.
-시몬 폴렌티아 학생. 준비해 주십시오.
방송음이 들리자 시몬은 아공간을 열었다.
그 안에서 튀어나온 건, 실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지는 가디언 듀라한의 몸체.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모습에, 휴게실에서 보고 있던 학생들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뭐야? 완성 못 한 것 같은데?"
"1만 마리는 진짜 막 지른 거였어? 자포자기해서?"
"......개막장이네. 저런 놈이 무슨 수석이야?"
야유가 쏟아진다. 냉소와 모멸이 흘러넘친다.
대기장소에 있는 같은 편인 10조와 4조의 조원들도 점점 표정이 굳어가긴 매한가지였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시몬은 준비했다.
'준비.'
왼손으로는 옆구리의 혼돈 마법진을 쥐고, 오른손으로는 듀라한을 살아 움직이게 할 작동 마법진을 펼쳤다.
파직! 파직!
이 마법진조차 혼돈으로 만들어 자줏빛이었다. 시몬은 그 마법진을 듀라한의 몸에 새겼다.
'연결.'
연동의 룬이 아니다. 혼돈으로 만든 '전달의 룬'을 써서, 시몬의 마법진과 듀라한의 마법진을 이었다.
여기까지는 단순한 준비단계다. 그리고.
우웅!
지금부터가 진짜다. 시몬은 마누스의 두개골을 꺼냈다.
갑자기 튀어나온 스켈레톤의 머리에 관전자들은 하나같이 웅성거리며 스크린 앞으로 다가왔다.
"스, 스켈레톤의 두개골? 그걸 듀라한의 몸이랑?"
"진짜 미쳐 버린 거 아냐?"
스켈레톤의 머리는 선을 넘은 건지, 이번에는 원로와 관전자들도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키젠을 모욕할 생각인가!"
"구질구질하군. 차라리 깔끔하게 포기하는 게 나을 것을."
이어서 시몬이 한 일은 간단했다.
마누스의 두개골에 걸린 봉인을 풀고, 텅 빈 듀라한의 목 위에 그것을 올려놓은 것이다.
'간다!'
시몬이 마누스의 소환 마법진을 작동시켰다. 그 즉시 팟! 하고 마누스의 두개골에 안광이 흘러나왔다.
'저번에 마누스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게 된 건, 운이 좋았어.'
마누스는 다량의 칠흑을 일으켜 근처의 언데드를 자신의 몸으로 삼으려 한다. 바로 그 성질을 이용하는 것이다.
콸콸콸콸-!
마누스의 두개골에서 흘러나온 방대한 칠흑이, 눈앞에 보이는 듀라한의 몸을 차지하기 위해 들어간다.
그리고 듀라한의 몸에는 사실 혼돈의 재료. 신성과, SM-1 혈액으로만 그려 넣은 마법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마법진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하지만 칠흑과 접촉하면.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세 가지 요소가 섞이며 '혼돈'으로 변한다.
오로지 시몬만이 다룰 수 있는 힘.
듀라한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검은연기가 자줏빛으로 물들었다. 이제 전신이 혼돈의 힘으로 가동한다.
칠흑엔진은 프리고드 자치구에서 에르제베트가 손에 넣은 '외눈 신사'의 몸에서 나온 걸 썼다. 마누스의 출력을 견딜 수 있는 재료는 오로지 이것뿐이었다.
"지금이에요!"
시몬이 소리쳤다.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시험을 시작합니다.
철컹!
철컹!
철컹!
철컹!
지하던전의 모든 문이 열리며, 새까만 것들이 튀어나왔다.
1만 마리의 몬스터.
순식간에 시험장이 새까맣게 변했다.
"허억!"
"뭐야!"
화면을 보고 있던 학생들과 관전자들은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던전의 문이 열리기 무섭게, 화면이 그저 새까맣게 물들어 버렸다.
이 공간이, 순식간에 몬스터로 가득 차버린 것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무엇도 할 수 없었다. 대기장소의 학생들은 절망 섞인 한탄을 쏟아냈다.
