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10화
<암흑제>가 열린다는 사실이 전교생에게 알려진 지 사흘이 지났다.
야심차게 학과 우승을 노리는 소환학과는 아침훈련과 저녁훈련을 병행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오늘도 이른 새벽바람을 맞으며 기숙사 밖으로 나왔다.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간단한 스트레칭과 단체 구보를 마친 뒤, 개인 훈련에 들어갔다.
"준비됐지?"
가볍게 다리 스트레칭을 한 로레인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얼마든지."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구경꾼도 있었다. 바위에 나란히 걸터앉은 토토와 에슈가 와아-! 하고 손뼉을 치며 한 명씩 응원하고 있었다.
"힘내 시몬!"
"꼭 이겨야 해요! 로레인 님!"
흡. 하고 숨을 끊은 로레인이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렸다.
칠흑을 끌어올린 그녀가 두 팔을 힘차게 앞세웠다. 풀밭에 흩어져 있던 뼈들이 두둥실 떠올라 시몬을 향해 날아갔다.
스켈레톤 복원기 중에서도 가장 기본기인 '본 니들'.
이에 시몬도 제자리에서 손가락을 까닥했다.
빠박! 빡!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를 정도로 빠르게 쇄도한 뼈들이 로레인의 뼈를 정확히 맞춰 떨어뜨렸다.
이어서 시몬이 손끝을 세우고, 반대쪽 손을 겹쳐서 내리자 그녀의 머리 위에서도 연달아 뼈들이 내려왔다.
'빨라!'
로레인은 공격을 멈추고 몸을 날렸다. 그녀가 뛰는 곳마다 뼈들이 연달아 박혔다.
부웅!
흑단 같은 검은 머리를 휘날리며 공중으로 도약한 그녀가 팔을 휘둘렀다. 아공간이 열리고 그 안에서 빠져나온 뼈들이 쏜살같이 날아갔다.
<본 스피어>
그것들은 날아가는 중간에 자기들끼리 착착 연결되며, 파워와 관통력을 더한 창의 형태로 맞바꾸어 쏘아졌다. 물끄러미 지켜보던 시몬이 팔을 내렸다.
<본 프리즌>
위에서 대기하던 뼈들이 감옥의 형태로 맞춰지더니 스스로 시몬을 가두었다. 그와 거의 동시에 날아온 본 스피어들이 창살에 부딪혀 튕겨 나갔다.
로레인의 얼굴에 흠칫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속박기인 본 프리즌으로 방어를?'
팟!
시몬이 즉시 풀밭을 걷어차며 정면으로 뛰어나갔다.
그의 몸이 뼈 창살에 닿는 순간,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럽게 허물어지며 그의 체형에 딱 맞는 갑옷의 형태로 맞춰졌다.
지켜보던 토토와 에슈가 탄성을 흘렸다.
"본 프리즌이 본 아머로!"
"우와아! 소름 끼쳐! 저 스켈레톤 컨트롤 뭔데?"
로레인이 재차 남아 있는 뼈들을 띄워서 '본 니들'을 날렸다. 이에 시몬도 본 아머를 이루는 뼈들을 움직였다.
갑옷의 몇몇 파츠가 절그럭거리며 떨어져 나가더니, 한 발씩 퉁퉁 날아가 상대의 투사체를 격추했다.
'역시 시몬이야.'
로레인은 속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척!
시몬이 팔을 뒤로 보냈다. 바닥에 힘없이 떨어져 있던 뼈들이 자기들끼리 자리를 찾아 맞춰가며 '본 스피어'의 형태를 맞췄다.
부앙!
시몬이 팔을 다시 앞으로 내지르는 것을 신호로, 다섯 자루의 창들이 파공음과 함께 쏟아졌다.
"흡!"
로레인이 급히 흑마법을 시전했다. 시몬처럼 맞춰서 격추를 시키진 못했지만, 띄워둔 뼈들을 날아오는 본 스피어의 몸체에 붙인 다음, 인력을 발휘.
