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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636화 (636/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36화

레테의 별부림은 이번에도 무사히 끝났다.

그 결과.

로크섬에 남아 있는 기존의 9명 외에, 새로운 신성 반응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한번, 에버 키레의 존재는 확인할 수 없었다.

* * *

다음 날 아침.

암흑제 5일 차. 이번 축제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소환학과 학생들은 이른 새벽부터 활기차게 움직였다.

"딱 한 종목씩만 남았어!"

"화끈하게 이기고 1등 찍자!"

다들 파이팅을 외치며 아침 훈련을 위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소환학과 대표 '레오나드'는 그런 후배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냐?"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레오나드가 멈칫했다.

어느새 다가온 월이 인상을 굳히고 있었다.

"소타의 제안을 거절했잖냐. 한술 더 떠서 그 녀석의 계획을 무산시키기까지 하다니."

새로운 사령학과 대표 '소타'는 이번 암흑제 자체를 망칠 계획을 꾸미고 있었고, 레오나드에게도 협력을 종용했었다.

"......."

레오나드는 잠시 로비에서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후배들과 동기들을 바라보았다.

"......결국 시몬이 다시 2위로 끌어올려 줬어. 오늘 결과에 따라 1위를 할 수도 있겠지. 애들 얼굴을 봐. 다들 저렇게 기뻐하잖아."

그렇게 말한 그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저렇게 환한 얼굴을 얼마 만에 보는지 모르겠어. 이런데 과대인 내가 어떻게 축제를 망칠 수 있겠어? 이번 암흑제는 우리 소환학과를 위한 무대야."

"레오나드."

"나는 우리 동기들과 후배들, 시몬. 그리고."

레오나드가 윌을 바라보았다.

"에이젤을 믿어. 우리가 굳이 축제를 망치는 수고로운 짓을 하지 않아도 에이젤은 돌아올 거야."

윌이 쯧 하고 혀를 차며 팔짱을 꼈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되냐?"

"그럼."

"만약 그 시몬 놈이, 학과일을 다 걷어차고 학생회 일에만 집중했다면 네 선택도 달라졌을 거냐?"

기숙사 밖으로 걸어나가던 레오나드의 웃는 얼굴이 살짝 서늘하게 변했다.

"그랬다면 당연히 용서 못 하지."

* * *

암흑제 5일 차, 마지막 날.

오전은 경기가 하나 있고, 오후에는 우승학과와 'MVP'가 발표되는 폐막식이 치러진다.

그리고 밤에는 성대한 학과 파티가 예정되어 있다.

현재 순위는 다음과 같다.

저주학과 전체 1위.

소환학과 전체 2위.

칠흑역학과 · 맹독학과 공동 3위

마투학과 전체 5위.

사령학과 전체 6위.

혈류학과 전체 7위.

올해 암흑제의 순위경쟁은 극도로 타이트했다. 꼴찌로 다소 늘어진 학과들을 제외한다면 저주학과, 소환학과, 칠흑역학과, 맹독학과 간의 점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그 누구도 방심할 수 없었고, 오전에 남은 한 경기를 어느 쪽이 이기냐 따라 순위의 지각변동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었다.

시몬도 마지막 경기를 치르기 위해 경기장에 도착했다.

"뭐어, 마지막 경기. 힘내십쇼."

레테가 팔짱을 끼며 웃었다.

"저도 여기서 미래의 적이 얼마나 잘하는지. 전력 분석이나 하면서 지켜보겠슴다."

시몬이 옆머리를 긁적였다.

"지켜봐 주는 건 고마운데, 다른 경기장은 안 돌아봐도 괜찮아?"

"당신도 봤잖슴까. 어젯밤 별부림을 써봤지만 로크섬에 에버 키레는 없었어요."

레테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굳이 에버 키레가 나타난다고 가정한다면,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오후의 폐막식을 노리겠죠."

"확실히 그렇겠네."

"그러니 아침 경기 정도는 부담 없이 뛰고 오십쇼."

"응, 고마......."

-출전 학생들. 경기장으로 집합해 주시길 바랍니다.

방송음이 울려 퍼졌다.

"갈게!"

"네, 네. 잘하고 오세요."

경기장으로 뛰어 내려가는 시몬을 배웅한 레테는 빈 관중석 자리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지금은 미래를 걱정하는 것보단 현재에 더 충실하자. 그리고 그런 미래가 오지 않도록 더 노력하자.

레테가 입술을 삐쭉이며 턱을 괴었다.

"뭐, 그래야겠죠."

시몬이 나오기 전까지 심심했던 그녀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고대 콜로세움을 연상케 하는 석조 건축물이었다. 경기장이라기보다는 유적 같은 느낌. 관중석의 벽 부분은 창문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고, 이끼가 껴 있거나 풀과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고전 경기장? 옛날 건축양식이라 그런지 고풍스럽네.'

"저기요, 실례합니다."

차분한 음성에 레테가 고개를 돌렸다. 키젠 교복을 입은 갈색 단발머리의 소녀가 빤히 레테를 응시하고 있었다.

