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650화 (650/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50화

큰 이변은 없었다.

최고 성적조는.

"8조, 10조, 그리고 11조다."

"됐어!"

각각 피츠제럴드, 시몬, 아세라즈를 보유한 조들이 최고점을 가져갔다. A+가 확정된 조원들은 기쁨으로 환호하며 얼싸안거나 손바닥을 맞부딪혔다.

"나이스! 나이스!"

"이번 A+는 진짜 크지!"

8조 조원들도 기쁨을 만끽하는 가운데, 아세라즈만 뚱한 표정으로 등을 돌렸다.

"아세라즈! 어디 가?"

"......."

시몬은 로레인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와중에 아세라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분을 이기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유난히 나한테 신경 쓰네. 내가 뭔가 나쁜 짓을 한 기억은 없는데.'

화르르르르!

신경 쓰는 사람은 한 명 더 있었다.

한 단계 아래인 'A' 점수에서 마감한 헥토르가 살벌하게 불타는 눈으로 시몬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하.'

시몬은 얼른 조원들을 데리고 멀어졌다.

* * *

수업을 마친 뒤에는 학생회 업무가 기다리고 있다.

숱하게 밤을 새웠던 암흑제가 끝나고 평시 업무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다소 여유가 있었다.

오늘도 학사 일정을 관리하고, 관련 유인물을 게시판에 붙이는 정도의 손쉬운 일이다.

<세계 맹독 공모전>

<주최 : 펜타모니엄>

시몬은 종이를 복도에 있는 게시판에 붙이고는 흡족한 얼굴로 뒤로 물러섰다.

'배치 나름 좋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던 시몬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에버 키레와 가짜 여신과 싸우던 게 엊그제 같은데, 게시물 배치에 세상 집중하고 있다니.

"웃차."

같이 온 메이린도 까치발을 들고 게시판에 종이를 댄 채 압정을 붙이려 낑낑거리고 있었다. 시냇물 같은 하늘색 머리카락이 좌우로 흔들렸다.

시몬은 조용히 옆으로 다가와서 종이를 잡아주었다.

"아, 땡큐."

메이린이 슬쩍 웃으며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것도 옆에 붙이면 돼?"

"응, 응. 그런데......."

메이린의 눈매가 좁아졌다.

"멍충아! 왜 공모전을 중간에 붙였어?"

"중요한 거니까 중간에 붙이는 거 아냐?"

"그럼 다른 거 붙일 자리가 없잖아! 그리고 좌우에 공백이 생기면 가시성도 별로야! 빨리 떼!"

메이린은 이런 사소한 디자인에도 진심인 편이었다.

기어이 시몬이 붙여놓은 서류들을 다 뜯어내서 새롭게 배치한 그녀가 뒤로 물러나 뿌듯하게 팔짱을 꼈다.

"응, 이제 좋아."

"......오."

다소 유난 떠는 것 같아도, 그녀가 수정한 결과가 진짜 깔끔하게 보여서 할 말이 없었다.

이제 모조와 직속 하수인들을 불러서 다른 건물의 게시판도 똑같이 해달라고 지시해 두면 된다.

오늘 외부 업무도 이것도 끝.

시몬과 메이린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학생회실로 걸어갔다.

"있지, 시몬."

"응."

메이린이 척! 하고 검지를 세웠다.

"요즘 학교에서 이슈인 제7군단장 있잖아! 나 누군지 알 것 같아."

'!'

시몬은 입안에 침이 바짝 말랐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웃었다.

"그게 누군데?"

"바로 피온이야!"

그녀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소리쳤다. 시몬은 등골이 찌르르 울리는 것을 애써 무시하며 농담처럼 말을 받았다.

"에이, 또 피온이야?"

"아니, 진짜! 확실해!"

그녀가 착! 하고 손바닥을 맞부딪혔다.

"네프티스 님의 연설을 듣고 확신이 들었어! 틀림없이 7군단장이 성녀사태에 관여했다고 하셨지? 난 1학년 때 내 눈으로 확실히 봤어."

그녀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하늘에서 성녀와 싸우고 있던 피온의 모습을!"

시몬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정작 피온이 누군지 모르면 의미가 없는 거 아냐?"

"의미가 왜 없어!"

메이린이 빼액 소리 질렀다.

"날 구해준 그 해골 투구를 쓴 네크로맨서 분이 사실은 제7의 군단장이라니! 어쩐지이, 그렇게 강한 이유가 있었구나!"

"......."

시몬은 잠시 침을 삼키며 말을 고르다가, 이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무섭지 않아?"

"뭐?"

"배신의 군단장인데."

메이린이 빙긋 웃었다.

"별로? 내 목숨이랑 우리 학교를 구해준 사람이잖아."

"......."

"내 생각엔 연합민들이 너무 고지식해! 그때 배신했던 군단장이랑 같은 사람도 아니라며? 그럼 뭐 괜찮은 거 아냐?"

시몬은 조용히 웃었다.

어쩐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마음에 위안을 받았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학생회실에 도착했다. 메이린이 문을 벌컥 열며 소리쳤다.

