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637화 (637/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37화

왜곡으로 가려진 장막이 들춰지고.

시몬은 추악한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표창을 꽂으면 점수를 얻을 수 있는 학과별 기둥들.

사실 그 기둥에는 인간들이 매달려 있었다. 마치 3차원의 인간들이 2차원의 종이처럼 왜곡되고 일그러진 채, 기둥에 휘감겨 고통에 울부짖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악!

관람객, 하수인, 네크로맨서 요원, 그리고 이제는 원형조차 알아볼 수 없는 의복을 입은 일곱 명의 사람들이.

날아온 표창에 피투성이가 된 채 부르짖고 있었다.

"......!"

시몬이 손에 든 표창을 바라보았다.

시뻘건 십자가 모양이었다.

'이게 뭐야.'

시야가 붉게 변했다.

표창을 던지려는 학생들의 꺄르르 웃음소리가 귀곡성처럼 울려 퍼진다. 표창이 기둥 끝에 박힐 때, 관중들이 커다란 탄성을 터뜨린다.

-제대로 맞춰야지!"

-맞춰!

꺄르르르르르르!

꺄르르르륵!

귀가 윙윙거리며 극도의 두통이 치민다. 시몬이 비틀거리며 이마를 움켜쥐었다.

꺄르르르!

하하하하하하!

아아아아악!

맞춰! 맞춰!

그만! 끄아아아아악!

귓전에 웃음소리와 비명이 교차한다.

-한 발 더!

촤르르르륵!

그때 붉은 표창 하나가 다시 한번 기둥을 맞추려 날아왔다.

시몬의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었다.

이성을 거치지 않고, 몸부터 나갔다. 공중으로 뛰어올라 날아오는 붉은 표정을 맨손으로 붙잡았다.

손바닥이 찢어지고, 선혈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입술을 깨물며 표창을 거세게 움켜쥐었다. 표창을 던진 저주학과 학생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야, 뭐 그렇게까지.

시몬의 눈깔이 뒤집혔다.

"그마아아아안!"

쩌렁 쩌렁!

세상이 다시 본래대로 돌아왔다. 시몬의 거대한 외침에, 순간 숨 쉴 틈 없이 움직이던 경기장의 모두가 멈칫했다.

"쟤 뭐야?"

"미쳤나?"

학생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움직였다. 한 남학생이 칠흑을 밟고 뛰어올라 손에 쥔 표창을 직접 기둥에 박으려고 했다.

"아싸! 1점 더......!"

터업!

어느새.

벼락처럼 뛰어든 시몬의 몸이 검푸른 안광을 뿌리며 남학생의 머리를 쥐고 있었다. 남학생이 눈동자를 올리자, 시꺼먼 괴물이 숨을 흘리는 모습이 보였다.

퍼어어어엉!

그대로 날려서 그를 물에 빠트린 시몬이 기둥을 가로막은 뒤 두 팔을 세워 들었다.

"그만! 이제 그만해!"

하지만 학생들은 멈추지 않았다.

"뭐지? 신종 전략인가?"

"무시하고 쳐!"

뿌득!

시몬이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그만하라고!]

악에 받친 외침이 경기장 전역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의 사념에 반응한 물가의 소환수, 데이모스가 입을 쩍 벌리며 넘실거리는 물의 포탄을 전광판을 향해 쏘아 보냈다.

<해류포>

꽈아아아아아앙-!

거대한 전광판이 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그제야 입을 딱 벌리며 시몬을 보았다.

"겨, 경기장 훼손?"

"진짜 미친 건가?"

웅성 웅성 웅성!

그제야 지켜보던 심판들과 안전요원들이 난입했다.

"학생! 이게 무슨 짓입니까?"

시몬이 그들을 보며 외쳤다.

"지금 당장 경기를 중단하고 사람들을 내보내야 해요!"

"뭐라고?"

"이 경기장에 광신도가 있습니다!"

안전요원들의 표정이 해괴하게 일그러졌다.

"......광신도?"

"하아, 여긴 로크섬이에요. 학생.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결국 머리끝까지 뻗친 화를 참지 못한 시몬이 뒤를 홱 돌아보며 소리쳤다.

