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18화
"이리 와, 이리 와."
검은 완장을 찬 학생들이 다가왔다.
"야! 일로 안 와?"
저쪽에서 버럭 소리 지르자 놀란 카미바레즈가 시몬의 옆에 꼬옥 들러붙었다.
"괜찮아, 카미."
시몬이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안심시켰다.
"우리 편이야. 잠깐 오해가 생겼나 봐."
저쪽에서 다가오고 있었기에, 시몬도 카미바레즈를 데리고 다가갔다.
딕이 새로운 정책을 입안해서 만든 '선도부'.
암흑제 기간 동안 외부인들을 안내하고 학생들을 선도하는 역할을 맡은 학생들이다.
'음.'
시몬은 그들의 차림을 빠르게 훑었다.
세 사람 모두 2학년, 그중 두 사람은 검은 완장을 찬 선도부고, 다른 한 명은 일반 학생이었다.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불만스럽게 구시렁거리고 있는 걸 보니, 밖에 나왔다가 학생회에 붙잡힌 모양이었다.
시몬은 걸음을 멈추고 손을 들어 보였다.
"안녕, 새벽부터 순찰 수고 많아."
카미바레즈도 눈치껏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고생 많으세요!"
"???"
밖에 돌아다니다 걸린 주제에 세상 태평하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에, 선도부 학생들은 해괴하단 표정을 지었다.
"어, 뭐야."
그제야 뭔가 이상함을 느낀 두 사람의 얼굴에 흠칫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왼쪽의 선도부가 떨리는 손으로 학생회 완장을 가리켰다.
"야, 쟤들 설마......."
오른쪽의 선도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상관이었네. 실례했다."
생각보다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왼쪽의 선도부도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미, 미안하다 회장. 기숙사에서 탈출한 1학년인 줄 알았어."
"아냐, 아냐. 일하다가 잘못 볼 수도 있지."
이 정도야 시몬은 쿨하게 넘어갔다.
사실 선도부들은 특징이 하나 있다.
'별종.'
무급 봉사활동에,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야 하고, 일하느라 축제도 제대로 못 즐길 텐데 굳이 이걸 하겠다고 모인 학생들이다.
시몬은 선도부에 지원한 학생들이 그리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조금 의외네."
시몬이 오른쪽의 선도부를 보았다.
두 손을 주머니에 불량하게 찔러넣은 채 금발의 앞머리를 한쪽 눈이 덮이도록 길게 기른 남자. 인상은 와락 구긴 채, 껌을 쫙쫙 씹고 있다.
선도부라기보단, 오히려 불량학생에 더 가까운 모습.
"네가 선도부에 지원할 줄은 몰랐어. 말콤 랜돌프."
말콤의 표정이 확 구겨졌다.
"뭐, 뭐! 내가 선도부라서 불만이냐?"
"아니, 불만은 없는데."
생각해 보니, 이 녀석과는 큰 접점이 없었지만 은근히 자주 엮였다.
3대 갱단인 '랜돌프 갱단' 보스의 아들이자, 특례 10번 막차러.
그리고 학기 말에는 주력기인 '도플갱어'가 공략당하면서 100위권 밖으로 밀려난 비운의 소년이다.
갱단 보스인 아버지는 말콤이 키젠에 돌아가는 걸 금지하고 범죄행위를 종용했지만, 그는 생각을 바꿔먹고 왕국과 협력해 아버지의 체포에 조력한 뒤 다시 키젠에 복귀했다.
"불만이지."
갑자기 툭 튀어나온 목소리에 모두의 고개가 돌아갔다.
선도부에 붙잡힌 2학년 학생이 혀를 차고 있었다.
"갱단 새끼가 선도부장? 범죄자가 학생을 선도한다고? 막장도 이런 막장이 어딨냐."
그가 낄낄거리며 조소했다.
왼쪽의 선도부 학생이 울컥한 표정으로 다가왔지만, 말콤이 팔을 들어 막았다.
"안 그래? 학생회장."
그의 시선이 이번엔 시몬 쪽으로 향했다.
"랜돌프 출신의 범죄자에게 학생 선도를 맡기는 이유를 물어보고 싶은데? 키젠 학생의 한 사람으로서 말이야."
"......."
사실 시몬도 의외이기는 했다.
말콤이 선도부에 지원한 것 자체가 말이다.
"아니꼽다고! X발!"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저 범죄자 새끼가 저지른 잘못은 어디 가고, 이제 와서 2학년 됐다고 감성팔이 하면서 위선 떨고 선도부 일 하는 거 X나 같잖다고!"
"......."
"범죄자는 그냥 계속 범죄자답게 굴어! 더럽게 안 어울리니까!"
