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14화
성공적으로 경기장 검증을 마친 시몬과 메이린은 마차를 타고 이동했다.
제인은 고생했으니 이만 돌아가서 쉬라고 했지만, 사실 여유롭게 쉬고있을 틈은 없었다. 마차를 타고 바로 다음 목적지로 이동했다.
"와아아!"
이곳은 로크섬의 중앙지역.
원래는 아무것도 없던 공터였는데, 암흑제를 앞두고 무수한 노점들이 설치되고 있었다.
"여기가 노점가야!"
메이린이 발랄한 목소리로 말했다.
"축제의 중심! 암흑제 기간 동안 여기서 다양한 먹거리와 물건들을 살 수 있어!"
"응, 그런데."
시몬이 쓰게 웃었다.
"......학생들이 왜 이렇게 많아?"
노점이 열리는 건 분명 암흑제 첫날부터일 텐데,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노점가에 학생들이 와글거리고 있었다.
특히 점심시간을 틈타 온 1학년들의 수가 가장 많았다. 이미 소문이 쫙 퍼진 모양이었다.
"맛이 어때요?"
"너무 맛있어요!"
"축제 시작되면 많이 올게요!"
아직 정식 암흑제 기간이 아닌지라 음식을 돈 받고 팔 수는 없었다. 그래서 노점상들은 이런저런 먹을 것들을 테스트를 겸 제공했고, 학생들은 공짜로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다.
홍보와 입소문의 효과도 있으니 그런 걸 노리는 모양이었다.
"상자는 여기에 두면 될까요?"
"아이고, 정말 고마우이."
노부부가 운영하는 노점도 있었는데, 친절하게도 학생들이 스켈레톤을 꺼내서 자재를 옮기거나 카트를 밀어주고 있었다.
곳곳에서 훈훈한 광경들이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시몬은 우연히 익숙한 얼굴을 한 명 발견했다.
"자재 들어 갑니다아!"
공사 인부들 틈에 익숙한 감귤색 머리카락의 여학생이 있었다. 그녀는 봉사활동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인부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언데드를 부려서 공사를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시몬이 그쪽으로 다가갔다.
"에슈, 여기서 뭐 해?"
그녀가 휙 뒤돌아보더니 이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으아악 소리를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사, 사람 잘못 보셨어요!"
"......너 에슈 맞잖아."
"안 돼애! 제, 제발 징계만은!"
제 발 저리며 뒷걸음질 치던 그녀는 발을 헛디뎌 '응악!' 하고 쓰러지기까지 했다.
시몬이 뜨뜻미지근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 설마 여기서 돈 받고 일하는 거야?"
당연하지만, 준비기간 동안 학생과 외부인 간의 돈을 주고받는 어떤 거래행위도 금지되어 있다.
"아, 아니야! 난 그냥 순수한 마음에서 돕는......!"
"학생! 언제까지 퍼질러 앉아 있을 거요?"
낑낑거리며 자재를 옮기고 있던 중년 남자가 소리쳤다.
"5인분 몫을 할 테니 시급도 다섯 배로 달라며? 열심히 해야지."
"아, 아저씨이이!"
딱 걸렸다.
주저앉아 있는 에슈 앞으로 걸어온 시몬이 입꼬리를 올렸다.
"순수한 마음?"
"......크윽!"
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그녀는 결국 '으아악!' 소리를 질러댔다.
"그, 그래! 돈이 없어서 알바생으로 좀 써달라고 졸랐다! 됐냐?"
"......돈?"
"다 썼어! 이번 듀라한 특강 때 아바돈 세트 구매한다고 다 썼다구! 재료가 없으면 다음 수업도 못 따라갈 거고! 이대론 1학기도 못 버티고 퇴학당하고 말 거야!"
'아.'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이지만, 에슈는 가난했다.
어린 시절에는 로레인의 집에서 메이드 일을 했을 만큼 집안 사정이 어려웠다. 물론 원체 활발한 성격이라 그런 티를 내진 않았지만, 그녀도 그녀 나름대로의 고충은 있었다.
키젠에 돈을 받고 일하는 '근로 장학생'까지 신청해서 남들보다 일찍 등교해서 수영장이나 강의실을 청소하는 게 에슈의 일과였다. 잠자고 공부할 시간까지 깎아가면서 돈을 벌었다.
'하지만 원칙상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기까지 생각하던 시몬의 머릿속에 어떤 목소리가 떠올랐다.
-니들 어차피 또 전과할 거 아냐?
-소환학과는 무슨! 전과 준비학과겠지! 하하하!
