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630화 (630/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30화

흐드러진 달빛을 등진 채 창가에 앉아 있는 레테를 바라보며, 시몬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오늘은 대체 몇 번이나 눈을 의심하는 걸까.

"자, 잠깐만!"

퍼뜩 정신이 든 시몬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네가 왜 여기 있어? 다른 네크로맨서 요원들은?"

"당연히 몰래 탈출했죠."

그녀가 사뿐한 동작으로 바닥에 내려왔다.

"걱정 마십쇼. 쪽지는 놔놓고 갔으니까."

"쪽지?"

"네크로맨서들은 도저히 신용할 수 없다. 별부림 동안 여신을 부정하는 사악한 주적에게 내 등을 맡길 생각은 없으니, 찾아다니지 마라."

그녀가 주먹을 쥐자 별빛이 팅- 하고 튀어 올랐다.

"쫓아오면 연방으로 돌아가겠다. 라고요."

'혀, 협박?'

시몬이 난감한 듯 웃었다. 어쩜 사람이 이렇게나 막무가내일 수가 있을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꽤 절묘했다. 지금은 엄연히 신성연방이 암흑연합에 도움을 주는 형태고, 키젠 요원들에게 레테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형식적인 수색은 하겠다만 그녀가 아침 내내 보여준 성깔을 생각한다면 과하게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다.

'잠깐, 그러면.'

시몬의 동공이 흔들렸다.

'아침에 그렇게 매몰차게 대했던 것도.......'

레테가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슴까?"

"아, 아니. 아무것도 아냐."

"그보다~ 여기가 당신이 생활하는 방이군요."

레테는 뒷짐을 쥔 채 흥미 어린 눈으로 기숙사 방을 돌아다녔다. 어쩐지 부끄러워진 시몬이 허겁지겁 말했다.

"잠깐! 막 돌아다니지 마!"

"에이, 뭐 어때요."

으으음-

그때 침대에서 자고 있던 토토가 눈을 비비적거렸다.

"시몬, 무슨 일 있......."

터업!

시몬이 다급히 토토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다.

슬립에 걸린 토토는 편안한 미소를 그리며 다시 잠이 들었다. 시몬은 속으로 안도하며 이불을 덮어주었다.

"조심해. 여자가 들어왔다는 게 사감 선생님께 알려지면 사형이야."

"그 정도 죄로 학생회장이나 되는 학생을 매달아 버리는 검까? 키젠도 엄격하네요."

"......비유적 표현이야."

엄격한 에프넬에서는 이런 거 걸리면 남녀 둘 다 반쯤 죽여놓는다고 한다. 어떻게 반쯤 죽이는지는 듣지 않기로 했다.

"근데 내가 여기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기숙사가 외진 곳에 있어서 찾기 힘들었을 텐데."

"물어물어 왔슴다."

레테가 이 정도는 쉽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딱 봐도 당신이 꿍하니 삐쳐 있을 것 같아서 서둘렀죠."

"내, 내가 뭘!"

"아는 척 좀 안 해줬다고 서운해한 거, 얼굴에 팍팍 티 나던데요?"

시몬이 귀가 시뻘게져서 소리쳤다.

"그런 적 없어!"

아하하!

그녀가 입가를 소매로 가리며 짓궂게 웃었다. 밝게 피어나는 목소리가 방에 퍼져 나갔다.

"뭐어, 그런 셈 칠게요. 이만 나가요."

레테가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간다니? 어디로?"

"그거야 당신이 정해야죠."

그녀가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팔짱을 꼈다.

"나 로크섬은 초행이에요. 학생회장인 당신이 별부림을 하기 좋은 조용한 장소로 안내해 줄 거라 생각해서 왔는데요."

그 정도야 어렵지 않았다. 시몬이 옷걸이 쪽으로 걸어가며 웃었다.

"네크로맨서는 신뢰할 수 없다며?"

레테도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한 명쯤, 예외는 있다고 치죠."

펄럭!

시몬이 멋들어지게 로브를 몸에 걸쳤다. 단정히 단추까지 잠그며 나설 채비를 하는데.

"......."

어쩐지 레테가 당황한 기색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항의하듯 시몬을 빤히 올려다보기도 했다.

"왜? 뭔가 문제라도 있어?"

"......아니, 그."

