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642화 (642/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42화

소년이.

살아 있는 신의 목을 베었다.

빛바래고 덕지덕지한 머리카락이 덧없이 휘날리고, 뒤이어 거대한 덩어리가 바다에 추락한다.

시몬은 '성의'의 힘으로 하늘에 떠서 그 모습을 덤덤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남아 있는 건 벌건 목의 단면을 보인 채, 우두커니 있는 여신의 상체뿐이었다.

[하......!]

에버 키레가 제 얼굴 가죽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낄낄낄낄낄낄! 낄낄낄! 흐으, 하! 하하하하하하!]

허리까지 젖혀가며 광소를 터뜨리는 그녀.

역시 제정신은 아니었다. 시몬이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신도 죽었고, 이제 남은 건 너뿐이야."

[신이 죽었다고?]

에버 키레의 목이 삐거덕거리며 시몬을 응시했다.

[천만에. 천만에. 천만에. 천만에!]

그녀가 두 팔을 펼쳤다.

[아까 내 목을 베었을 때 깨달았을 텐데! 신은 생물이 아니다! 생물의 상식으로 신을 규정지으려고 하지 마!]

에버 키레의 몸에서 다시 한번 광채가 뿜어져 나온다. 눈과 코, 입에서 피가 줄줄 쏟아진다.

[나의 신이여!]

그녀가 소원을 빌어서 신을 되살리려 하고 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시몬이 자세를 낮추며 쏘아져 나가려는 순간.

쐐애액!

공간이 일그러지며 거대한 여신의 손이 시몬의 사각에서 날아왔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손에 쥔 낫을 앞세워 막아냈지만, 밀어내는 힘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크으읍!'

시몬은 순간적으로 로크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공간이 한없이 늘어지는 듯하다가, 두 다리가 대지에 닿은 뒤에야 비로소 멈춰 섰다.

쿠구구구구!

두 다리가 대지에 긴 흉터를 남겼다.

주위의 밀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일어나 시몬의 등을 지탱해 주었다.

'큭, 대체 얼마나 밀려난 거야?'

시몬이 식은땀을 흘리며 앞을 보았다.

저 멀리서 머리 잃은 여신이 흐느적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두 팔을 천천히 움직이더니 목이 잘려 나간 부위를 만졌다.

터업. 텁.

그 다급한 손의 움직임에는, 있어야만 하는 것이 없는 것에 대한 당혹감이 가득했다. 이내.

────────────!

머리 없는 여신이 울부짖는다.

목에서 공기가 성대나 입을 거치지 않고 직접 뿜어져 나오는 듯한 괴이한 음색. 하얀 벼락이 떨어지고, 파도가 거칠게 휘몰아친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옵소서! 나의 여신이여!]

에버 키레가 내려와 여신의 구멍 뚫린 목 안으로 스스로 파고들었다.

[본래 당신의 일부였던 내가, 다시 당신의 품 안으로 가겠나이다!]

* * *

시몬은 입술을 깨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시 여신을 향해 날아가고 싶었지만.

'......큰일 났다.'

불타는 듯한 격통이 범람했다. 전신의 근육이 꼬이고 찢어지는 느낌.

시몬의 몸에 잔존해 있던 정화의 정수가, 수확의 정수의 힘과 부딪혀 반발작용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크윽!"

입에서 멀건 피가 흘렀다. 이대론 위험했다. 금방이라도 신성이 폭주해서 몸이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시몬!"

레테가 그 모습을 보고는 다가왔다.

"왜 그러심까!"

시몬이 땀을 뚝뚝 떨어뜨리며 외쳤다.

"수확의 성녀님을 이리로 데리고 와줘!"

"네?"

"빨리! 부탁해!"

레테는 더 묻지 않고 권능을 퍼뜨려 신성을 감지했다. 그러고는 란을 시켜서 수확의 성녀를 데리고 왔다. 그녀는 여전히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괜찮으심까? 갑자기 왜 이러는데요!"

레테가 당황하며 시몬의 옆에 앉았다. 시몬은 퀭한 눈으로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하면 다시 수확의 정수를 돌려보낼 수 있지?'

안나가 받은 정수 제거 수술을 재현할 시간은 없고, 잘 떠오르지도 않는다.

하지만.

'정수를 받았던 것처럼, 주는 것도......!'

시몬은 천천히 손을 뻗어, 수확의 성녀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

세계가 하얗게 일변했다.

[오, 고마워! 약속을 지켰구나?]

아까 봤던 그 수확의 정수가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고통과 어지럼증도 빠르게 가라앉고 있다.

수확의 정수와의 거래.

그것은 힘을 받아서 싸운 뒤, 그녀를 다시 수확의 성녀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었다. 시몬도 반발작용 때문에 정수의 힘을 더 유지할 수도 없으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정수를 계속 가지고 있으면, 자신이 죽을 테니까.

[참, 그리고.]

