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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617화 (617/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17화

몇 주 전.

-듀라한 몸체의 손상이 너무 심해.

수행평가 직후, 퇴원하자마자 시몬이 방문한 곳은 돌연변이 동아리였다.

작업복 차림의 벤야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가까스로 긴급 보수는 했지만, 이대로 가다간 가디언의 몸체가 폭탄처럼 터져 버릴 거야.

-아.......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시몬의 이마에 콩! 하고 딱밤을 먹인 벤야가 짐짓 진지한 투로 말했다.

-언데드 걱정을 할 때니? 그 전에 먼저 제군의 몸이 터져 나갈걸!

수행평가 이후, 시몬의 몸이 받은 데미지도 어마어마했다.

눈에는 실핏줄이 터져 나가고, 피거품을 토하고, 칠흑이 역류하고, 장기가 꼬이고.

사실 거기서 살아난 게 용할 지경이었다.

시몬이 회복효과를 잘 받는 체질이고, 병실에 몰래 들어온 신성방어학 교수 파라한이 치유마법을 써주지 않았다면 그 후유증이 오래갈 뻔했다.

-이런 말을 하는 건 좋아하지 않고, 1년 먼저 키젠에 들어온 게 유세도 아니지만.

손을 내린 그녀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선배로서 충고할게. 다시는 그런 방식으로 카오스 듀라한을 쓰지 마.

사실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한다.

이번 듀라한 수행평가의 경우는 준비시간이 무제한이어서, 시몬은 미리 혼돈 마법을 준비해 둔 채로 경기장에 들어갔었다.

카오스 듀라한을 작동시키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무려 '두 시간'.

키젠에서 치르는 결투평가를 포함한 대부분의 시험에서는 마법진을 미리 준비해서 쓰는 걸 금지하고 있다. 이대로는 결투평가는 물론, 실전에서 쓰는 것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내가 더 강해져야 해.'

인정했다.

카오스 듀라한은 아직 자신에게 벅찬 힘이다.

그래서 시몬은 조금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많이도 필요 없어. 단 일검만 빌려오면 충분해.'

무려 혼돈의 힘을 사용하는 언데드 소드마스터다.

수행평가 때는 적이 1만 마리나 있었기에 그렇게 싸웠지만, 사실 그 검을 단 한 번만 휘두르는 것으로 어지간한 적은 다 물리칠 수 있다.

'빠르게 사용할 수 있는 인스턴트 마법진을 짜자.'

카오스 듀라한의 '칠흑엔진'은 작동시키지 않는다. 그 대신 딱 일검만 휘두를 수 있도록 마법진을 쌓아 올려서 카오스 듀라한을 움직이는 방식을 연구했다.

그 결과.

<제국검술 - 회천(回天)>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시몬은 마누스의 필살기를 구사하는 데 성공했다.

하늘이 반으로 갈라지고,

무엇도 거스를 수 없는 직선을 뽑아낸 시몬과 마누스가, 몬스터를 등지고 검을 내렸다.

스릉-

거대한 몬스터의 목이, 깨끗한 단면을 그리며 떨어졌다.

'이렇게 되는 거지.'

시몬이 씩 웃었다.

――――!

경기장 전체에 거대한 정적이 흘렀다.

"아! 아아! 아아아아!"

사회자는 입이 떡 벌어진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쌍둥이 교수는 키득키득 웃었고, 관중들은 벌떡벌떡 일어나 눈을 부릅떴다.

"1위! 가장 먼저 몬스터를 제거한 학생은 다름 아닌!"

사회자가 팔을 힘차게 들어 올렸다.

"단독 출전한 소환학과 소속의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관중석 전체에서 벽력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한발 늦게 저주학과 측의 자이로다일도 심장이 꿰뚫렸지만, 이미 1위는 결정된 뒤였다.

"뭐, 뭐야! 우리가 2위라고?"

"쟤 계속 스켈레톤으로 시간만 끌던데, 어떻게 역전한 거지?"

2위를 찍은 저주학과 학생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알만 굴리고 있었다.

"......일격."

그중에 한 학생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자이로다일의 목을 일격에 날렸어."

"구라 치지 마! 저거 목 두께가 얼만데!"

