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09화
토토의 설명을 들은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3학년들이 전체 집합을 걸었다고?"
"으, 응!"
여전히 학기 초 '신고식'의 공포가 남아 있는 건지, 토토의 얼굴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자고 있던 애들, 밖에 나가 있던 애들, 한 명도 빠짐없이 불려갔어! 헥토르의 표정도 안 좋았고......."
'걔는 그냥 평소에도 표정이 안 좋잖아.'
그렇게 생각한 시몬이 쓰게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토토, 너는?"
토토가 고개를 푹 숙였다.
"3학년 선배님들이 너 불러오라고 하셔서...... 안 그래도 학생회실까지 찾아가려고 했거든."
"음."
2학년 전원을 공개적으로 집합시켰다. 이 정도 규모라면 아마도 총 학과대표인 '레오나드'의 지시일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무슨 이유로?'
신고식 사태 이후로, 3학년의 실세 중 하나인 벤야 바닐라가 눈을 부릅뜨고 동기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군기반장인 윌의 꼬장 같은 걸 다 막아주는 것도 그녀였다.
그런데도 집합이 걸렸다는 건 두 가지를 고려할 수 있었다.
벤야가 외부 일정으로 자리를 비웠을 때, 불만이 쌓인 3학년들이 2학년들을 관리하려 든다거나.
그게 아니면 벤야의 동의하에 떨어진 집합이라든가.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가보자."
"으, 응!"
두 사람은 기숙사 뒤편, 금지된 숲 공터로 걸어갔다.
주위는 고요했고, 간혹 잔잔한 풀벌레 소리와 부엉이 울음소리만이 들렸다. 토토는 시몬의 옆에 콕 붙은채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찾았다.'
2학년 동기들이 차렷 자세로 도열해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신고식 사태 이후 첫 집합이어서 그런지 다들 긴장감을 숨기지 못하는 얼굴이다. 좌중은 적막이 흐를 정도로 조용했다.
"무슨 일이야?"
시몬이 제일 뒷자리에 서 있는 에슈를 향해 숨죽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도 모르겠어. 호, 혹시 누가 사고 친 거 아닐까?"
시몬은 토토를 에슈의 옆에 세우고는 계속 걸어갔다. 도열해 있는 2학년들 앞으로 드디어 3학년들의 모습이 보인다.
3학년들 무리에서도 가장 중앙.
커다란 의자에 떡 하니 앉아 있는 소환학과 총대표, 레오나드의 모습이 보인다.
이마를 살짝 덮은 웨이브 진 머리와, 존재감 분명한 콧날과 광대. 그리고 사람 좋아 보이는 자연스러운 미소까지.
누가 봐도 잘생겼다는 생각이 드는 전형적인 왕자님 상이었다.
"아."
왼쪽에 있던 윌의 농담에 킬킬거리고 있던 레오나드가 손을 들었다.
"왔구나! 학생회장."
시몬은 가볍게 묵례하며 레오나드의 주위를 살폈다.
뒤쪽에는 3학년들이 자유롭게 서서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바짝 긴장한 2학년들과는 달리 여유가 있었다.
레오나드의 왼쪽에는 전체 12위이자 학과 내 공포의 대상인 윌 더글라스가, 그 옆에는 2학년 학과대표인 헥토르가 열중쉬어 자세로 서 있었다.
그리고 레오나드의 오른쪽에는 벤야도 보였다. 그녀는 시몬에게 손을 흔들며 눈빛으로 인사했다.
"자, 그럼 2학년들 다 모인 거지?"
레오나드가 말했다. 헥토르는 인상을 찡그리는 건지 웃고 있는 건지 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직 한 명이 안 왔습니다."
"누구?"
"세르네 아인다르크입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레오나드는 손을 휘저으며 웃었다.
"하하! 애초에 기대도 안 했지만 말야."
"죄송합니다."
"됐어. 상아탑 후계자가 우리 말을 들을 사람도 아니고. 나중에 따로 통지해 줘."
"예."
드디어, 레오나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몬도 적당한 자리에서 멈춰 서서 그를 주시했다.
"음, 분위기가 너무 딱딱한데? 다들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
레오나드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2학년들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욕을 퍼붓든, 기합을 주든, 차라리 뭐든 빨리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좋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게. 학과생 전원을 모이게 한 이유는 하나야."
레오나드가 두 팔을 벌렸다.
"앞으로 3주 후에, <암흑제>가 시작된다는 정보가 들어왔어."
그제야 2학년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시몬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아직 정식 발표 전이었기에 학생들은 처음 듣는다는 반응이 당연했다.
"그렇지? 학생회장."
레오나드가 확인하듯 시몬을 보며 말했다.
어차피 내일 아침이면 전교생이 알게 된다. 딱히 숨길 일도 아니었기에 시몬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학생회장의 확답.
