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40화
"내가 저 여신이 가짜라는 증명이야, 레테."
바보 같다고, 레테는 생각했다.
어둠의 힘을 다루는 네크로맨서가, 신성을 두르고 신성 언데드를 입은 채, 믿음이 흔들리는 성녀 앞에서 자신이 기준이라고 말한다.
저 녀석은 바보였다.
차라리 저 거인이 진짜 데바라고 믿는 쪽이 더 그럴듯할 정도로 괴이한 힘.
하지만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프리스트와 네크로맨서를 넘나드는 인간. 이유는 모르지만 여신은 그에게 그런 힘을 약속했다.
-여신이 계시하지 않는 한, 인간은 여신을 알 수 없다.
에프넬 교수 '라흘'의 가르침이었다. 여신은 인간의 이성과 이해를 뛰어넘은 채 실존하며, 인간이 가진 사고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존재라는 게 레테의 믿음이었다.
반면 지금 저 앞에 있는 건.
'지극히 인간의 사고로 만들어진 신. 인간이 믿게끔 만들어진 신.'
레테가 비로소 몸을 일으켰다.
네크로맨서 따위가 믿음의 기준이 되는 아이러니.
하지만 저 순백의 망토를 두른 소년이 옆에서 함께 싸워준다면,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억지 부리는 것도 정도가 있슴다."
인정하기 싫어서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소년은 그저 빙긋 웃어줄 뿐이었다.
[흥미롭구나. 인간이여.]
에버 키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왜곡하여 드러내는 권능은 내게만 주어진 것이라고 여겼겨늘.]
"아니."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들어 올렸다.
"내 힘은 분명히 실재해. 왜곡된 것도, 조작된 것도 아냐."
처억!
그러곤 저 멀리 있는 여신의 목을 향해 겨누었다.
"같은 취급하지 마. 가짜."
[나를 능멸하는구나. 이 세계야말로 실체고, 진짜이니라! 실제로 곧 그렇게 될 것이다!]
에버 키레의 이능은, 왜곡된 일을 실제 있었던 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지금 보는 건 아직 '현실'이 아니다. 현실에서 분기점처럼 갈라져 나온 또 다른 미래.
직접 휘말린 사람들도 경기장에 있던 사람들에 한한다.
하지만 이대로 에버 키레의 계획이 실현되면, 이곳의 사람들은 물론 밖의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 로크섬은 무너지고 가짜 여신이 현실에 강림하게 된다.
그 전에.
"내가 막겠어."
다시 한번 전투가 시작됐다. 시몬이 지면을 강하게 디디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목표는 섬 밖에 한참을 떨어져 있는 저 여신의 목.
"시몬!"
레테가 시몬을 따라잡으며 말했다.
"발로는 저기까지 못 가요! 타요!"
"뭘?"
그녀가 손을 휘두르자 하얀 마법진이 펼쳐졌다. 그 안에서 유려하고 매끄러운 몸체의 하얀 용이 튀어나왔다.
신수학 전공인 레테의 주력 신수, '란'이었다.
"란!"
-캬르응!
목소리는 여전히 앳됐지만, 몸집은 상당히 커졌다. 시몬이 올라타기도 전에 란이 먼저 다가와 시몬을 머리로 받아내 올렸다.
"너 많이 컸구나!"
-캬릉!
시몬이 슥슥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좋아하는 기색을 보였다. 꼬리 쪽에 올라탄 레테가 외쳤다.
"꽉 잡으십쇼!"
휘이이이이이이잉!
백룡이 별빛과 같은 움직임으로 날아올랐다. 어마어마한 속도감과 맞바람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란이 나는 곳마다 순백의 궤적이 남았다.
[인간이 신에게 도전하지 말지어다!]
여신이 두 팔을 들어 올리자, 주위에 레테의 권능인 별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쯧. 하고 레테가 혀를 찼다.
"성녀의 정수도 없는 주제에, 내 능력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어요."
"그뿐만이 아니야."
시몬이 지상을 가리켰다.