"진짜 봤다고!"

시몬과 마누스는 똑같은 동작으로 멋들어지게 검을 검집에 집어넣는 시늉을 하고는, 긴 숨을 내쉬었다.

'아쉬워하진 말자.'

처음 '친위대'를 만들어서 썼을 때만 해도, 골렘의 핵이니 블러드 골렘이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번거로운 과정을 많이 거쳤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제, 시몬의 역량이 달라짐에 따라 친위대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됐다.

'언젠가 너도 꼭.'

시몬은 그렇게 다짐하며, 밀려오는 관중들의 환호 속에서 마누스의 두개골과 듀라한의 몸체를 아공간에 회수했다.

하하하하!

암흑연합의 VIP석에서도 연신 탄성이 쏟아지고 있었다.

"팀 게임에 단독으로 나와서 1등이라! 재밌구려!"

"키젠은 저런 인재들이 해마다 튀어나오는 게 신기해요."

시몬이 너무 큰 임팩트를 터뜨려 버려서, 다른 학과생들의 경기는 다소 묻혀버리거나 뒷전이 됐다. 차례차례 자이로다일이 쓰러져 가며 경기는 끝났다.

시간으로만 본다면 일곱 학과 어디든 처지는 것 없이 팽팽했다. 시몬이 두 주먹을 맞부딪혔다.

'아직 부족해. 더 열심히 하자!'

* * *

그날 밤.

"첫날 전체 1등을 기념하며!"

"건배!"

와아아아아아!

소환학과 기숙사 로비에서 연신 맥주잔 소리가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2학년들과 3학년들 모두 모여 왁자지껄하게 잔을 부딪치며 웃고 떠들었다.

"다들 고생 많았다."

상석에 앉아 있는 총 학과대표, 레오나드가 기분 좋게 웃었다.

"특히 2학년들, 전체 1위를 따내 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그가 뒤를 돌아보며 동기들을 향해 소리쳤다.

"우리 3학년들도 더 분발하자!"

"그러엄!"

"선배들도 질 수 없지!"

곳곳에서 즐거운 웃음소리가 쏟아졌다.

첫날의 결과는 고무적이었다.

3학년 소환학과는 3위.

2학년 소환학과는 1위.

합계로 따져서 전체 1위였다.

'이게 이렇게 되네.'

시몬도 기분 좋게 웃으며 거품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3학년 측의 저주학과와 칠흑역학과가 미끄러지며 기대 이하의 성적을 받았기에 이런 순위가 가능했다.

"당연한 결과."

피츠제럴드가 안경을 추켜올렸다.

"3학년 쪽 저주학과는 맹독학과에게 철저한 마크를 당했다. 칠흑역학과는 절대적 에이스인 '에이젤'의 빈자리가 너무 컸지."

3학년 1위는 의외로 맹독학과가 차지했다. 에이젤의 라이벌인 '발락'이 있는 과였다.

"하지만 아직 방심할 수는 없다. 첫날엔 우세를 점했지만, 암흑제는 아직 4일이나 남아 있어. 첫날에 1등을 한 이상, 집중견제와 마크가 들어올 거야."

피츠제럴드가 시몬을 보았다.

"네 역할이 중요하다, 시몬."

"응. 열심히 할게."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었다.

술잔이 오가며 학생들이 기숙사 로비를 개판으로 만들고 있었다. 평소라면 기숙사 사감이 절대로 가만두지 않았겠지만, 저 엄격한 사감마저 눈감아줄 정도로 소환학과의 1위는 놀라운 결과였다.

학과 분위기가 최고조라 그런지, 곳곳에서 건배사가 튀어나왔다.

외줄경기에서 발 헛디딘 마투학과 대표를 위해.

화장실 수리를 위해.

생존경기에서 5킬을 따낸 벤야 바닐라를 위해.

상대 에이스를 잡아준 발락을 위해.

거기에.

"팀 게임에 단독으로 나와서 1등을 거머쥔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를 위해!"

"건배!"

시몬은 민망함에 조금 붉어진 얼굴로 잔을 들어 올렸다. 곳곳에서 높게 들어 올린 맥주잔이 학생들의 입으로 들어갔다.

"회장."

