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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626화 (626/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26화

콰르르르릉!

카쟌이 광신도를 붙잡았고, 시몬이 꺼낸 '카오스 스피어'가 광신도를 향해 맹렬하게 날아갔다.

"크으윽!"

빠져나오려고 거칠게 몸부림치던 광신도는, 제자리에서 발을 강하게 굴렀다. 지면에서 두 개의 이능 팔이 튀어나와 쇄도하는 카오스 스피어를 붙잡았다.

까가가각!

그러나 카오스 스피어는 멈추지 않았다.

광신도가 바닥에서 팔을 두 개 더 꺼내 붙든 뒤에야 출력이 서서히 떨어지더니, 이내 네 개의 팔이 창을 움켜쥐는 것으로 바스러졌다.

"귀찮은 것들!"

쾅!

광신도가 팔꿈치로 카쟌의 가슴을 강타했다. 카쟌이 피를 토하며 휘청였고, 뒤에서 또 다른 팔이 튀어나와 카쟌의 머리를 붙잡고 지면에 찍어 눌렀다.

"카쟌!"

시몬이 급히 달려가려고 했지만.

"멈추는 게 좋을걸."

그녀의 날카로운 경고에, 시몬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화아아아아아악!

어느새 하늘에 커다란 신성의 달이 떠 있었다. 시몬과 카쟌이 지금부터 달려도 피할 수 없을 만큼, 그 반경이 넓었다.

'저런 걸 어느 틈에......!'

시몬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녀의 등 뒤로 펼쳐진 열 개의 이능 팔들이 흔들리며 각자 마법진의 요소들을 형성하고 있었다.

저 팔들이 육탄전과 동시에 고위 마법을 펼칠 수 있었던 이유 같았다.

"네크로맨서가 어째서 신성이 통하지 않는지는 모르겠지만."

광신도가 팔을 내리그었다.

"물리력은 어쩔 수 없겠지?"

하늘에서 일그러진 하얀 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내려왔다. 시몬은 피하기보다는, 저 마법을 이루고 있는 이능 팔들을 보았다.

'저 팔들을 부수면 마법에도 영향이 갈 거야.'

시몬이 허리에 손을 대며 새로운 카오스 스피어를 꺼내려는 순간.

으적!

이능 팔 하나에 '물린 자국'이 생겼다.

으저적!

쩌쩍!

멀쩡하던 팔 구조물에 맹수에게 물린 듯한 자국이 연달아 일어났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산더미만 한 10개의 팔이 무너져 내리며 물리력을 가진 신성의 달도 사라졌다.

"뭐야?"

모두의 고개가 돌아갔다.

팔이 무너지며 피어오른 흙먼지 사이로, 까마귀 깃털 망토를 걸친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아주 이가 갈리네. 이가 갈려."

그는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불량한 팔자걸음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오고 있었다.

"로크섬 한복판에 프리스트라니. 이게 말이 되는 거야?"

머리카락은 마치 식물의 이파리처럼 괴기한 모양으로 뻗쳐 있었고, 입에는 길거리에서 대충 주운 듯한 나뭇가지를 질겅질겅 물고 있었다.

'까마귀 요원이다!'

시몬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반면 제압당해 쓰러져 있던 카쟌의 표정은 어딘가 썩 개운하지 못했다.

"가까이 오지 마!"

프리스트가 뒷걸음질 치며 손짓했다. 바닥에서 재차 이능으로 만든 손들이 일어났다.

"경고한다! 여기 학생들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물러......."

까마귀 요원은 그저 입에 문 나뭇가지를 씹었다.

으적!

적나라한 소리와 함께, 핏방울이 후두둑 튀었다. 시몬의 뺨에도 몇 방울이 묻어서 흘러내렸다.

프리스트는 삐걱거리는 고개를 내려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마치 짐승에게 물린 듯한 파인 자국이 허리에 커다랗게 나 있었다. 뼈와 내장이 보이고, 피가 철철 쏟아지고 있었다.

"이미 내 저주의 발동 조건이 갖춰졌어."

까마귀 요원이 히죽 웃었다.

털썩!

광신도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덜덜 떨던 그녀가 두 손을 상처 쪽으로 움직였다.

으적!

쩍!

이번에는 양 손목이 뻥 뚫리며 이빨 자국이 생겼다. 그녀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러댔다.

"힐링 같은 걸 빤히 쓰게 내버려 둘 것 같냐? 바퀴벌레 놈들."

무릎까지 휙휙 들어 올리는 괴팍한 팔자걸음으로 다가온 까마귀 요원이 그녀의 머리를 거칠게 짓밟았다.

쾅!

광신도의 머리가 흙바닥에 틀어박혔다.

