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24화
키젠에 입학해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시몬은 평생 볼 이상한 사람들을 다 만나봤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스스로 성녀라고 밝힌 이 사람은 그중에서도 유별났다.
일반적인 불에 댄 게 아닌 것 같은 끔찍한 화상, 실밥에 꿰매 여진 채 X자로 봉쇄된 두 눈. 그래도 봉사인 건 아닌지 헐거워진 실밥 사이로 눈이 미세하게나마 뜨여 있었다.
"흠흐흐― 헤."
이상한 소리를 내며 축 늘어져 있는 그녀는 이종의 피가 섞인 혼혈 같았다. 귀는 길었고, 무거운 장신구가 절그럭 소리를 내며 달려 있다.
'......이 사람의 수확의 성녀.'
지켜보던 시몬이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뭔가.'
시몬은 자신이 아는 성녀들을 떠올려 보았다.
기적의 성녀 안나, 신해의 성녀 이스라필, 그리고 별의 성녀 레테.
그 사람들을 생각해 봤을 때, 이 성녀의 몰골은 해괴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강해.'
아티팩트의 효과로 신성을 억누르는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몸에서 이질적인 힘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카쟌은 가까이 가는 것만으로도 벅차 보였다. 시몬보다는 한 걸음 뒤에 서 있었다.
"그쪽이 날 안내해 줄 거라는데 맞나여―?"
나른한 느낌의 길게 늘어지는 말꼬리.
성녀를 만났다는 사실에 놀라는 것도 잠시, 시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이미 이야기가 된 부분이었다.
네프티스 측 요원들은 현역 학생인 시몬과 카쟌이 가이드로서 그녀를 안내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 부분이 눈에도 덜 띌 테고.
"......그나저나 의외로군."
카쟌이 버릇처럼 흉터를 슥슥 긁으며 말했다.
"그 위대하다는 일곱 성녀 중 한 사람이 직접 행차할 줄은 몰랐다."
"그만큼, 우리 쪽에서도 이번 사태를 아주 심각하게 보고 있어여."
터업.
성녀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살이 통통한 닭 다리를 손에 쥐었다.
"만약 정말로 그 '에버 키레'가 로크섬에 들어왔다면―"
으적!
그녀가 닭 다리를 짐승처럼 물어뜯었다. 잘 구워진 갈색 껍질과 흰 살갗이 옆으로 쭈욱 찢어져 뜯겨나갔다.
"파멸이에여. 그 끝은 연방과 연합의 전쟁일 거고."
"신성연방에서도 이 사실을 아는가?"
"그럴 리가여. 이건 비공개 일정이자 내 개인적인 행차. 이스라필 언니의 부탁으로 왔어여."
시몬의 눈이 반짝 빛났다.
'역시 이스라필 이모가 관여했구나!'
전쟁을 누구보다 반대하는 그녀가 나섰다면 믿을 수 있다. 카쟌도 그 이름을 아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신해의 성녀에게도 큰 빚을 졌군."
"눼에에."
다시 그녀가 닭 다리를 물어뜯으려는데, 닭 다리의 살갗에서 갑자기 밀이 자라기 시작했다. 수확의 성녀는 인상을 구기며 그것을 접시에 퍽!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채식 싫어."
시몬이 땀을 삐질 흘렸다.
'뭐라는 거야 이 인간은.'
억누르고 있는 성녀의 권능이 발동한 걸까. 음식뿐만 아니라, 동굴 곳곳에 밀이 점점 더 자라나고 있었다. 어두침침한 동굴이 제법 화사하게 변했다.
"저것들은 어떻게 못 하는 건가."
카쟌이 동굴에 난 밀을 가리켰다. 수확의 성녀는 목에 찬 초크 목걸이를 매만졌다.
"이 아티팩트한테 따지세여. 성녀의 힘을 봉인하는 거라는데 효과가 별로예여."
시몬은 저게 뭔지 바로 깨달았다.
'레테가 찼던 그 목걸이다.'
시몬은 신성연방에서 레테가 찼던, 성녀의 힘을 봉인하는 목걸이를 떠올렸다. 그것도 같은 초크 목걸이 디자인이었다.
다시 보니 로레인이 자신의 이능을 봉인하는 목걸이와 비슷하게 생기기도 했다.
"그럼 본격적으로 일 이야기를 하지."
카쟌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함께 로크섬을 돌아다니며 광신도의 흔적을 찾아다닐 거다. 그쪽은 탐지에 집중해 주길 바란다."
