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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620화 (620/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20화

사건의 발단은 시몬의 발상으로부터 시작됐다.

-로레인과 세르네를 한 팀으로 내보내면 어떨까? 이번 암흑제 때 둘 사이가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해서.

시몬은 순수하게 두 사람의 사이가 좋아지길 바라서 그렇게 말했던 거지만, 그 말을 들은 피츠제럴드는 진지하게 생각에 잠겼다.

-전략적으로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나중에 학과대표에게 말해보겠다.

이번 암흑제에서, 소환학과 2학년들의 종목 배치와 스케쥴 조절은 피츠제럴드가 깊게 관여하고 있었다.

물론 결정권은 학과대표인 헥토르가 갖고 있었지만, 그 또한 피츠제럴드의 데이터와 분석력을 신뢰했다.

피츠제럴드는 저녁 회의시간에 바로 그 이야기를 꺼냈다.

-세르네가 매 종목마다 빠져서 고민인 걸로 안다.

안 그래도 그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던 헥토르가 인상을 확 찌푸렸다.

-네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내일 있을 이인삼각 경주에, 로레인과 세르네를 붙이는 걸 제안하겠다.

이인삼각은 심플하면서 고전적인 경기였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서로 안쪽 발을 묶고 뛰는 경기인데, 네크로맨서 학교에서 진행하는 만큼 흑마법을 쓰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경주'라는 특성상, 비행 마법이나 소환수를 타고 달리는 건 금지. 상대를 직접 공격하거나 저주하는 것도 금지된다.

-헥토르, 너도 알다시피 세르네를 통제할 수 있는 건 로레인뿐이다. 이번 암흑제를 열심히 뛰고 있는 그녀라면 어떻게든 세르네를 경기장에 데려오겠지.

-.......

그렇게 오늘.

로레인은 정말로 기숙사 방에 틀어박혀 늦잠을 자고 있는 세르네를 경기장에 끌고 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분위기가 좋을 리 없었다.

"저 아이들은 왜 안 뛰는 거지?"

"......불화인가?"

지켜보던 관중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경기는 이미 시작됐고, 다른 학과 학생들은 한창 달리고 있는데, 로레인과 세르네는 서로 냉랭한 기운만 흘리며 반대쪽을 보고 있었다.

고오오오오오!

감히 끼어들 수 없는 무시무시한 살의가 두 사람을 중심으로 휘몰아쳤다.

깃발을 든 경기 심판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하, 학생들. 이제 출발해 주셔야......."

그 말을 들은 세르네가 눈을 포악하게 부라렸다. 심판은 바로 쭈글해져서 입을 다물었다.

"심판분의 말씀이 맞아."

흘러내리는 생머리를 재차 끈으로 묶은 로레인이 입을 열었다.

"출발하자."

"내가 왜요?"

세르네가 가시 돋친 목소리로 대꾸했다.

"학생이니까."

로레인도 지지 않고 말하며 세르네를 노려보았다.

"학생이 운동회를 뛰는 게 '왜'라는 의문까지 가질 일이야?"

"이딴 유치한 경기 따위, 내가 뛸 것 같아요?"

"넌 어쩜 매번 이래?"

로레인도 슬슬 쌓인 게 폭발하려 하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불만인데? 뭐가 그렇게 맘에 안 드는데? 학교의 정당한 지시에 따르지도 않고, 사고만 치고. 사람들에게 피해만 입히고!"

"뭐가 마음에 안 드냐구요?"

세르네가 하, 하고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고는 로레인을 똑바로 보았다.

"과거의 조약으로 나는 열일곱 살이 되자마자 강제로 키젠에 끌려왔어요. 이유야 뻔해요. 후계자를 볼모로 잡고, 상아탑이 키젠에 함부로 대들 수 없게 하려는 수작이겠죠. 끌려 온 사람더러 좋게 협조하길 바라요?"

"......."

로레인이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볼모라니, 그럴 리가 없잖아! 전부 네 확대해석일 뿐이야!"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역사를 보세요."