웅성거리는 소리가 사방으로 전염되었다.
"나도 조금 놀랐어. 작년에 성녀사태로 미뤄진 행사를 올해 하려는 모양이야."
레오나드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암흑제'에 대해 모르는 2학년들도 있을 테니까 설명해 줄래? 벤야."
"알았어."
벤야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안녕, 다들 잘 지냈니?"
그녀가 상냥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그녀가 등장하는 것만으로 분위기는 믿기 힘들 만큼 누그러졌다.
어느새 벤야는 2학년 전체에 일종의 영웅 같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암흑제는 학과 대항전이야."
해당 학과의 2학년과 3학년이 한 팀이 되어, 도합 일곱 학과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스템.
여타의 운동회와 비슷하지만, 막대한 수행평가 점수와 학과 지원금을 타낼 수 있기에 키젠 학생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시몬은 이미 메이린의 설명을 들었기에, 간단히 복습하는 느낌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부담스럽다니까, 진짜."
벤야의 설명이 끝나고, 레오나드가 투정 부리듯 말했다.
"하필이면 내가 3학년일 때 암흑제라니, 짐이 무거워."
그는 오른쪽 어깨에 찬 학과 완장을 슥슥 매만지고는, 천연덕스럽게 어깨를 으쓱했다.
"벌써부터 까마득한 선배님들로부터 연락이 쏟아지고 있어. 100살 먹으신 노인 선배님이 저주학과한테 지면 죽여 버리겠다고 하시던데."
레오나드의 넉살에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레오나드는 조금 진지해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학과의 명예를 위해,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 우리는 암흑제에서 반드시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해."
모든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학교에서 우리 소환학과 취급이 구린 건 알지? 말 나온 김에 단점 같은 거 까놓고 말해보자. 기숙사가 좀 허름하기도 하고."
2학년들이 기다렸다는 듯 손을 들었다.
"저녁만 되면 온수가 안 나와요!"
"비 오는 날 가끔 물이 새요!"
"그렇지!"
"아침밥 맛이 없어요!"
"맞아. 나도 동감해. 칠흑역학과는 아침에 스테이크 썬다고 하던데."
레오나드는 주위를 돌아다니며 적극적으로 2학년들과 소통했다. 2학년들도 이제 부담감을 내려놓고 말하고 있었다.
'뭐, 역시.'
시몬이 희미하게 웃었다.
'안 그런 척하지만 탁월한 리더감이네.'
레오나드는 후배들의 불만 사항을 종합한 뒤,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우리가 이번에 1등을 하면 전부 바꿀 수 있어. 기숙사 리모델링도, 온수도, 식사도, 언데드 재료 지원비도, 내친김에 아예 이사 가버릴까? 우리 기숙사만 캠퍼스랑 너무 머니까 근처의 신식 건물로 갈 수도 있지."
오오오오!
2학년들이 환호했다.
"그래도 저는 지금 기숙사가 애틋해서 좋아요!"
"맞아요! 정들었어요!"
반대 의견도 있었다. 레오나드도 그들을 보며 눈짓했다.
"사실 나도 그래. 물론, 이사 같은 큰 건은 모두의 의견을 듣고 결정할거야."
가만히 듣고 있던 3학년들이 딴지를 걸었다.
"듣자 듣자 하니까 설레발은."
"암흑제는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벌써 축포를 터뜨려도 되는 거야?"
레오나드도 유쾌하게 웃으며 동기들 곁으로 돌아왔다.
"음, 사실 그 말이 맞아. 우리 소환학과의 암흑제 최근 전적이 어떤 줄 알아?"
학생들이 조용해졌고, 레오나드가 말을 이었다.
"6위, 5위, 7위, 7위, 7위."
"......."
"우리는 암흑제에서 언제나 최하위권이었고, 결국 이렇게 금지된 숲에 인접한 외진 곳까지 밀려났지. 가장 돈이 많이 드는 학과인 동시에, 가장 학교에서 지원금을 적게 받는 학과가 된 거야."
주위에 무거운 적막이 흘렀다.
"하지만, 올해만큼은 달라."
레오나드가 팔을 뻗었다.
"우리 3학년은 Top10 중에 두 명을 보유하고 있어. 남은 3학년들도 모두 중위권에 이상에 걸쳐 있는 정예 중의 정예야."
와아아아!
3학년들이 두 팔을 힘차게 흔들며 호응했다.
"반면 3학년 최강이라는 '에이젤'은 어디 있지? 아직 복귀는커녕 소식도 없어. 이건 다시 없을 기회야."
이번엔 2학년 3학년 모두에게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레오나드가 앞머리를 쓸며 2학년들 쪽을 보았다.
"무엇보다, 올해 우리 2학년들은 어떻지? 소환학과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역대급 아닌가? Top10이 무려 세 명이나 있어!"