옅은 홍조를 띤 채 시선을 돌린 그녀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내가 검은색임다."

"?"

전혀 이해하지 못한 시몬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레테가 발칵 화를 냈다.

"오해받기 싫으니까 그 로브 흰색으로 뒤집어 입으라고! 확, 진짜."

"......아."

그러고 보니.

두 사람 모두 정확히 똑같은 디자인의 로브였다. 예전에 신성연방에 갔을 때 둘이서 같이 샀던, 바로 그 흰색과 검은색으로 마음대로 뒤집어 입을 수 있는 로브.

"그거 입고 왔구나."

"닥치고 흰색으로 입어! 내가 검은색으로 입을 거야!"

"알았어, 알았어."

시몬이 키득거리며 시키는 대로 흰색 로브로 갈아입었다.

"그럼 갈까?"

시몬이 창가에 발을 올린 채 손을 내밀었다.

잠시 그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레테는, 어림없다는 듯 내치고는 먼저 창가를 밟고 뛰어 내려가 버렸다.

'여전하다니까.'

시몬도 조용히 웃으며 뒤따라 창가에서 뛰어내렸다.

* * *

기숙사 밖으로 나오니 어둠이 자욱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시몬은 바로 기숙사 뒤편의 금지된 숲으로 레테를 데려왔다. 키 높은 나무들이 드높게 솟아 있고, 그 위로 밤하늘의 별과 큼지막하게 뜬 달이 보였다.

"역시 로크섬. 분위기 으스스하네요."

레테는 눈이 동그래져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가는 길이 좀 험할지도 몰라."

시몬이 아공간에서 골렘의 핵을 꺼내 바닥에 떨어뜨렸다.

"암흑제 기간 동안 경비가 크게 강화됐거든. 숲을 지키는 파수꾼들은 물론, 하수인들이나 선도부와 마주칠 수도 있어."

"문제 없슴다. 다 박살 내고 가버리면 그만이죠."

레테가 턱을 치켜세우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시몬은 피식 웃으며 두 팔을 휘저었다.

<서먼 골렘(Summon Golem)>

시몬의 칠흑에 반응한 흙과 암석 등이 골렘의 핵을 중심으로 철썩철썩 달라붙었고, 모여든 재료들은 곱게 빚어져 유선형의 몸체를 이루었다.

시몬의 주력 이동수단인 '골렘 보드'가 순식간에 완성되었다.

"갈까?"

시몬이 올라타며 말했다. 레테는 가만히 시몬과 골렘 보드를 번갈아 보다가 말했다.

"당신이 자랑하던 그 신수 마차는요?"

"당연히 키젠에선 못 쓰지."

레테가 쳇 하고 혀를 차며 골렘 보드에 올라탔다.

"꽉 잡아."

키이이이잉!

칠흑이 가동하며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손을 어색하게 꼼지락대던 그녀는 결국 시몬의 양어깨에 두 손을 얹었다.

화악-!

두 사람의 몸이 정면으로 거칠게 쏘아져 나갔다.

"우왓!"

생각보다 빠른 속도감이었는지 레테가 조금 더 시몬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이, 이거 안전한 거 맞슴까!"

골렘 보드는 가공할 만한 속도로 나무가 빼곡한 숲을 통과하고 있었다. 시몬이 태연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한 번도 뒤집힌 적 없었어. ......지금까지는."

"그 말 뭔가 의미심장하게 들리는데요!"

시몬은 귀를 쫑긋하며 소리에 집중했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삐이이익!

삐이익!

아니나 다를까 금지된 숲 곳곳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침입자다! 멈춰라!"

다소 요란하게 달려서 그런지, 파수꾼들에게 바로 발각당했다.

위험하다는 둥, 멈추지 않으면 쏜다는 둥, 파수꾼들의 협박이 거세졌지만 시몬은 오히려 속도를 높였다.

이내 멀리서 화살대가 팽팽하게 당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실례할게."

지금부터 시작이다. 시몬이 정신없어하는 레테의 후드를 씌워준 다음, 자신도 후드를 깊게 눌러썼다.

쐐애액!

쐐애애애액!

곳곳에서 파수꾼들의 화살이 날아왔다. 진짜로 화살을 쏠 줄은 몰랐는지, 레테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어, 어떡해요! 진짜 쏘잖아요!"