말콤은 그저 입을 다물고, 달려들려는 선도부 동료를 막을 뿐이었다.
바로 그때.
"그, 그쪽도!"
카미바레즈가 눈을 질끈 감고 빼앵 소리쳤다.
"그쪽도 잘못을 해서 잡혀 오셨잖아요!"
"......어엉?"
남학생의 시선이, 한참을 아래에 있는 카미바레즈의 정수리로 향했다. 말콤은 다소 놀란 반응으로 카미바레즈를 보았다.
"아, 아니. 이거랑 그거랑 같냐? 쟤는 범죄자고 나는......."
"네가 했던 말들."
이번엔 시몬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검은 코트자락을 휘날리며 진중하게 표정을 굳힌 그의 모습에, 남학생은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야. 말콤은 잘못을 저질렀어.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에게 욕먹고 손가락질당하겠지만 그건 말콤이 감당해야 할 문제겠지."
"그래! 내 말이 그거라고!"
"하지만."
시몬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넌 아까 이렇게 말했어. 아니꼽다. 같잖다."
"......."
"사람이 바뀌면 안 돼? 갱단 출신이니까 나쁜 놈이고, 미래에도 계속 나쁜 짓만 해야 하나? 왜 바뀌려는 사람의 노력을 아니꼽고 같잖다며 무시하지? 네가 무슨 자격으로?"
말콤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주먹을 쥔 손에 힘줄이 연신 돋아났다.
"사람은 쉽게 안 바뀐다는 것 정도는 알아. 난 예언자가 아니라 말콤의 결말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바뀌려는 노력' 그 자체를 비웃는 건."
시몬이 단호하게 끊어냈다.
"아니라고 생각해."
잠시 주위에 짙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뭐라 반박하려고 입을 달싹거리던 학생이 '에이 씨' 하고 머리를 박박 긁었다.
"그래, 함 두고 봐. 학생회장."
왼쪽의 선도부원에게 끌려가며, 그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저 새끼는 절대 안 바뀌어."
* * *
폭풍이 지나갔다.
선도부원과 그 남학생이 멀어지고, 남은 건 시몬과 카미바레즈, 그리고 말콤이었다.
쏴아아아―
선선히 파도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은 완연한 남색으로 물들었다. 이제 곧 있으면 해가 뜰 것 같았다.
"......뭘 그렇게까지 하냐."
말콤이 근처의 바위에 툭 걸터앉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날 감싸면 니들 평판에 나쁠 수 있어."
시몬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우리 생각을 말했을 뿐이야."
"맞아요!"
카미바레즈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동의했다. 말콤은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아공간을 열었다.
"아무튼, 안 그래도 학생회실에 가려 했는데 만나서 잘됐다."
말콤이 순찰 기록이 담긴 서류판을 내밀었고, 시몬은 그것을 받아 훑어본 뒤 깃펜으로 서명했다.
"그런데 말콤, 네가 선도부장이었어?"
딕이 선도부 구성을 맡았기에 자세히는 모르지만, 적어도 선도부장은 다른 이름인 걸로 알고 있었다. 선도부장이 말콤이었다면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으니까.
그 말을 들은 말콤이 슬쩍 웃음을 흘렸다.
"예전 부장 녀석이 말하던데. 자기는 석차로 선도부장이 된 거니까 불만 있으면 말하라고. 그래서 결투평가 걸고 빼앗아 버렸지. 키젠은 실력만능주의니까."
"......아하."
시몬의 기억으로, 분명 선도부장은 50위권 이내의 실력자였다.
"다시 실력에 자신이 생겼나 보네?"
"내 도플갱어(Doppelgänger)를 개선했지."
말콤이 입꼬리를 올렸다.
"혹시나 암흑제에서 만나면 봐주는 거 없어. 방학 때 파로나 반도에서 싸웠던 실력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그래 기대할게."
카미바레즈가 한 걸음 말콤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말콤. 궁금해요!"
"뭘?"
"선도부에 지원해 주신 진짜 이유요!"
좋은 질문.
그건 시몬도 궁금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빤히 말콤의 얼굴로 향하자, 그의 얼굴에 살짝 붉은 기가 일었다.
"아오, 씨! 그런 것까지 낯간지럽게 꼬치꼬치 니들한테 말해야 하냐!"
그가 버럭 소리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까 그 새끼 말대로 학교에 생색 좀 내려고 그런다! 됐냐? 간다!"
"계속 수고해 줘."
"안녕히 가세요!"
말콤이 등을 돌려 걸어갔다. 그런데 말콤이 걸어가면서 곳곳에서 다른 방향에서 온 말콤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말콤과 똑같은 사람들.
그들 모두 도플갱어였다.
