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35화
시몬은 기분 좋은 승리의 여운을 느끼며 다시 경기장으로 되돌아왔다.
그런데.
"......레테?"
레테가 사라졌다.
급히 관중석을 둘러봤지만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실례하겠습니다. 지나가겠습니다."
시몬은 빠른 걸음으로 인파를 헤치며 나아갔다. 무슨 일이 생기면 만나기로 한 곳이 있었다. 경기장의 마나스크린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좌석.
하지만 그곳에는.
"......."
곱게 접은 쪽지 한 장만이 남아 있었다. 시몬은 얼른 뛰어가 그 쪽지를 펼쳐보았다.
[승리 축하해요.]
내용은 간결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나 혼자 움직일게요. 찾지 말아요.]
"이 바보가......!"
시몬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경기장 밖으로 뛰어나갔다.
무수한 관중들의 떠들썩한 소리, 경기에서 이긴 학생들의 함성과, 이번 경기에 대해 토론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번잡하게 얽혀 들린다.
윙윙―
무슨 소리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어지러웠다.
그리고 이 중에 당연히 레테의 목소리는 없었다.
"하아, 하아."
경기장 밖으로 나온 시몬이 다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왜 사라진 걸까.
시몬의 뜀박질이 점점 더 빨라졌다. 무작정 앞으로 달리니 사람들이 많은 공원이 나왔다.
"아!"
마침 근방에서 탐문 수사 중이던 카쟌이 보였다.
"카쟌!"
"?"
수첩을 들고 있던 카쟌도 그를 발견했다.
한걸음에 달려온 시몬은 무릎을 짚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카쟌은 이야기하던 사람과의 대화를 마무리하고는 다가왔다.
"무슨 일이냐, 시몬. 왜 너 혼자 있지?"
"레테가......!"
거기까지 말한 시몬이 속으로 '아차'하고는 얼른 말을 정정했다.
"아니, 성녀님이 사라졌어요! 이 쪽지를......!"
부스럭.
카쟌은 쪽지를 훑어보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미 본인의 선배가 당했는데도 제멋대로군."
"혹시 어디 있는지 아세요?"
"적어도 그레리온 교수의 동굴엔 돌아오지 않은 걸로 안다."
그렇게 대답한 카쟌이 쪽지를 시몬에게 돌려주었다.
"그, 그럼! 아주 멀리서라도 감시하고 있는 분이 계시지 않아요? 대략적인 위치라도......!"
"시몬."
카쟌이 고개를 저으며 레테의 쪽지를 가리켰다.
"쪽지를 보니 그녀는 네가 오는 걸 원치 않는 것 같다만."
쿵!
시몬은 심장이 철렁하는 것을 느꼈다.
"본인이 찾지 말라고 했는데, 찾으려는 이유가 뭐지?"
"그, 그건......."
"그녀의 위치는 다른 요원들이 멀리서나마 파악하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따로 보고가 들어올 거다."
카쟌의 말에 따르면, 레테는 시몬이 도착하기 전 새벽부터 엄포를 놓았다고 한다.
나는 절대로 네크로맨서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한 번만 더 나를 감시하면, 그때는 협력을 포기하고 수확의 성녀를 데리고 신성연방에 돌아가겠다고.
물론 요원들 입장에선 그런 말을 듣고 감시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의사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감시인력을 다소 줄이기는 했다.
"나도 개인적으로 성녀를 찾아보겠다. 하지만."
카쟌이 저벅저벅 숲길로 걸어갔다.
"그녀가 혼자 순찰하길 원한다면, 그 뜻을 존중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던 시몬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 * *
시몬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레테를 찾아다녔다.
그녀가 있을 만한 곳, 그녀가 좋아할 만한 곳, 그리고 사람들이 많은 곳 위주로 돌아다녔지만 그녀를 찾아내진 못했다.
그나마.
-잿빛 머리카락에 까만 로브를 입은 여자? 아, 봤어. 봤어. 저어기 뒤편 건물로 가던데?
성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시몬은 탐문 결과를 가지고 제보자가 이야기해 준 건물로 가보았다.
알고 보니 칠흑역학과 기숙사였다.
'......걸리면 난리 나겠다.'
암흑제 기간 동안 학과 간의 사이는 극도로 험악하다. 함부로 기숙사에 들어가는 건 위험했다.
'잠깐만 쓰겠습니다! 곧 돌려놓을게요!'
시몬은 근처에 널어놓은 하수인들의 조끼를 덧입고, 하수인인 척 연기하며 기숙사에 들어갔다.