그녀가 뒤를 가리켰다. 시몬도 뒤를 돌아보았다.

두 개의 하얀 왕좌.

하나는 불꽃, 다른 하나는 풀과 나무가 조형되어 있다.

[네 몸에 와서 알았지만, 네가 '자격'을 가진 건 우연이 아니었어.]

"......자격."

[그래. 앞으로 남은 자리들을 하나하나 수집해 간다면. 그리고 일곱 왕좌가 네 발밑에 모인다면.]

점점 흐려지는 시야와 함께,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기대되네. 최초의, 그리고 유일의 성자(聖子)여.]

* * *

"허억!"

시몬이 다시 눈을 떴다.

어느새 하얀 머리카락은 푸른색으로 변했고, 눈동자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가슴을 진정시키고 거친 숨을 내뱉고 있는데, 바로 앞에 레테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더 놀라서 제 손을 붙잡은 채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다.

"노, 놀랐잖슴까!"

"......?"

답지 않게 왜 당황했나 싶었는데, 뺨이 매웠다. 시몬이 제 뺨을 만지며 눈을 게슴츠레 떴다.

"때린 거야?"

그녀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어, 어쩔 수 없잖슴까! 갑자기 눈을 감은 채 안 일어나니까!"

성녀라는 사람이 치료를 할 생각을 해야지 환자를 패다니.

시몬은 작게 웃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수확의 정수가 빠져나간 건지,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에버 키레는 어디 있어?"

"저기요."

레테가 손을 뻗어 바다를 가리켰다. 목 잘린 여신이 전신에서 신성을 일으키고 있었다.

"에버 키레와 여신의 융합이 거의 끝나가요. 곧 공격해 올 거예요."

쿠구구구구구구구!

그 말이 무섭게, 여신이 레테의 권능을 사용했다.

그녀의 몸이 별빛이 되어 공중으로 솟구치더니, 이내 빛의 속도로 로크섬 한복판에 떨어졌다.

꽈아아아아앙!

레테가 얼른 신성으로 배리어를 펼쳤다. 로크섬 전역이 뒤흔들리며 쩍쩍 갈라지거나 일부는 바다에 떨어져 나갔다.

[아아-]

에버 키레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 잘린 여신의 상반신이 로크섬의 지반과 하나가 됐다. 그것은 다시 봐도 거대했다. 산보다 더 높게 솟은 그녀의 상체는 로크섬의 그 어떤 산보다 높았다.

그리고 비정상적으로 긴 팔. 그녀가 두 팔을 펼치면 로크섬 끝에서 끝까지 닿을 정도였다.

[나와 같은 전능한 힘을 쓰는 자여!]

그리고 목 잘린 여신의 가슴 위에, 에버 키레의 이목구비가 생겨났다.

[신성의 힘으로 여신의 목을 벤 건 실수였다!]

여신이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들어 올렸고, 손안에는 신성이 일렁였다.

그 신성이 구체화되며 시몬이 여신의 목을 벨 때 사용했던, 그 거대한 낫의 형상으로 변하고 있었다.

[하하하하! 이 힘! 바로 이 힘이야! 이 힘만 있으면 세계는 내 차지야!]

낫의 크기가 점점 더 커져 나가며, 에버 키레가 광기에 찬 웃음을 쏟아냈다.

[이제 대륙에서 태어난 인간은 영원히 목 잘린 신을 섬기고 경배하리라!]

로크섬 곳곳에 있던 조각물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기둥이나 동상들이 목 잘린 여신이 낫들 들어 올린 형태로 왜곡되었다. 그녀가 세운 기준이 세상에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서서히 여신이 낫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레테는 허망한 얼굴로 입을 벌렸다.

"이제 어떻게......."

"걱정할 필요 없어."

시몬이 자신만만하게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하하하하하하! 음?]

에버 키레도 이변을 눈치챘다. 낫의 형태가 좀처럼 굳어지질 않고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었다.

꾸드득!

꾸득!

마치 중대한 오류가 발생한 것처럼 낫의 형태가 끊임없이 바뀌어갔다.

[크윽!]

여신의 방대한 신성이 모조리 낫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랐다. 여신의 손목이 낫과 일체화되며, 그녀의 전신마저 빨아들이려 하고 있었다.

[이, 이게 어째서!]

에버 키레는 소원을 빌었다.

시몬이 사용한 그 '종명(終命)의 낫'을 완전히, 똑같이 만들어달라고.

그러나 그것은 틀림없이.

[아아아아아아악!]

그녀의 '능력 밖'이었다.

여신의 몸이 낫에 빨려 들어가려 하고 있고, 이제는 몸보다 낫의 크기가 더 커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미 빈 소원은 되돌릴 수 없다.

소원은 이뤄지기 위해 제작 불가능한 낫의 형태를 끝없이 조형하며 따라가려 했고, 에버 키레와 여신의 힘이 이에 희생되어 가고 있다.