이제는 로크섬 전역에서 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건 수확의 성녀가 가진 권능이었다.
"아무래도 저 가짜신은 신성으로 구현하는 모든 종류의 힘을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 같아."
만약 저 신이 진짜 현실의 존재가 된다면, 그리고 대륙의 백마법을 모조리 흡수해 버린다면.
그야말로 신으로서 군림하게 되리라.
"평생 저런 끔찍하게 생긴 신을 믿으라고?"
레테가 팔을 뒤로 내뻗었다.
"그렇겐 못 살아요."
"그러니 우리가 여기서 쓰러트려야 해."
여신의 공세가 시작되었다. 주위에서 별빛이 반짝반짝 터져 나오더니, 무수한 혜성들이 긴 꼬리를 남기며 시몬과 레테, 그리고 란을 향해 쏟아졌다.
"가짜 권능 따위!"
레테도 지지 않고 뒤로 보낸 팔을 앞으로 끌어당겼다. 별들이 반짝이며 이번에는 레테의 후방에서도 혜성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날아오는 별들의 행진이, 이내 충돌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
"큭!"
시몬이 입술을 깨물었다. 별들끼리 부딪혀 터져 나오는 빛에 눈이 멀 것 같았고, 폭발하는 굉음에 고막이 터질 것 같았다.
"란!"
-캬르르릉!
격추되지 않고 정면으로 날아오는 별은, 란이 신성 브레스를 쏘아 보내 파괴했다.
"시몬! 위에 오는 걸 부탁함다!"
"알겠어!"
시몬도 파멸의 대검을 붙잡고 힘차게 휘둘렀다. 하늘을 베자, 내려오는 별들이 쩍! 소리를 내며 반으로 갈라져 바다에 떨어졌다.
'조금만, 조금만 더!'
혜성들을 뚫고 여신과의 거리를 줄여 나갔다.
하지만 반 정도 넘어오자, 여신은 날아오는 별의 수를 두 배 이상으로 늘렸다.
"별이 너무 많아!"
여신의 주위에 무수히 빛나는 별들이 야속했다. 저걸 다 뚫고 갈 수 있을까?
"완성했슴다!"
물론 레테에게는 새로운 수가 있었다. 그녀가 방금 만들어낸 별자리 같은 마법진을 손바닥에 쥐었다.
"뭐, 뭘 완성했는데?"
"별이 될 준비나 해요!"
레테가 시몬의 등 뒤에 손바닥을 올렸다.
"간다아!"
"무, 뭐, 뭘 하려는 건데에!"
시몬의 몸이 별빛으로 뒤덮였다.
그리고.
─────────!
혜성이 되어 정면으로 쏘아져 나갔다.
난데없는 공간도약.
여신이 사출한 다른 별들이 간발의 차이로 비껴 나가고, 시몬이 정신을 차린 순간.
'아!'
여신이 눈앞에 도달해 있었다. 멍해 있던 그의 입꼬리가 비로소 올라갔다.
"나이스!"
머릿속에서 불꽃이 번져 나간다. 시몬은 신성을 거두어들이고, 다시 한번 프리스트에서 네크로맨서로 변했다.
새하얀 광택의 망토는 검푸른 색의 그림자 같은 망토로 변하고, 피어의 두개골에도 검은 안광이 흘러나온다.
코어가 세차게 가동하며 체내의 전신 구석구석까지 칠흑을 공급한다.
뇌리가 뜨겁게 들끓고, 온몸의 신경이 올올이 일어나며 네크로맨서로서의 전투에 최적화된다.
'공간째로!'
시몬의 몸이 공중에서 가속했다.
목표는 눈앞의 신.
'베어버리는 감각!'
스릉!
역시 에이션트 언데드의 힘은 네크로맨서일 때가 가장 강했다. 검격은 어깨를 타고 복부까지 내려갔고, 그어진 선에서 하얀 피가 분수처럼 튀어 올랐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악!
여신의 찢어질 듯한 비명은, 신이라기보다는 몬스터에 가까웠다.
