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33화
어린 성녀와, 마녀의 딸이.
경기장에서 마주쳤다.
"......."
"......."
두 사람은 서로를 응시한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폭풍전야와 같은 정적. 그녀들의 눈치를 보던 시몬이 잽싸게 앞으로 튀어나왔다.
"레, 레나! 이쪽은 나랑 같은 소환학과 동기인 로레인 아크볼드라고 해! 그리고 로레인? 이쪽은 레나. 내 고향 친구인데 암흑제에서 우연히 만나서 로크섬을 소개해 주고 있었어!"
시몬은 어쩐지 변명하는 듯한 투로 빠르게 말했다. 혹시 막 두 사람이 충돌하진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아, 안녕."
처음으로 말을 꺼낸 건 로레인이었다. 뭔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뻣뻣하게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레테도 웃고는 있었지만, 입꼬리가 들쑥날쑥하고 있었다.
"나, 날씨가 참 좋네."
"햇빛이 밝네요."
그리고 뭐라 뭐라 서먹하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지켜보는 사람이 다 숨이 막힐 정도로 어색했다.
늘 씩씩하던 레테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었고, 로레인이 저런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처음이었다.
두 사람은 악수라도 하려는 듯 손을 내밀었다가 이내 그냥 슬쩍 옆구리에 붙이거나 뒤로 숨겼다.
"......암흑제, 재밌게 구경하고 가."
"......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사람 다 서로의 존재 자체가 상당히 불편해 보인다. 그러면서도 소개해 준 시몬의 앞이라서 그런지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고는 있었다.
"......그럼 먼저 가볼게. 다음 경기에서 봐, 시몬."
"으, 응."
"......안녕히 가세요."
이내 로레인이 점점 멀어졌다.
그녀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레테가, 이내 로레인이 완전히 사라지자 '하아' 하고 가슴에 손을 얹은 채 한숨을 쉬었다.
"뭠까, 저 여자."
그러곤 다시 시니컬한 목소리로 돌아와 대꾸했다.
어느새 웃음기도 싹 사라져 있었다.
"왜 그래?"
"그냥 마주치기만 했어도 알겠는데요."
그녀의 눈이 게슴츠레하게 떠졌다.
"나랑 완전히 상극이고, 극도로 위험한 여자란 거."
시몬은 로레인을 조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신성연방 프리스트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시몬이 눈을 깜빡였다.
"성을 아크볼드라고 소개했잖아. 몰라?"
"모름다."
"네프티스 아크볼드 님의 딸이야."
그제야 레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하고 입을 멍하니 벌리고 있었다.
"어쩐지!"
레테의 두 주먹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더럽게 불길하다 했슴다! 아크볼드가 그 '죽음의 마녀'의 성이었지! 우리 쪽은 매번 죽음의 마녀라고만 불러서 헷갈렸어요!"
'그런 거였구나.'
암흑연합에서는 '아크볼드'라고 하면 모두 네프티스를 떠올리니 당연히 알 줄 알았다.
길게 숨을 들이마신 그녀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아깝네요. 이 자리에서 죽였어야 했는데."
"......레테."
"농담임다."
레테가 자그맣게 웃으며 로브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당신의 친구니까요."
그 말에 시몬도 비로소 긴장을 풀며 한숨을 쉬었다.
"내가 널 광신도로 체포할 일은 없었으면 해."
"그럼요."
레테가 사뿐하게 걸음을 옮겼다.
"기왕이면 저 여자는 내 인생에서 영원히 마주치지 않고, 엮일 일도 없었으면 좋겠슴다. 한판 붙으면 승패와는 상관없이 피차 결말이 험악할 것 같아요."
앞서 걸어가는 레테를 보며, 시몬은 네크로맨서 친구들을 소개해 주는 걸 최대한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세르네와 만나게 해선 안 돼!'
한 성격 하는 두 사람이 만나면 틀림없이 무슨 사달이 날 것 같았다. 세르네가 암흑제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뭐 해요? 꾸물거릴 시간 없슴다."
레테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시몬이 얼른 뒤따라가며 말했다.
"갈게!"
* * *
두 사람은 로크섬을 꼼꼼하게 돌아다녔다.
레테도 '에버 키레'는 없을 거라고 말은 했지만, 막상 일은 진지하게 하는 편이었다.