시몬의 입꼬리가 불안감에 움찔움찔 떨렸다.
그녀의 주특기는 저주인형.
소환수인 '인형'의 컨트롤에 더 집중하고 싶어서 소환학과에 들어왔다고 스스로 밝혔으나, 사실 그녀는 저주학과에 가도 전혀 문제없는 타입이긴 했다.
물론 그녀가 원하는 공부와는 틀어지겠지만, 돈이 없어서 수업을 못 따라가다가 퇴학당할 바에는 그냥 저주학과로 전과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끙.'
그렇게 되는 건 싫었다.
에슈와 친해지기도 했고, 10조에 남겨진 로레인과 토토의 사기도 떨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과거에 학생들의 단체 전과로 마음고생이 심했을 아론의 멘탈도 걱정이었다.
시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데, 에슈는 자포자기한 얼굴로 두 팔을 붙이더니 시몬 쪽으로 내밀었다.
"마음대로 해."
"응?"
"어차피 현행범으로 날 체포할 거잖아!"
그녀가 붙인 팔을 흔들며 소리 질렀다.
"네가 부리는 하수인들에게 날 끌고 가게 해서 징계위원회에 던져 놓을 거잖아!"
이 녀석은 너무 자기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저만치 앞서 나가 있는 게 문제였다.
"시몬, 무슨 일 있어?"
마침 소란을 들은 메이린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아차!'
시몬은 뜨끔했고, 주저앉아 있던 에슈는 메이린의 오른팔에 찬 학생회 완장을 보고는 더더욱 움츠러들었다.
'메이린이라면 절차대로 처리하고도 남을 거야!'
학생회 일을 할 때만큼은 그녀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였다.
시몬의 뒤통수가 땀으로 흥건해진 가운데, 메이린은 팔짱을 끼며 에슈를 응시했다.
"얜 누구야?"
"아...... 그! 소개할게. 에슈 아르젤이야. 학과에서 나랑 같은 조. 그리고 이쪽은 메이린! 나랑 같은 학생회에, 부회장이야."
음, 그렇구나-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인 메이린이 시몬을 보았다.
"그래서, 얘가 뭐 잘못했는데?"
잘못이 전제라니.
하긴 누가 봐도 지금 에슈의 표정이 '내가 죄인이요'하는 표정이었다.
"아하하, 개인적인 고민이 좀 있나 봐!"
시몬이 앞으로 뛰어나와 메이린으로부터 에슈를 가리며 말했다.
"요즘 많이 힘들어하고 있거든!"
"......."
메이린의 눈꺼풀이 내려갔다.
"개인적인 고민, 이란 거지?"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녀가 시몬을 지나 에슈의 앞에 다가왔다. 겁을 집어먹은 에슈가 고개를 돌렸지만, 메이린은 다소곳하게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추고 그녀를 응시했다.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
게슴츠레 눈을 뜬 에슈의 시야에, 하얀 명함 한 장이 보였다.
"고민이 있다면 학생회가 상담해 줄게. 저 멍충이가 못 미덥다면 나라도."
"아."
에슈는 얼떨떨한 듯 '고마워' 하고 중얼거리며 명함을 받아들었다. 심플한 디자인에, 중앙에는 '학생 고민 상담센터'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이내 몸을 일으킨 메이린이 등을 돌렸다.
"혹시 돈이 걱정인 거라면-"
"!"
에슈와 시몬의 동공이 동시에 커졌다.
"곧 공문이 내려올 거야. 키젠에 검증된 업계에 한해, 정식으로 근로장학생이 노동을 제공하고 돈을 받을 수 있도록."
"아!"
에슈의 눈이 그렁그렁해졌다.
"고, 고마워! 부회장!"
메이린은 뒤로 손짓하며 멀어져 갔다. 시몬도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고맙다. 메이린.'
* * *
3주라는 시간은 빛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마침내 당일.
"<암흑제>에 오신 여러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퍼어어엉-!
펑-!
커다란 폭죽과 꽃들이 터져 나오며 축제 개회식이 열렸다.
야외 개회식장의 앞자리에는 학생들이 앉아 있었고, 좌우의 VIP석에는 거물들. 그리고 이 모두를 둘러싸고 있는 무수한 인파가 발 디딜 틈 없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개회식 연단에는 화려한 행사복을 입은 남자가 두 팔을 벌리며 서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번 암흑제 개회식의 사회를 맡은 세이위르 그리즈만입니다!"
그가 관중들을 향해 허리를 꺾어 신사처럼 인사했다. 두말할 것 없는 대스타의 인기에 사람들에게서 폭발적인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세이위르!