[목표물이 지나치게 크다! 소년!]
머릿속에서 피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완전히 절단하는 건 불가능해!]
'하지만 타격이 들어가는 것 같아요! 더 몰아붙여 보죠!'
시몬은 파멸의 대검에 칠흑을 응집시킨 다음, 몸을 빙글 돌려 후방을 향해 발사했다. 사출된 칠흑이 시몬의 몸을 밀어냈다.
터업!
시몬이 경사진 여신의 복부 위에 발을 디뎠다. 산봉우리 같은 여체 위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거대한 두 눈과 에버 키레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반드시 쓰러트리겠어!'
시몬이 칠흑을 밟고 뛰어올랐다. 곳곳에서 작은 혜성들이 날아왔으나 시몬은 자유자재로 방향을 틀며 피해냈다.
하지만.
'너무 커!'
성채만큼 거대한 여신의 몸은, 아무리 달려도 가까워지는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소년! 머리 위다!]
시몬이 고개를 들었다. 형용할 수 없이 거대한 여신의 손바닥이 공간을 일그러뜨리며 내려왔다.
시몬이 즉각 발끝에 힘을 준 다음, 여신의 몸을 밟고 뛰어올랐다.
화아아아아악!
돌풍이 몰아치며, 여신의 손바닥이 본인의 몸을 훑고 내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이내 체공 중이어서 회피 불가능한 시몬을 향해 혜성들이 내려왔지만.
<시몬 폴렌티아 오리지널 - 친위대>
대비하고 있었다.
시몬이 품속에서 뼈들을 던졌고, 에메랄드 같은 형광빛이 번뜩이며 두 기 분량의 스켈레톤이 시몬의 등에 달라붙었다.
<친위대 - 비행 모드>
클라우드의 추진력으로 즉각 날아올라 혜성을 피해냈다.
[크하하하하! 과연, 괜찮은 연계다!]
시몬은 공중에서 연신 파멸의 대검을 휘둘러 검격으로 여신을 베어내며 날아올랐다.
"할 수 있어!"
여신의 몸에 무수한 검상이 새겨졌다. 무아지경의 경지가 된 시몬이 이를 악물고 여신의 머리를 보았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에버 키레도 보인다.
"할 수 있......!"
드드드드드득!
순간.
시몬은 여기 왔을 때처럼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시몬의 몸이 먼저 뒤로 밀려나고, 주변의 풍경들이 반죽을 잡아당기듯 늘어져 보였다.
반응할 수도 없었다.
여신이 휘두른 손바닥에 부딪힌 것이다. 시몬이 끝없이 멀어지는 여신을 향해 손을 뻗었다.
'거의 다 왔는......!'
[소년!!]
피어가 즉시 시몬의 등 뒤로 돌아갔고, 친위대의 본 아머도 시몬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비행을 포기하고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쿠우우우우웅!
튕겨 나간 시몬의 몸이 폐허가 된 로크섬에 도로 떨어졌다.
콰아아앙!
꾸드드드득!
꽈직!
콰다다다다다당!
시몬의 몸이 지면에 거칠게 튕겼고, 그때마다 뼈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바닥을 정신없이 구르며, 시야는 빙글빙글 돌았다.
직후, 시몬의 의식이 끊겼다.
* * *
"아!"
시몬이 번쩍 눈을 떴다.
피처럼 벌건 하늘이 보인다.
그리고 세기말 세상처럼 쏟아지는 별들과 내리치는 벼락.
시야는 뿌옇고, 불에 탄 냄새가 가득했다.
'진...... 건가?'
결국 에버 키레가 만든 세상이 진짜 현실이 된 걸까.
비극을 막지 못한 걸까.
그러다 마지막 상황을 머릿속에 떠올린 시몬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냐,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어!'
시몬은 저 멀리서 싸우고 있는 하얀 머리카락의 소녀를 발견했다.
"하아아아아!"
그녀가 두 팔을 높게 들어 올린 채 별들을 쏟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여신 또한 로크섬으로 별들을 보내고 있었다.