"어차피 저 사람들도 맞출 생각으로 쏘는 건 아냐."

시몬이 골렘 보드를 조종하면서 옆으로 팔을 뻗었다. 그러곤 묘기처럼 나무에 꽂혀 있는 화살을 뽑아냈다.

"파수꾼들은 키젠 학생에게 상처를 입히면 안 되거든. 그리고 이거, 끝이 뭉툭하지?"

화살 앞에는 날카로운 화살촉 대신 끝이 뭉툭했고, 그 안에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약화 저주야. 맞으면 느려지겠지만, 죽지는 않으니 안심해."

"......왜 이렇게 잘 아는 검까?"

"내가 지금까지 월담을 몇 번이나 했다고 생각해?"

시몬은 1학년 초부터 기숙사에 빠져나와 피어의 유적이나 로체스트를 제집처럼 드나들었고, 2학년에 이른 시점에는 어느새 월담의 장인이 되어 있었다.

레테가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당신 같은 게 무슨 학생회장이야."

"조금 뜰 거야. 꽉 잡아."

덜컹 덜컹!

저 멀리 절벽이 보이자, 골렘 보드의 속도가 순간 배 이상으로 가속했다. 그리고.

터어어어엉!

갑자기 두 다리가 텅 비면서 몸이 붕 떠오르는 감각이 끼쳤다.

레테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

하늘을 날고 있었다.

밝은 밤하늘 아래로 무수히 펼쳐진 숲의 모습. 그리고 휘황찬란하게 떠 있는 달과, 멀리 보이는 바다.

간담이 서늘했지만, 레테는 어쩐지 그 풍경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로크섬에 어서 와, 레테."

환영 인사와 함께, 시몬이 손끝을 움직였다.

<본 아머>

스켈레톤의 뼈들로 골렘 보드에 임시 날개를 달았다. 뼈대 사이를 검은 칠흑이 채워 넣어 피막처럼 만들었다.

이내 본 아머의 인력으로 골렘 보드의 낙하 속도가 느려지며, 마치 행글라이더처럼 서서히 내려갔다.

"괜찮아?"

시몬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레테는 대답 대신 싱긋 웃었다.

이내 두 사람은 안전하게 금지된 숲 밖으로 착지해서 해안가를 달렸다. 길을 따라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이동했다.

하지만 평화로운 것도 잠시.

"거기 멈춰!"

"저것들 뭐야?"

해안가 쪽은 선도부들이 지키고 있었다. 두 사람을 발견한 그들이 저주를 쏘아 보내기 시작했다.

"꽉 잡아!"

시몬이 후드를 눌러쓴 채로 다리에 힘을 주었다.

골렘 보드가 좌측으로 틀어지거나, 반쯤 떠올라 이동하거나, 급브레이크를 밟거나,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회전하며 저주를 피했다.

"무, 무슨 움직임이냐 저거!"

"보통 놈이 아니야! 계속 쏴!"

저쪽에서도 칠흑원소계 같은 공격 마법은 못 쓰고, 위험하지 않은 저주를 날리는 게 고작이다.

단숨에 선도부들의 포위망을 빠져나온 시몬이 고개를 들었다.

'이런.'

그의 입가에 긴장한 웃음이 걸렸다.

열댓 명이 넘는 말콤의 도플갱어들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차단망을 치는 건 물론, 그들 모두 손바닥 위에 마법진을 그린 채 대기하고 있었다.

'도플갱어로 마법진까지 쓸 수 있게 됐구나, 말콤.'

마차 도로와 언덕 쪽까지 도플갱어들이 지키고 있었다. 레테도 시몬의 어깨 위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무조건 여기서 막아내겠다는 뜻인 것 같은데요!"

"걱정 마."

촤아아아아악!

시몬이 골렘 보드의 방향을 극단적으로 꺾더니 바닷가 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전면을 지키고 있던 선도부원들이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뭐야! 쟤 바다로 왜 가?"

"멈춰 미친놈아!"

선도부들이 헐레벌떡 뒤쫓아 왔다. 시몬은 씩 웃으며 아공간을 열고, 바다에 뭔가를 풀어놓았다.

촤악-!

다시 방향을 급전환해서 근처의 툭 튀어나온 모래언덕을 향해 가속해 올라갔다.

