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646화 (646/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46화

그날 저녁, 학과 파티가 시작됐다.

기숙사 앞마당에 커다란 장작들을 쌓아 올리고, 불을 붙여 캠프파이어 분위기를 냈다.

학과생들은 그 주위에 자유롭게 둘러앉아 왁자지껄하게 와인을 마시며 즐겼다.

시몬도 와인잔을 들고 바위에 걸터앉아 기숙사를 올려다보았다. 흑마법으로 그린 글씨가 밤중에도 밝게 빛나고 있었다.

<소환학과 70년 만에 전체 2위! 경축! 경축!>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인 가운데.

"자, 다들 주-모옥!"

한 3학년 여학생이 큰소리로 외쳤다.

"우리 총 학과 대표님께서 한 말씀 하시겠답니다!"

와아아아!

떠들썩한 환호가 터져 나왔다. 학과대표 레오나드는 무안한 듯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안 들려요! 선배님!"

"바보야, 확성 수정구 꺼져 있어."

"아."

"벌써 취했냐?"

동기들이나 후배들이나 할 것 없이 요란하게 그를 놀려댔다. 레오나드도 큭큭거리며 확성 수정구를 작동시켰다.

"다들 암흑제 기간 동안 고생 많았다!"

그가 환하게 웃었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싸운 덕분에 좋은 결과를 냈다고 생각해. 정말, 이렇게 웃어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

"과대 선배니임!"

"울지 마요!"

하하하하하하!

오늘만큼은 하늘 같은 3학년 선배들을 놀려 먹어도 무죄였다. 레오나드는 그걸 또 천연덕스럽게 눈물을 닦는 시늉을 하며 받아주었다.

"내가 말주변이 나빠서, 음. 지금 이 감정을 뭐라 표현을 못 하겠지만...... 너희들이 정말 자랑스럽다. 오늘만큼은 진짜 너무 행복하고, 키젠에 들어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확성 수정구를 움켜쥐었다.

"졸업까지 아직 많이 남긴 했지만, 진짜 좋은 추억 하나 남기고 간다. 사회에 나가서 힘들고 지칠 때, 나는 오늘 저 커다란 장작을 자주 떠올릴 것 같다. 너희들은 내 자랑이고 그리고 또."

"선배님! 실례지만 같은 말 반복하고 계십니다!"

"혀 꼬인다! 레오나드!"

아하하하!

이런 동네북 학과대표가 또 어디 있을까.

시몬마저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시원하게 웃었다. 레오나드가 팔을 뻗으며 말했다.

"그래, 이 추억이 흑역사로 남으면 안 되니까 빨리 말을 줄여야겠다. 다들 고맙고, 사랑한다! 끝까지 버텨서 다 같이 이 학교에서 살아남자! 소환학과 화이팅!"

"화이팅!"

박수갈채를 받으며 레오나드가 자리에 앉았고, 이번에는 자연스럽게 '바닐라!', '바닐라!' 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동조하는 외침은 점점 커져 갔고, 부끄러워하며 손사래를 치던 벤야 바닐라가 마침내 일어나는 순간 그 탄성은 폭발이 되어 터져 나왔다.

"안녕, 얘들아 음."

쑥스럽게 레오나드로부터 확성 수정구를 받아든 그녀가 말을 고르고 있는데, 시몬의 옆옆 자리에 앉은 에슈가 팔을 번쩍 들며 외쳤다.

"소환학과의 엄마! 벤야 선배님!"

하하하하하!

분위기가 워낙 좋아서, 이제는 무슨 말을 해도 호응이 대단했다. '늘 챙겨줘서 고마워요 엄마!', '배고파요 엄마!' 하는 외침도 들렸다.

벤야가 생긋 웃었다.

"다들 좋게 봐줘서 고마워. 음, 갑자기 떨리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그녀가 크림색 머리카락을 배배 꼬다가 이내 눈을 감고 긴 숨을 내뱉었다.

"나는 바닐라 가문에서 부유하게 자랐어. 남들이 흔히 말하는 금수저? 금포크? 음, 그런 거였다고 생각해. 평생 언데드 재룟값 걱정은 해본 적 없고, 내가 하고 싶은 연구는 마음껏 하면서 자랐어. 하지만 난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 그러다가."

벤야가 눈을 뜨고 후배들과 동기들을 쭉 훑어보았다.

