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13화
네크로맨서 학교에 다니면서 뼈는 질리도록 봐왔지만, 여전히 사람의 뼈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그것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수상쩍은 장소라면 더더욱.
"내가 한번 볼게."
메이린이 살짝 얼어 있는 사이, 시몬은 성큼성큼 다가가 뼈를 살펴보았다.
뼈 곳곳이 금이 가거나 손상되어 있었고 특히 늑골에는 묘한 이빨 자국 같은 게 나 있었다.
"......골격으로 추정하면 남자 둘과 여자 하나. 사망한 지 아주 오래된 건 아니야. 그리고."
시몬이 천천히 눈을 감으며 덧붙였다.
"굶어 죽었거나 익사 당한 게 아니라, 살해당했어."
"......!"
메이린이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무, 무서운 소리 하지 마!"
"사실이 그래."
자리에서 일어난 시몬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경기장의 소유주인 발케제 일가가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게 틀림없어."
[소년.]
그때 피어의 분신이 머릿속으로 말을 걸어왔다.
[11시 방향이다.]
시몬은 눈동자만 굴려 그 방향을 응시했다. 검은 그림자가 스윽 드리워졌다가 이내 빠르게 사라졌다.
"메이린! 쫓아!"
"어, 어? 뭘 쫓는데?"
시몬은 칠흑을 일으키며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메이린은 당혹스러워하는 반응이었지만 일단 발 빠르게 속도를 맞췄다.
"이 동굴에 누군가 있어!"
탓!
시몬이 전신에 칠흑을 활성화하며 속도를 높였다. 동굴 벽을 따라 달리다가 힘껏 뛰어올라 위쪽의 튀어나온 부분을 붙잡고 쭉쭉 올라갔다.
'이 굴은 경기장 위까지 이어져 있는 건가?'
파앗!
팟!
시몬은 기민한 야생동물처럼 암벽을 등반했다.
'클라우드'를 벽에 붙이고 이리저리 휙휙 점프하면서 이동하는 그의 모습을 감탄하듯 바라보던 메이린은, 이내 자신도 서둘러 발밑에 마법진을 그렸다.
"같이 가!"
<아이스 로드(Ice Road)>
촤르르르르르륵!
그녀 또한 두 발에 얼음을 꺼내며 벽면을 타고 올라왔다.
갑작스러운 추격전.
속도를 높여 따라가자 도주자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네 발로 달리고 있었으며, 그림자의 크기나 발자국으로 봐서 몸집이 그리 크지는 않았다.
"따라잡아야 해!"
시몬이 손짓하자, 아공간에서 스켈레톤 한 구가 시몬의 팔을 뒤덮었다.
<본 아머 - 핸드건 모드>
퉁! 퉁! 퉁!
달리면서 뼈 탄환을 연달아 발사했지만, 처음 와보는 지형이라 자꾸만 빗맞았다.
달리면서 조준하느라 시몬은 다리가 까지거나 천장에 난 종유석에 머리를 부딪히기도 했다.
지형지물은 저쪽의 편이었다.
'이런!'
시몬이 동굴 바닥에 난 돌출물들을 지나 돌아오니, 어느새 도주자의 모습이 깨끗이 사라져 버렸다.
"놓친 건가?"
"내게 맡겨!"
뒤따라온 메이린이 눈을 감고 두 손을 앞세웠다. 펼쳐진 원 안으로 고난도 수식들이 지렁이처럼 꿈틀대며 자리를 잡고, 단번에 룬어까지 작성했다.
<스크루토르(Scrutor)>
마법진이 검은 공으로 응집되더니 파장처럼 퍼져 나갔다. 집중하듯 인상을 구기던 그녀는, 곧장 오른손에 일으킨 얼음의 칼날을 옆쪽의 기둥으로 날렸다.
콰아앙!
얼음의 칼날이 동굴 기둥을 무너뜨리는 동시에, 뭔가가 휙 튀어나왔다.
"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반응할 수 없었다. 그것은 번개 같은 속도로 메이린을 덮치고는, 함께 절벽에 떨어졌다.
시몬이 다급히 절벽 끝으로 달려갔다.
풍덩!
메이린과 도주자가 동굴 웅덩이에 빠지는 모습이 보였다.
[크흐흐! 이거 위기로군.]
피어가 말했다.
[지금이야말로 군단장의 힘을 써야 할 때가 아닌가?]
"......아뇨."
여기서 피어를 입었다간, 변명의 여지도 없이 피온이 자신인 걸 들키고 만다.
물론, 그럴 필요도 없었다.
"메이린이 잡았어요."