"저, 저기서 어떻게 싸우라고?"
"이제 끝이야."
모두가 비웃고, 경멸하며, 절망하는 이때.
늦은 새벽 밤처럼 새까만 어둠에서.
화륵―!
자색의 촛불이 어둠을 밝힌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악!
세상이 밝혀지며 관전자들은 화면을 통해 목도했다.
어둠 속에서.
칠흑으로 불타는 검을 든 듀라한의 모습을.
"가자, 마누스."
시몬이 결연하게 말했다.
듀라한이 들고 있는 건 자줏빛의 심지, 그리고 이를 감싼 검푸른 불꽃이었다.
<시몬 오리지널 - 카오스 듀라한>
결계 뒤에 있던 시몬이 팔을 일자로 그었다. 그 동작에 따라 촛불 또한 일자로 그어졌고.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일격.
불꽃이 선을 따라 세상을 밝히고, 접촉면의 몬스터들은 잿더미로 소실됐다.
[남은 몬스터 수 : 9,287 / 10,000]
"와, 와! 와!"
"뭐, 뭐가 일어나는 거야 대체!"
휴게실과 대기장소는 충격의 도가니였다.
시몬은 자신의 혼돈 마법진에 손을 올렸다.
'혼돈의 출력을 높이고!'
심지로 사용하고 있는 혼돈의 양을 두 배로 늘렸다.
'마나는 빨아들여!'
듀라한의 칠흑엔진이 시험장의 모든 마나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마치 듀라한을 중심으로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한 착시까지 보일 정도였다.
콰콰콰콰콰콰!
커진 자줏빛 심지를 감싸는 칠흑의 양도 커졌다. 거대한 소용돌이가 되어 휘몰아치는 불꽃의 검의 끝은 이제 중앙에서 던전의 끝에 다다를 정도로 발달했다.
'가라.'
카오스 듀라한이 검을 고쳐 쥐어 이마에 올렸다. 뭔가 의식을 치르듯 경건한 자세를 치르더니, 듀라한의 허리가 돌아가고 촛불이 360도로 회전했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악!
새까만 암흑의 허리가 갈라지며 몬스터들이 불살라진다.
[남은 몬스터 수 : 7,461 / 10,000]
우와아아아아아아아!
학생들이 흥분한 얼굴로 소리쳤다.
"이, 일격에 수천을?"
"저게 가능해?!"
마누스, 아니, 카오스 듀라한이 촛불처럼 휘몰아치는 검을 연달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의 참격이 세상을 몇 번이고 가르고 내질렀다.
<제국 검술 - 우화(雨華)>
<제국 검술 - 준천(濬川)>
<제국 검술 - 현몽(現夢)>
<제국 검술 - 위무(威武)>
듀라한이 검무를 추었고, 어둠이 걷혀 나간다.
"이런, 미친!"
터엉!
관리자 장소에서 검을 차고 있던 까마귀 요원이 가면까지 벗어 던지며 눈을 부릅떴다.
"잃어버린 제국의 검술을, 어떻게 듀라한이?"
불꽃은 곡선을 긋고. 직선을 그렸으며. 잔상을 펼치고, 수십 갈래로 개화했다.
새까맣게 덧칠됐던 화면을, 검이 불사르며 하얀 공백을 만들어냈다.
공백은 금방 어둠으로 덮였지만 또 한 번 불꽃이 지나가며 하얗게 바뀌었다.
처억!
마누스가 검을 고쳐 쥐고 허리에 대는 시늉을 했다.
이내 몸을 돌리며 발도하자. 세상이 화염으로 불살라졌다.
<제국 검술 - 회천(回天)>
[남은 몬스터 수 : 5,115 / 10,000]
우와아아아아아아!
"벌써 반절이나 없앴어!"
"5천 마리! 5천 마리를 잡았어!"
지켜보던 학생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파동계 기술인가.'
팔짱을 낀 채 무섭도록 진지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헥토르가 입술을 짓씹었다.