과연, 자본적으로 넉넉한 칠흑역학과답게 모든 시설이 화려하고 삐까번쩍했다.
감탄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로비에서 게시판을 점검하고 있던 기숙사 사감이 보였다.
시몬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환학과 사감과는 달리 다정다감한 성격이었는데, 시몬이 다른 학과 학생인 걸 알면서도 모른 척해주었다.
"아, 잿빛 머리카락의 소녀 말이죠? 오늘은 모르겠는데, 어제는 왔다 갔어요."
"어제요?"
"네. 재미있네요."
그녀가 빙그레 웃었다.
"그 아이는 어제 푸른 머리카락의 소년을 찾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늘은 바로 푸른 머리카락의 소년이 와서 그 여자아이를 찾고 있네요."
"......."
시몬은 사감의 이야기를 듣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고, 조금씩 레테의 단서를 밟아나갔다. 물론 그 종착지는 소환학과 기숙사였다.
아직 학생들이 돌아오지 않아 기숙사는 조용했다. 시몬은 제 방으로 올라왔다.
'그러고 보니, 레테는 어떻게 내 방을 정확히 찾아낸 거지?'
시몬은 어젯밤 그녀가 올라왔던 창문을 드르륵 열었다. 먼지가 쌓여 있었기에, 희미하게나마 그녀가 어제 발을 디뎠던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시몬은 창문을 완전히 열고 밖을 보았다.
"아."
건물의 거의 모든 층 창문에 레테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소환학과의 위치만 알아낸 다음, 방을 일일이 건너가며 다 찾아본 모양이었다.
시몬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이 바보가.'
어느새 날이 점점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시몬은 고개를 들었다.
'별부림.'
낮에는 그녀도 로크섬을 순찰하겠지만, 밤이 되면 별부림을 쓰기 위해 산을 오를 것이다. 별부림을 할 만한 장소를 찾는다면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결심을 마친 시몬이 훌쩍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 * *
해가 완연히 저물고 밤하늘이 떠올랐다.
하늘에는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
높은 산언덕.
풀밭에 앉아 다리를 끌어안은 채, 멍하니 로크섬의 야경을 바라보는 소녀가 있었다.
-시몬! 시몬! 시몬!
-역시 대단해!
-경기 내내 너만 보였다니까! 수고했어 회장!
이곳에서 시몬은 다른 사람 같았다.
그는 영웅이었고, 그의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시몬을 아끼는 사람들이었고, 동시에 시몬이 아끼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겉돌았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저 문화에, 저 세계에, 저 사람들과 엮일 수 없다.
자신은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그저 광신도가 들어왔다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잠깐 들렀을 뿐이었다.
-내가 가휀이란 자를 만날 가능성은 없겠지만, 그쪽도 비슷한 처지가 아닌가 싶어서요
그랬다.
이 세상은 양분되어 있다.
공존은 불가능하다.
지금의 휴전은,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없앨 수 있다는 확신이 없기에 일어나는 불안정한 평화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이상한 녀석이 불쑥 이쪽 영역에 얼굴을 들이미는 바람에, 괜히 착각하고 말았다.
그는 잘 적응했다. 이단 심문관들의 인정을 받았고, 심지어 이쪽에서 친구까지 만들었다.
그 녀석은 아마, 프리스트로 지내도 문제없을 것이다.
철없는 이기심에 불과하지만, 그가 이쪽에 살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잠깐 했었다.
하지만 착각해서는 안 됐다.
시몬은 이곳에서 행복하다.
시몬의 행복과 즐거움은 이곳에 있다.
시몬은 이곳의 사람들을 위해 검을 들 테고, 이곳을 위해 목숨도 바치려고 할 것이다.
그들은 나의 적이다.
그리고 시몬도 나의 적이다.
'하아.'
감정의 진창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갈 길을 잃고 흔들리던 손끝이, 허공을 움켜쥐었다.
'내일까지만 버티고 돌아가자. 더 이상 시몬의 얼굴은 보지 말고.'
나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라도.
이게 옳은 판단이다.
레테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바스락-
그때 발소리가 들렸다.
풀 밟는 소리. 레테는 뒤를 돌아보았다.
'!'
그녀의 동공이 커졌다.
잔불처럼 일렁이던 감정이 다시 치솟으며 심장이 뛰었다.
"......."
머리에는 나뭇잎이 지저분하게 꽂혀 있고, 옷은 온통 흙으로 거뭇거뭇해진 소년이 걸어오고 있었다. 너무나 고생한 모습이 뻔히 보였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게 다가왔다.