<프로스트 노바(Frost Nova)>
꽈드드드드드!
물 한복판에서 허연 냉기를 뿜어내는 얼음의 꽃이 펼쳐졌다.
주위의 물이 얼어붙어 빙판으로 변하고, 피어오른 꽃잎 사이에 그 괴물이 붙들려 있었다.
"나이스! 메이린!"
시몬이 '본 핸드건'을 장착한 오른팔을 앞으로 뻗었다.
촤르르르르륵!
동시에 아공간에서 나온 두 기의 스켈레톤이 '본 핸드건'을 뒤덮었다. 뼈들이 맞물리며 극도로 길고 날렵한 총신을 가진 형태로 재조립됐다.
<본 아머 - 스나이퍼 라이플 모드>
얼음의 꽃에 붙들린 괴물에 조준을 마친 시몬은 망설임 없이 사념의 방아쇠를 당겼다.
달그락! 딸칵!
뼈들이 극단적으로 당겨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콰창! 하고 짧은 '본 스피어'가 가속해서 쏘아졌다.
시몬이 반동으로 쓰러지고, 스나이퍼 라이플도 망가지며 뼈들이 비산했지만.
쩌어어억!
정확도와 위력은 확실했다.
탄환으로 날아간 본 스피어는 단번에 그것의 가슴을 꿰뚫었다.
-기이이이이익!
고통스러운 외침이 들렸다.
한 방에 머리를 날릴 수 있었지만, 정보를 얻을 때까지 없앨 생각은 없었다.
시몬은 곧장 메이린이 얼려놓은 빙판 위로 내려왔다.
'!'
몬스터라고 생각했는데 자연형 언데드였다.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삐쩍 마른 몰골에, 얼굴은 밀가루 반죽처럼 일그러졌으며 몇 가닥 남은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입에서는 썩은 타액을 줄줄 흘렸다. 뭐라고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외형의 언데드였다.
'저 녀석이 아까 그 사람들을 죽인 거구나.'
언데드가 자신의 하반신을 얼린 얼음을 붙들고 거칠게 몸부림치고 있었다. 얼음에 빠드득 빠득 금이 가고 있었다.
꽝!
기어이 얼음을 부수고 나와 돌진했다.
'아!'
마찬가지로 본인의 얼음에서 벗어난 메이린이 그 모습을 보고 소리쳤다.
"시몬! 피해!"
언데드의 입이 쩌어억 벌어지며 생자에 대한 맹목적인 분노가 담긴 칠흑이 잔향처럼 훅 밀려들었다.
시몬은 제자리에 서서 태연하게 그것을 응시했다.
[멈춰.]
화아아아아악!
금방이라도 시몬에게 달려들려던 언데드의 동작이 멈칫했다. 갑자기 동굴 전체가 검푸르게 변했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강력한 장악력.
메이린은 순간 전신의 털이 쭈뼛 솟는 감각을 느꼈다.
'시몬?'
자신이 알던 시몬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저런 표정.
저런 분위기.
언데드마저 두려움에 떨게 해서 도망치게 하는 위압감.
마치.
'그때의.......'
-기이이이익!
시몬으로부터 도망치던 언데드가 애꿎은 메이린을 발견하고 뛰어들었다. 화들짝 놀란 그녀가 급히 일어나려다가, 본인이 깐 빙판을 생각 못 하고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악! 나 뭐 해?'
당황한 그녀가 허우적댔다. 언데드가 이를 드러내며 메이린의 몸을 물어뜯으려는 순간.
쾅!
하늘에서 시몬이 떨어졌다. 버둥거리는 언데드를 바닥에 깔아뭉갠 그는, 세상 태연하게 양반다리를 한 채 미소 짓고 있었다.
"괜찮아? 메이린."
두근-
두근-
그녀가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심장이 두근거리고 자꾸만 숨이 차올랐다.
"으, 응! 고마워!"
시몬이 뭔가 저주를 사용했는지, 언데드의 몸이 서서히 늘어지고 있었다.
* * *
세 시간 후.
"끔찍하군요."
위원회장 제인은 시몬과 메이린이 붙잡아온 언데드를 경기장 소유자들에게 보이며 싸늘하게 말했다.
"입이 있으면 무슨 말이라도 해보시죠."
이런 끔찍한 언데드가 경기장에 숨어 있었다.
소유자인 발케제 일가는 그대로 바닥에 엎드렸다.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발케제 지역의 명물인 '수상 경기장'은 과거 왕족들이 유흥거리로 썼던 고대의 유적이었다.