"거기 제 자린데요."

옷깃에 배지가 없는 학생들은 키젠의 1학년들이라고 했다. 그녀의 뒤에는 친구들로 보이는 학생들도 있었다.

레테가 주춤거리며 일어났다.

"여기 자리도 있었나요?"

"몇몇 구역만요. 이쪽은 지정석이라서. 티겟 부스에서 유료로 구매해야 해요."

어쩐지 자리가 너무 좋다 싶더니.

"죄송해요."

"아니에요. 모를 수도 있죠."

레테가 물러섰고, 갈색머리의 소녀가 걸어와 앉았다. 그 주위 자리는 그녀의 친구들이 차지했다. 다들 왁자지껄하게 웃으며 곧 있을 경기에 대해 떠들었다.

"흠흠."

손거울을 꺼내 얼굴을 비춰보고 있던 갈색 머리의 소녀가, 인상을 조금 찌푸리며 레테를 보았다.

"아직 용무 남았어요?"

레테는 가물가물한 기억을 붙들고 있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얼굴인데. 직접 보지는 않은 것 같지만 얼굴이 익숙했다.

파직!

그런데 갑자기 목에 차고 있던, 성녀의 힘을 봉인하는 목걸이에 이상반응이 왔다. 찌릿찌릿한 통증과 함께 권능이 흘러나오려 하고 있었다.

'응? 이거 왜 이래?'

지금까지 이런 경우는 없었기에 당황했다. 레테는 목걸이를 붙들며 힘을 가라앉혔다.

'어째서 성녀의 힘이 네크로맨서에게 반응하는 거지?'

갈색머리 소녀가 힘들어하는 레테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아요? 왜 그래요?"

"아, 아무것도 아녜요."

도와주려는 건 고맙지만 가까이 오니 오히려 더 힘들었다. 레테는 얼른 그녀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사샤!"

그때 단발머리 소녀의 친구가 외쳤다.

"뭐 해? 저기 학생회장 선배님 나오셨어!"

"진짜?"

그 말에 사샤가 고개를 홱! 돌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뛰어갔다.

와아아아아아-!

대기석 아래로 학생회장 코트를 걸친 시몬이 지나가고 있었다.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함성이 쏟아지고 있었다. 사샤와 친구들도 지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학생회장 선배니임!"

"여기예요!"

사샤가 멀어지자 레테는 아티팩트가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사샤와 멀찍이 떨어진 뒷자리에 앉아 시몬이 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앞 좌석의 사샤 일행은 우윳빛깔이 어쩌고 하는 현수막까지 휘날리며 소리치고 있었다.

"학생회장 선배님! 멋있어요!"

"으흑흑! 역시 수업 빼먹고 온 보람이 있어!"

"여기 좀 봐주세요!"

앞에서 사샤 일행이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시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뒷자리에 앉아 있는 레테의 입매가 꿈틀꿈틀했다.

'꼴에 인기 더럽게 많네. 저 바보가 뭐가 좋다고.'

그때 경기장에서 행진하던 시몬이 레테가 있는 곳으로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뭐야, 나한테 흔드는 거 맞지?'

레테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 또한 쭈뼛거리며 손을 들어 올리려는데.

"끼야아아아아아악!"

"학생회장님이! 선배님이! 나한테 손 흔들어주셨어!"

"아니야! 나야!"

"학생회장 선배니이이임!"

사샤와 친구들이 감격한 얼굴로 방방 뛰어다녔다. 순식간에 시야가 가려지며 레테의 인상이 구겨졌다.

'아오 씨.'

뒤통수를 걷어 차주고 싶은 마음을 삼키며 레테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몬의 모습이 찔끔 보였다. 레테가 비로소 손을 흔들어주었고, 그 모습을 봤는지 손을 내렸다.

"으앙! 나한테 손 흔들어주셨어!"

"나한테 하신 거라니까!"

아직도 옥신각신하는 사샤와 친구들을 보며, 레테가 불만스럽게 좌석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쬐끄만 것들이 더럽게 시끄럽네.'

평소 성격 같았으면 확 뒤집어엎고 참교육했을 텐데 타지라서 참는다.

레테는 눈을 감으며 화를 가라앉혔다.

* * *

-여기는 발케제 경기장! 5일 차 2학년 마지막 경기를 중계해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해설지원 없이 저, 사회자 콘라드가 홀로 진행하는데요! 교수님들은 모두 오후의 폐막식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오후 폐막식도 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사회자는 흥분한 얼굴로 확성 수정구를 움켜쥐었다.

-암흑제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학과는 단 하나뿐! 이번 오전 경기에 모든 게 달렸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소식이 하나 더! 우리 경기장에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 학생이 출전했습니다! 과연 소환학과는 저주학과를 제치고 1위를 달성할 수 있을까요?

시몬은 경기장 내부의 발판 위를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나야 1위는 하고 싶지!'

잠깐 멈춘 사이, 다른 학생들이 발사한 저주들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시몬이 뒤로 훌쩍 덤블링해서 다른 발판을 밟았다.

