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60화
빌케노스에 무사히 도착했다.
대공과는 내일 아침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이제 시몬은 북부 번화가의 밤거리를 걷고 있었다. 숙소로 잡은 여관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었기에 느긋하게 밤 산책이나 즐기기로 했다.
곳곳에서 술판이 벌어진 모습이다. 하나같이 얼굴이 벌게진 수염 난 아저씨들이 고성방가를 지르며 맥주잔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결투도 숱하게 일어났다. 사실상 이 북부에서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있는 곳이라면 대부분 결투라고 봐도 무방했다. 힘과 용기가 미덕인 이곳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고자 했다.
불만이면 결투, 밥이 맛없어도 결투, 길 가다 부딪혀도 결투.
쇳소리가 깡깡 울려 퍼진다. '그렇지!', '더 밀어붙여!' 구경꾼들의 추임새도 유별나다.
그렇게 북부의 경관을 즐기고 있는 가운데.
"흠, 흥-"
오늘도 에르제베트는 시몬의 옆에 철썩 달라붙어 있었다. 시몬은 걸으면서 그녀를 힐끔 바라보았다.
군단장이 에이션트 언데드의 잠재력을 끌어내 폭발시키는 '게하임'이라는 새로운 기술에 대해 알았다.
하지만 아직 어떻게 그런 기술이 발현하는지는 잘 모른다.
-네 에이션트 언데드들이, 왜 너를 따르려는지 생각해 보거라.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에르제베트는 아버지인 리처드를 흠모했고, 이제는 아들인 자신을 따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쪽에서 그녀에게 줘야 하는 건.......
'으악!'
얼굴이 벌게진 시몬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상대는 언데드였다. 인종의 차이? 종족의 차이? 고작 그 정도가 아니다. 이 생물학적 간극은 도저히 좁힐 수 없었다.
"군단장님?"
에르제베트가 눈동자를 굴려 시몬을 보았다.
"생각이 많아 보이시와요. 무슨 고민이라도?"
"아, 아무것도 아냐."
시몬은 애써 웃어넘겼다.
짧게는 수백 년, 길게는 천 년 이상을 살아온 에이션트 언데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미스테리한 존재다. 특히 군단장과 계약한 에이션트 언데드들은 어딘가 결여된 부분이 있으며,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군단장을 따른다.
'충심의 대가로, 나는 에르제베트에게 뭘 해줄 수 있을까.'
시몬이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사이, 어느새 여관 앞에 도착해 있었다. 에르제베트는 오늘도 와인과 치즈, 과일을 사 왔다.
본인은 먹지도 않지만 둘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즐기려는 것 같았다.
'오늘 밤에 에르제랑 게하임에 대해 이야기해 봐야겠네.'
시몬이 여관의 문고리를 잡아당기려는 그때.
"......."
묘한 이질감을 눈치챈 시몬의 동작이 멈췄다.
잠시 그의 얼굴에 고민이 어리다가, 이내 다시 손잡이를 붙잡았다.
"군단장님."
에르제베트가 굳은 얼굴로 시몬을 불렀다. 시몬은 그저 빙긋 웃으며 문고리를 잡아당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많았다.
북부의 전사들. 하나같이 무기를 든 채 좁은 여관방을 가득 채운 그들은 흉흉한 눈으로 시몬을 노려보고 있었다.
험악한 분위기가 흐른다. 시몬은 태연하게 그들 사이로 걸어갔다. 주방 쪽에는 여관 주인 부부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
아는 얼굴도 있다. 어젯밤 시몬에게 얻어맞고 얼굴이 탱탱 부은 남자가 보였다. 그 옆에는 마찬가지로 시몬에게 맞은 일행들도 섞여 있다.
'보복인가.'
시몬은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재미있는 짓을 저질렀더군. 이방인이여."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떡 하니 앉아 있는 중년 남자가 말했다.
그는 손에 든 맥주잔을 들이켰다. 목울대가 꿀떡꿀떡 움직이고 맥주가 수염을 타고 질질 흘렀다.
이내 한 잔을 다 비운 그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이 녀석이 대장이다.'
범상치 않은 인물이란 걸 시몬은 바로 파악했다.
몬스터의 것으로 보이는 흰 털옷을 입었고, 머리에는 삼각형의 날카로운 동물 귀 같은 게 보인다. 수인과 북부인의 특색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반대쪽 어깨에 기대어둔 깃발.
이 사람, 기수(旗手)였다.
척!
그가 손바닥을 옆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시몬에게 맞았던 바로 그 남자가 어슬렁거리듯 걸어오더니 한쪽 무릎을 꿇고 그의 손바닥에 텁! 하고 제 턱을 올렸다.
