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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634화 (634/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34화

숨길 것도 아니라는 듯, 레테의 입이 열렸다.

"에프넬에 재직 중인 교수님입니다. 가휀 안도리아."

레테는 가휀이 에프넬에서 신성역학을 가르치는 교수라고 설명했다. 평판이 괜찮은 인물로 알고 있는데, 레테 또한 그의 수업을 듣지 못해서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세르네는 담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 감사해요."

"어차피 네크로맨서인 당신은 평생 만날 일이 없는 사람이겠지만 말임다."

레테가 시큰둥하게 말하며 팔짱을 꼈다.

"나이도 있으셔서 전장에 나가지도 못할 검다."

은퇴한 지 한참 됐고 전장에서 활약한 적도 없는 프리스트였기에, 네크로맨서들 사이에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후후, 생각해 준 건가요? 고마워요."

"처음부터 물어보면 될 걸. 다짜고짜 정신제어부터 거는 네크로맨서들의 사고방식은 이해가 안 되지만 말임다."

분위기는 누그러졌지만, 아직 서로에 대해 날이 서 있는 두 소녀였다.

"그럼,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시몬이 움찔했다. 어느새 세르네가 다가와 시몬의 팔에 찰싹 들러붙은 것이다.

"같이 점심이나 먹을까요? 시몬."

향긋한 향수 냄새가 체취에 섞여 훅 다가오며, 시몬의 얼굴이 단번에 벌게졌다. 세르네는 생글생글 웃다가 레테를 보았다.

"......."

레테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세르네가 입꼬리를 올렸다.

"왜요?"

"뭐 말임까."

"그쪽 말처럼 내가 가휀이란 자를 만날 가능성은 없겠지만."

세르네의 눈꼬리가 여우처럼 둥글게 휘었다.

"그쪽도 비슷한 처지가 아닌가 싶어서요."

"......."

무표정하던 레테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찰나의 정적 이후, 레테가 '어휴' 하고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돕지 않을 거면 거기서 떨어지십쇼. 일하러 가야 함다."

"네에, 네."

세르네가 시몬의 팔에서 떨어져 나와 눈웃음을 흘렸다.

"그럼 암흑연합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시몬, 좀 이따 경기에서 봐요."

"나중에 봐."

세르네가 상앗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천천히 떠나갔다. 이내 자연스럽게 결계가 걷히고 주위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고 시원한 바람도 불어왔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쉰 시몬이 레테를 보며 말했다.

"갈까?"

레테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고는 앞으로 걸었다.

* * *

함께 순찰을 하던 두 사람은, 이제 시몬의 경기시간이 다 되어 '우드빌 경기장'으로 이동했다.

암흑제의 15개 경기장 중에서도 가장 넓은 규모를 자랑하는 우드빌에서의 이번 경기는, 학과마다 최대 20명 정원을 채울 수 있었다.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기에, 소환학과에서도 실력자들을 대거 투입했다. 학생회장 시몬을 위시하여 10조 멤버인 로레인, 에슈, 토토, 그리고 세르네와 피츠제럴드까지.

거기에 소환학과에서 조장급 실력자로 손꼽히는 기네비어, 첸드라, 최근에 시몬과 친해진 4조 조장 비센테도 참가했다.

사실상 Top10급이자 다른 종목을 1위로 이끌어야 하는 헥토르와 아세라즈, 그리고 화이트를 제외하면 가용할 수 있는 실력자들을 총출동시킨 것이다.

-이번 경기는 시가전입니다!

세트장도 화려했다. 곳곳에 간이 건물이 세워졌는데, 정말로 도시 한복판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사회자는 '랭거스틴'을 참고해서 이 세트가 지어졌다고 말했다.

-룰은 간단합니다! 도시에 숨겨진 보물들을 손에 넣어서 아군 진형까지 운반하면 포인트가 오릅니다! 뿐만 아니라 상대 학과생을 쓰러뜨리면 무려 5포인트! 많은 킬수를 올린 학생들은 본인의 몸을 직접 아군 진형에 통과시켜도 누적된 포인트가 오릅니다! 만약 그 전에 상대에게 격추당하면, 보유한 포인트는 쓰러트린 상대가 획득하겠죠? 아, 말씀드리는 순간 심판이 경기 시작을 선언했습니다!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7학과 20명. 무려 140명의 학생들이 뛰어오르며 화려한 흑마법을 사용했다.

시작부터 도시 곳곳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불꽃이 치솟았다.

와아아아아!

관중들의 열기도 뜨거웠다. 팔을 들어 올리며 목이 터져라 함성을 질러댔다.

"힘내라! 소환학과!"

"학생회장 선배니임!"