'역시.'

견제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심했다. 이곳의 경기장에 있는 학생들 모두가 시몬을 의식하고 있었다.

이번 경기 종목의 이름은 '징검다리'.

이곳 발케제 경기장은 물이 차 있는 수영장 겸용 경기장이었다. 경기장 중앙의 커다란 사람 동상에서 물이 콸콸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학생들은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디딤대를 밟고 이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경기장의 하늘에는 '표창'들이 원격으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이 표창을 붙잡아서 경기장 중앙의 각 학과별 기둥에 꽂으면 점수가 들어간다.

첨벙! 첨벙!

시몬은 공격을 피해 빠르게 디딤대를 밟고 달리다가 훌쩍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앞에 표창이 날아오고 있었다.

'맨손으로는 못 잡아!'

함부로 손을 대면 손이 찢어질지도 몰랐다. 시몬이 주먹에 칠흑을 모아 날아오는 표창을 강타했다.

<홍펭 오리지널 - 취타>

쩌엉!

튕겨 나간 표창의 회전력과 속도가 극도로 떨어졌고, 시몬이 그것을 붙잡아 들었다.

"학생회장이 하나 잡았다!"

"막아!"

바로 견제가 시작됐다. 칠흑화염계와 저주가 쏟아지고, 정면에는 마투학과 한 명이 디딤대를 밟고 달려왔다.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시몬은 디딤대가 없는 곳으로 뛰어오르며, 동시에 아공간을 열었다.

"나와! 데이모스!"

시몬의 히든카드이자, 수상전 전용 소환수.

황천고래 새끼의 뼈로 만든 데이모스가 시몬의 몸을 태우고 물살을 가르며 내달렸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투사체는 자유자재로 피해냈다.

쏴아아아아아아-!

시몬이 휘날리는 머리를 붙들고 앞을 보았다.

'보인다!'

일곱 개의 기둥.

그중 하나를 향해 시몬이 표창을 던졌다.

"어림없지!"

날아가는 시몬의 표창을 붙잡으려 마투 학과 학생이 뛰어들었고, 시몬도 손끝을 움직였다.

표창에 미리 붙여둔 본 아머가 작동하며 방향을 꺾었다. 그러다 내뻗은 학생의 팔이 간발의 차이로 표창 끝에 부딪히는 바람에, 시몬의 표창은 장대 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런, 아깝......!'

아아아아아아악!

'!'

순간 시몬은 몸에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비명소리?'

재빨리 휘휘 고개를 돌려봤지만 전투 중인 학생들의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들리는 건 물소리와 표창이 날아다니는 소리.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뿐이었다.

지직!

'뭔가.'

시몬은 다소 멍한 눈으로 경기장을 둘러보았다.

지지직!

'예전에 여기 와본 적이...... 있었던가?'

두통이 치밀었다. 머리가 더 생각하길 싫은 것처럼 지끈거리며 생각을 체념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시몬은 이마를 짚으며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수상 경기장.'

거대한 동상에서 물이 쏟아지는 고풍스러운 경기장.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에 와본 적이 있었던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지직!

직!

-아니, 너무 막장 아냐? 경기장 보존 상태 완전 개판이야! 특히 물밑에는 손봐야 할 곳이 너무 많아.

지직!

노이즈 너머로 시몬의 머릿속에 여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구 목소리지?

-사람의 뼈야. 굶어 죽었거나 익사 당한 게 아니라, 살해당했어.

이번엔 시몬 자신의 목소리였다.

시몬은 들려오는 목소리에 더더욱 집중했다.

-경기장은 원래 장소로 돌려보내겠습니다. 우리는 학생들의 안전을 한번 훼손할 뻔한 경기장에서 암흑제를 벌일 생각은 없습니다.

또 다른 여자의 목소리.

경기장 전체가 흐릿하게 보였다가 원래대로 돌아오길 반복했다.

-이번 발케제 경기장을 검증하고 계약한 키젠 내부의 인사들을 모조리 조사하세요. 그들이 그 소문을 몰랐을 리가 없죠. 분명히 커넥션이 있을 겁니다

'뭐지? 기억? 내게 이런 기억이 있었던가?'

아무 이유 없이 떠오른 목소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케제 경기장.

이 경기장의 이름이다.

그런데 계약이 취소됐다고?

'.......'

시몬은 천천히 손가락을 접었다.

'분명.'

암흑제 내에 있는 경기장은 총 15개다.

시몬은 천천히 손가락을 접어가며 경기장의 이름을 떠올렸다. 학생회장 업무를 지겹도록 해왔으니 15개 경기장의 이름은 완벽히 외우고 있었다.

우드빌 경기장, 보일스톤 경기장, 링캐슬 경기장, 세루트 경기장.......

그러나 아무리 15개 경기장 모두를 생각해도.

'발케제 경기장이라는 곳은 없는데?'

제16번째 경기장.

시몬은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와 있었다.

바로 그 점을 자각하는 순간.

파작!

파자작!

주위의 풍경이 갈라져 가며.

그 틈으로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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