"안녕~"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시몬이 피츠제럴드와 토토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앞에 여학생 두 명이 슬쩍 끼어들었다.

"오늘 경기 너무 멋있었어."

그녀들이 긴 머리를 곱게 쓸어내리며 시몬의 앞에 앉았다. 약간 취기가 있었는지 뺨이 살짝 빨개져 있었다.

"응. 고마워."

누구지.

사실 얼굴만 알 뿐이지, 제대로 이야기해 본 적도 없는 동기들이었다.

"너무 대단해~ 나이는 동갑이지만 같은 네크로맨서로서 존경하고 있어!"

"어쩜 그렇게 강한 거야?"

"수행평가에서 1만 마리를 벨 때 나 너무 소름 돋은 거 있지!"

그녀들이 앞다투어 이야기를 쏟아냈다.

"혹시 괜찮다면 주말에...... 꽤액!"

갑자기 여학생의 목소리 끝이 음이 튄 채로 삐져나왔다. 그녀가 시뻘게진 얼굴로 텁! 하고 입을 틀어막았다.

"괜찮아?"

놀란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미안 꽤액! 목이 막혀서 꽤액!"

돼지 울음소리 같은 소리를 낼 때마다 그녀의 전신도 흠칫흠칫했다.

"오호호! 너 뭐 하는! 꺼어어어억!"

이번엔 반대편의 여학생이 난데없이 커다란 트림을 하기 시작했다. 주위의 학생들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아니, 이게 갑자기...... 꺼어어억!"

"무슨 소리야? 어디서 고래가 하품하냐!"

"하하하하!"

결국 그녀들은 시뻘게진 얼굴로 여자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시몬이 멍해 있는 사이.

"분수로 모르고 차암."

어느새 상앗빛 머리카락을 흔들며 등장한 세르네가 시몬의 앞에 앉았다.

"실례할게요."

"세르네. 방금 네가......."

샥.

시몬은 움찔했다. 기척도 없이 시몬의 옆에 다리를 모은 채 나타난 로레인이 날카롭게 눈을 뜨고 있었다.

"너. 내 경고가 우습게 보이나 본데."

"웃겨라~"

세르네가 혓바닥을 들썩였다.

"멀리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주제에, 내가 나오니까 바로 튀어나오는 것 봐. 사실 내가 관여해서 기뻤죠?"

"내가 넌 줄 알아?"

두 사람이 또다시 눈을 흉악하게 일그러뜨리며 노려보기 시작했다. 불똥이 튈까 봐 식겁한 동기들은 슬그머니 물러났다.

시몬은 그녀들을 말리며 옆을 보았다.

"피츠제럴드."

토토와 다음 전략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피츠제럴드가 시몬을 돌아보았다.

"한 가지 제안할 게 있는데."

시몬이 조용히 귓속말했다. 피츠제럴드가 턱에 손을 올렸다.

"전략적으로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나중에 학과대표에게 말해보겠다."

"하하, 고마워."

그때 레오나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끝! 약속했던 한 시간 지났어."

곳곳에서 '아~' 하고 아쉬운 소리가 들렸다.

"내일도 경기에 나가야 하니까 너무 많이 마시면 안 되는 거 알지? 이제 저녁 훈련하러 나가자!"

그 말에 학생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옆에 앉은 로레인은 겉옷을 챙겼고, 세르네는 당연히 빠질 생각인 듯 시몬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인 뒤 계단으로 올라갔다.

'그럼 나도.......'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 학생!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 학생! 지금 바로 학생회실로 가주시길 바랍니다!

역시 저녁훈련을 할 시간 같은 건 없었다. 주위의 학생들은 이제 익숙한 광경이라 큭큭 웃었다.

"수고해라! 회장."

"학생회에서 힘 적당히 빼고! 학과일이 더 중요한 거 알지?"

"내일도 1등 기대할게!"

동기들이 농담을 건네며 지나갔다. 시몬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볍게 그들과 하이파이브했다.

이번 암흑제 기간 동안 유난히 학과 동기들과 친해지는 것 같았다.

"고생해, 시몬. 늘 우릴 위해 애써줘서 고마워."

그리고 늘 이런 어른스러운 이야기를 해주는 건 로레인뿐이었다. 시몬도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올게."