"에버 키레!"

쩌렁! 쩌렁!

그의 외침에 수영장 물이 넘실거리며 파문을 일으켰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지금 당장 나와!"

"학생!"

슬슬 안전요원들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학생들은 '쟤 미쳤나?'하는 반응으로 시몬을 노려보고 있었고, 관중들은 갑자기 중단된 경기에 불만을 표했다.

처억! 척!

안전요원들의 손끝에 마법진이 펼쳐졌다.

"계속 그렇게 나오면, 학생회장이라도 험하게 끌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리로 나오세요."

거친 숨을 내뱉던 시몬이 앞머리를 흔들며 그들을 응시했다.

스으-

현역 시절에는 숱한 전투를 치러온 그들이었지만, 고작 18살 먹은 소년의 기백에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고 말했다.

그들은 오히려 더더욱 당황하며, 난동을 피우는 학생을 제압하는 걸 넘어선, 진심으로 강력한 저주효과를 마법진에 더했다.

"당장 두 손 번쩍 들어!"

"손들라고!"

시몬이 이를 갈았다.

상황이 꼬이고 있다.

'너무 섣불렀어.'

이제야 뜨거워진 머리가 식으며 조금 정신이 돌아왔다. 기둥이 된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몸이 먼저 반응했지만, 이런 이야기를 갑작스럽게 사람들이 믿어줄 리가 없었다.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이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내 말을 믿게 해서 대피시킬 수 있지?'

시몬의 두뇌가 팽팽 돌아갔다. 수십 가지의 시뮬레이션들이 동시에 진행되며 최적의 상황을 그렸지만 하나같이 확실한 방법이 아니었다.

'이대로는......!'

"제압하겠습니다."

안전요원들이 저주를 발사하려는 바로 그때.

콰아아아아아앙-!

텅 빈 관중석 쪽에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시몬과 안전요원들, 학생들과 관중석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새하얀 백색의 폭발이 연달아 터져 나가고 있었다.

"광신도다!"

한 소녀의 외침이 들렸다.

시몬의 눈이 부릅떠졌다.

'레테!'

"정말로 광신도가 나타났어요! 도망치세요!"

그녀의 실감 나는 외침과 더불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새하얀 폭발이 한 번 더 터져 나왔다.

투욱.

경기장의 한 학생이 멍한 표정으로 손에 쥔 표창을 떨어뜨렸다.

이건 누가 봐도.

신성이었다.

허, 허억! 허어억!

꺄아아아아아아악!

진짜 광신도다!

살려줘!

밀지 말라니까!

경기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관중들이 비명을 지르며 경기장 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시몬을 겨누고 있던 안전요원들도 광신도 수색과 관중 통제를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하아아.'

시몬은 다리가 후들거리는 걸 느끼며 발판 위에 쪼그려 앉았다. 앞을 보니 레테가 까치발을 들고 시몬 쪽으로 수신호를 보내고는 이쪽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진짜 최고의 판단이었어, 레테.'

본인이 신성마법을 써놓고 광신도가 나타났다고 소리칠 줄이야. 역시 영리했고, 자신을 믿어준 게 고마웠다.

시몬은 몸을 일으켜 전방을 응시했다.

'이 경기장 어딘가 에버 키레가 있을.......'

[도망치게 두지 않는다.]

그때.

[여신의 뜻을 모독하는 불신자들.]

경기장 전체에서 한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쏴아아아아-!

경기장의 물이 빠르게 빠지기 시작했다. 시몬의 몸이 순식간에 내려와 경기장의 바닥에 닿았다. 하늘은 시뻘건 핏빛으로 물들었으며, 구름은 괴기한 형태로 찌그러졌다.

쿵!

쿠웅!

모든 경기장의 문이 닫혔다. 도망치던 관중들이 닫힌 문을 두들기며 공포에 질린 고함을 질러댔지만, 소용없었다.

시몬은 굳은 얼굴로 정면을 응시했다.

꾸륵-

경기장 중앙.

신선한 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던 발케제 동상의 눈과 입에서.