그들의 왕국은 오래전에 멸망했지만, 그 후손들은 살아남아 이 수상 경기장을 운영하며 근근이 입에 풀칠을 해왔다. 발케제 지역은 농사를 짓기도 부적합하고, 자원이 많은 편도 아니었기에 온전히 관광에 의존해야 했다. 그나마 조상들인 남긴 이 경기장은 귀족들의 휴가지로 적합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이 하나둘씩 경기장에서 실종되기 시작했다.
나쁜 소문이 돌며 귀족들의 발길은 끊겼고 경영 실적은 점점 악화되어 갔다. 발케제 일가는 그 사실을 숨기기에 바빴다.
"그랬군요."
제인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발케제 일족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이제 정말로 숨기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손해배상을 요구해도 괜찮습니다! 일절 사용비도 받지 않겠습니다!"
"사건은 해결됐고 경기장도 안전해졌으니 부디 암흑제에......!"
제인이 등을 돌렸다.
"경기장은 원래 장소로 돌려보내겠습니다."
"?!"
상상도 못 한 상황에 발케제 일족이 입을 벌렸다.
이렇게 큰 시설을 텔레포트하는 데는, 경기장을 새로 짓는 것과 맞먹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그런데 그걸 취소한다고? 발케제 일족은 일단 경기장을 키젠 땅에만 들이면 무조건 계약은 체결될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인은 냉정했다.
"우리는 학생들의 안전을 한번 훼손할 뻔한 경기장에서 암흑제를 벌일 생각은 없습니다."
딱.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하수인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발케제 일가를 체포했다.
"자, 잠깐만요 교수님! 죗값은 기꺼이 치르겠습니다!"
"부디 경기장을 돌려보내는 것만큼은 재고를......!"
그들은 끌려가는 와중에도 처절하게 발버둥 쳤지만, 제인이 마음을 바꿀 리 만무했다.
그녀는 위원회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이번 발케제 경기장을 검증하고 계약한 키젠 내부의 인사들을 모조리 조사하세요. 그들이 그 소문을 몰랐을 리가 없죠. 분명히 커넥션이 있을 겁니다."
"예!"
위원회 사람들이 돌아가고, 제인이 기꺼운 미소를 지으며 시몬과 메이린을 보았다.
"역시 훌륭합니다, 학생회. 여러분이 큰 사고가 날 뻔한 걸 막아냈어요."
제인의 칭찬을 들은 메이린은 미소를 숨기지 못하며 감사합니다! 하고 대답했지만, 시몬은 다소 얼떨떨한 반응이었다.
"진짜 이 경기장을 돌려보낼 건가요? 비용 문제가......."
"한번 문제가 터진 경기장에 또 일이 생기지 않으리란 법은 없으니까요."
제인이 빙그레 웃었다.
"그보다 두 사람의 활약은 본부와 네프티스 님께 보고하겠습니다. 아주 잘해줬어요."
다행히 일이 잘 풀린 것 같았다.
메이린은 안도하며 시몬을 보았다.
"잘됐다. 그치?"
시몬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뭐."
시몬이 머리를 쓸어넘기며 눈을 가늘게 떴다.
'잘...... 해결된 거겠지?'
* * *
짙은 어둠이 서려 있는 발케제 경기장 내 동굴.
언데드에게 희생당한 뼈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는 지점으로부터 700m.
자연 형성된 좁은 통로를 지나, 사람의 손길이 닿을 수 없는 곳까지 나아간 지점.
또옥-
또옥-
길쭉한 종유석에 맺힌 물방울들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이곳을 평생 관리한 발케제 일족들도 모르는 깊은 곳.
또옥-
또옥-
그곳의 벽면에는.
반듯한 뭔가가 붙어 있었다.
암흑연합에서는 있어서 안 되는 상징.
또옥-
길쭉한 두 개의 나무판자가 교차된 그것은.
또옥-
틀림없는 십자가.
데바 여신의 상징이었다.
이곳의 사람들이 본다면 그대로 주저앉아 경악할 만한 것.
그 아래에는 죽은 사람들의 머리가 은빛 쟁반에 올라가 있었다.
그것은 '제단'.
여신에게 바치는 피의 공물.
찰싹.
침이 흥건한 긴 혓바닥이 십자가의 끝에 닿았다.
사아아아-
까끌까끌한 면을 타고 혓바닥이 천천히 올라간다. 혓바닥이 지난 길에 침으로 흥건한 물 자국이 남는다.
마침내 십자가의 꼭대기까지 올라가고는, 붉은색 입술이 그것에 입맞춤한다.
"이제 곧, 파멸의 품으로."
하얀 죽음의 색이.
동굴을 가득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