말도 없이 떠났으니 화를 낼 만도 한데.
시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지도, 짜증을 내지도 않았다.
그저 태연하게 걸어와, 레테의 옆자리에 털썩 앉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손바닥을 풀밭에 대고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
"......."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곳은 전에 별부림을 한 장소가 아니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시몬이 찾아오길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시몬은 찾아냈다. 아마도 이 넓은 로크섬에서, 높은 곳이라면 다 뒤졌을 것이다.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밤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왜 왔어요."
마침내 레테의 입이 떨어졌다. 시몬은 그녀 쪽을 돌아보며 힘없이 웃었다.
"걱정돼서."
진심이 묻어나오는 한마디에, 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차가워진 마음이 봄눈처럼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뭐라고 말하려는 듯 입을 웅얼거리던 그녀가 이내 고개를 살짝 내리깔며 조용히 말했다.
"찾지 말라고...... 했잖슴까."
"혼자 있으면 위험하잖아."
레테는 시선을 피하며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죄송...... 해요."
그녀가 솔직히 사과하는 모습은 처음이기에, 시몬도 다소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러다 곧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네가 무사하다면 됐어."
두 사람은 다시 침묵을 지켰다.
전보다는 조금 더 편안한 정적이었다.
"......."
그때 레테가 작게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눈을 가늘게 좁히며 시몬 쪽을 노려보았다.
"왜, 왜?"
"닥치고 누워봐요."
레테가 시몬의 가슴을 퍽! 소리가 나게 밀어버렸다. 시몬이 숨 삼키는 소리를 내며 쓰러졌고 레테가 꽁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이 뭐 이렇게 칠칠 맞아요? 피 나고 온통 까졌잖아요."
시몬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뒤늦게 자신의 몸에 난 상처를 보았다.
나뭇가지에 긁힌 상처, 무릎이 까인 상처, 산기슭에서 굴러떨어질 때 생긴 멍까지.
레테가 시몬의 곁에 앉아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슥 넘겼다. 그러곤 두 손을 붙여서 상처 부위에 올렸다.
"잠시 프리스트 쪽으로 돌아와 봐요."
시몬은 고개를 끄덕이며 칠흑을 갈무리했다. 이어서 그녀가 백마법을 시전했다.
<그레이트 힐링>
우우우웅!
하얀 빛무리와 함께 상처들이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예 아공간에서 구조 세트를 꺼내더니 시몬의 몸에 난 상처를 소독하고 붕대를 감아주었다.
순식간에 척척 치료를 마치는 모습이, 역시 프리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됐슴다."
레테가 흥 하는 소리를 내며 시몬의 등짝을 짝! 하고 후려갈겼다. 시몬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자세를 고쳐 앉았고, 레테도 그 옆에 바르게 앉았다.
"고, 고마워."
"네."
"......."
"......."
"시몬."
"응."
레테가 빛나는 금빛 눈동자로 시몬을 응시했다.
"우린 적이죠?"
시몬이 눈을 감았다.
"적을 치료해 주는 사람도 있어?"
"난 진지하게 묻는 거예요."
레테가 툴툴거리며 말했다.
"우린 서로 싸울 운명이에요. 피차 학생 신분인 지금이야 이런 일도 용서받을 수 있겠죠. 하지만 우리가 학교를 졸업하고 장차 어른이 되면. 내가 정식 성녀가 되고, 당신이 군단장인 게 밝혀지면."
"......."
"서로 죽이고 죽여야만 하겠죠. 혹은 서로의 친구와 소중한 사람들을 죽이는 사건에 휘말리게 될 거예요."
그녀가 물끄러미 시몬을 바라보았다.
"그게 운명이에요. 그러니 우리도 이제......."
"그건 운명도 뭣도 아니라 네 생각일 뿐이잖아."
시몬이 태연하게 말하며 웃었다.
"어른이 된 뒤에도 이렇게 만나고, 서로의 친구와 인사하고, 즐겁게 이야기하고, 다치면 치료해 주고. 그런 날이 올 거라고 난 믿어."
시몬이 진지한 얼굴로 레테를 보았다.
"지금은 미래를 걱정하는 것보단 현재에 더 충실하자. 그리고 그런 미래가 오지 않도록 더 노력하자."
"......."
"우린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 지금 우리가 전쟁을 막으려고 하는 것처럼 말야."
잠시 말이 없던 레테가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브를 탈탈 털고는 시몬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별부림을 시작하겠슴다. 뒤는 부탁함다."
시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맡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