수확의 성녀는 맨발을 땅에 딛고 있으면, 반경의 대지 위에 발을 딛고 있는 사람들을 감지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 범위는 로크섬 전역을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방대하다.
"전투는 나나 시몬, 그리고 네크로맨서 요원들에게 맡겼으면 한다. 성녀씩이나 되는 자가 직접 신성을 일으켜 싸우면 눈에 띄게 될 테니."
"눼에에."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한 그녀가 팔을 늘어뜨렸다.
"하지만 여기서 근본적인 의문인데―"
성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쪽들이 에버 키레를 이길 수는 있어여?"
카쟌의 눈썹이 꿈틀했다.
"물론이다. 만에 하나 우리가 이기지 못하더라도, 위치만 확정하면 당장에 까마귀급 네크로맨서들의 후속 지원이 도착한다."
"인원이 많다고, 전력이 강하다고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에여."
수확의 성녀가 웃었다.
"당신들은 왜 이스라필 언니가 나를 보냈는지 이해해야 해여."
"......."
"일단 당신들 뜻대로 해볼게여."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찾을 수 있을지부터가 의문이니."
* * *
시몬과 카쟌, 그리고 수확의 성녀는 밖으로 나와 걸었다.
그녀는 워낙 눈에 띄는 모습인지라, 무난한 디자인의 갈색 후드 로브를 걸치도록 했다.
시몬은 인파로부터 성녀를 가리듯 옆에서 나란히 걸었다.
차박. 차박.
길거리든, 마차도로든. 그녀가 맨발로 걷는 곳마다 계절에 안 맞는 밀이 피어올랐다. 시몬은 그것을 안 보이게 하도록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레테도 뭐만 하면 별이 튀더니, 성녀들은 원래 다 저런 걸까?'
"흐에에―"
뭔가 맥빠진 한숨 같은 걸 쉬며 뒤뚱거리듯 걷는 그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말을 걸어보았다.
"학생회장으로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성녀님. 이렇게 먼 곳까지 도와주러 오실 줄은 몰랐어요."
수확의 성녀도 시몬을 보았다.
"고마워할 필요 없어여. 우리가 관리 못 해서 빠져나간 별종은 우리가 처리해야져."
시몬은 잠시 고민하다가 넌지시 물었다.
"그...... 성녀님을 보내셨다는 이스라필이란 분은 어떤 사람인가요?"
"아, 언니여?"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네크로맨서가 별걸 다 궁금해하네여."
시몬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워낙 괴인이라서 생각을 못 하고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프리스트는 그 교리상 네크로맨서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극도로 혐오한다.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이스라필 언니는―"
수확의 성녀가 불쑥 말했다.
"착해빠진 사람이에여."
"......아."
"동시에 이상주의자져. 아무리 전쟁을 막아야 한다고 해도 적대국에 일곱 성녀를 보내다니, 쉽게 할 수 없는 발상이져. 대역죄 혐의예여."
시몬이 굳은 얼굴로 침을 꼴깍 삼켰다. 절대로 사람들에게 수확의 성녀를 들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무리해서 도와준 이스라필을 위해서라도.
잠시 대화는 끊겼고, 어색한 정적 속에서 걸었다.
곳곳에서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이 시끌벅적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가까운 경기장에서는 사회자의 외침과 관중들의 뜨거운 함성이 쏟아졌다.
"재밌어 보이네여."
그녀가 영혼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그렇죠? 축제에 대해 조금 소개해 드릴까요?"
"그럴 필욘 없어여."
그리고 다시 정적.
수확의 성녀의 눈치를 힐긋힐긋 보던 시몬은 내심 꺼내고 싶었던 화제를 조용히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그, 그러고 보니. 신성연방에는 바로 최근에 성녀가 되신 분도 있던데."
"아, 별의 성녀여?"
시몬은 애써 반가운 기분을 숨기며 고개만 끄덕였다.
"예쁘더라구여."
선배 성녀의 단출한 감상이었다.
"혹시 만나신 적 있으신가요?"
"아니여. 아직 학생이잖아여. 사진으로만 봤어여."
"......아하."
"그리고 이스라필 언니한테 자주 이야기 들었어여."
수확의 성녀가 눈을 감았다.
"자신의 뒤를 이을 만한 재목이라고."
"......."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수확의 성녀가 말한 장소에 도착했다.
바다가 보이는 모래사장이었다.
"이쯤이면 되겠네여."
수확의 성녀는 본인이 발을 디딘 땅 위의 모든 생명체를 감지할 수 있지만, 에버 키레 같은 신성을 숨긴 채 관중 속을 돌아다니는 프리스트를 정확히 잡아내려면 방법이 더 복잡하다고 했다.