카오스 듀라한이 촛불 같은 검을 휘두르고, 뒤이어 파직거리는 전류 같은 게 튀어나가 몬스터를 타고 흐른다. 그것은 다른 몬스터들의 몸을 타고 전달, 전달, 전달되며 동시에 피폭되어 파괴된다.
'그랬군. 어차피 공간은 한정되어 있는 이상, 1,000마리가 넘어가면 숫자는 의미가 없던 거였나.'
머릿수는 절대적인 강함의 개념이 아니다. 머릿수는 넓은 공간에 전술적인 가치가 생겨야 비로소 의미가 있다.
방 하나의 한정된 공간이라면, 그 안에 벌레 천 마리가 들어가든 억 마리가 들어가든 공평하게 폭탄 한 방에 파괴될 것이다.
공간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기술.
저 듀라한은 그것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시몬은 만 마리를 선택했다.
"제기랄!"
쿵!
헥토르가 소파 손잡이를 내리쳤다.
'룰에 지배당해 스스로 한계를 정한 건 나였단 말인가!'
퍼버버버벅!
카오스 듀라한이 몬스터들을 몸으로 밀치며 지하던전의 가장 끝으로 이동했다. 그의 검이 순간적으로 커졌다.
<제국 검술 - 창천(漲天)>
혼돈과 칠흑과 화염의 검이 세상을 휩쓸고, 비로소 스크린이 하얗게 물들었다.
[남은 몬스터 수 : 945 / 10,000]
[남은 시간 : 7분]
이제는 감탄성도, 뭣도 나오지 않았다.
다들 입을 쩍 벌린 채 경악할 뿐.
"시몬!"
그때 로레인의 커다란 외침이 들렸다. 듀라한에 정신이 팔려 있던 모두의 시선이 뒤늦게 시몬으로 향했다.
"!"
시몬이 피투성이였다.
"허억! 허억!"
저렇게 강한 힘을 쓰는데 술사가 정상일 리가 없다.
칠흑역류가 일어난 건지 입과 코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위력은 기대 이상이지만......!'
리스크 또한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의식이 흐릿하게 점멸했다. 심장이 욱신거리고 오장육부가 뒤틀린다.
"위험합니다!"
"지금 당장 시험을 중단시켜야 합니다! 학생이 죽을지도 몰라요!"
의료진들이 들것을 들고 뛰어왔지만, 시몬은 천천히 손바닥을 들어 그들을 막았다.
"학생!"
"시몬 폴렌티아."
언제 왔는지, 누구보다 빨리 시험장 앞으로 아론이 뛰어 들어왔다. 단지 이름만 불렀을 뿐이지만 그 목소리에는 짙은 우려의 감정이 어려 있었다.
"계속, 하게...... 해주세요!"
시몬은 끓어오르는 피거품을 억누르며 두 손을 앞으로 세우는 시늉을 했다. 카오스 듀라한도 천천히 자세를 맞바꾸며 달려드는 몬스터들에게 검을 휘둘렀다.
촤아아아아악!
실선이 연달아 그어지며 몬스터들의 몸이 조각나 바닥에 떨어졌다. 이미 바닥은 그을린 몬스터들의 재가 쌓여 있었다.
"어째서......."
다리에 힘이 풀려 무너진 에슈가 황망한 얼굴로 말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이건 시험이잖아! 1,000마리만, 아니 800마리만 베어도......."
'시몬은.'
로레인이 주먹을 꽈악 쥐었다.
'한계를 정하지 않으니까.'
시험은 동기와 과제에 불과하다.
시험이 동기를 부여할 수 있지만, 그 끝을 정하는 건 시험이 아니라 나 자신.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자신과의 싸움을 한다.
그렇기에 남들이 스켈레톤 메이지를 만들 때 리치를 만들었고.
그렇기에 남들이 40마리를 벨 때, 10,000마리를 벤다.
'더 높은 곳을 보는 거야.'
휴게실의 소파에 앉아 검지를 깨무는 세르네는 근사하다는 눈으로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후후, 정어리들 사이에서 드디어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가요?"