"우리 왔어!"

분주하게 서류들을 정리하고 있던 카미바레즈가 두 사람을 보고 활짝 웃었다.

"어서 오세요! 시몬! 메이린!"

그 맞은편에는 책들을 마구 쌓아놓은 채, 빈 노트에 계산식을 써내려가는 딕이 보였다. 인사하기도 바쁜지 '욥!'하고 두 사람 쪽으로 팔을 한번 들어주고는 다시 일하는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문서작업이 아직 덜 끝난 것 같았다.

"아니, 그런데."

메이린의 시선이 돌아갔다.

"너 왜 자꾸 여기 있냐고!"

손님용 소파에 앉아 태연하게 홍차를 마시고 있는 소년이 보였다.

유난히 한쪽으로 긴 앞머리가 아래의 눈을 가리고, 팔에는 완장을 차고 있었다.

"여기 차는 다 맛있네."

바로 말콤 랜돌프였다.

"은근슬쩍 눌러앉지 마!"

암흑제 이후, 학생회에는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그건 바로.

-이번 암흑제 기간 동안 시범적으로 도입했던 선도부의 업무역량이 뛰어나다고 판단, 교수 회의에서는 선도부를 정식 조직으로 승격하고자 합니다.

학생회에서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오히려 학교에서 선도부를 좋게 보고 정식 조직으로 승격시킨 것이다. 이제 그들은 매달 지원금까지 받게 됐다.

물론 암흑제 기간과 비교해서 그 권력은 약해진다.

완장을 차고 학생들을 선도할 수 있는 건 정규일정이 끝난 뒤부터.

하수인들과 함께 밤에 캠퍼스를 순찰하면서 학교폭력이나 부조리가 있는지 살피고, 금지된 숲이나 로체스트 등을 돌아다니며 교칙위반자를 찾는 정도의 일을 한다는 것 같았다.

"다 이 형님이 큰 그림을 그린 거, 알지?"

딕이 거들먹거리며 웃었다. 사실 딕은 암흑제가 끝나고도 선도부를 유지해서 학생회의 권력을 강화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하아, 이게 다 무슨 일이야."

메이린이 이마를 짚었다. 그녀는 말콤의 합류가 썩 달갑지는 않은 듯한 눈치였다.

"야. 애들이 일하고 있음 돕는 척이라도 하지?"

"하고 있는데."

말콤이 뒤로 턱짓했다.

실제로 말콤은 앉아 있지만, 그의 도플갱어들은 분주히 학생회실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헝겊으로 창문을 닦고, 화분에 물을 주고, 서류를 서명이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분류했으며, 기록일지를 작성하고 있었다.

한꺼번에 네 가지 일을 동시에 하면서 본체는 차를 마시는 모습에, 시몬이 희미하게 웃었다.

"대단한데."

"이것도 훈련의 일환이다."

말콤이 손짓하자, 모든 일을 마친 도플갱어들이 펑펑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확실히 업무적으로 유능한 녀석이란 건 부인할 수 없었다.

"딕 하나도 힘든데 사고뭉치가 더 늘다니, 사고만 치지 마. 사고만."

메이린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의자에 앉아 서류를 꺼냈다.

"기왕 같이 일하게 됐으니 잘해보자."

시몬이 말했다.

"잘 부탁드려요! 말콤!"

카미바레즈도 날개를 파닥거리며 빙긋 웃었다.

"선도부장으로서 뭔가 그런 거 없어? 포부 같은 거."

딕이 불쑥 끼어들었다.

"포부라."

찻잔을 내려놓은 말콤이 입을 열었다.

"명색이 선도부장이고, 기왕 정식 조직이 됐으니 더 분발해야겠지. Top10 중 한 명 정도는 끌어내겠다."

말콤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으며 히죽 웃었다.

"그 정도면 만족하겠지? 회장."

시몬도 씩 웃었다.

"기대할게."

"어이, 말콤. 저기 Top7은 어때?"

딕이 시시덕거리며 메이린을 가리켰다.

전체 7위인 그녀가 흥 하고 콧방귀를 꼈다.

"할 수 있으면 해보시등가."

부회장인 메이린도 검증받은 실력자였다. 말콤은 고개를 돌렸다.

"글쎄. 상아탑의 네크로맨서와는 상성이 안 좋아서."

"올~ 상관이라고 봐주는 거야? 사회생활 좀 하는데."

딕이 시시덕거리며 다가와 주먹을 내밀었다. 말콤도 주먹을 맞부딪혔다. 이 두 사람은 서로 이해관계로 엮여 있어서 그런지 은근히 케미가 좋아 보였다.

"왜 자꾸 나 걸고넘어져!"

메이린이 빼액 소리 질렀고, 나머지 멤버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 * *

"시몬 선배님! 이렇게 휘두르는 거 맞습니까?"

돌연변이 동아리 지하실.

용병왕 아서가 대형 몬스터의 뼈로 이루어진 사복검(蛇腹劍)을 시몬의 옆에서 휘두르고 있었다.

