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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654화 (654/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54화

[누구냐.]

마치 타인에게 조금의 관심도 없는 듯한, 차갑기 그지없는 음성이었다.

시몬은 찰나의 시간 동안 말을 고르고는 입을 열었다.

최대한 용건만. 빠르고 짧게.

"저는 키젠에서 온 시몬 폴렌티아라고 합니다! 네프티스 님의 지시로 이곳 칼로스 북부에 왔습니다."

그렇게 말하곤 네프티스의 인장이 찍힌 편지를 공손히 내밀었지만, 투구 속의 안광은 그것을 보지도 않았다.

[나는 외부자의 방문을 허락한 적이 없다.]

펄럭!

대공이 등을 돌리자 붉은 망토가 거칠게 휘날렸다.

[그리고 풋내기 따위를 가르칠 만큼 북부의 상황은 한가하지 않다.]

대공이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비켜라.]

대공이 시몬을 지나쳐 나아가고, 그 뒤를 무수한 팬텀 듀라한들이 뒤따랐다. 시몬은 행군하는 기마들 틈에서 꼼짝달싹도 하지 못하고 전군이 떠날 때까지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어야 했다.

마침내 모든 언데드들이 출격한 뒤, 주위는 덧없는 먼지바람만이 휘잉 하고 휘날렸다.

'후우.'

시몬은 빠르게 멀어지는 대공과 언데드 병사들을 보며 네프티스의 편지를 다시 품에 넣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대면해서 시선을 받아내는 것만으로도 녹초가 되는 기분이었다.

'대단한 박력이다.'

첫 대면은 좋지 않았지만, 시몬은 주눅이 들기는커녕 더더욱 불타올랐다.

북부대공은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가치관을 가졌을까.

오히려 더 궁금해졌다. 어떻게든 저 선배 군단장과 이야기해 보고 싶어졌다.

[크하하! 예상대로 문전박대로군!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소년!]

지켜보던 피어는 오히려 즐거운 듯 웃고 있었다. 시몬도 덩달아 입꼬리를 올렸다.

"만나줄 때까지 땡강 부리고 버텨야죠."

시몬은 대공의 성으로 향했다.

* * *

팬텀 듀라한 부대가 빠져나간 직후라 성문은 열려 있었다. 딱히 경비들이 지키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시몬은 쉽게 내성 안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음.'

그 유명한 인류의 영웅, 북부대공이 머무는 거처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작고 조촐했다.

철저하게 외적을 막아내기 위한 방어용도로 설계된 것 같았는데, 귀족의 주거지라면 필연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는 사치와 유흥에 관련된 시설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 흔한 조각상이나 분수대, 잔디도 보이지 않는다.

건물들도 대부분 무기창고나 식량보관소, 민간인 대피소 등으로 쓰이는 것 같았다.

시몬은 말똥을 밟지 않도록 주의하며 입구에 도착했다. 두꺼운 철문이 열려 있었기에 그 틈으로 쏙 들어갔다.

"실례하겠습니다!"

진눈깨비 휘날리는 밖과는 달리, 실내는 다름 따뜻했다. 모닥불 타들어 가는 소리가 들리고 곳곳에 몬스터들의 털가죽이 깔려 있다.

그리고 성 내부에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퉁명스러운 인상, 고집스러워 보이는 눈썹, 오른팔에는 손 대신 갈고리가 달려 있고 한쪽 눈은 안대를 착용하고 있다. 오래 입어 너덜너덜해진 셔츠 사이로 풍성한 가슴털이 보인다.

"뉘쇼."

남자의 첫 마디였다.

시몬은 정중하게 말했다.

"키젠에서 온 시몬 폴렌티아라고 합니다."

"키젠이 뭐."

시몬은 잠깐 멈칫했다.

지금까지 학생으로 활동하면서 키젠이라는 이름을 밝히면 놀라거나 믿지 않는 사람들만 만나왔는데. 이런 담백한 반응은 새로웠다.

"네프티스 님의 지시로 대공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가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네프티스의 이름이 나와도 심드렁했다.

'역시 북부는 분위기 자체가 다르구나.'

칼로스 북부는 지리적 요인으로 소식이 전해지는 게 느린 건 물론,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도 벅찬 북부인들은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런 관심도, 흥미도 없다.