"이 친구가 말이야."
꾸욱.
기수가 남자의 턱을 힘주어 붙잡고 흔들었다.
"성격은 더러워도 젊고 가능성이 보여서 내 기수 후계자로 점찍어둔 놈이었거든."
"......."
"그런데 외부인에게, 그것도 곱상한 귀족 놈에게 시비를 걸다가 얻어터졌다고 북부에 소문이 자자하게 퍼져 버렸어."
그의 손바닥이 휙휙 움직일 때마다 남자의 얼굴이 사정없이 흔들리고, 볼살이 우악스럽게 치켜 올라갔다.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었지만 주위의 전사들은 그 어떤 표정 변화도 없었다.
"그래서 기수들 사이에서 내 체면이 말이 아니야."
그가 남자의 턱을 놓는 동시에 발로 복부를 걷어찼다.
우당탕탕!
남자가 여관바닥을 사정없이 구르다가 벽에 부딪혀 멈췄다.
"이럴 수밖에 없는 내 사정을 이해해 주게."
기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털었다. 뽑힌 수염들이 하늘거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끼익. 끼익.
그가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여관바닥에서 소리가 났다. 그는 시몬을 지나치고 계속 걸어서 이내 문밖으로 향했다.
"북부의 명예가 어쩌고, 긍지가 어쩌고 하더니."
우뚝.
기수의 걸음이 멈췄다. 시몬이 빙긋 웃으며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썩 명예로운 방법은 아니네요. 그렇죠?"
이 새끼가!
곳곳에서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설이 쏟아지며 무기가 뽑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몬은 당황한 기색도 없이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전 대공의 손님입니다. 피차 귀찮은 일은 사양이라 이긴 뒤에 자비를 베풀어준 건데, 선의가 이렇게 되돌아오면 저도 조금 짜증 나죠."
기수가 뒤를 돌아보았다.
"......손님이라. 자네가 출전을 앞둔 대공께 들이댔다가 차인 사건은 빌케노스의 모두가 알고 있네만."
하하하-!
곳곳에서 비웃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자네가 정말로 대공의 손님이라고 한들, 바뀌는 건 없을 걸세."
기수가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렸다.
"하룻밤 만에 사라지는 손님이 북부에서 한둘이어야지."
그가 거칠게 아래로 내리긋는 것을 신호로, 여관의 모든 전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시몬에게 달려들었다.
부딪히고 깨지는 소리가 연신 울려 퍼진다.
기수는 끼지 않을 생각인 듯, 부하들에게 처리를 맡기고 밖으로 나갔다.
"출전을 앞두고 계집의 피를 보면 재수가 없으니 살려주겠네."
그가 여관 밖에 서 있던 에르제베트를 보며 말했다.
"주인을 잃은 건 안타깝지만 북부에서는 입을 조심하는 게 좋을 게야."
에르제베트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하며 기수는 걸음을 옮겼다.
"후우."
바람이 찼다.
연고도 모르는 외부에서 온 젊은이를 여기서 묻는 건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별수 없다.
'내 후계자를 쓰러트린 놈이니 실력은 있었겠지만.'
어중간한 힘을 가지고 실력행사를 하니 그런 꼴이 된 거다.
건들거리는 양아치 짓이야 좀 참고 넘어가 주면 될 것을. 기수는 끌끌 혀를 차며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목구멍이 탈 것 같은 강렬한 술이 마시고 싶었다.
대중 거리에서 적당한 주점을 찾아 들어가려는데.
"대장! 대장!"
여관에 있었던 부하 하나가 안색이 파랗게 질려서 뛰어오고 있었다.
"큰일 났어!"
"뭐냐."
부하는 좀처럼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듯 바들바들 떨었다. 뭔가를 막 설명하려는 지 손을 크게 휘젓다가 이내 고개를 세차게 내저으며 소리쳤다.
"일단 와서 봐! 대장 눈으로 직접 봐야 할 것 같다고! 이건!"
"......?"
기수는 부하와 함께 여관으로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여관은 잠잠했다.
'벌써 끝난 건가.'
기수가 깃발을 어깨에 기댄 채 성큼성큼 여관으로 들어갔다.
"이놈들아. 뒷정리는...... 음?"
기수의 눈이 부릅떠졌다.
여관 벽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곳곳에 전사들이 온통 벽에 처박히거나 바닥에 꽂혀 하반신이 축 늘어져 있거나 했다.
소름 끼치는 정적 속에서 앓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그리고.
언덕처럼 수북하게 쌓아놓은 전사들의 몸 위로, 불량하게 다리를 벌리고 앉은 푸른 머리의 소년이 안광을 번뜩이고 있었다.
"왔어요?"