특정 지역에서, 자신의 권능을 확실히 발휘할 수 있는 수식을 짜야 한다.
"시작할게여."
그녀가 모래를 밟고 서서 말했다. 근처에 바글바글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하나둘씩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시몬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뭘 한 거예요?"
"장소의 기운을 바꿨어여."
그녀가 툭툭 제 어깨를 두들겼다.
"사람들이 왠지 여기서 벗어나고 싶어지게 느끼는 거져."
"......오."
"물러나여. 네크로맨서들은 위험할 수 있어여."
시몬과 카쟌이 물러나고, 수확의 성녀가 작업을 시작했다.
촤아아악―
그녀의 다리가 자신을 중심으로 원을 그렸다. 이내 몸을 낮추고 모래를 훑어가며 원 안에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촤아아아―
촤아아―
그녀는 눈을 감고 심취한 것처럼 몸을 움직였다.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동작이다. 그녀의 손발이 움직인 공간마다 모래에 자국을 남기고, 그림과 술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건......!'
지도였다.
그녀는 몸짓만으로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이내 손끝을 들어 올려 신성을 모으더니 지도한 곳에 똑 떨어뜨렸다.
또옥―
하얀 신성이 물결처럼 모래사장을 적시며 퍼져 나갔다. 실밥에 붙들려 있는 그녀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찾았어여. 신성반응."
"!"
한 번에 찾을 줄은 몰랐던 시몬과 카쟌이 급히 달려왔다. 모래사장 지도 전역이 하얗게 물든 가운데, 한 부분만 그냥 모래색이었다.
그녀가 색이 변하지 않은 부분을 가리켰다.
"여기예여. 로크섬이 처음이라 어딘지는 모르겠네여."
"세루트 경기장 부근이다."
지도만 보고 바로 눈치챈 카쟌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근처다. 우리가 나서서 잡아야 한다."
"잠깐만요 카쟌!"
시몬이 뒤를 돌아보았다.
"성녀님은......!"
"걱정 말고 다녀오세여."
수확의 성녀가 가볍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나는 싸우려면 신성을 써야 하니 도움은 못 주겠지만여. 상황이 심각해지면 가세할게여."
"혼자 계시는 건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녀가 픽 웃었다.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예여? 네크로맨서."
세상에 일곱뿐인 성녀 중 하나. 사실 호위가 있는 게 것도 우스울 정도의 강자였다.
그녀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시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주위는 위험하니, 성녀님은 여기 있어주세요!"
"눼에에."
그녀가 하품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카쟌은 바로 통신으로 위치를 보고하고 성녀를 보호하라고 전달했다.
* * *
세루트 경기장 근처의 노점상이 펼쳐져 있는 공원.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고, 공원에는 그리 사람이 많지 않았다. 시몬과 카쟌이 고개를 움직이며 수상한 사람을 찾았다.
'누구지?'
여기에 프리스트가 있는 건 확실하지만, 정확하게 누가 프리스트인지는 알 수 없다. 시몬은 겉으론 태연한 척 걷고 있었지만 눈동자는 요란하게 굴러가고 있었다.
'누가 프리스트야? 대체!'
벤치에 앉아 사랑을 속삭이는 커플, 교복을 입은 딸과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두 부모, 노점에서 음식을 구매하고 있는 남자들, 통신 수정구로 보고를 받고 뛰어가고 있는 하수인들.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데려가야 하나?'
시몬이 입술을 깨물었다.
'무슨 이유로? 또, 무슨 자격으로? 만약 내 주위에 없다면 소란을 듣고 그냥 슥 빠져나가면 그만이야. 어쩌지?'
시몬이 고개를 들었다.
이제 곧 경기가 끝나고 관중들이 경기장에서 쏟아져 나올 것이다. 인파가 뒤섞이면 절대로 찾을 수 없다. 카쟌은 먼저 달려가서 본인이 생각하는 수상한 사람들 위주로 얼굴을 확인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런 방법만으로는 애매하다.
'......그래.'
시몬의 머리가 번뜩였다.
시몬은 잽싸게 근처의 야외 화장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다행히 아무런 사람도 없었다. 시몬은 눈을 감았다.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
우우웅!
그의 오른손에 신성이 피어올랐다.
'당근으로 광신도를 끌어내는 거야.'
제아무리 광신도라고 해도.
네크로맨서가 신성을 쓸 수 있다는 건 예상에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