방향을 비틀어 버렸다.
'그리고 정면에서!'
시몬이 본 아머를 입은 채로 돌진해 온다. 그녀가 마투의 자세를 취하려는 순간.
'!'
시몬이 방향을 억지로 비틀며 뒤로 물러섰다. 그 대신, 시몬의 체형에 맞게 입혀져 있던 본 아머는 그대로 전진. 로레인의 몸에 본 아머가 입혀졌다.
'아!'
촤아악-!
신발로 바닥의 흙을 긁으며 물러난 시몬이 손짓했다.
<본 체인(Bone Chain)>
철컥!
본 아머가 그녀의 체형에 맞게 타이트하게 한 번 좁혀지더니, 단번에 그녀의 두 손목을 뒤로 돌려 묶고, 두 다리도 단단히 결박시켰다.
'?!'
시몬이 팔을 위로 올리자 그녀의 몸이 뼈에 결박된 채로 공중으로 떠올랐다.
'마무리.'
그의 두 손이 지휘자처럼 현란하게 움직였다.
<시몬 오리지널 - 본 네일>
로레인을 결박한 뼈들 외에, 남아 있는 모든 뼛조각이 날카로운 끝부분을 로레인에게 향했다.
뒤이어 그녀를 향해 날아가는 무수히 많은 뼈들을 보며, 시몬은 등을 돌렸다.
그 순간.
우우우웅!
로레인의 눈에 칠흑이 일렁였다.
파아아아아아아앗!
그녀가 떨쳐내듯 두 팔과 다리에 힘을 주었다. 거대한 칠흑의 파장이 일어나며 그녀를 결속한 본 체인은 물론, 날아오는 모든 뼈들까지 모조리 튕겨냈다.
퍼억!
퍽! 퍽! 퍽!
그녀를 향해 날아가던 뼈들이, 날아오는 힘의 몇 배로 튕겨 나가 들판에 꽂히거나 숲으로 들어가 버렸다.
"......."
"......."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바닥에 착지한 로레인이 무안한 듯 머리를 매만졌다.
"미안해, 시몬. 스켈레톤 기술로만 싸우기로 했는데 나도 모르게...... 내 패배야."
시몬이 빙긋 웃었다.
"복원기 진짜 많이 늘었네."
훈련 사흘째.
로레인이 시몬에게 '복원기'를 가르쳐 달라던 첫날 개인 훈련 때만 해도, 그녀는 본 스피어 한 자루를 조립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었다.
하지만 벌써 이 정도로 발전했다. 이론이나 공부에는 다소 평범한 모습을 보일 뿐이지, 저 말도 안 되는 재능과 실력은 의심의 여지 없이 네프티스의 딸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느낌.
마치 거인이, 인간들이 쓰는 바늘을 집어서 낑낑대며 뜨개질을 배우는 것 같다.
로레인의 칠흑은 많다라는 표현도 부족하다. 바다처럼 방대하다.
학년 중에서 가장 많은 칠흑양을 가진 사람인 건 확실하고. 어쩌면 키젠 전체에서 가장 많을지도 모른다.
'그런 로레인이, 본 스피어니 본 아머니 하는 기술을 배울 필요가 있을까?'
복원기는 스타일리쉬하고 변화무쌍한 전투를 즐기는 시몬에게는 잘 어울리는 옷이지만, 로레인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었다. 그냥 무식할 정도로 방대한 양의 칠흑을 이능으로 전환해, 주먹에 휘감아 때려 부수는 게 더 강력하리라.
'......그래도 네프티스 님께서 직접 로레인의 이능을 봉인한 이유가 있을 거야.'
시몬의 시선이 잠시 로레인의 목에 걸려 있는 초크 목걸이로 향했다.
늘 그녀를 얽매고 있는 족쇄.
다시 일반 학생들처럼 돌아와 하나부터 열까지 일반적인 네크로맨서 지식들을 배워 나가고 있다. 언젠가는 이 공부들이 빛을 발했으면 좋겠다고 시몬은 생각했다.