"소환학과에 들어오고 나서 많은 충격을 받았어. 다들 알다시피 우리 학과는 재룟값이 많이 나가잖아. 내 또래 애들이 재료를 살 돈이 없어서 수업에 뒤처지고, 아르바이트하고, 힘든 임무평가를 뛰고, 그러면서도 밥 먹을 돈 없어서 쫄쫄 굶고."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솔직히, 친구들이 돈에 절망하고 전과할 때마다 깊은 죄책감이 들었어. 내가 누렸던 생활은, 비단 키젠뿐만 아니라 모든 네크로맨서들의 피와 땀으로부터 나온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지. 특히 나랑 제일 친하던 룸메이트가 칠흑역학과로 갔을 때는 정말 울고 싶었어. 도와주고 싶었지만 나도 할아버지께 받는 용돈이 한정되어 있었으니 바라만 봐야 했거든. 그렇게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결심했어."

그녀가 주먹을 움켜쥐며 눈을 희번뜩하게 빛냈다.

"세계를 정복하겠다고!"

아니, 말 잘하다가 갑자기 왜 그쪽으로 가.

시몬이 당혹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지금은 학생이고 아무 영향력도 없지만, 장차 졸업해서 바닐라를 이끌어 나가게 되면 고가 브랜드 정책에서 탈피할 거야! 질 좋고 뛰어난 언데드를 네크로맨서 모두가 저렴하게 쓸 수 있게! 그리고 나아가서 이 저비용 고효율의 노동력을 민간 분야까지 넓게 통용시켜서 세상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 거야!"

세계 정복이 나오면 텐션이나 억양부터가 달라지는 그녀였다. 그녀가 진짜 탐험가처럼 팔을 번쩍 세웠다.

"기억해 줘 제군들! 나는 세계를 정복할 벤야 바닐라다! 이상!"

우와아아아아아아!

곳곳에서 학생들의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어째서 세계 정복이라는 결론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시몬도 손뼉을 치며 그녀를 응원했다.

"아, 그리고 이번 2위를 아쉬워하는 애들도 많던데, 난 정말 큰 쾌거라고 생각해."

벤야가 기숙사 건물에 붙여진 빛나는 글자를 보며 말했다.

"70년 만에 2위! 난 아직도 믿어지지 않아. 그동안 마음고생 심하셨을 우리 교수님들도 분명 좋아해 주실......."

"그렇군."

갑자기 끼어든 목소리에 학생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이내 자리에 있던 모두가 다급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벤야는 입을 가린 채 눈을 크게 뜨고 있었고, 레오나드는 앞으로 뛰어나가고 있었다.

"아론 교수님! 휴가 중이실 텐데 어떻게......!"

2학년 담당교수인 아론이 슬리퍼를 질질 끌며 나타났다.

"예의 차릴 것 없다. 편히 앉도록."

그가 뒤쪽으로 신호를 보내자, 하수인들과 상인들이 나타났다.

일자로 길쭉한 테이블들에 갓 만든 음식과 과일들, 그리고 비싼 와인들이 잔뜩 있었다.

"와!"

"드디어 제대로 된 음식이다!"

모두가 시끌벅적하게 환호했다. 아론이 학생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본래 이 파티 비용은 암흑제 성과로 제공되는 학과 보조금으로 처리되지만, 이번만큼은 내 사비로 충당할 테니 마음껏 즐기도록. 남는 보조금은 학생들의 재료비 지원으로 사용하겠다."

와아아아아아아!

"역시! 아론 교수님!"

"감사합니다!"

학생들이 테이블로 자리를 잡는 사이 아론은 벌써 등을 돌려 떠나려 하고 있었다. 레오나드가 확성 수정구를 들고 따라왔다.

"벌써 가십니까? 아론 교수님!"

"밀려 있는 일이 많다."

"이대로는 못 보냅니다! 한마디만 하고 가시죠!"

어느새 모든 학생들이 정적 속에서 아론만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론은 여전히 등을 보인 채 정말로 딱 한 마디만 했다.

"고맙다."

아론은 풀밭을 밟으며 걸어갔다.

학생들은 볼 수 없었지만, 그의 입가엔 깊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 * *

두 시간 뒤.

파티 분위기는 더더욱 달아올랐다.

전반전은 학과생들끼리 돈독한 우애를 다지는 시간이었다면, 후반전은 호화로운 음식들에 더해, 외부인들까지 끼어들어 대규모 파티로 바뀌었다.

현장에서 뛰고 있거나 은퇴한 소환학과 출신의 키젠 선배들, 학부모들, 그리고 소환학과의 승리를 응원했던 관람객들까지.