그러면서도 카미바레즈가 추천해 준 음식을 사서 먹거나 본인의 취향에 맞는 장소는 꼭 들렀다.
"암흑연합의 음식도 꽤 괜찮네요."
레테가 종이컵 안에 든 고기 국수를 포크로 돌돌 말아 올리며 말했다. 국물 없이 매콤한 간장 베이스 소스에 면과 고기, 채소를 넣어 볶은 길거리 음식이었다.
"이거 안 드심까?"
"난 괜찮아."
시몬이 그렇게 답하며 손에 든 샌드위치를 한입 물었다. 레테가 포크에 국수를 야무지게 말고 고기도 한 점 올린 다음, 시몬 쪽으로 다소곳이 내밀었다.
"한 입씩 교환하죠."
'!'
불쑥 입 가까이에 음식이 다가오자, 시몬이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자, 잠깐만......!"
그녀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미간을 좁혔다.
"내가 주는 건 먹기 싫다는 검까?"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럼 아- 하십쇼."
레테가 음식을 시몬의 입에 가까이 가져갔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시몬은 망설이듯 움찔거리다가 이내 어색하게 입을 벌렸다.
그런데.
덥석!
중간에 누군가가 휙 끼어들어 레테의 음식을 먹어치웠다.
냠냠-
맛있게 간장 국수를 맛본 여자는 레테의 손에 낀 휴지까지 빼앗아 들어서 천연덕스럽게 입가를 닦았다.
"잘 먹었어요."
그러곤 뒤를 돌아보며 시몬을 향해 생긋 웃어 보였다.
"어머~ 우연히 여기서 만나네요 시몬."
시몬의 얼굴이 절망감으로 물들었다. 웃고는 있었지만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세, 세르네."
하필이면 레테와 제일 만나게 하고 싶지 않은 인물이었다.
시몬은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여긴 어쩐 일이야?"
"오후 경기 뛰려고 왔죠~ 시몬도 참여한다길래 간단히 운동이나 할 겸해서요."
오늘 오후 경기는 스무 명이 넘는 학생들이 한꺼번에 참가하는 대규모 단체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세르네도 기분을 내서 참가하는 모양이었다.
시몬은 슬쩍 레테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레테는 불쾌해하기는커녕, 다소 신기하다는 듯한 반응으로 세르네를 훑어보고 있었다. 로레인을 봤을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다.
"이 사람도 당신의 친구임까."
"으, 응! 세르네 아인다르크라고 해. 상아탑의 후계자야."
"당신의 친구는 전부 특이한 인간들밖에 없네요."
레테가 한 걸음 다가왔다.
"게다가 아까 만난 여자와는 정반대의 흐름이 느껴짐다. 조금 의심이 되는데."
의심이 된다.
그 말에 시몬은 놀랐다. 레테는 세르네가 에버 키레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단 뜻이었다.
세르네도 웃는 얼굴로 레테를 돌아보았다.
"당신은?"
"시몬의 고향 친구. 레나라고 함다."
"아하."
세르네의 눈이 여우처럼 가늘게 휘었다.
"고향 친구라, 흔한 설정이네요."
"그리고."
레테가 목 뒤로 손을 가져가더니 하얀 깃털을 뽑아내 툭 하고 손가락을 튕겨서 바닥에 던졌다.
"나한테는 이딴 거 안 통함다."
콰직!
깃털을 짓밟으며, 레테가 살벌한 기세를 드러냈다. 세르네가 의외라는 듯 팔짱을 끼며 웃었다.
"그냥 원숭이는 아니었네?"
"날 조종하려고 한 거 보니까 더더욱 의심되는데요."
......골치 아파졌다.
광신도 에버 키레는 이능으로 사람을 조종할 수 있다. 그리고 세르네가 레테를 조종하려 했던 것으로, 레테가 세르네를 광신도로 오해하고 있다.
오해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긴 했다.
"잠깐만! 레나! 세르네는......!"
텁.
쪼그려 앉아 간장 국수를 조심스레 내려놓은 레테의 몸이 광풍과 함께 뻗어 나갔다. 그녀의 몸이 잔상을 그리며 회전하더니 하얀 다리가 공중으로 맹렬하게 솟구쳤다.
쩌어어어어엉!
굉음.
시몬의 입이 벌어졌다.