* * *

시몬은 학생들 중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웠다. 부총장이자 위원회장인 제인이, '학생회 멤버'들에 한해 통금이나 기타 제약을 모조리 없애준 덕분이었다.

물론 그만큼 업무가 많기도 했다.

학생회에 도착하자마자, 메이린한테 어떻게 술을 입에 댈 수가 있냐며 혼나고 업무를 시작했다. 학생회에 들어온 각종 문건과 민원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시간은 새벽을 훌쩍 넘어 있었다.

기숙사에 돌아가기도 애매해서, 학생회 멤버들은 담요를 끌어안고 학생회실 소파에서 잠을 잤다.

그렇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학생회 일이 좋았고, 오로지 암흑제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해서 모두가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다음 날 이른 새벽.

"가요, 시몬!"

"응."

시몬과 카미바레즈는 학생회 완장을 착용하고 순찰을 돌았다.

암흑제 기간 동안은, 로크섬에 있는 사람들의 수가 평소보다 수십 배는 더 늘어난다. 그만큼 섬 내의 사건 사고도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로크섬의 유적을 훔쳐서 배를 타고 달아나려는 사람들을 체포하기도 했고, 금지된 숲에서 길을 잃은 관광객을 구해주기도 했다.

그 외에는 캠퍼스 밖에서 돌아다니는 학생들을 다시 캠퍼스로 돌려보내는 중이었다.

축제 기간에는 학부모들도 많이 와 있었는데, 학생들이 기숙사를 탈출해 부모님이 계신 숙소로 들어가는 사건이 많았다.

특히 애지중지 키워진 1학년 고위귀족 아이들이 그런 경향이 강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키젠의 훈련 강도에 지친 그들이, 부모님이 와 있다는데 가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안 돼! 알겠어?"

바로 그 1학년들을 카미바레즈가 혼쭐을 내고 있었다. 그녀는 앙증맞은 두 주먹을 양 허리에 얹은 채 목소리를 높였다.

힘껏 까치발을 들고, 한 쌍의 박쥐 날개를 위협하듯 파닥파닥 흔들고 있었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은 심정은 이해하지만! 교칙 위반은 잘못이야!"

"죄, 죄송합니다. 선배님."

"정규수업을 마친 뒤에 찾아뵙도록 해!"

"네."

그런데 어쩐지 1학년들이 카미바레즈보다는, 자꾸 그 뒤에 학생회장 코트를 입은 시몬의 눈치를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시몬이 눈을 게슴츠레 뜨자, 1학년들의 고개가 바로 다시 푹 내려갔다.

카미바레즈가 말했다.

"또 걸리면 그땐 정말로 징계위원회야! 알겠지?"

"네! 죄송합니다!"

카미바레즈는 1학년들을 꾸중하고 돌려보냈다.

흠! 하고 콧바람을 한번 내쉬며 1학년들이 잘 가는지 감시하던 그녀가, 이내 시몬을 향해 도도도 뛰어와 방긋 웃었다.

"시몬~ 제가 따끔하게 혼냈어요!"

헤헤 웃고 있는 카미바레즈를 보며, 시몬은 샐쭉하게 풀어지려는 입꼬리를 애써 붙잡으며 말했다.

"응. 1학년들도 이제 정신 차렸을 거야."

1학년들을 혼내는 역할은 그녀 본인이 자처했다. 카미바레즈의 성격에 남에게 쓴소리를 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멤버들의 발목을 잡기 싫고 스스로 발전하고 싶다며 계속해서 시도했다.

시몬은 그런 그녀의 노력을 누구보다 응원했다.

"좋아, 다음 갈까?"

"네!"

두 사람이 발을 떼고 조금 걷기 무섭게.

"어떤 새끼들이야?!"

멀리서 버럭 하는 외침이 들렸다.

"이 새벽부터 밖에 나와 있네."

"거기에 대놓고 교복 차림. 이리 와, 이리 와."

키젠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하.'

시몬이 픽 웃었다. 아무래도 그들도 보고를 듣고 온 것 같은데, 일이 겹친 모양이다.

그들은 오른팔에 검은 완장을 차고 있었다.

'선도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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