기숙사를 탈출한 1학년들과, 각종 교칙 위반자들을 붙잡아서 데려오고 있었다.
"말 나와서 하는 소리지만, 선도부 인력이 너무 부족해."
말콤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10배로 일해야 하잖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사람들을 데려가는 모습을 보며, 시몬과 카미바레즈가 마주 웃었다.
"선도부장, 잘 뽑힌 것 같지?"
"응! 맞아요."
그렇게 대답한 카미바레즈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시몬."
"왜?"
"아까 말콤을 도와주실 때, 정말 학생회장답다고 생각했어요!"
이번엔 시몬의 뺨이 붉어졌다. 그가 옆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그, 그렇게 봐줬다면, 고마워."
* * *
암흑제 둘째 날.
링캐슬 경기장.
"사회자 올렌도 스레이입니다! 여기는 링캐슬 경기장! 오전 2학년 경기를 중계해 드리고 있습니다!"
이 경기장에는 거대한 레일이 깔려 있었다. 복잡하게 뒤섞인 레일 위에는 화물이 실린 열차 몇 대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번 종목은 열차 쟁탈전! 심플한 룰입니다! 열차가 지나는 레일의 '궤도 조절 장치'를 움직여, 열차를 자기 학과의 역으로 들여보내야 합니다! 당연히 가장 많은 열차를 역으로 보내는 학과가 승리하겠죠?"
철컹! 철컹! 철컹!
이번 경기는 시몬이 출전했다. 그는 열차 위에 올라가 직접 열차를 지키고 있었다.
'전투도 중요하지만, 레일에 대한 이해도 필수적이네.'
시몬은 시작 전에 받은 경기장 지도를 보고 있었다.
이 지도에는 마법이 걸려 있어서, 레일은 물론 현재 열차의 이동 경로까지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어디로 열차를 보내야 최선일까?'
열차는 그저 앞으로만 달린다. 지도에 따르면 800미터 앞에 궤도 조절 장치가 있는데, 이걸 움직이면 오른쪽 길로도, 왼쪽 길로도 갈 수 있었다.
"시몬! 어디로 갈지 말해줘!"
같이 출전한 토토가 소리쳤다. 인상을 찡그린 채 지도를 보던 시몬이 이내 앞을 가리키며 외쳤다.
"이제 알았어! 800미터 앞에 보이는 궤도 손잡이를 오른쪽으로 돌려줘!"
"응! 바로 갈게!"
지시를 들은 토토가 기차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곧바로 지면에서 튀어나온 데스웜이 타이밍 좋게 토토를 채가며 기차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전진했다.
'저기 있다!'
얼마 안 가 궤도 조절 장치를 발견했다. 토토가 데스웜에서 훌쩍 뛰어내려 장치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덥석!
열차가 오기 전에 방향을 바꿔야 했다. 옷소매까지 걷은 그가 손잡이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오른쪽! 오른쪽! 오른, 오르으은 쪼오오옥......."
손잡이를 당기려던 토토는 갑자기 시야가 뿌옇게 변하는 것을 느끼며 휘청휘청했다.
'어, 어?'
전신에 탈력감이 몰려오며 눈꺼풀이 무거웠다.
한겨울, 포근한 털 이불 안에 쏙 들어간 안락한 기분.
'어째서 졸음이?'
그리고 뒤늦게 보였다.
주위에 쓰러져 있는 사령학과 학생 세 명의 모습을.
'사령학과가 우리 기차를 습격하려고 했던 거야? 그런데 누구에게 당한...... 거지.'
"잘 자."
툭.
누군가가 토토의 뒤통수를 어루만지는 것으로, 토토는 그대로 쓰러져 곯아떨어졌다.
철컹! 철컹! 철컹!
한편 느린 기차에 올라타 지도에 집중하고 있던 시몬은 이런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가 뒤늦게 고개를 들었다.
레일의 방향이 바뀌지 않았다.
'토토!'
궤도 손잡이를 당기려던 토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게 틀림없다. 시몬은 칠흑의 흐름이 바뀐 걸 느끼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펄럭!
난데없이 공중에 둥둥 떠 있는 이불이 보였다. 그것을 본 시몬의 눈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설마!'
"안녕, 시몬."
이불 옆에서 졸린 눈으로 빼꼼 얼굴을 내민 민트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보였다.
2학년 저주학과 대표이자 전체 4위, 메리다 휴 이켈이었다.
"......메리다!"
"너랑 한번, 제대로 싸워보고 싶었어."
그녀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어느 쪽이 강한지...... 으응......."
이내 그녀의 눈이 감기고 거대한 칠흑의 파장이 느껴졌다.
시몬의 이마에 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야단났다.'
메리다가 잠들었다.
<판타서스 오리지널 - 무아몽중(無我夢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