"흠~"
세르네가 혀를 달싹였다. 레테의 발끝은 세르네의 머리 바로 옆에 멈춰 있었고, 세르네는 비스듬하게 팔짱을 낀 채, 깃털 끝으로 레테의 발차기를 막아낸 모습이었다.
까가각-!
깃털과 발끝이 힘겨루기를 하듯 소리를 냈다. 레테가 적대감이 물씬 묻어나오는 투로 내뱉었다.
"사람의 자유의지를 빼앗으려고 했으면, 대가는 치러야 하지 않겠슴까."
"재밌네요."
두 사람의 몸이 동시에 다음 동작으로 넘어갔다. 레테는 다리를 내리며 주먹을 내질렀고, 세르네는 반대쪽 손으로 제 머리카락을 훑어 깃털 세 장을 손가락 끝에 쥐었다.
두 사람의 팔이 동시에 상대를 향해 뻗어 나가려는 그때.
터업!
텁!
우악스러운 손길에 소녀들의 얇은 손등이 붙잡혔다. 동시에 강제로 확 끌어당겨지며, 두 사람의 몸이 중간에 끼어든 시몬의 품 안에 폭하고 안기는 형국이 됐다.
"??"
손목이 붙잡힌 레테가 땡그래진 눈으로 시몬을 올려다보았다.
"어머나~ 박력."
세르네가 장난스럽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두 사람 다 그만해."
그녀들의 손목을 양손으로 붙잡아 교차한 채 끼어든 시몬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싸우면 어떻게 하......."
그리고 뒤늦게 발견했다. 싸움이 벌어졌는데 사람들이 이쪽은 신경도 쓰고 있지 않은 모습을.
어느 틈에 세르네가 근처의 바닥에 깃털들을 박아넣어 주위에 결계를 친 모습이었다.
"친구라서 감싸는 건 이해하지만 말임다."
레테가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자가 당신의 친구인 척하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대놓고 정신지배를 쓰려고 했는데 확인을 해봐야죠."
"잠깐만, 세르네는 원래 정신계 이능의 소유자야."
시몬이 그녀들의 손목을 풀어주며 말했다. 세르네가 손목을 매만지며 눈웃음을 흘렸고, 레테는 흠 하고 허리에 손을 얹었다.
"그럼 왜 날 조종하려고 했는데요?"
"당신 같은 사람들에게 흥미가 있거든요."
그렇게만 대꾸한 세르네가 시몬을 보았다.
"그리고 시몬이 '그 힘'을 쓸 줄 아는 건 알았지만, 설마 '그쪽 친구'가 생겼을 줄은 몰랐네요."
레테가 프리스트라는 걸 훤히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이야기.
레테는 바로 경계했고 시몬은 파국을 막기 위해 얼른 변명했다.
"세르네! 이건......!"
"이미 어떻게 흘러가는지, 대충은 알고 있어요."
세르네가 혓바닥으로 입술을 훑었다.
"실은 카쟌이 내게도 협력을 부탁해 왔었거든요."
"아."
그 말에 시몬이 멈칫했다.
여기서 카쟌의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다.
"물론 난 키젠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고. 내게 이득이 되지 않는 일을 할 생각이 없어서 거절했지만, 내 나름대로 힘을 써서 약간의 정보를 제공하는 쪽으로는 조력하고 있답니다. 그 사람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시몬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세르네는 카쟌과 협력하지는 않았지만 광신도가 키젠에 들어왔다는 정보는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당신에게 깃털을 쓴 이유는."
세르네가 비로소 레테를 보았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예요."
"네에, 네에, 말은 해보십쇼."
레테는 그녀가 맘에 안 든다는 표정이었지만, 에버 키레도 아니었고 모든 정보를 쥐고 있는 세르네를 적대할 생각까지는 없어 보였다.
"당신들 프리스트를 보면 누구에게나 물어보려고 하는 질문인데요."
세르네가 말했다.
"가휀이 누구인지 알고 있나요?"
그 말에 시몬의 눈이 커졌다.
<네 뿌리를 찾고 싶다면, 신성연방의 '가휀'이라는 사람을 찾아라.>
미래의 시몬이 세르네에게 준 힌트.
그녀는 별로 관심 없다고 했지만, 은근히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었다.
"가휀?"
레테가 고개를 갸웃했다.
"네크로맨서가 어떻게 그 이름을 알고 있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