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58화
북부 성으로부터 약 100㎞ 떨어진 거리.
프리몬트 마을.
땀범벅이 된 전사들이 폐허가 된 마을의 언덕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들 모두 극도로 긴장한 얼굴로 숨을 죽인 채 대기하고 있었다.
"놈이 온다!"
쿵! 쿵! 쿵!
지축을 울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뼈가 휑하니 드러난 언데드 코끼리가 고목만 한 코를 치켜든 채 마을로 돌진해 오고 있었다.
"네임드 '식탐자'다!"
마을에서 100마리가 넘는 언데드를 없앴지만, 저 식탐자만큼은 누구도 어쩌질 못하고 있었다. 전사들이 일제히 언덕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활시위를 당겼다.
"쏴!"
쐐애애액!
쐐애액!
화살들이 비처럼 쏟아졌으나, 저 대형 언데드의 몸에는 경미한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오히려 화만 돋운 듯 전사들 쪽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역시 우리 힘만으론 못 이기는 상대야."
"계획대로 간다! 마을 뒤편의 협곡으로 유인해!"
전사들이 빠르게 말을 주고받으며 물러섰고, '식탐자'는 전사들을 뒤쫓았다.
이내 전사들이 언데드를 유인한 곳은 비좁은 협곡.
전사들은 타이밍을 쟤다가 외쳤다.
"대장! 지금이야!"
타앗!
코끼리 언데드가 전사들을 뒤쫓고 있는 사이, 언덕에서 대기하고 있던 남자가 기습적으로 뛰어들었다.
"흐압!"
그가 손에 든 깃발을 치켜들어 정확히 언데드의 이마에 내리찍었다.
퍽! 소리와 함께, 깃발 끝부분이 '식탐자'의 이마에 상처를 냈고 동시에 '식탐자'의 몸부림 때문에 남자는 나가떨어졌다.
쿠당탕탕!
남자가 흙바닥에 거칠게 굴러떨어졌다. 뼈가 부러지고, 날카로운 돌 끝에 베여 허벅지에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그는 히죽 웃었다.
"우...... 리가 이겼다. 이 새끼야!"
'식탐자'가 살벌한 안광을 번뜩이며 쿵쿵 걸어왔다.
아까 깃발이 꽂힌 그의 이마에는 마치 검은 물감으로 '과녁' 표시 같은 게 그려져 있었다. 남자가 소리쳤다.
"다들 엎드려!"
모든 것은 그와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쿠르르르르르르르!
대기가 울부짖고, 산천 수목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세상 거리낄 것 없이 들이받고 보던 '식탐자' 또한 움직임을 멈추었다. 하늘이 갑자기 멍이 든 것처럼 시꺼멓게 물들더니.
쐐애애애액-!
저 멀리서 유성과도 같은 새까만 칠흑의 직선이 쏘아졌다.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시공간이 비틀어지며 검은 선이 훅 하고 다가오는 것만 보일 뿐.
이어지는 건 터져 나오는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폭음과, 해일처럼 솟구치는 흙더미.
시야가 흙으로 뿌옇게 뒤덮이는 가운데, 몇몇 전사들만이 검은 선이 '식탐자'의 이마에 정확히 박히는 것을 보았다.
선은 식탐자의 이마에 적중하다 못해 살을 뚫고 들어갔고 머리 전체에 찌그러진 듯한 거대한 구멍이 났다.
-기이이이이이이이이!
악명높은 '식탐자'가 울부짖었다. 이내 그 거체가 기우뚱하더니.
쿠우우우웅!
흙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바닥에 엎드려 있던 전사들이 고개를 들고 그 모습을 확인하고는, 일제히 환호성을 질러댔다.
"됐다! 됐어! 드디어 식탐자를 쓰러뜨렸다!"
"위대한 대공 각하께 영광을!"
전사들이 무기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리며 대공의 이름을 연호했다. 숨어 있던 마을 사람들도 비로소 안심하며 밖으로 나왔다.
북부에서 또 하나의 승전보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같은 시각.
휘이이이이이잉―
백 킬로미터 넘게 떨어진 내성.
바람에 머리카락 결이 나부끼며, 활을 들어 올린 채 서 있던 대공이 팔을 내렸다.
"자, 잠깐만요! 지금 뭘 하신 거예요?"
"대단한 건 아니니라."
그녀가 입꼬리를 올렸다.
"암살이다."
"......?"
"백 킬로미터 밖의 적을 쏴 맞췄느니라."
시몬이 멍한 표정을 지으며 방금 화살이 날아간 창밖을 보았다.
밖은 그냥 눈 내리는 평범한 마을의 광경이었다.