"뭔 깡으로 이 섬에 들어왔냐? 나랑 싸울 거면 성녀나 아크 팔라딘이라도 데려오......."

"그만."

까마귀 요원이 '아앙?' 하는 소리를 내며 뒤를 돌아보았다. 카쟌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뭐야, 진짜 그냥 학생이잖아? 학생이 어떻게 프리스트와의 전투에서 살아남았어?"

"잔말 말고."

카쟌이 숨을 몰아쉬며 그를 노려보았다.

"다리를 치워. 그녀에겐 얻어야 할 정보가 있다. 여기서 죽이면 곤란해."

"학-새앵."

까마귀 요원이 클클 웃었다.

"학생은 요원에게 명령할 자격이 없어. 알았지? 학생은 그저 공부 열심히 하고, 교수님 말씀 잘 듣고, 그러면 되는 거야."

뿌드득. 뿌득.

까마귀 요원의 발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광신도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찌푸려질 듯 위태로워졌다.

"프리스트 놈들은 말야, 그냥 벌레야. 왜 우리가 벌레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해? 집에 벌레가 들어오면 그냥 눌러 죽이면 돼. 누가 뭐라 해?"

퍽!

그때 광신도를 짓밟고 있던 까마귀 요원의 다리가 옆으로 치워졌다.

시몬이 발차기로 까마귀 요원의 다리를 차낸 것이다. 동시에 앞으로 성큼 다가와 그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밀어냈다.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시몬은 순간 식겁했다. 넘어뜨릴 생각이었는데, 한쪽 다리가 떠 있는데도 이 사람의 몸이 밀리지 않는다.

"증거 훼손 우려가 있어서 실례했습니다."

"오, 그래."

까마귀 요원은 의외로 화를 내지 않고 웃었다.

"네가 올해 학생회장이구나? 대단하네."

"과찬이십니다."

"잠깐, 근데 이름이 뭐라고 했지?"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시몬 폴렌티아. 시몬 폴렌티아. 시몬 폴렌티아.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 아!"

멍하니 이름을 읊조리던 까마귀 요원이 손뼉을 짝 쳤다.

"그래, 떠올랐어! 내 동기 바힐이 격하게 아낀다는 그 학생! 그래, 그래!"

시몬의 눈이 커졌다.

바힐의 동기라고? 이 사람이?

"우리 친구 시몬 폴렌티아야. 사실 이 아저씨가 고민이 하나 있거든. 들어줄래?"

까마귀 요원이 시몬의 어깨를 짚었다.

"내 소중한 동기 바힐이 요즘 나랑 놀아주지 않아서 고민이야."

카쟉! 카쟉! 카쟉! 카쟉!

시몬은 전신에 빨간불이 켜지는 게 느껴졌다. 갑자기 온몸에서 벌레가 기어오르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바힐은 말이야. 이 아저씨보다 몇 배는 더 천재고, 몇십 배는 더 미쳐 있거든. 그런데 요즘은 교수 일에만 더 집중하는 것 같아서 이 아저씨는 서운해."

그의 두 동공에 음산한 불이 켜졌다.

"바힐은 현장이 어울려. 그런 천재가 가르쳐도 일반인들은 반의반도 알아듣지 못할 거라고. 그 천재성은 온전히 프리스트 놈들을 죽이는 데 써야 해. 그런 녀석이 한 학생한테 꽂혀서 내 말은 귓등으로 듣지도 않아요."

허망하리만치 텅 빈 눈동자가 시몬에게로 향했다.

"만약 그 학생이 사라지면, 다시금 우리 곁으로 돌아와 줄까?"

위험하다.

전신의 세포가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날 꺼내라, 소년!]

피어의 분신마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시몬이 그가 보지 못하는 사각에서 아공간을 여는 순간.

"지금 뭐 하는 거냐? 퀸터."

묵직한 목소리가 대기를 진동시켰다.

"......."

시몬은 즉시 동작을 멈췄고, 퀸터라는 이름으로 불린 까마귀 요원은 뒤를 돌아보았다.

마찬가지로 까마귀 로브를 걸치고 있는 중년의 남자가 인상을 험악하게 굳힌 채 서 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몇 명의 네크로맨서 전투원들도 함께였다.

"아하."

퀸터가 시몬의 어깨에서 손을 떼고 몸을 돌렸다.

"제 먼 키젠 후배를 만나서 이런저런 상담을 해줬을 뿐입니다. 선배."

"물러서라, 퀸터. 불필요한 의혹을 받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까마귀 요원이 턱짓하자, 다른 네크로맨서들이 뛰어가 기절한 광신도의 두 팔을 붙들고 일으켜 세웠다.

"출혈이 심합니다."

"긴급조치부터 하겠습니다."