전체 1위 시몬 폴렌티아.
전체 3위 헥토르 무어.
전체 5위 아세라즈 미켈.
가히 말도 안 되는 구성이었다.
실제로 이 세 사람이 떡 하니 있는 걸 보고 많은 중상위권 학생들이 소환학과 선택을 포기하기도 했다.
"거기에 차기 상아탑주와, 키젠 차기 총장까지!"
이번엔 로레인에게 환호가 쏟아졌다. 중간 자리에서 가만히 잘 듣고 있던 그녀는 깜짝 놀라며 무안한 듯 뺨을 긁적였다.
"다른 2학년들도 잘해주고 있어. 이번 파견평가 복귀율이 1위고, 퇴학률도 0%라는 소식은 들었어. 그리고."
레오나드가 성큼성큼 다가와 시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말 안 해도 알지?"
지금까지 터진 환호성 중 가장 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툭툭.
가볍게 시몬이 어깨를 두드린 레오나드가 재킷 자락을 휘날리며 걸어갔다.
"다시 강조하지만, 올해야말로 기회야."
자리로 돌아온 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학기 초에는 조금 불미스러운 일들도 있었지만, 힘을 합칠 때는 합쳐야 한다고 생각해. 같이 힘내서, 우리 교수님들 어깨에 힘 좀 제대로 실어드리자."
"네! 선배님!"
곳곳에서 힘찬 대답이 쏟아졌다.
시몬도 잠시 아론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조금 더 몸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물론!"
쿵!
전체 12위인 윌이 불량한 팔자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축제 분위기였던 2학년들의 표정이 굳어졌고. 토토는 그 모습만 봐도 겁에 질리는 듯 어깨를 움츠렸다.
"열심히 하겠다! 최선을 다하겠다! 그딴 소리로 달성할 수 있는 1위라면 아무나 다 했겠지! 말뿐만이 아닌 확실한 행동의 변화가 필요하다!"
'변화?'
착!
"너희들은 지금부터 수면 통제다! 학과 우승할 때까지 잠 잘 생각을 하지를 마!"
"......윌."
이번에는 벤야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가 눈치를 주자, 윌이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내 동기가 또 오해를 사게 말했네. 암흑제까지 남은 기간 동안 하루에 두 번, '학과 훈련' 시간을 가질 생각이야. 물론 훈련 참가는 강제가 아니라 자유야. 따로 출석체크도 하지 않을 생각이고."
비로소 곳곳에서 안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윌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빠져가지고'를 연발했지만, 벤야는 가볍게 무시하며 덧붙였다.
"아침잠과 저녁잠이 조금 줄어들겠지만, 노력한 만큼 성과는 나올 거라 확신해. 동참해 준다면, 우리 3학년들이 직접 코칭해 주고 이런저런 조언도 해줄 예정이야."
2학년들의 눈이 반짝였다.
어차피 성적이 걸린 이상, 누구나 암흑제 준비는 해야 한다. 그런데 3학년들이 본인들의 시간을 내서 훈련을 봐준다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커다란 기회였다.
"그래, 최대한 동참해 줬으면 해."
레오나드가 앞으로 나왔다.
"우리 3학년들도 이 기간은 외부로 나가는 일정은 최대한 줄이고, 암흑제에 집중할 생각이야. 후회 없도록 최선을 다해보자."
2학년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네! 선배님!"
* * *
후우우우우-
녹색 연기가 가득한 공간.
끓어오르는 독극물 솥 안에 들어가 떡하니 반신욕을 하는 남자가 있었다.
전신의 피부가 불룩불룩 솟아올랐다 내려앉길 반복하고, 살갗이 변질된 고름이 터지는 등 끔찍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정작 본인은 무척이나 태연했다.
[.......]
그는 반신욕을 하면서도, 입을 가리는 특유의 금속 마스크만큼은 벗지 않고 있었다.
"바, 발락! 이럴 때가 아니라니까."
그리고 그 끔찍한 목욕탕 뒤편에는, 방독면을 착용한 한 3학년이 쩔쩔매며 말했다.
[정보는 사실인가?]
그는 다름 아닌 3학년 전체 2위.
키젠 전체 수석인 에이젤에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라이벌이라고 불리는 '발락'이었다. 그의 마스크에서는 녹색 숨결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거의 확실한 정보야! 올해 암흑제가 열려! 우리 학과에도 학생회에 있는 녀석이 있는데 그렇다고 말했고."
[.......]
"이미 다른 학과도 움직이고 있어! 우리도 빨리......!"
[요란 떨 필요 없다.]
후우우우.
그의 마스크에서 흘러나온 독의 숨결이 콘크리트 벽면을 녹였다. 뒤에 있던 3학년이 움찔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내 적수는 예나 지금이나 하나.]
거구의 발락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곧 돌아올 '에이젤'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