피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꾸르르르르륵-

동상을 시뻘겋게 적시며 포도주 같은 붉은 물들이 줄줄 흘러내려 경기장 바닥에 고였다. 시몬은 칠흑을 끌어올리며 대기했다.

[방해꾼이 있었구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떻게 알았지? 흥미롭구나.]

뚜욱.

뚝.

바닥에 흘러내린 벌건 핏물이 웅덩이를 이루었다.

웅덩이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찰랑찰랑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웅덩이 안에서.

꾸르르르르륵-

뭔가가 치솟고 있었다.

"......!"

그것은 붉은 칠을 한 십자가였다.

신성연방에서 이단 사형수에게 쓰는 죽음의 도구.

그리고 그 십자가에 한 여자가 매달려 있었다.

'설마.'

여자는 제 의지로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으며, 끔찍한 가시덤불로 몸을 휘감고 있었다.

[아아! 아!]

나체 상태인 그녀가 고통에 버둥거릴 때마다, 가시는 살갗을 거칠게 파고들어 갔다. 뼈와 장기를 드러낼 만큼 깊은 상처를 냈고, 피가 줄줄 쏟아졌다.

그러나 어느새 상처는 옅어져 봉합되었지만, 다시 움직여서 가시에 베여 상처를 입었다.

[여신이시여!]

상처가 계속해서 늘어났지만, 그녀는 자해를 멈추지 않았다.

흰자를 보인 채 뒤집어진 눈동자, 하늘로 비쩍 솟은 뻣뻣한 혀, 그녀의 몸에서 쏟아지는 피의 바다.

[여신이시여, 부디 죄인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심취한 듯 눈이 풀린 그녀가 거친 입김을 뿜으며 소리쳤다.

[죄인은 벌을! 죄인은 벌을 받아야 합니다! 더! 더! 많은 아픔을!]

암흑연합의 주민들에게 있어서.

우욱-

그것은 무엇보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아, 아아아아!"

극도의 괴기함.

악몽과도 같은 광경.

구역질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시몬마저도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정신을 직접 공격하는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시몬!"

어느새 레테가 뛰어들어 와 시몬의 옆에 섰다.

"괜찮으심까!"

"응. 그런데 저건."

"네."

레테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에버 키레가 맞는 것 같슴다."

수척하고 볼이 파인 얼굴, 갈비뼈가 훤히 드러나는 몸, 하지만 사진에서 본 검은 머리와 소름 끼치는 눈동자는 그녀가 확실했다.

레테는 십자가에 버둥거리는 그녀를 혐오스럽게 쳐다보았다.

"저게 무슨! 신성모독도 정도가 있슴다!"

시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정신상태는 아무리 봐도 정상은 아니었다.

[이미 너무 늦었단다.]

십자가에 매달린 채 고통에 허우적거리던 에버 키레의 감정 없이 텅 빈 동공이, 시몬과 레테에게로 향했다. 입꼬리가 신체의 범위를 넘어설 만큼 괴기하게 찢어졌다.

[준비는 모두 끝났어.]

"도망치십시오! 학생!"

그때 안전요원 두 명이 경기장 안으로 뛰어들어 오더니 저주를 쏘아 보냈다. 그러나 그들이 발사한 저주는 에버 키레의 몸에 닿기도 전에 무언가에 부딪혀 막히고 말았다.

"......!"

"구속당했는데 어떻게? 뭘로 막은 거지?"

에버 키레가 음산하게 웃었다. 미역 같은 긴 머리가 좌우로 흔들리며 그 공포성을 더했다.

[이만 잘 시간이란다.]

키이이이이이이이이잉!

갑자기 경기장 전체에 무수한 수식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시몬은 바로 감지했다. 이 경기장 전체를 활용한 광범위 백마법 수식이었다.

[안녕.]

틱-

뭔가가 끊기는 소리와 함께, 신성 마법이 발동되었다.

보안요원들의 동공에 빛이 사라지더니, 그대로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도우러 달려오던 키젠 학생들도 흰자를 뒤집은 채, 달려오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풀썩! 풀썩!

관중석에서 도망치는 사람들도.

쿵!

털썩.

경기장 문 앞을 두들기며 아우성치던 사람들도.