"두 사람 다 괜찮아?"
구경하던 토토와 에슈가 후다닥 달려왔다. 로레인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난 괜찮아, 고마워 토토."
"으, 응!"
토토는 여전히 로레인을 어려워하고 있었다.
반면 그런 거 없는 에슈는 실실 웃으며 다가와 시몬의 팔뚝을 툭 쳤다.
"우와~ 근데 회장 진짜 무지막지하다. 봐주는 거 하나도 없이 몰아붙이네! 로레인 님 몸에 생채기라도 나면 암흑연합 전체가 들끓어 오르는 거 알지?"
"......어차피 체육복 위에 배리어도 입고 있었잖아."
"아니, 지금 배리어가 중요하니? 얘 전혀 대화의 맥락을 못 읽네."
그때였다.
헤이~ 헤이~ 하고 손을 흔들며 저 멀리서 뛰어오는 한 남학생이 보였다. 특유의 건들거리듯 뛰는 포즈가 눈에 익었다.
"시몬!"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딕?"
"하하하!"
딕이 유쾌하게 웃으며 다가와 시몬의 목에 팔을 둘렀다. 시몬이 말했다.
"이렇게 먼 곳까지 어쩐 일이야?"
"마이 베프를 만나러 오는데 거리 따위가 중요하겠냐!"
시몬이 픽 웃었다.
"학생회 일이지?"
"흐흐, 실은 아까 공문이 내려왔거든. 오늘 오후에......."
딕이 중얼중얼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눈알을 굴리고 있는데, 마침 못마땅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에슈와 딱 눈이 마주쳤다.
"어어? 쓰읍! 거기 스탑!"
에슈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너 무슨 학과야?"
딕이 어깨를 으쓱했다.
"맹독학관데."
"맹독학과의 스파이지? 우리 정세 살피러 왔어?"
딕이 손사래를 쳤다.
"나 학생회 총무야! 몰라? 완장을 안 찼더니 영 못 알아보네. 회장한테 용무가 있어서 왔어."
"회장한테 용무가 있으면, 너희가 부리는 하수인들을 보내서 이야기했겠지!"
에슈가 갑자기 입에 손을 붙이며 소리를 질렀다.
"여기 맹독학과 스파이가 있다아!"
뭐?
주위에서 개인 훈련하던 소환학과 학생들의 안색이 싸늘하게 변했다. 곳곳에서 하던 훈련도 멈추고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아이고, 이럴 거라 예상은 했지만~"
딕이 킥킥거리며 시몬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좀 이따 학생회실에서 이야기하자, 시몬."
"저놈 잡아!"
딕은 아공간에서 포션병 하나를 꺼내더니 바닥에 떨어뜨렸다.
퍼어엉!
순식간에 뿌연 연막이 주위를 자욱하게 뒤덮였다. 시몬은 콜록거리며 물러섰고, 소환학과 학생들은 소환수까지 꺼내 딕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연기가 걷힌 뒤, 딕의 모습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놓쳤다!"
"맹독학과 새끼들, 벌써 우리가 훈련한다는 거 알고 온 거야!"
학생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사이, 시몬은 뒤에서 쓰게 웃었다.
'맹독학과에 들어갔더니 이상한 기술만 늘었네.'
* * *
알고 보니 에슈가 유별난 게 아니었다.
키젠에서는 암흑제가 발표된 뒤, 암흑제가 끝나기까지 특별한 전통이 있었다.
그건 바로.
"사령학 니들 아까부터 뭘 꼬라봐?"
"꼬라본 건 그쪽이겠지. 마투 새끼들은 뇌도 그렇고 눈깔도 근육인가?"
"뭐, 임마? 항시 혼령화 상태로 만들어주리?"
학과 간의 신경전이 격해진다는 거다.
이것도 일종의 교내 문화였다. 이 기간만큼은 학생들은 오로지 같은 학과생들끼리만 다녀야 하고, 다른 학과생들은 '적'으로서 대하는 불문율이 있다.