"과녁이 눈에 보이기는 하는 거예요?"
"그럴 리가. 느꼈을 뿐이다."
그녀가 고개를 까닥했다.
"군단장과도 관련이 있는 내용이니, 바람이나 쐬면서 마저 이야기하지."
* * *
시몬과 대공은 밖으로 나왔다.
시몬은 다소 벌게진 얼굴로 그녀를 힐긋거리고 있었다. 대공이 활을 멘 채 걸어가며 말했다.
"뭐 문제라도 있느냐? 건방진 것."
"아뇨, 그."
시몬이 머쓱하게 옆머리를 긁적였다.
"안 추우세요?"
찬 바람이 쌩쌩 불어닥치는 실외로 나왔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 짧은 훈련복 한 벌만 걸치고 있었다.
"혹한 따위는 북부인의 긍지를 꺾을 수 없느니라."
도무지 북부인들의 문화는 이해할 수 없다고, 시몬은 생각했다. 두 사람은 내성 안에 자라난 커다란 나무 앞에 멈춰섰다.
"한 가지 전제를 두마."
대공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가르칠 수 있는 건 모두 가르치겠지만, 너와 나는 다르다."
그녀가 시몬과 제 가슴을 번갈아 가리켰다.
"모든 군단에는 각자 고유한 개성이 있지. 개인의 성향, 관리자의 능력, 그리고 보유하고 있는 에이션트 언데드에 따라 군단장의 힘은 천차만별이니라."
"그렇겠네요."
"우선은 네가 가진 역량을 파악하고, 이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겠지. 잠시."
그녀가 걸음을 멈추더니, 어깨에 멘 활을 들어 올려 하늘로 겨누었다. 다시 한번 굉음과 함께 화살을 쏘아 보내고는 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 활을 멨다.
"바, 바쁘시네요. 계속 궁금했는데 그 화살은 어떤 원리로 날리시는 건가요?"
"음, 그래.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도 좋겠지."
그녀가 나무 근처의 의자에 앉았다.
"북부에는 '기수'라는 자들이 있느니라."
칼로스 북부에서 '기수(旗手)'란 부대를 이끄는 대장급의 직위다. 대장들을 기수라고 부르는 이유는, 대공의 화살을 유도할 수 있는 깃발을 들고 다니는 권한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전사들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강대한 적이 나타나면, 기수들은 목숨을 걸고 달려들어 적에게 깃발을 꽂는다."
그녀가 자신의 손바닥에 검지를 툭 내려놓는 시늉을 했다.
"깃발에는 내가 사용하는 초소형 언데드가 깃들어 있는데, 그 언데드가 상대의 몸에 과녁처럼 흔적을 남긴다. 나는 이 성에서 머물다가 그 언데드의 존재를 감지한 즉시 언제 어느 때든 그쪽으로 화살을 날리기로 약속했지."
척.
그녀가 새까만 활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이건 2군단의 관리자, '헤이트'가 가진 광풍의 활이니라. 먼 거리의 적도 쏴 맞출 수 있다."
역시 시몬이 가진 파멸의 대검과 비슷한 무기였다.
하지만 시몬이 주목하는 건 다른 부분이었다.
"군단형 언데드의 사념을 느끼고 그곳에 활을 쏘는 건가요?"
"그렇다."
"어, 어디까지 사념을 느끼실 수 있는데요?"
그녀가 활을 내리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다스리는 북부 영지 전역."
북부 대공, '진 아르스칼트'의 군단장으로서의 가장 뚜렷한 개성을 말하자면 극도로 넓은 '범위'였다.
그녀는 자신의 북부 영지에 있는 군단형 소환수의 사념을 느끼는 게 가능하다. 그냥 군단화된 언데드를 퍼뜨려 놓고, 적이 나타나면 그 언데드들 움직여 맞설 수 있었다.
본래 대공의 아르스칼트 가문이 다스리는 영지는 훨씬 넓었지만, 몬스터와 언데드의 공세가 심해진 지금은 그녀의 내성에서 사념이 닿는 범위가 '영토'가 되어버렸다.
'그럼 설마!'
시몬의 입이 벌어졌다.
북부에 오면서 봤던 그 네크로맨서 없이 알아서 움직이던 언데드 병사들. 그 모든 게 대공이 멀리서 원격으로 조종하고 있던 거였다.
놀라운 걸 넘어서 경탄스러웠다. 괜히 사람들이 인류의 영웅이라고 칭송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물론 무한한 힘인 건 아니니라."
그녀가 이마를 만졌다.