3학년들과 1학년들의 응원도 열정적이었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경기에 몰입하며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이방인이 한 명.

'......재밌게들 노네.'

레테는 홀로 관중석을 설렁설렁 돌아다니며 신성 사용자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흠.'

레테는 잠시 고개를 돌려 경기를 관람했다.

도시 세트장에서 140명이 부딪히는 경기인 만큼, 한 명 한 명의 활약을 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난히 빛나며 활약하는 한 사람.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 학생! 벌써 여섯 명을 잡았습니다! 대단합니다!

투콰악!

자욱한 폭연을 뚫고, 본 아머 계열 중에서도 방어력에 특화된 '헤비 아머'를 착용한 시몬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성채 같은 본 아머를 두른 그는, 어지간한 흑마법은 그냥 몸으로 받아내며 상대가 꺼낸 소환수들을 짓밟고 돌진하고 있었다.

"학생회장이 포인트 부자네!"

"보물도 많이 싣고 있어! 잡아!"

소환학과 학생들은 시몬에게 보물을 몰아주고 있었고, 시몬은 그 보물들과 자신의 포인트를 가지고 아군 진형으로 귀환하고 있었다.

전광판의 마나 스크린에는, 학생들의 포인트가 나타났다.

[1위, 시몬 폴렌티아 : 40Point]

시몬이 타깃이 되고 있었지만, 소환학과 측에서는 시몬이 당할 리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계속해서 시몬에게 보물을 몰아주는 모습이다.

저 포인트로 소환학과 진형에 들어가면 소환학과의 1위를 막기 상당히 까다로워진다. 시몬을 쫓는 학생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그러나.

쿠쿵!

쿵!

'헤비 아머'를 착용한 시몬은 피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덩치를 부풀리고 있었다.

떨어져 나간 부위는 다른 뼈들을 붙여서 수리했고, 심지어는 도시 세트의 벽돌이나 나무판자를 스켈레톤으로 집어서 몸에 마구 가져다 붙이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점점 커지는데?"

시몬은 거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제 언데드의 뼈들은 몸체를 이루는 게 아니라 건물의 잔해와 잔해를 잇는 역할만 했다. 점점 시몬의 몸이 괴이한 인조 골렘처럼 변해가고 있다.

이제는 헤비아머를 아득히 넘어선 모습.

<본 아머 - 자이언트 아머 타입>

부아아아앙!

건물의 자재로 이루어진 거인의 팔이 휘둘러졌고, 거기에 학생들 둘이 부딪혀 나가떨어졌다. 일격에 배리어 게이지가 0이 되며 시몬의 포인트가 올라갔다.

"시몬을 지켜!"

소환학과 학생들도 시몬이 만든 거인에 올라타 저주를 튕겨내고 흑마법을 막아냈다.

하지만 상황이 순탄하게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쉽게 가진 못하오."

마투학과 진형 쪽에서 뛰어드는 남자.

본인의 키만 한 장검을 들고 안대로 눈을 가린 소년. 마투학과 대표이자 전체 10위, 마검 사용자 '쥴 빈체레'였다.

그의 등장에 소환학과 측은 난리가 났다.

"쥬, 쥴이다!"

"어떻게든 막아!"

몇몇 소환학과 학생들이 뛰어들었지만, 쥴은 가볍게 그들을 마검으로 베어 넘기며 지붕을 밟고 공중으로 치솟았다.

<쥴 오리지널 - 일륜(一輪)>

쩌어어어어어억!

마검이 먹물 같은 궤적을 그렸고, 시몬이 움직이던 거인의 팔과 어깨 일부가 일격에 날아갔다.

쥴은 성에 차지 않는 듯 혀를 찼다.

'빗나갔다.'

팔을 날린 게 아니라, 가슴에 들어가 있는 시몬을 직접 노린 거였다.

그가 재차 마검을 휘두르려고 했지만, 뒤에서 쥴의 포인트를 노리고 저주를 쏴대는 학생들 때문에 물러서야 했다.

"큭!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오만!"

"닥치고 포인트나 내놔!"

다른 여섯 학과끼리의 사이도 좋지는 않았기에, 시몬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전장이 형성되고 있었다.

그사이 시몬의 앞을 가로막는 또 다른 거인이 보였다.

소환학과 학생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망했다."

칠흑역학과 대표이자 전체 2위, 거인혼혈 샤텔 마에르.

그가 손바닥을 맞부딪히며 흑마법을 발동했다.

<샤텔 오리지널 - 영역장악>

난데없이 도시 전체가 U자형으로 기울어지고, 시몬의 거인이 있는 곳만 움푹 들어갔다. 이내.

푸카아아아아악!