붕! 붕!

아서가 절도 있게 검 손잡이를 휘둘렀지만, 정작 검 끝의 움직임이 흐느적흐느적 볼품없었다.

"세게 휘두르는 게 다가 아냐."

아서의 훈련을 봐주던 시몬이 고개를 저었다. 아공간에서 오버로드의 촉수를 꺼내 직접 시범을 보였다.

"이렇게."

촤르르르르르륵!

오버로드의 관절이 살아 있는 것처럼 절묘하게 움직이며, 몸 끝에서 끝까지 제대로 힘이 전달된 채 휘둘러졌다.

"네 사복검은 엄연히 소환수잖아? 검을 휘두른다는 개념보다, 언데드를 사념으로 움직이는 개념에 가깝다고 생각해."

"음!"

"검은 그냥 쥔 채로 가만히 있고, 사복검만 움직여 봐."

아서가 눈을 감았다.

사념으로 조종하고 있는지, 사복검의 끝이 위아래로 휙휙 움직였다.

"좋아, 그대로 검을 쥔 손을 들고."

아서의 손이 올라갔다.

"내려치는 동시에 사복검도 움직여!"

부웅!

아서의 검이 내려가고, 그 힘이 관절을 따라 전달되며 사복검의 검 끝이 마침내 강한 궤적을 그리며 내려갔다.

"오! 오오오! 됐어요! 됐어요! 방금 봤죠? 선배님!"

아서가 방방 뛰며 좋아했다. 시몬이 뿌듯하게 웃으며 그의 머리에 손을 툭 얹었다.

"좋았을 때의 감각을 잊지 마. 30회 정도 반복하고 올라와."

"옙!"

부앙!

부아앙!

아서가 열심히 사복검을 휘둘렀고, 시몬은 지하실 계단을 타고 동아리 방에 올라왔다.

스켈레톤을 조립하던 1학년 후배 세 명이 시몬을 반겨주었다.

시몬이 눈을 깜빡였다.

"어쩐지 평소보다 인원이 적네?"

"사샤랑 몰리가 빠져서 그런가 봐요!"

사샤는 에버 키레 사태 이후, 치료를 위해 펜타모니엄에 돌아갔었다. 네크로맨서인 그녀에게 성녀의 정수가 들어왔으니 몸이 받은 충격이 컸으리라.

그리고 몰리는 이번 7군단장 사태 때문에 드레스덴 왕국에 비상이 걸렸다. 왕족으로서 잠시 왕궁에 돌아간 걸로 알고 있다.

똑똑-

그때 마침 동아리실 노크소리가 들렸다. 앞에 앉아 있던 1학년들이 '들어오세요~'하고 말했다.

끼익-

이내 문이 열리자마자 1학년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사샤 왔다!"

"사샤!"

조금 말쑥해진 얼굴의 사샤가 빙긋 웃으며 동기들과 인사를 나누고는 시몬에게 다가왔다.

"몸은 어때? 괜찮아?"

시몬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응. 약간 반발작용 같은 게 일어났다는데, 괜찮은 것 같아. 박사님이 당분간은 무리하지 말래."

"다행이네."

시몬이 크게 안도했다. 그나마 빨리 '수확의 정수'를 빼내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시몬 오빠."

"왜?"

"오빠 혹시."

사샤가 빤히 시몬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백발이었어?"

밑도 끝도 없던 질문에 1학년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시몬은 속으로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호, 혹시 기억나는 건가?'

시몬이 속으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사이, 사샤는 얼굴을 붉힌 채 꿈에서 나온 하얀 머리의 소년을 생각하고 있었다.

중립지대에서 가짜 성녀가 됐을 때 자신을 구해준 그 남자.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꿈속에서 그 흰 머리의 소년이 다시 한번 자신을 구해준 꿈을 꾸었다. 꿈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했다.

사샤는 확신했다.

이번에도 시몬이 자신을 구했다고.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시몬이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을 본 사샤는 생긋 웃으며 시몬을 와락 끌어안았다.

"?!"

지켜보던 동기들이 화를 냈다.

"우와, 치사해! 자기만 안기고!"

"아프면 다냐!"

사샤가 동기들 쪽으로 혀를 빼꼼 내밀었다. 시몬은 쩔쩔매며 그녀를 떼어놓았다.

"흠흠."

그때 뒤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피츠제럴드가 부장 자리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조용히 있어서 있는 줄도 몰랐다. 시몬은 사샤에게 부장에게도 인사하라며 눈짓했고, 그제야 사샤도 피츠제럴드 쪽으로 다가가 인사했다.

"부장님, 복귀했습니다."

"어, 무사해서 다행이다."

피츠제럴드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근엄한 척 말했다. 사샤는 휙 고개를 돌려 동기들에게로 돌아갔고, 시몬이 피츠제럴드의 옆으로 걸어왔다.

"뭐 보고 있어?"

피츠제럴드는 말없이 신문의 첫 면을 보여주었다.

시몬은 또 한 번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완벽분석! 돌아온 배신의 군단장, 그 정체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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