-세이위르!
"반갑습니다. 네네, 반가워요! 하하하!"
그가 확성 수정구의 음량상태를 한번 점검하고는 말을 이었다.
"누구나 그랬듯, 저도 한때는 네크로맨서를 꿈꿨습니다."
그가 가슴에 손을 올렸다.
"저는 운이 좋게도 환상을 만드는 이능을 가진 채 태어났죠! 이능 사용자가 네크로맨서가 되면 인생이 탄탄대로라는 게 세간의 상식이었고, 어머니는 저택까지 팔아가시며 제 코어를 개방해 네크로맨서를 시켜주셨습니다."
처음 듣는 랭거스틴의 대스타 세이위르의 이야기.
좌중이 그의 말에 집중하며 조용해졌다.
"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제 이능은 칠흑과 아무런 시너지가 없었고, 제 흑마법 실력은 범재 이하였죠. 실력이 없는 주제에 야망만 높았습니다! 나는 더 잘할 수 있는데 운이 없었다! 나는 더 높은 곳에 있어야 할 사람이다! 그러다 상사에게 혼나는 날이면, 환상으로 제 주위를 덮고 그 속에서 살았었죠. 환상 속에서 상사는 제 발밑에 엎드려 있었으니까요."
하하하하!
곳곳에서 공감 가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저를 환상 속에서 끄집어내, 새로운 길로 인도해준 친구들이 있죠! 바로 올해의 330기 학생회 학생들입니다!"
오오!
"저는 비록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그렇기에 더욱 이 젊은 네크로맨서 학생들에게 강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들이 제 몫까지 암흑연합을 빛내주길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진정성 있는 세이위르의 이야기에 곳곳에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럼 암흑제 개회식을 시작하겠습니다! 학생분들과 내빈 여러분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길 바랍니다!"
* * *
"으악! 여기서 우리 이야기는 왜 하냐고! 쪽팔리게."
메이린이 민망함에 벌게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뒤에서 그녀의 긴 머리를 빗으로 정성껏 빗겨주고 있던 카미바레즈가 방긋 웃었다.
"저는 세이위르가 우리를 언급해 줘서 너무 좋았어요!"
딕도 킬킬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같은 위태로운 2학년 학생회는 대중에 언급될수록 좋지. 역시 그 아저씨가 큰 그림을 볼 줄은 아네!"
연단 뒤편 대기실.
시몬도 멤버들과 함께 웃는 얼굴로 코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곧 연설이 있었기에, 분장가들이 와서 한껏 시몬의 머리를 만져주고 얼굴에 화장도 해주었다.
"오우."
마침내 치장이 끝나자, 딕이 쓰윽 다가와 입꼬리를 올렸다.
"이렇게 꾸미니까 꽤 어른스러운데. 안 그러냐?"
그렇게 말하며 딕이 뒤를 돌아보았다. 메이린과 카미바레즈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뭐어! 나쁘지 않네!"
"정말 잘 어울려요! 시몬!"
"고마워."
그때 세이위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 학생회장 시몬과, 그 학생회 멤버들을 소개합니다!
"우리 차례다!"
"나가자!"
시몬은 넥타이를 고쳐매며 무대 위로 걸음을 옮겼다.
학생회가 된 이후 첫 외부 대형 행사.
'반드시.'
반드시 성공적으로 끝내겠다는 마음뿐이었다. 빛을 향해 걸어간 시몬이 마침내 무대 밖으로 올라왔다.
와아아아-!
오오오-!
커다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학생들의 대표이자 이번 축제의 주역인 시몬과 학생회 멤버들이 연단으로 올라섰다.
공적인 자리인 만큼 예식이 중요했다. 시몬은 정중히 자세를 낮추며 메이린 쪽으로 손바닥을 내밀었다.
'!'
학생회장인 시몬의 에스코트.
내심 좋았지만, 솟구치려는 입꼬리를 애써 진정시켰다. 메이린은 세상 단정하게 시몬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보고 있냐!'
세르네가 개회식에 참석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위를 휙휙 둘러보고 싶은 강한 충동이 들었다.
마침내 두 사람이 연단 위에 올라왔다.
세이위르와 눈빛으로 인사를 주고받고 그에게서 확성 수정구를 받았다.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가라앉힌 시몬이 연단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키젠의 전교생.
그리고 그 옆에는 암흑연합의 거물들, 그 주위로는 무수한 주민들까지.
이게 바로 학생회장이 보는 광경이었다.
시몬은 확성 수정구를 들어 올렸다.
"시몬 폴렌티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