프리스트는 바로 붕대를 두른 뒤,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옮겨졌다. 까마귀 요원이 퀸터에게 다가왔다.

"네가 왜 여기 있지?"

"왜 있긴요."

퀸터가 입에 문 나뭇가지를 질겅질겅 씹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로크섬과 네프티스 님을 지키는 게 우리 까마귀들의 의무 아니겠습니까?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신성이 느껴져서 왔더니 그만."

"퀸터!"

"그보다, 이 사람들은 다 뭡니까?"

퀸터가 선배의 말을 끊으며 주위의 네크로맨서 요원들을 돌아보았다.

"본부 내에선 아무 경보도 울리지 않았는데, 프리스트가 로크섬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것처럼 포위망을 짜놨네요."

"......."

"그리고 자연스럽게 프리스트를 데려가기까지. 하하."

퀸터가 입에 문 나뭇가지를 퉷 하고 내뱉었다. 나뭇가지가 선배의 가슴에 부딪혀 튕겨 나가 바닥에 굴러다녔다.

"암흑연합은 이래서 문제라니까. 같은 팀인데 이렇게 막 서로서로 비밀이 많아서 되겠습니까."

까마귀 선배 요원이 깊게 한숨을 쉬었다.

"기밀이다. 일이 끝나고 나중에 설명하지."

"예이, 예이, 어련히 그러시겠죠."

탁.

걸음을 멈춘 퀸터가 시몬 쪽을 돌아보며 히죽 웃었다. 시몬은 괜히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또 봤으면 좋겠네. 바힐의 제자."

파라라라라락!

그의 몸이 까마귀 떼로 변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 * *

사건이 정리되고, 시몬은 카쟌의 상처 회복을 도와주었다.

카쟌의 몸에만 듣는 특수한 포션을 그의 몸에 여러 번 끼얹어주는 것으로도 충분히 회복해서 일어날 수 있었다. 남은 건 몸에 깊게 새겨진 듯한 흉터들뿐이었다.

"카쟌, 진짜 괜찮아요?"

"괜찮다."

카쟌이 삐걱거리는 팔을 휘휘 돌리고는, 고개를 좌우로 움직였다. 그때마다 빠득빠득하고 뼈가 맞춰지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 다 수고했네."

퀸터를 쫓아 보낸 그 까마귀 선배 요원이 다가왔다. 카쟌이 고개를 기울여 시몬에게 조용히 말했다.

"이 사람은 믿을 수 있다. 네프티스 님 쪽 사람이다."

"아."

퀸터라는 바힐의 동기도 그랬지만, 이 사람도 그 못지않게 강해 보였다.

머리카락과 수염, 턱수염이 모두 적갈색으로 통일된 채 이어져 있었다. 굳건하고 탄탄한 인상에, 체격도 무척이나 좋아서 마투학 전공자가 아닐까 잠시 생각했다.

시몬은 까마귀 요원과 악수를 나누었다.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코드네임 '알레이스터'라고 불러주게. 귀군의 이야기는 네프티스 님께 익히 들었네."

"영광입니다."

알레이스터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쉬었다.

"본격적인 암흑제가 시작되기 전에 광신도를 체포해서 다행이......."

"방금 붙잡은 프리스트는 '에버 키레'가 확실합니까?"

카쟌이 불쑥 끼어들어 물었다. 말이 끊겼지만, 알레이스터는 기분 나빠하는 기색도 없이 웃었다.

"지금 치료를 받는 중일세. 자세한 건 눈을 뜬 뒤 심문해야 알겠지. 외모는 사진과 조금 다른 것 같지만, 그녀의 이능이라면 얼굴 정도 바꾸고 돌아다니는 건 식은 죽 먹기일 테니까."

그가 고개를 돌렸다.

"신해의 성녀 측에 큰 빚을 졌군. 그분은 지금 어디 계신가?"

"탐지 마법을 쓴 뒤 쉬고 계십니다."

"가보지."

* * *

시몬과 카쟌, 그리고 까마귀 요원은 함께 해변가로 이동했다.

모래사장의 그늘 의자에 쉬고 있는지, 태연하게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성녀님! 오래 기다렸......!"

소리치며 다가가던 시몬은 말을 멈췄다.

뭔가.

이상했다.

"......제기랄."

카쟌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시몬은 허망한 표정으로 털썩 한쪽 무릎을 꿇었다.

테이블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수확의 성녀.

그녀의 머리는 턱을 포함한 아랫입만 남아 있었다.

"......."

선홍빛의 가지런한 이가 드러난 모습.

그리고 절단된 반대편의 얼굴이 흙바닥에 굴러떨어져 있었다.

이건 이질적일 정도로 깔끔한 단면이다. 이능의 흔적이었다.

'성녀가.'

성녀가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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