대기장소, 휴게실과 관전자실.
모두가 숨을 죽이며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크으읍!"
시몬이 주먹을 으스러져라 쥐었다.
온몸이 삐걱댔다. 숨이 턱턱 틀어막히고 시야가 꿀렁댔다.
화륵!
점점 약해지던 검의 불꽃이 꺼지며, 보통의 롱소드로 돌아갔다.
신이 나서 몬스터를 베어 넘기고 있던 마누스는 갑자기 불타는 검을 잃자, 걸음을 멈추고 결계 뒤의 시몬을 응시했다.
어쩐지 불만 어린 시선이 느껴져서 시몬은 큭큭 웃었다.
"미안해. 그래도 아직-"
시몬이 피가 철철 흐르는 팔에 힘을 주었다.
"싸울 수 있어."
[.......]
-께에에에에엑!
-끼이이이!
몬스터가 멈춰 선 마누스에게 달려들었다. 마누스는 검을 고쳐 쥐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휘둘렀다.
허공에 X자가 그어지며 또 수십 기의 몬스터가 절단되어 바닥에 쌓였다.
[남은 몬스터 수 : 445 / 10,000]
"힘내 시몬!!"
그때 대기장소에서 삑사리 가득한 외침이 들렸다. 시몬은 정신이 퍼뜩 들었다.
'토, 토토?'
토토가 부끄러움도 이겨내고,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고 있었다.
"할 수 있어!!"
그제야 잠시 멍해 있던 다른 조원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잘하고 있다! 힘내라아아!!"
"회자아아앙!"
갑자기 응원 열기에 불이 붙었다.
대기장소뿐만 아니라 휴게실도 마찬가지였다.
"뭐 해! 뭐 해! 도망치는 저거 잡아야지!"
"옆에 빠져나가잖아! 정신 안 차리냐!"
"계속해! 계속해!"
다들 극도로 흥분한 얼굴로 모니터에 들러붙어서 시몬의 움직임에 몰입하고 있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지금 당장 순위 경쟁 따위는, 등수 하나 내려가는 것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저 장관의 끝을 보고 싶을 뿐이다.
쾅!
의자에 앉아 있던 원로들이 팔걸이를 부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피가 끓는군!"
"하하하하하! 앉아서 볼 수가 없어!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저 젊은이들과!"
까마귀들.
"......내가 키젠 다닐 때 생각나는군."
"헛소리 적당히 하십쇼. 선배."
교수들도.
"내 조언을 들은 덕분이군. 시몬 폴렌티아."
"아니야! 린의 수식을 참고했어!"
"아니야! 룬의 수식을 참고한 거야!"
그리고.
-남은 시간 1분입니다.
꽝!
"병신 같은 새끼!"
관심 없는 척 앉아서 힐끔거리던 헥토르가 결국 뛰어들어 와 동기들을 밀치고 스크린의 앞에 섰다.
"이길 거면 제대로 이겨라! 시몬 폴렌티아!!"
촤아아아아아아악!
마누스의 검이 여덟 기의 몬스터들을 추가로 갈랐다.
[남은 몬스터 수 : 8 / 10,000]
그러나 마누스도 이제 검격이 나오지 않았다.
칠흑기관은 멈췄다.
"크으으!"
시몬은 '듀라한'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마누스가 시몬을 두 번째로 돌아보았다.
"계속...... 해!"
한계에 달한 안구의 모세혈관이 모조리 터져 나가며 실핏줄이 펼쳐지고 피눈물이 넘쳤다.
하지만 시몬은 멈추지 않았다.
마누스가 달려드는 몬스터 하나를 발로 차 부쉈다.
"이제 일곱 마리!"
"일곱 마리!"
모두가 한마음으로 외쳤다.
"옆이야 시몬!"
시몬의 눈이 돌아갔다. 마누스의 시선도 함께 돌아가며 오른쪽에서 달려드는 몬스터를 베었다.
"여서어엇 마리이이!"