그녀가 검지를 세워 로레인의 눈을 가리켰다.

"그 어떤 왕국도 자의로 후계자를 적대국의 왕궁에 보내지 않아요. 강요받았으니까 보내는 거고, 이유는 볼모, 포로, 노예. 키젠은 상아탑과의 분쟁에서 승리한 이후, 후계자를 강제로 키젠에서 공부시키는 조약을 체결했어요. 학교라는 건 참 좋은 빌미네요. 그렇죠?"

로레인이 팔을 떨쳤다.

"과연 그럴까? 베르무드는 죽었어! 넌 이제 단순한 후계자가 아니라 상아탑주에 버금가는 실질적인 권력자야. 하지만 넌 상아탑주에 즉위하지 않고 네 의지로 키젠에 남았지! 진짜 볼모라고 생각한다면 왜 학교에 남았는데? 왜 키젠에 남았으면서도 계속 이러는 건데? 네 말은 모순투성이야!"

세르네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키젠에 남은 건 이유가 있어서죠. 그 목표는 공부도, 성적도 아니에요. 모든 학생이 반드시 성적을 목표로 해야 하나? 나는 이 학교의 테두리 내에서 내가 원하는 일만을 할 거예요."

"넌 정말......!"

"하, 학생들......."

심판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가왔다.

각각 키젠과 상아탑의 후계자들인 지라, 말 한 마디 한 마디 꺼내는 게 조심스러웠다.

"추, 출발하지 않으면 규정상 시, 시, 실격처리를 할 수밖에......."

로레인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관중석에 앉아 있는 소환학과 동기들과 선배들이 보였다.

다들 초상집 분위기였다.

"아, 아니에요! 출발할게요!"

실격만큼은 피해야 했다. 로레인이 다리를 움직였다.

"세르네, 이제 가야 해!"

"뭐예요? 난 안 간다고 했......!"

두 사람의 묶여 있는 다리가 들어 올려졌고, 마음은 안 맞았다. 이내 기우뚱하고 중심을 잃은 그녀들이 경기장에 쓰러졌다.

"......."

"......."

공평하게 흙바닥에 얼굴을 묻은 두 사람이 동시에 팍! 하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무슨 짓이야!"

세르네가 도끼눈을 뜨며 소리쳤다.

"너야말로 뭐 하잔 건데!"

로레인도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이내 두 사람이 왁왁 소리 지르며 싸우기 시작했다.

"쟤들 뭐 하는 거야?"

"하하하하!"

곳곳에서 관중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반면 자리에 앉은 소환학과 학생들은 웃고 싶어도 웃을 수가 없었다.

'저걸 웃네.'

'자기네 일 아니라고 속도 좋다.'

이 뒤로 일어날 후폭풍과 냉전을 감당해야 하는 건, 오롯이 주위 사람들의 몫이었다.

장차 암흑연합의 미래를 짊어질 두 후계자 소녀들이 싸우는 사이, 다른 일반 학생들은 벌써 두 바퀴째를 돌고 있었다.

칠흑을 밟으면서 열심히 달리다가도, 로레인과 세르네가 엎어져 있는 구간에는 속도를 조금 줄이고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두 사람을 지나치면 다시 속도를 높이는 그림이 반복되었다.

"......안경 너 이 새끼!"

관중석에서는 헥토르가 피츠제럴드의 멱살을 붙잡고 들어 올렸다. 어찌나 힘이 센지 피츠제럴드의 몸 정도는 가볍게 붕 들렸다.

"이야기가 틀리잖나!"

"내 예상은 적중했다."

이 와중에도 피츠제럴드는 태연히 안경을 추켜올렸다.

"애초에 경기에 참석하지 않아 전력이 '0'인 세르네를 끌고 오는 것까지가 계획의 핵심이었다. 그 뒤에 두 사람이 제대로 할지 안 할지는 천운에 달렸지."

"이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헥토르! 참아!"