모두가 하나가 되어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소환학과가 저주학과 따위에 질 수가 있느냔 말이야! 내가 과대일 때는 말이야......!"

웬 등이 굽은 노인이 지팡이를 들어 올린 채 화를 내는 모습이 보였다. 레오나드가 열중쉬어 자세로 쓴웃음을 흘리며 상대하고 있었다.

"여기서 바닐라의 자제분을 만날 줄은 몰랐소."

"차후 구울 시장에 관해서 협상하고 싶은데."

벤야에게는 고위 부족들이 붙어서 이런저런 비즈니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많은 학생들이 관람객들과 어울려 시끌벅적하게 놀고 있었다.

그리고.

"난리도 아니네요."

레테도 방문했다.

레테와 시몬은 캠프 파이어에서 조금 떨어진 벤치에 나란히 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다. 레테는 와인을 홀짝거리며 떠들썩한 파티 광경을 구경했고, 시몬은 치킨 스테이크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있었다.

"고마워."

"뭐가 말임까?"

"암흑연합을 위해 여기까지 와줘서. 네 도움이 없었다면 이런 평화로운 시간도 없었을 거야."

레테가 빙긋 웃었다.

"그러는 당신도 신성연방에서 열차를 구해내고, 빙룡의 저주에 빠진 도시를 구해냈지 않슴까. 쌤쌤으로 치죠."

"그렇게 되네."

두 사람은 와인잔을 부딪히고는 쿡쿡 웃었다.

"아, 시몬."

"응."

와인 기운에 기분이 좋아진 레테가 시몬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 사실......."

"학생회장!"

갑자기 시몬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시몬이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네!"

레오나드가 손짓했다.

"뭐 하고 있어? 대선배님들께서 애타게 찾으신다!"

"아, 넵!"

시몬이 허둥지둥 학생회장 코트를 입으며 레테를 미안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인사만 드리고 바로 올게!"

"네, 네. 천천히 일 보십쇼."

넥타이를 고쳐맨 시몬이 후다닥 뛰어갔다.

남겨진 레테는 작게 웃음 짓고는 빛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언제쯤 파티가 끝나고 조용해져서 느긋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안녕!"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레테가 뒤를 돌아보자, 감귤색 머리카락에 독특한 박쥐 모양 머리핀을 착용한 여학생이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처음 보는 사람이다. 시몬이 소개해 준 친구들도 아니었다.

"누구...... 세요?"

"아, 시몬 회장이랑 같은 조인 에슈 아르젤이라고 해! 그쪽은 회장의 고향 친구인 레나지?"

레테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어떻게 저를 알죠?"

"아까 너희 둘이 붙어 있는 거 보고 무슨 사이냐고 회장한테 캐물었거든. 옆에 앉아도 돼?"

본래라면 시체를 다루는 네크로맨서라는 족속 자체에 질색하는 그녀였지만, 이쪽에 온 뒤로는 다소 무뎌졌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에슈는 성큼 레테의 옆자리에 앉았다.

"......."

레테가 눈을 감고 와인을 홀짝였고, 에슈는 손끝을 움직였다.

"그렇게 와인만 마시면 속 안 좋다?"

레테가 깜짝 놀란 눈으로 앞을 보았다. 자그마한 정령을 연상케 하는 인형들이 과일이 담긴 쟁반을 머리에 받쳐 들고 웃차웃차 다가오고 있었다.

귀여운 것들의 등장에 레테가 눈을 빛냈다.

"에슈 님이 한 건가요?"

"응, 그리고 그냥 에슈라고 불러. 나도 평민이나 다름없으니까."

에슈가 쟁반을 들어서 벤치에 내려놓았다. 그러곤 포도알 하나 떼어내어 입에 넣고는, 반대쪽 손으로 와인잔을 들어 올리며 배시시 웃어 보였다.

"건배할래?"

"아, 네. 건배."

두 사람이 짠 하고 와인잔을 맞부딪히고는 입에 가져다 댔다. 레테는 맛을 음미하며 앞을 보았다.

시몬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말이 오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악수한 중년 남성이 큰 소리로 웃으며 시몬의 어깨를 두들기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곤 옆의 아내와도 인사를 시켜주는데, 예법대로 손등에 입을 맞추며 이야기를 잘 이어나갔다.

"잘하지?"

에슈가 중얼거렸다.

"잘하네요."

레테가 말을 받았다.

에슈가 눈썹을 들썩이며 예리하게 눈을 빛냈다. 마치 먹잇감을 앞둔 매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시몬이랑은 무슨 관계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