모두가 정신을 잃었다.

[아주 좋아.]

에버 키레가 끔찍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몸을 들썩였다. 그때마다 가시에 찔렸지만 그녀는 오히려 만족스러운 듯 괴기하게 웃어댔다.

"......너."

신의 형벌이라며 스스로 고통을 즐기고 있던 에버 키레의 고개가 내려갔다.

쓰러진 줄 알았던 시몬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너만큼은 용서 안 해."

[오호.]

붉은 십자가에 매달린 광신도가 삐거덕거리며 고개를 괴기하게 기울였다.

[너는 나를 두 번이나 놀라게 하는구나. 어떻게 움직일 수 있지?]

"대기 중의 마나를 신성 쇼크로 전환해 네크로맨서를 쓰러트리는 수식 같던데 말임다."

펄럭!

레테가 로브를 벗어던졌다.

어느새 그녀의 전신은 새하얀 에프넬의 교복으로 덮여 있었다.

"이 녀석에게 그딴 게 통할 리가 없지 않슴까. 광신도."

[별의 성녀.]

십자가에 매달린 광신도가 낄낄 웃었다.

[여신과 가장 가까운 딸이, 어째서 여신의 뜻을 거부하지? 네크로맨서는 이 세상에서 전부 죽여 없애야 해. 그들을 섬기는 일반인들도 마찬가지. 그것이 위대한 여신의 뜻이야.]

레테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멋대로 신의 뜻을 재단하지 마."

[후후후.]

샤르르르륵!

그때 에버 키레를 십자가에 고정했던 가시덤불이 풀렸다. 그녀가 건물 8층 높이에서 낙하하여 풀썩 바닥에 엎어졌다.

어딘가 부러지고, 뭉개진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녀는 괴이한 형태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에프넬이야말로 여신의 뜻을 곡해하고 있어.]

그녀가 두 팔을 벌렸다.

[나야말로 진정한 여신의 선택을 받은 존재!]

그녀의 몸이 새하얀 빛으로 둘러싸여 의복의 형태로 변했다. 지켜보던 레테의 눈이 부릅떠졌다.

"어떻게 당신이 그걸......!"

한낱 광신도가.

반신인 성녀만이 허락되는 성의(聖衣)를 입고 있었다.

[인사할래?]

그녀가 본인의 복부를 두 손으로 꽉 붙잡더니 그대로 벌렸다. 배 안에서 시꺼먼 공간이 드러났고, 그 안에서 긴 손이 흘러나왔다.

"저건......!"

비로소 정신을 차린 시몬이 눈을 부릅떴다.

에버 키레가 긴 손을 붙잡고 자신의 뱃속에서 살짝 끌어내자, 빛바랜 금빛 머리카락이 흘러나오고 실밥으로 꿰어진 눈동자와 화상으로 뒤덮인 안면이 보였다.

"수확의 성녀님!"

시몬과 레테가 커다란 충격에 휩싸여 있는 가운데, 에버 키레는 실실 웃으며 그녀의 축 늘어진 손을 잡고 두 사람에게 흔드는 시늉을 했다.

[안녕~ 안녕~ 다들 오랜만이야. 나는 수확의 성녀라고.......]

쩌어어어어어어엉!

오른쪽에서는 시몬의 '본 스피어'가, 왼쪽에서는 레테의 '라 에스크림'이 신성의 방호벽에 틀어박혔다. 두 사람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인사도 못 하게 한다니까.]

에버 키레가 그렇게 말하고는 두 팔을 벌렸다.

[그럼!]

촤아아아아아아!

촤아아아아아!

두 사람이 움찔하며 발밑을 바라보았다. 경기장 바닥에 밀이 올라오고 있었다. 바닥뿐만 아니라 벽과 관중석까지 온통 황금빛 밀이 자라나고 있었다.

[위대한 여신의 유일한 종이자, 유일한 사도이자, 수확의 성녀 나 에버 키레!]

그녀의 입꼬리가 괴물처럼 벌어졌다.

[오로지 그대를 위한 성전을 준비하겠나이다!]

모멸과 왜곡의 잔치가 시작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