눈이 마주치는 순간, 기수는 전신의 소름이 쫙 돋는 것을 느꼈다.
"이게 어떻게! 네, 네놈은 대체 정체가 뭐냐!"
"대공의 손님이라니까요. 아니."
탁탁.
시몬이 손을 터는 시늉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맹이라고 해둘까."
시몬이 팔을 늘어뜨리며 걸어왔다. 이 와중에 에르제베트는 현기증이 나는 듯 벽에 기대어 있었다. 으흑, 너무 멋있어. 잡아먹고 싶어. 그런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런 쓸모없는 것들!"
바닥에 깃발을 내려놓은 기수가 어깨에 두른 털옷을 벗어 던졌다. 수많은 전투로 단련된 우락부락한 근육이 드러났다.
"후읍!"
그의 몸에서 칠흑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역시 이 남자도 네크로맨서. 전신에서 칠흑으로 이루어진 털이 자라고, 몸이 변화하고 있었다.
'......메타모포시스!'
키젠에서도 이 흑마법에 특화된 학생들이 많았다. 순식간에 칠흑의 털을 휘감은 표범으로 변한 그가 이를 드러냈다.
스르르릉-!
심지어는 오른손에 칠흑을 응집시켜 검의 형태로 뽑아냈다.
"고통 없이 끝내주마."
기수가 여관바닥을 주저앉히며 거칠게 돌진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를 좁힌 그가 시몬을 향해 칠흑의 검을 휘둘렀지만.
콰직!
시몬의 앞에서 뭔가 일자로 번뜩이더니, 그가 휘두른 검이 단번에 두 동강 났다.
'내 칠흑검이!'
시선을 내리자, 바닥에서 기다란 금속으로 이루어진 촉수 같은 게 뻗어 나온 모습이 보였다.
꽈악-!
동시에 성큼 다가온 시몬이 기수의 발등을 강하게 짓밟았다.
"이제 도망 못 가요."
촤르르르륵!
촤르르륵!
뒤로 빼둔 그의 오른팔이 갑자기 무수한 뼈들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비대한 오른팔로 보일 정도로, 시몬의 팔의 몇 배나 되는 규모의 뼈들이 갑옷용 장갑처럼 형성되었다.
<헤비 본 건틀렛>
육중한 팔이 들어 올려지는 걸 본 기수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저걸로 맞으면.
"잠......!"
꽈아아아아아아앙!
시몬의 허리가 비틀어지며 완벽한 풀히트가 들어갔다. 본 건틀렛에 부딪힌 기수가 바닥을 박살 내고 뚫고 들어가 지면까지 파고들었다.
"......대, 대장!"
아직 이성이 있는 전사들, 여관 부부, 마지막에 기수에게 소식을 알리러 들어왔던 부하까지.
이곳에 있는 모두가 그저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죽이진 않았어요."
시몬이 본 건틀렛을 해체하며 말했다. 하나의 장갑이 다수의 스켈레톤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건은 그냥 넘어갈 수 없......."
그렇게 중얼거린 시몬이 고개를 내렸다.
뭔가가 시몬의 복부에 닿아 있었다.
기수의 부하의 눈이 충혈된 듯 시뻘게졌다.
"대, 대, 대장! 당신 진짜 미쳤어?!"
기수가 주먹에 처맞아 내리꽂히는 와중에, 바닥에 떨어진 깃발을 집어서 시몬에게 닿게 한 것이다.
"크. 크크......."
잔해 속에서 벌벌 떨며 기수가 고개를 들었다. 빠진 이빨이 끔찍하게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죽어라. 그냥 죽어버...... 려!"
빠악!
시몬이 발길질로 그의 얼굴을 걷어차 기절시킨 뒤 다시 자신의 몸을 확인했다. 깃털의 끝에 닿은 부위가 마치 과녁처럼 둥근 형태로 변해 있었다.
두근!
전신의 세포가 경고한다.
닭살이 쭉 돋으며 식은땀이 등줄기를 흐른다.
시몬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휘오오오오오오!
검은 밤하늘이 마치 태풍처럼 휘몰아치며 원을 그리고 있었다.
"제기라아아아알! 다들 도망쳐!"
기수의 부하가 밖으로 뛰쳐나가며 외쳤다. 상황 파악을 마친 시몬은 슬쩍 웃으며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렸다.
'이제야 좀 긴장감이 생기네.'
기수들의 역할은 사실상 하나.
자기 목숨을 희생해서라도, '표적'을 정해주는 것.
벌컥!
그리고 대공은 언제든지 이에 응답한다.
끼이이이-!
발케노스 내 성문 꼭대기에서 창문이 열린다.
검은 머리의 여인이 활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