파벌 학생들이 그를 뜯어말렸다. 헥토르가 쓰읍 숨을 들이마시며 피츠제럴드를 대충 옆에 던져 버렸다.

'이번 여자부 최하위는 타격이 크군. 남자부에서 어떻게든 만회해야.......'

"어, 회장이다!"

마침 본인 경기를 마친 시몬이 경기장으로 뛰어들어 오고 있었다. 한걸음에 달려와 펜스를 붙잡은 시몬이 눈을 빛내며 경기장을 보았다.

서로의 다리를 묶은 로레인과 세르네가 경기장 한복판에 쓰러져 있었다.

'이런! 넘어졌어!'

사실 출발선에서 아직 한 걸음도 못 나간 거지만, 방금 막 도착한 시몬이 보기에는 열심히 달리다가 넘어진 것으로 보였다.

그가 큰소리로 외쳤다.

"힘내! 로레인! 세르네!"

시몬의 목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고, 머리끄덩이를 붙잡기 직전까지 간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시몬?'

저 멀리서 시몬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직 포기하지 마! 할 수 있어!"

상황도 모르고 순수하게 응원하는 시몬의 모습을 보며, 두 소녀는 동시에 손을 내렸다.

"흠~"

작은 콧소리를 낸 세르네가 비로소 체육복의 먼지를 털며 몸을 일으켰다.

"좋아요. 이제 할 마음이 생겼어요."

"......갑자기?"

"말했잖아요?"

이어서 머리에 묻은 모래를 털던 그녀가, 상앗빛 머리카락 안에서 깃털 한 장을 뽑아 들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만을 할 거라고."

우우웅!

그녀의 깃털이 눈 깜짝할 사이에 마법진의 형태로 분해되었다.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극도로 복잡한 마법진이었다. 수식으로 빼곡한 마법진의 형태가 신속하게 바뀌어갔다.

샤락-

눈 깜짝할 사이에 재연산이 끝나고, 크기가 압축되어 깃털의 형태로 돌아갔다. 세르네는 그 깃털을 발밑에 내려놓았다.

"뭘 하려는 거야?

로레인이 수상쩍어하며 물었다. 세르네는 묵묵히 두 사람의 다리를 묶은 밧줄을 툭 하고 건드렸다. 그러자 밧줄의 재질이 부드러워졌다.

"이능을 봉인한 당신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쓰레기지만."

세르네가 몸을 돌렸다. 그러곤 마치 끌어안듯 로레인의 몸에 자신의 몸을 밀착했다.

"그 몸뚱이는 아직 쓸 만하잖아요?"

로레인의 표정이 불쾌하게 일그러졌다.

"사람을 몸뚱이라고 부르지 마. 그래서, 계획이 뭔데?"

"머리가 참 안 돌아가네요. 그 깃털을 밟아요. 온 힘을 다해."

로레인은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실격하지 않으려면 협력해야 했다.

하는 수 없이 한쪽 손으로 세르네의 허리를 지탱했다.

"꽉 붙잡아."

그녀의 방대한 칠흑이 흘러나와 다리에 집중되었다. 로레인은 한쪽 다리만으로 성큼성큼 뛰어가 바닥에 떨어진 깃털을 힘껏 밟았다.

투콰아아아아앙-!

포탄이 쏘아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몸이 고속으로 뻗어 나갔다.

"와!"

"방금 뭐야?"

세르네가 머리카락 안에서 다음 깃털을 뽑아, 로레인이 발을 디뎌야 할 지점에 날려서 깔았다. 로레인이 바로 그것을 짓밟고 재차 도약했다.

투콰아아아앙―!

관중들의 눈에는, 두 소녀의 몸이 갑자기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사라지고, 뒤늦게 광풍이 몰아치며 경기장의 나무들이 거세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우왓!"

"흐어억!"

두 사람이 일으키는 거대한 광풍에 휘말려 나가떨어지는 학생들이 속출했다. 갑작스러운 이변에, 경기를 포기한 채 좌절하던 소환학과 학생들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설마!"