양쪽에서 산이 치솟아 시몬의 본 아머의 상체와 하체를 갈라 버렸다. 모두의 입이 쩍 벌어졌다.

"샤텔이 시몬을 잡았다!"

하지만.

경기장 전광판에 출력되는 시몬의 포인트는 그대로였다.

터엉!

어느새 시몬은 무너지는 거인의 잔해 속에서 탈출하고 있었다. 동시에 머리에 청록빛 '관'을 꾸욱 눌러쓰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 오리지널 - 친위대>

사방에서 청록빛이 번쩍였다.

망토를 휘날리며 건축 자재와 벽면을 밟고 이리저리 튀어 다니는 친위대들의 손안에는 보물이 들려 있었다.

와아아아아!

관중들의 환호성은 절정이 되었다. 이제 도시의 끝, 눈앞에 커다란 거울을 연상케 하는 원형막이 보였다. 친위대들이 손에 든 보물들을 그 안으로 던졌다.

쐐애액!

쐐액!

원형막을 통과할 때마다 소환학과의 점수가 쑥쑥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샤텔은 시몬을 제때 막지 못했다.

"......비켜라."

"그건 안 되겠는데요~ 거인."

샤텔의 앞을 세르네가 버티고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검 사용자 쥴 또한 갑자기 등장한 한 사람 때문에 막혀 있었다.

"명성대로군."

쥴이 마검을 쥐며 말했다. 도시가 쩍쩍 갈라져 있었지만, 그곳에 태연하게 서 있는 한 명.

"미안하지만 보내줄 수 없어."

단검을 손에 쥔 채 서 있는 소녀는 로레인이었다.

학과 대표급들이 막혀 있는 사이, 시몬은 방해받지 않고 질주할 수 있었다.

간혹 저주와 흑마법들이 집요하게 날아왔지만, 주위의 친위대들이 섬광처럼 쏘다니며 날아오는 공격을 쳐내고 갈랐다.

마지막으로 시몬이 친위대들의 호위를 받아 직접 안으로 들어갔다.

와아아아아아!

시몬의 킬수가 득점으로 환산되었다.

소환학과 학생들이 일제히 주먹을 움켜쥐며 환호성을 질러댔다.

가히 결정적인 한 방이었다.

* * *

경기는 끝났다.

마지막까지 저주학과와 칠흑역학과가 맹추격했지만, 결국 소환학과는 시몬이 얻어낸 점수를 기반으로 1위를 굳혀냈다.

-시몬! 시몬! 시몬!

경기장에서는 가장 활약한 시몬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레테도 손바닥을 본인의 로브자락에 슥 닦았다.

'재, 재밌긴 하네.'

네크로맨서들의 경기 따위에 흥미를 느낀 게 민망했지만 그래도 볼거리가 많았다.

키젠이 이 정도로 강하다니. 이들의 힘을 만만하게 봐선 안 됐다. 상성상 유리한 신성을 가졌다고 유세 부릴 때가 아니었다.

프리스트도 더 발전하지 않으면, 얼마 안 가 네크로맨서들에게 따라잡히리라.

'그리고.'

레테의 고개가 돌아갔다. 마침 시몬이 관중들에게 인사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있는 곳과 가까운 곳이었다.

'음.'

레테는 민망함에 슬쩍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그러곤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닫고는 어색하게 손을 들어 올렸다.

"시몬! 여기......!"

우와아아아아아아!

커다란 함성에 그녀의 목소리는 묻혔다. 관중석의 1학년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학생회장 선배님! 여기예요!"

레테는 다소 얼빠진 표정으로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학생회장이라더니.

후배들한테 인기 많구나.

그때 시몬이 이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열려는 그때.

"회자아아아앙!"

"잘했어!"

소환학과 학생들이 우르르르 뛰어들었다. 관중석에 있던 3학년 학생들까지 내려와 어깨동무를 하고 손바닥을 맞부딪혔다.

"오늘도 한 건 했네!"

"전략의 승리지!"

시몬이 학생들에게 파묻혀서 환대받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도 즐거운지 환하게 웃으며 친구들과 얼싸안거나, 하이파이브를 했다.

지켜보는 여학생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상기되어 있었고, 세르네는 또 시몬의 팔에 찰싹 붙었다. 로레인이 수건을 건네주는 모습이 보였다.

"......."

시몬! 시몬! 시몬!

시몬의 이름이 윙윙 울려 퍼졌다.

레테는 갑자기 이 모든 게 낯설게 느껴졌다.

사람도, 문화도, 언어도, 그리고 학생들에게 붙들려 헹가래를 받고 있는 시몬조차도.

다들 울고 웃고 즐기는 가운데, 자신만이 이 세계에서 뚝 떨어진 느낌.

"......."

레테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경기장에서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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