토토가 온통 갈라진 소리로 외쳤다.
터엉!
마누스가 돌진해 몬스터 두 기를 더 베었다. 남은 몬스터들은 두 기의 '도망치는 제질리'.
거기에 다른 두 기는 평범한 오크였지만 혼돈에 당했는지 이성을 잃고 마구잡이로 폭주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대상의 이성을 잃게 하는 건 혼돈의 힘이었지만, 이 시험에서는 악효과다.
"계속 가!"
"차근차근!"
"30초!"
흐르는 피 때문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어느샌가, 마누스의 눈으로 몬스터가 보인다.
'사념이 완전히 연결됐어! 마음을 열어준 거지?'
시몬이 힘껏 팔을 휘둘렀고, 그 방향에 따라 마누스의 검도 움직였다.
"남은 몬스터 4마리!"
"15초!"
이제 마누스도 힘이 빠진 게 느껴질 정도였다.
전신이 물먹은 것처럼 무거웠다. 그 대단한 '가디언 듀라한'의 육체라도 마누스의 검을 온전히 재현하기에 벅찼다. 팔다리가 너덜너덜해지고, 기이하게 꺾이고,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하아아아압!"
쩍!
시몬과 마누스가 최후의 힘을 쥐어짜내 달려가 '도망치는 제질리'의 목을 날렸다.
"두 마리!"
"남은 몬스터 두 마리!"
"10초 남았어!"
시몬이 입술을 짓씹었다.
'제기랄!'
혼돈에 피폭되어 이성을 잃은 오크 두 마리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숫자를 셌다.
"9!"
"8!"
타앗!
고민할 시간에 움직이는 게 낫다.
마누스가 오른쪽 오크에게 먼저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지만.
스릉!
바닥을 디딘 발이 미끄러지며, 오크의 팔만 자르는 것으로 그쳤다. 팔이 잘려 나간 오크가 괴성을 지르며 도주했다.
"6!"
"5!"
시간이 극도로 늘어진다.
동시에 이성의 끈이 끊어질 듯 말 듯 흔들린다.
'집중해!'
9,999마리를 잡아도 0점.
반드시 1만 마리를 다 잡아야 하는 룰.
'집중!'
시몬은 검 끝에 온 감각을 모으고는 다시 한번 옆으로 그었다.
오크의 목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이제 남은 건 한 마리.
"4!"
"3!"
목을 베자마자 몸을 돌린다. 반대쪽의 마지막 오크는 저만치 도망치고 있었다.
방금 벤 오크의 목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보다 빠르게, 바닥을 박차고 뛰어들어 검을 휘두른다.
"2!"
"1!"
내려간 검은.
'아......!'
닿지 않았다.
허공을 가르는 궤적과 함께 손에 힘이 풀리며, 검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삐이이이이이익!
-시험 종료!
시몬은 마누스의 사념에서 빠져나와 시야를 가린 피를 소매로 닦으며 앞을 응시했다.
'!'
딱 하나 남았던 오크.
그 오크의 목덜미에 마누스의 두개골이 박혀 있었다.
'설마!'
마누스가 스스로 자신의 머리를 왼손으로 집어 오크에게 던진 것이다.
마누스가 이쪽을 보며 웃고 있었다. 마누스의 이빨에 목덜미가 짓이겨진 오크가 허물어지고.
10,000마리의 공간에.
서 있는 것은 머리 없는 듀라한의 몸뿐이었다.
-시몬 폴렌티아, 제한시간 내에 10,000마리의 몬스터 중, 10,000기 처치 완료!
-시몬 폴렌티아 학생과 6팀은 10,000점 획득했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흥분과 감격으로 얼굴이 시뻘게진 학생들이 열띤 함성을 토해내며 시몬에게 뛰어 들어왔다.
또 한 번, 새로운 전설이 써내려진 순간이었다.
툭-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고 있던 아론은 물고 있던 시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줄도 몰랐다.
두 손에는 땀이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미친놈."
정말로.
10,000마리를 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