투화아아아악―!

거의 한 번의 도약으로 경기장의 반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비, 비행이나 텔레포트는 반칙 아냐?"

"아니야! 저건 엄연히 고속도약이라고! 저거 봐! 심판도 깃발 안 들고 있잖아!"

세르네의 고난도 도약 마법, 그것을 밟는 건 방대한 칠흑과 운동능력을 가진 로레인.

그녀의 칠흑밟기에 주위의 지면이 쩍! 쩍! 큼지막하게 갈라지고 있었다.

"한 팀 추월했다!"

"세상에! 몇 바퀴를 따라잡은 거야?"

어느새 결승점이 보인다.

심판들이 결승선을 한쪽씩 잡은 채 섰고, 가장 먼저 그 앞으로 뛰어오는 건 칠흑역학과의 학생들이었다.

화르르르륵-!

칠흑화염계를 응용한 부스터 마법을 준비해 온 그들이 현재 선두였다.

두 사람은 등 뒤로 뻗은 손바닥에서 불꽃을 뿜어내며 한 발 한 발 도약하고 있었다. 완벽한 호흡이었다.

"됐어!"

오른쪽의 학생이 소리쳤다.

"우리가 1등이야!"

왼쪽의 학생이 웃었다. 두 사람이 마지막 도약을 하며 힘껏 가슴을 내미는 그때.

투콰아아아아앙―!

광풍과 함께 산더미만 한 흙먼지가 솟구쳤다. 두 사람의 몸이 튕겨 나가듯 날아가 옆으로 엎어졌다.

그리고.

결승선을 앞에 내려온 검은 머리와, 백금발 머리의 소녀들이 보였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느긋한 걸음으로 동시에 결승선을 건드렸다.

"승자!"

심판이 팔을 들어 올리며 큰 소리로 선언했다.

"1위는 소환학과의 로레인, 세르네 학생입니다!"

놀라운 대역전 승리에, 사방에서 열렬한 환호성이 쏟아졌다.

기품 있게 관중들 쪽으로 손을 흔들던 두 사람의 눈이 동시에 한쪽으로 향했다.

관중석. 동기들과 승리를 자축하며 뛰고 있는 시몬의 모습이 보였다.

"정말 잘했어!"

시몬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세르네가 허리를 굽혀 다리에 묶인 밧줄을 풀어냈다.

"당신과 엮이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었으면 하네요."

로레인도 한숨 쉬듯 웃었다.

"동감이야."

* * *

같은 시각.

로크섬 내, 해안가 노점.

자박. 자박.

모래를 밟으며 누군가가 노점 앞으로 걸어왔다. 분주하게 장사 준비를 하던 노점상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서 옵쇼! 뭘 드릴......"

노점상의 목소리가 멈췄다.

"어...... 어?"

그의 동공이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듯.

혹은 마치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것처럼.

척.

노점을 지나쳐 걸어가려던 누군가의 발소리도 멈췄다.

"당신."

자박. 자박.

그자가 다시 노점으로 걸어왔다.

"내 얼굴이 보여?"

"그...... 그...... 그게! 흡!"

살의를 느낀 노점상이 다급히 소리쳤다.

"여기! 여기 좀 봐주시오! 괴물! 괴물 같은 사람이......!"

그러나.

누구도 듣지 못했다.

옆 노점에 장사를 하는 점주도, 바로 옆에서 길을 지나는 관람객들도.

마치 두 사람만 이 세상에서 동떨어진 것처럼.

뒤늦게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걸 깨달은 노점상이 덜덜 떨며 소리쳤다.

"나는 아무것도 못 봤어! 사, 사, 살려주게!"

"......."

로브 아래로, 어떤 얼굴이 웃었다.

"맞아. 아무것도 못 봤겠지."

퍽!

핏방울이 하늘 높게 흩날렸다.

축제의 열기 속에서, 균열은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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