신이, 자멸하고 있다.

'......대체.'

레테가 시몬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 녀석은 아까 뭘 만든 거야? 분명 성녀의 기술은 아니었는데.'

"레테."

"아, 네."

"지금이 기회야."

투둑- 툭-

주위의 세상이 피부처럼 조각조각 벗겨져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분해의 조짐이었다. 에버 키레가 자멸하는 것 외에, 모종의 이유로 그녀의 이능 자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시몬이 손을 내밀었다.

"에버 키레가 사태를 수습하기 전에 얼른 쳐야 해."

레테가 시몬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계획은요? 당신도 성녀의 힘이 빠져나간 것 같고. 내 신성은 통하지 않을 텐데."

시몬이 씩 웃었다.

"방법이 있지."

이내.

두 사람은 폭주한 여신을 향해 걸어갔다.

시몬은 네크로맨서로 돌아왔다. 오른손에 천천히 칠흑을 일으키고, 왼손은 수습한 피어의 뼈로 덮은 뒤 파멸의 대검을 쥐었다.

레테는 성녀의 권능을 담고, 왼손에 신성을 일으켰다.

탓!

타닷!

두 사람이 동시에 달리기 시작했다.

각각의 손에 칠흑과 신성이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이거 진짜 먹히겠죠?"

"먹혀야지!"

시몬이 대답했다.

"대륙민들이 목 잘린 여신을 섬기기 싫다면 말야!"

"당신네 로크섬이 초토화되기 싫다면 말이죠!"

여신이 가까워질수록 두 사람의 달리는 속도도 점점 더 빨라졌다. 에버 키레는 종명의 낫을 만드느라 두 사람을 전혀 신경 쓰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시몬은 오른손을, 레테는 왼손을 마주하도록 했다. 칠흑의 구체와 신성의 구체가 크기를 급격히 부풀렸다.

콰콰콰콰콰콰콰!

칠흑과 신성의 구체가 서로 아슬아슬하게 부딪힌 채 지직거렸다. 두 사람이 동시에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하아아아아아아!"

두 사람이 칠흑과 신성을 맞닿은 상태에서 던졌다. 두 힘이 접촉면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회전하며 여신을 향해 날아갔다.

처억!

아직 안 끝났다. 시몬이 왼손에 든 파멸의 대검을 들어 올렸다. 대검의 마법진에는 시몬의 혈류 마법진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혈류학 시간에 배운 이 마법진의 효과는 '혈액의 저장'. 혼돈의 재료 중 하나인 시몬의 'SM-1' 혈액을 머금고 있었다.

"갈게요!"

레테도 공중에서 별의 힘을 끌어모아 대검의 손잡이에 붙였다.

중력의 힘.

그것을 추진력 삼아, 시몬이 커다란 함성을 지르며 파멸의 대검을 날렸다.

투콰아아아아아앙-!

별빛을 휘감은 대검이 유성처럼 꼬리를 남기며 날아갔다.

그것은 앞서 날린 신성과 칠흑의 사이로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파지지지지지지직!

신성과 칠흑 사이로 시몬의 피가 발휘되며, 자줏빛 스파크가 튀었다. 시몬과 레테가 허물어지듯 바닥에 굴러떨어졌고, 시몬은 흙을 뱉으며 급히 고개를 들었다.

"제발!"

레테가 뒤이어 소리쳤다.

"맞아라!"

대검을 중심으로 자줏빛이 더더욱 거대해졌다. 낫을 떼어내려고 발버둥 치던 에버 키레도 뒤늦게 공격을 감지하고는 몸을 돌렸다.

[이 까짓것!]

그녀가 소원을 빌었다.

멈추라고.

그 어떤 공격이든 이 세상에서는 간단히 멈춰 버리게 할 수 있었으나.

[?!]

통하지 않는다.

그녀를 향해 다가오는 혼돈의 힘이 세상을 자줏빛으로 물들였다.

[대체......!]

종명의 낫도, 그리고 저 자줏빛 힘도 마찬가지.

신을 만들어내는 권능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대체 네놈은 정체가 무......!]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혼돈의 힘이 여신을 관통하고. 비로소 여신이 무너져 내렸다.

'해, 해냈다.'

시몬이 홀가분한 미소를 지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비로소.

가짜의 세상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에버 키레가 왜곡한 모든 게 되돌아가고 있다.

목 잘린 여신의 조각상들은 다시 기둥이나 건축물로 돌아갔다. 으깨지거나 박살 난 경기장의 조각들이 스스로 움직여 합쳐지고, 로크섬은 다시 바다 위로 내려앉았다.

여신의 긴 팔이 하늘로 향했다. 끝내 완성하지 못한 종명의 낫과 함께. 그것의 몸이 소멸하고 있었다.

화아아아아아아악-!

이내 눈을 뜨는 순간.

"아!"

비로소 왜곡되기 전의 텅 빈 경기장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