섬 곳곳에는 수확의 성녀의 힘인 밀들이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밀알의 형태로 빚어진 신성이 공중에 띄워져 저 멀리 여신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그나마 레테가 버텨주고 있어.'
가만히 쓰러져 있을 때가 아니었다.
시몬이 억제로 덜덜 떨리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빠그득 하고 허리를 감싸던 뼈가 무너져 내렸다.
시몬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피어!"
전신의 뼈가 흩어져 있는 피어의 모습이 보였다.
[크흐흐! 걱정하지 마라. 소년. 이 정도는 시간이 지나면 회복하니까!]
흙에 반쯤 파묻힌 피어의 두개골에 눈이 깜빡거렸다. 피어의 목소리가 지직거리듯이 들렸다.
"죄송해요, 피어! 저 때문에......!"
피어가 클클클 웃었다.
[사과보다는, 지금 뭘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라!]
"......."
시몬이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움직였다.
피어는 저 상태고, 파멸의 대검도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완전히 변이된 현실이기에 아공간도 열리지 않고 프린스를 부를 수도 없었다.
이대로 에버 키레와 여신을 이길 수 있을까?
콰콰콰콰쾅!
쿠우우웅!
레테가 힘에 부치는지, 권능 싸움에서 밀리고 있었다. 쏟아지는 별들이 계속해서 로크섬을 두들기고 있다. 이대로는 레테가 먼저 당할 것이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콜록! 콜록!
그때 어딘가에서 마른기침 소리가 들렸다.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
시몬이 얼른 소리가 들린 쪽으로 뛰어갔다.
"아!"
검은 교복을 입은, 작은 체구의 단발머리 소녀.
사샤였다.
"사샤!"
경기장 잔해에 누워 있는 그녀는 나무에 깔린 채 콜록거리고 있었다. 시몬이 달려가 칠흑을 일으켜 나무를 치워주었다.
다행히 키젠 교복을 입고 있어서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괜찮아?"
"......아."
하지만
"아! 아! 아아아! 아아아아아!"
그녀의 상태가 정상은 아닌 것 같았다. 마구 몸을 들썩거리던 그녀의 몸이 공중으로 번쩍 치솟았다.
"아아아아아!"
정신을 잃었을 그녀에게서 칠흑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전형적인 칠흑 역류 현상. 거기에 전신이 붕괴되려 하고 있다. 그리고 칠흑 끝에 자그맣게 흐르는 하얀 기체.
그것은 분명.
'신성?'
시몬의 입이 벌어졌다.
이 신성은 느낀 적 있다. 수확의 성녀에게서 느꼈던 바로 그 신성이다.
'왜 사샤가 신성을...... 아!'
어떤 상황인지 바로 이해했다. 에버 키레의 몸에서 빠져나온 성녀의 정수가, 이 왜곡된 세계에서 떠돌다가 하필이면 다음 대상으로 사샤를 선택한 것이다.
'아무리 여기에 마땅한 프리스트가 없다지만 사샤를 고르다니!'
사샤의 입장에선 벌써 두 번째 성녀의 정수의 간택. 사샤가 네크로맨서 쪽이든 프리스트든 쪽이든 대단한 재능이긴 한 모양이었다.
시몬은 어머니인 안나도 성녀 시절 이후, 두 번째 성녀의 정수를 받아서 고생한 적 있었기에 그리 놀라진 않았다.
"끄으윽!"
그녀의 입가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죽는다.
'그때처럼.'
시몬은 사샤가 '성녀의 정수'를 받아들여 폭주했을 때, 자신이 그녀의 정수를 받아들였던 기억을 떠올렸다.
'해보는 거야.'
군단장의 힘도 못 쓰고, 친위대도 소모한 상황.
시몬은 간절한 마음으로 사샤의 손을 붙잡았다.
"!"
갑자기 주위가 바뀌었다.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세상이 하얗게 물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무의 세상.
바로 그때.
[너 뭐야.]
잔뜩 경계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