그래서 북부에서 신분만 믿고 시시덕거리다가 북부인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쫓겨나는 건 흔한 레퍼토리였다.

척박하고 외적이 많은 이곳은 철저한 힘의 논리만이 통용되는 세계. 고귀한 왕족도 북부인들의 눈에는 피하지방이 많아 제대로 뛰지도 못해 밥값 못하는 쓰레기로 보일 뿐이다.

남자는 시몬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썩 미덥지 않은 표정으로 먼지떨이 자루를 들었다.

"대공님은 그리 한가한 분이 아니오. 아마 만나기 힘들 거요."

"그런데 누구신가요?"

"이 성의 집사인 고드릭이오."

저 사람이 집사라고?

당장에라도 전장에 뛰쳐나가 건장한 팔뚝으로 고블린 머리를 아작 낼 전사처럼 보였다.

물론 저 갈고리 손으로는 검을 쥐기 힘들겠지만.

"대공께서 언제쯤 돌아오실지 궁금합니다."

"방금 출정하셨으니, 저녁에는 돌아오실 거요."

"저녁까지 여기서 기다려도 괜찮을까요?"

고드릭이 한숨을 푹 쉬었다.

"기다린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기다려도 만나주진 않을 거요."

"기다리겠습니다."

시몬이 근처의 의자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집사 고드릭은 그러거나 말거나 다른 창가를 청소하러 떠났다.

애초에 대접받을 분위기도 아닌 것 같았기에, 시몬도 멍하니 기다렸다.

기다림의 연속.

두 시간쯤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슬슬 등이 아팠다.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는데.

'응?'

창밖을 보니, 한 여자가 진창길에 빠진 수레를 낑낑거리며 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수레를 이끄는 당나귀가 애를 쓰고는 있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시몬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도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시몬은 스켈레톤들을 꺼내 진창길에 빠진 수레를 빼내 주었다. 여자가 연신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시몬은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살폈다.

북부인은 여성도 체격이 상당히 좋았다. 골격이 다른 건지, 큰 키에 어깨도 넓고 팔도 굵직굵직하다. 긴 앞치마에 머리에는 흰 수건 같은 걸 두르고 있었다.

그녀가 빙긋 웃었다.

"외부인이신가 봐요."

"아, 네. 어떻게 아셨어요?"

그녀가 제 얼굴을 손바닥으로 위아래로 훑어내리는 시늉을 했다.

"얼굴이 말끔하신 게 딱 봐도 귀족 도련님인데요 뭘. 이 동네는 남자가 수염 안 기르면 계집애 같다면서 막 뭐라 하거든요."

"......아하하."

이 동네에 하나같이 털보들이 많은 이유가 있었다.

수염 붙이고 올 걸 그랬다.

"저는 그레이슨이라고 해요."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시몬은 그레이슨과 나란히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움을 준 덕분인지, 그녀는 북부에서 와서 처음으로 시몬에게 우호적으로 대해주는 사람이었다.

수레에 담긴 건 우유였다.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근처에서 순록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 같았다.

시몬은 기다렸다는 듯 그녀에게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았다.

"북부인들의 인정을 받고 싶다고요?"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했다.

"수염?"

"......그거 빼고요."

"하하하! 농담이에요. 음, 글쎄요. 저는 여기서 나고 자라서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거라 외부인에게 설명하기 좀 어렵네요. 으음, 뭐랄까......."

그녀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긍지!"

"긍지요?"

"네! 북부인들은 모두 긍지를 갖고 있거든요."

그녀가 검지를 세웠다.

"수호의 긍지라고 하죠! 내 땅을, 내 가족을, 내 영지를 지킨다! 심지어 갓 태어난 아기도 예외는 아니어서, 한번 쓴 요람은 절대로 바꾸지 않는 관습이 있어요. 갓난아기도 자신의 영역인 요람을 지키라는 거죠."

북부인들은 도망치지 않는다.

그들은 일상이 전쟁이며, 일상과 전투는 떼려야 뗄 수가 없다.

강가에 잠시 빨래를 널러 가더라도, 허리춤에 찬 단검을 뽑고 몬스터와 싸워야 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집에 돌아올 때까지 몬스터 둘 셋은 베고 오는 게 일상.