"거리가 멀수록 사념도 희미해지고, 언데드에게도 단순 명령만 내릴 수 있지. 그리고 수천의 사념이 계속 들리면 아무리 나라도 미쳐 버리지 않겠느냐. 적당히 조절하기도 한다."
"그, 그래도 대단하네요."
시몬이 탄성을 흘렸다.
"북부를 지키기 위해 별짓을 다 하다 보니 이런 일도 할 수 있게 되더군. 그럼 건방진 것, 네 사념은 어디까지 닿지?"
시몬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눈에 보이는 거리 정도면 거의 닿는 것 같았는데, 아직 정확한 범위를 재보지는 못했어요."
"잘됐느니라. 넓은 북부에서 범위도 체크해 보면 되겠군."
시몬이야 대부분의 시간을 로크섬에서 지냈으니, 먼 거리의 군단형 언데드에게 명령을 내려본 적이 거의 없었다.
단독 부대를 운영해야 할 때는 에이션트 언데드들에 통솔을 맡겼고, 시몬은 피어를 입고 싸우기 바빴다.
그녀는 어쩐지 민망해하는 시몬을 보며 히죽 웃었다.
"너무 조급할 필요는 없느니라. 처한 상황이 달랐을 뿐이니."
시몬은 보유한 대장급 언데드가 많았기에, 지휘 범위보다는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반면 대공이 보유한 에이션트 언데드는 단 두 기뿐이었다. 여기서 더 늘리지 않고, 이들의 가장 효과적인 사용법을 연구했다.
무엇보다 북부의 영지는 넓었고, 여러 전투를 한꺼번에 이겨서 사람들을 지켜야 했다.
손에 닿는 모든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그녀의 집착은 비정상적으로 넓은 능력 범위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나와는 별개로, 네가 더 잘하는 역량이 있겠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또 어딘가로 화살을 쏘고 있었다.
이 와중에도 네임드 언데드를 파괴하여 수많은 북부인들을 구해낸 것이다.
'대단하다.'
그녀와 만나러 북부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된 군단장 선배를 만나는 건 처음.
눈이 확 높아진 기분이었다.
"그럼."
그녀의 질문은 계속되었다.
"컨트롤할 수 있는 최대 언데드의 수는 얼마나 되느냐?"
군단장은 본래 군단형 언데드라면 무한한 수를 컨트롤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 묻는 건 일반 네크로맨서로서 최대 컨트롤 할 수 있는 소환형 언데드의 수였다.
"조금 부끄럽지만...... 이제 아홉 기입니다."
최근 카오스 듀라한을 만들며 역량이 급증해 숫자가 늘긴 했지만, 그녀 앞에서 말하기에는 쑥스러웠다.
"잘하고 있구나."
"네?"
"키젠의 지침이 맞느니라. 컨트롤 가능한 언데드의 수를 늘리는 훈련을 받은 적이 없겠지?"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흑마법을 배운 지 2년도 되지 않은 네크로맨서가 벌써 사념의 한계를 넓히면 멘탈이 흔들리거나 무너질 수 있다는 게 정론이니라. 컨트롤과 지식을 쌓는 데 집중하고, 최대 언데드를 컨트롤할 수 있는 수는 천천히 늘리는 게 좋다. 물론."
그녀가 시몬의 가슴을 가리켰다.
"'우리'들은 조금 예외다."
시몬의 눈이 커졌다.
"보통 네크로맨서라면 사념에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미쳐 버리는 에이션트 언데드를 휘하에 두고, 이미 수많은 군단형 언데드를 다루기도 했지. 의도했건 아니건 군단장의 정신력은 남다르다. 이번 기간 동안 네 최대 컨트롤 가능한 언데드 수를 늘려보도록 하지. 수가 늘어날수록, 군단장으로서의 역량도 커질 것이다."
시몬이 벅찬 가슴을 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크흐흐흐!]
지켜보던 피어의 분신이 히죽 웃었다.
솔직히 언데드의 수를 늘리기엔 이르다. 적어도 3학년 1학기에나 하는 게 정론이지만, 네프티스는 여유롭게 시간을 늘릴 시간이 별로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그녀는 이번 기간 동안, 시몬의 군단장으로서의 커다란 성장을 기대하고 있으리라.
"역량을 파악하는 건 여기까지면 되겠구나."
그녀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실전 테스트이니라. 실력을 간단히 보고 싶은데."
"맡겨주세요!"
시몬이 씩 웃으며 주먹을 맞부딪혔다.
실전.
시몬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분야였다.
"네 관리자에게 말해서 병력을 대기시키도록 하거라."
그녀가 팔을 올리자, 저 멀리서 그녀의 애마와 팬텀 듀라한들이 파도처럼 쏟아져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두 군단의 동반출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