"레테! 내 동작을 따라 해!"

시몬이 쪼그려 앉듯 자세를 낮추며 골렘 보드의 옆면을 붙잡았다.

"아, 당신 땜에 별짓 다함다 진짜!"

레테는 투덜거리면서도 그 동작을 똑같이 따라 했다. 환하게 웃고 있는 게 딱 봐도 즐거워하는 눈치였다.

이내 시몬이 골렘 보드의 출력을 올려 언덕을 디딤대 삼아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부우우우웅!

골렘 보드가 체공 중일 때, 시몬은 보드의 아랫면을 바다 쪽으로 향하도록 했다.

그리고.

바닷가에 넘실거리고 있던 고래 뼈 언데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해류포>

쏴아아아아아아아!

위력을 최소화한 물의 대포가 쏘아져 나가 골렘 보드의 몸체를 쭈우우욱 밀어냈다. 시몬과 레테의 몸이 떠밀리듯 공중으로 치솟아 포위망을 빠져나갔다.

"뭐야!"

"날았어?"

선도부들은 닭 쫓던 개가 된 심정으로 무력하게 하늘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나이스, 데이모스!'

시몬의 수상전용 소환수인 데이모스는 그대로 물밑으로 숨은 채 대기하도록 했다.

"빨리 추격하자, 부장! 지금 뒤쫓으면 잡을 수 있어!"

선도부 부원이 보챘다.

'저 소환수는 분명.......'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선도부 부장 말콤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됐다. 그냥 내버려 둬."

그러고는 통신 수정구를 입가에 가져다 댔다.

"전원 추격 정지. 괜히 쫓겠다고 구역을 이탈하지 마. 우리 임무를 생각해."

* * *

단번에 포위망을 빠져나온 시몬과 레테는 계속해서 이동했다.

숲과 바다를 지나, 이제는 산으로 올라왔다.

촤아아악-!

경사진 비탈길을 지나, 마침내 골렘 보드가 멈춰섰다. 시몬이 보드에서 내리며 말했다.

"내가 로크섬에서 가장 좋아하는 야경이야. 준비됐어?"

"물론이죠. 기대해도 됨까?"

두 사람은 동시에 걸음을 옮겨 산언덕의 절벽 아래를 바라보았다.

"와아......!"

드넓은 로크섬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경기는 끝났지만 아직 야간 행사는 진행 중이었기에 곳곳에 노점들과 건물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레테는 그 황홀한 광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시몬도 괜히 뿌듯해지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괜찮지?"

"......뭐."

레테가 얼굴 위로 어딘가 부끄러운 빛을 띄워 올리며 슬쩍 웃었다.

"네크로맨서 놈들이 사는 곳치고는 보통은 되네요."

"꼭 그렇게 사족을 붙여야 해?"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본 채 쿡쿡 웃었다.

"사실 이런 곳일 줄은 몰랐슴다."

레테가 고개를 들었다.

"바다는 핏빛이고, 육지는 걸어 다니는 시체가 우글거리고, 나무와 풀은 까맣게 말라 비틀어지고."

'던전이냐.'

"저는 에프넬에서 그렇게 배웠슴다. 만악의 근원지, 악마의 소굴, 정화할 여지도 없는 철저한 파멸만이 운명인 곳."

레테가 황금빛 눈동자로 시몬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지만 당신이 보여준 걸 보니, 조금 생각이 달라졌슴다."

"어떻게 달라졌는데?"

레테가 입꼬리를 올렸다.

"이대로 에버 키레에게 부서지게 두기엔, 조금은 아까운 경관이라고 해두죠."

시몬도 마주 웃었다.

"그렇게 느꼈다면 다행이야."

별부림을 하기에는 시간이 조금 일렀다.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아 경관을 즐기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보니 곳곳에 건물 불이 꺼져갔다.

"그럼 이제 제 실력을 보여줄 차례네요."

레테가 자리에서 일어나 성녀의 힘을 봉인한 목걸이를 해제하는 모습이 보였다.

"시작하겠슴다."

그녀의 눈동자에 선명한 별의 문양이 떠올랐다. 그것으로 밤하늘을 응시했다.

그것만으로.

"아."

밤하늘의 별들이 눈부시게 빛나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