본격적인 암흑제에 앞서 학과의 단합력을 올리고, 키젠의 핵심 가치인 경쟁심을 증폭시킨다는 취지에서 하는 일종의 놀이인데.
문제는.
"야, 야, 야! 놔봐 이거!"
"들어와, 어? 쫄았냐?"
꼭 재밌자고 하는 거에 과몰입하는 사람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교내식당에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마투학과랑 사령학과가 붙는다!"
"오오!"
자리에 앉아 식사 중이던 시몬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냥 조용히 먹고 가고 싶었는데, 사방에서 칠흑이 이리 솟고 저리 솟고 난리였다.
심지어 시몬이 속해 있는 소환학과도 벌써 시비가 붙었다.
"소환학과 거지들아! 구내식당에 밥 사 먹을 돈도 있냐?"
"소환학과는 무슨, 전과 준비학과겠지!"
"푸하하하하!"
'.......'
왜 과몰입하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긴 하다.
"이 유사 마법사들 새끼들이!"
그 말을 들은 소환학과 학생들도 바로 격분하며 들고 일어났다.
이번에는 소환학과와 칠흑역학과가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갔다. 소환학과 학생들은 아공간에서 언데드를 꺼냈고, 칠흑역학과 학생들은 손안에 칠흑원소계 마법을 일으켰다.
금방이라도 싸움이 일어나려는 순간.
"해산시켜 주세요."
시몬이 품에서 통신 수정구를 꺼내 그렇게 말했다.
삐이익!
삑!
곧장 식당 곳곳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더니, 모조를 비롯한 학생회 직속 하수인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자, 그만! 그만하세요!"
"학생분들 떨어지세요! 떨어지세요!"
"아, 좀 놔봐! 저 새끼가 먼저......!"
"암흑제 때 두고 보자. 어? 딱 봐놨쓰."
하수인들이 뜯어말리니 학생들은 못 이기는 척 물러섰다.
주위가 다시 조용해졌고, 시몬은 비로소 식사에 집중했다. 옆자리에 식판을 내려놓은 에슈가 키득키득 웃었다.
"회장, 아까 쫌 멋있었다?"
"뭐가?"
에슈가 숟가락을 들어서 입에 올리는 시늉을 했다.
"해산시켜 주세요. 그 한마디에 하수인들이 쫘악! 몰려오고. 이야~ 이게 권력이구나!"
시몬이 뭐라고 대답하려는 순간.
"시몬!"
이번에는 긴 하늘색 머리를 흩날리며 메이린이 달려왔다. 시몬의 얼굴이 반가움으로 활짝 펴졌다.
"아, 메이린!"
"안녕! 우리 오후에 학생회실에서......!"
터업!
텁!
그때 다른 칠흑역학과 학생들이 메이린의 양팔을 붙잡았다.
"부회장! 지금 소환학과 놈들이랑 이야기하는 거야?"
"가자!"
그러고는 질질 메이린을 끌고 가기 시작했다.
"야 이 미친놈들아! 이건 그냥 학생회 이야기하는...... 이거 놔!"
메이린이 다리를 버둥댔지만 소용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녀가 시몬을 보며 외쳤다.
"나중에 학생회실에서 봐!"
"알았어!"
시몬이 쓰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에슈도 신이 나서 의자 위로 벌떡 올라와 약 올렸다.
"꺄하하! 도망가는구나! 유사 마법사 놈들! 올해 1위는 우리 소환학과다!"
시몬이 헛웃음을 흘렸다.
'집단 광기의 현장이야 뭐야.'
* * *
사실 이번 '암흑제'는 비단 학생들만 열을 올리는 게 아니었다.
제인은 암흑제에 '당연한' 성과를 기대한다며 학생들을 닦달했고, 홍펭은 말없이 체력단련 시간을 세 배로 늘렸다.
그리고.
"어서 오십시오."
바힐의 연구실.
저주학과 학생들이 하나둘씩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바힐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알고 있으리라 믿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