만약 그들이 숱한 죽음의 위기마다 목숨 걸기를 거절하고 도망쳤다면, 지금의 북부는 유지되지 않았으리라.

나에게 주어진 것을 단호히 지킨다. 그 의무는 오랜 시간 동안 전통으로 내려왔고, 그 의무를 다하는 과정에서 긍지로 발전했다.

수호의 긍지는 북부인들을 단결시켰다.

"북부인들은 한 명 한 명이 '지키는 자'로서 서로의 존중을 받고 있어요. 목숨이 아까워 도망치거나, 지킬 것을 잃고 떠난 자는 겁쟁이라며 손가락질받죠. 하루에도 몇 번이고 목숨을 걸고 긍지를 위해 싸우는 전사들의 입장에선, 돈을 위해 나돌아다니며 북부에 뭐라도 뽑아 먹을 게 있을까 기웃거리는 외부인들이 좋게 보일 리가 없는 거예요."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호의 긍지.'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는 했다.

하지만 당장 외부인인 자신이 어떻게 수호의 긍지를 증명할 수 있을까? 시몬의 고심은 깊어졌다.

* * *

그레이슨과 헤어지고, 시몬은 다시 대공의 성안으로 돌아왔다.

끝없는 기다림의 연속. 집사인 고드릭도 시몬이 뭘 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기에, 시몬은 성을 돌아다니며 구경이나 해보기로 했다.

삐걱삐걱-

오래된 성은 걸을 때마다 낡은 바닥의 나무들이 합창하듯 소리를 냈다. 낡고 오래된 성의 모습에서 북부의 재정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었다.

'오.'

그렇게 걷다보니 역대 북부 대공의 초상화가 한쪽 벽면을 쭉 채운 곳을 발견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흑발이었으며, 억세고 거친 외모에 수염이 풍성했다. 그 막무가내인 북부인들을 통솔할 만큼 매처럼 부리부리한 눈이 인상적이다.

'대공님의 얼굴도 이 사람들과 비슷한 느낌이겠지?'

그때 봤던 대공은 투구를 쓰고 있어서 얼굴을 보지 못했다. 시몬은 성을 돌아다니다가 열린 방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이곳은 대공의 집무실이었다. 사적인 물건은 없었다. 훈련도구를 비롯하여 대공이 사용하는 무기와 갑주들이 주르륵 진열되어 있었다.

갑옷은 똑같은 종류의 새까만 플레이트 아머로 통일해 있는 모습. 매번 같은 디자인의 갑옷만 입는 모양이었다.

시몬이 다가가 투구를 만져보고 있는 그때.

"대공! 크, 큰일! 큰일 났습니다!"

밖에서 소란스러운 외침이 들렸다.

"무슨 일이냐? 대공께서는 방금 출전하셨다."

집사 고드릭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몬도 집무실 밖으로 나가보니, 머리에 눈이 쌓인 전령이 숨을 헐떡이며 보고하고 있었다.

"반즈데일 영지가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침공한 언데드의 숫자는 어림잡아 500마리 이상! 네임드급도 있습니다!"

"500마리라고?"

고드릭의 입이 벌어졌다.

"그 정도 규모의 병력이 움직이는 동안 어떻게 아무도 모를 수가 있나!"

"놈들이 우리가 모르는 루트로 들어온 것 같습니다. 대공과 기사단이 필요합니다!"

"대공께서는 불과 몇 시간 전에 돈드라에 가셨다! 반즈데일이라면 대공의 친척도 계시는 곳이거늘. 우선 대피령을 내려라!"

"반즈데일 사람들이 따를 리가 없잖습니까! 전멸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싸울 겁니다!"

그때였다.

"제가 갈게요."

두 사람의 고개가 위로 향했다.

2층 난간에서 푸른 머리의 소년이 손을 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전령이 벌컥 짜증을 냈다.

"어린놈이 낄 자리가 아닌......!"

"이래 보여도 키젠에서 온 네크로맨서인데요."

시몬은 방금 가져온 대공의 투구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는, 천천히 머리에 써보았다.

마치 원래 그의 투구였던 것처럼 딱 맞았다.

타앗!

시몬이 단숨에 난간에서 뛰어내려 가뿐히 착지했다.

집사와 전령이 움찔하며 비켜섰다.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의 투구 사이로 검푸른 안광이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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