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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661화 (661/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61화

에르제베트는 대공의 능력에 대해 따로 듣지는 못했지만,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지금은 위기라는 사실을.

전신의 털들이 쭈뼛 치솟으며 감각이 활성화된다.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멀리서 들이닥치는 흉악한 힘이 느껴진다.

파스슥-

그녀의 얼굴 피부가 벗겨지고 언데드 특유의 자줏빛 눈동자가 번뜩였다. 이마에도 눈동자가 늘어났다. 인지가 늘어지고, 시간 또한 현저히 느려진다.

주인을 지켜야 한다.

그녀의 소매 안에서 거미줄이 튀어나가 시몬의 앞을 가로막는다. 그와 거의 동시에.

콰지직!

여관 벽이 깨지며, 죽음을 형상화한 듯한 새까만 직선이 시몬에게 쇄도한다. 그녀의 눈으로는 확실히 보이고 있다.

죽음이 시몬에게 인접하는 것을.

스르륵-

시몬의 앞으로 거미줄들이 빈틈없이 펼쳐지고 검은 죽음이 이에 닿는다.

느슨하던 거미줄이 단번에 팽팽하게 당겨진다.

몇 겹의 거미줄을 꼬아 만들었지만, 그것은 다가오는 죽음의 속도를 조금도 늦추지 못하고 있었다.

틱-

거미줄 하나가 끊어진다.

틱-

티틱-

두 줄, 세 줄째 끊어진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반드시!'

키이이이이이잉!

그녀의 모든 눈들이 번뜩인다.

'지켜야 해!'

그녀의 전신에서 검푸른 칠흑들이 폭발하듯 솟구친다. 마치 파도처럼 뻗어나간 칠흑들이 죽음을 가로막는 거미줄에 전달되자, 거미줄의 형태와 색상이 변하며 부피가 부풀어 오른다.

끼기기기긱!

그러자 기적처럼 거미줄의 강도가 높아졌다. 남은 두 줄의 거미줄이 죽음의 속도를 순간적으로 늦추었다.

[하아아아아!]

그녀가 팔을 잡아당겼다. 새롭게 뽑은 거미줄들이 죽음의 화살촉 끝을 그물처럼 휘감아 덮었고, 동시에 시몬의 복부에 그려진 '과녁 표시'에 맞닿는다.

"크윽!"

거의 동시에 시몬이 두 팔로 화살을 붙잡았다. 딛고 있던 여관바닥이 단숨에 콰직! 하고 박살 나며, 날카로운 나무 파편이 튀어 올라 뺨에 붉은 실선을 그렸다.

"크으으으읍!"

시몬이 이를 악물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다행히 에르제베트의 튼튼한 거미줄 덕분에 관통상은 면했다. 이제 힘으로 버텨볼 생각이었으나.

콰콰콰콰콰콰콰콰콰!

출력이 차원이 달랐다.

시몬의 몸이 말릴 새도 없이 밀려 나가기 시작했다. 등으로 여관 벽을 부수고도 계속해서 뒤로 밀려났다. 칠흑을 잔뜩 실어 바닥에 처박은 두 다리가 긴 바퀴 자국을 남겼다.

"주인님!"

패앵-

팽-

위기감을 느낀 에르제베트가 재차 거칠게 두 팔을 휘둘렀다. 그녀로부터 무수한 거미줄들이 쏟아져 나가 시몬의 어깨를 휘감고 등과과 다리를 휘감았다.

끼긱!

이내 그녀가 팔을 잡아당기는 듯한 자세를 취하자, 시몬을 휘감은 거미줄들이 사방으로 퍼뜨려지며 근처의 가까운 북부의 집들을 휘감아 고정했다.

콰콰콰콰콰!

그러나 속도가 조금 줄어들었을 뿐, 시몬의 몸은 끝도 없이 밀려나고 있었다.

에르제베트의 거미줄에 연결된 수십 채들의 주거지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지붕이 벗겨지고, 기둥이 통째로 뽑혀서 끌려 나온다. 사람들의 놀란 아우성이 울려 퍼진다.

근처의 건물이란 건물은 죄다 무너지고 있었다.

'제길!'

뒤늦게 이성을 되찾은 시몬이 입가에서 피를 흘리며 외쳤다.

"피어!"

아공간을 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피어가 튀어나왔다. 피어는 즉각 본아머 형태로 변하여 시몬의 다리와 등 뒤에 집중적으로 착착 들러붙었다.

이내 피어와 시몬이 동시에 힘을 가했다.

콰아아앙! 콰아앙!

시몬이 밀려나며 건물 벽을 연신 등으로 박살을 내며 뻗어나간다. 한 채, 두 채, 세 채, 밀려날 때마다 배경이 계속 바뀐다. 실내로 들어왔다가, 실외가 보이길 반복한다.

시몬이 외쳤다.

"다들 도망쳐요!"

우르르르르!

콰콰콰쾅!

갑작스러운 사태에 난리도 아니었다. 시몬의 몸이 하필이면 야시장 거리로 밀려나는 바람에 몇 번이고 사람들과 부딪힐 뻔했다.

다리가 지면을 움푹 파고 들어간다. 시몬이 이를 악물고 뒤를 돌아보았다.

"!!"

이제 두세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기가 바닥에 철퍼덕 눌러앉아 떽떽거리며 눈과 진흙으로 장난을 치고 있었다.

"도망쳐!"

시몬이 소리쳤지만, 아기는 눈사람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당장 근처에 부모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눈을 질끈 감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칠흑을 일으켰다.

'멈춰, 멈춰, 멈춰, 멈춰!'

군단장의 의지가 일어난다.

피어의 본 아머가 강력하게 활성화되고, 에르제베트의 거미줄이 더욱 팽팽해진다.

'멈춰어어어어어!'

카가가가가가가각!

퍽!

뭔가가 다리에 부딪혀 으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검은 화살의 칠흑이 다한다.

"허억!"

시몬이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허억! 후우! 하아! 하아!"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숨을 헐떡인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아기가 만들던 눈사람이 시몬의 발에 부딪혀 깨져 있었다.

"?"

눈을 깜빡이며 시몬을 올려다보던 아기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이내 으아앙 울음을 터뜨렸다.

"......하, 하하."

시몬은 힘겨운 웃음을 흘리며 우는 아기를 꼬옥 안아주었다.

"미안해, 놀랐지? 친구를 망가뜨려서 정말 미안해."

시몬이 아기의 등을 쓸어주며 사과했다. 뒤늦게 저 멀리서 부모로 보이는 사람들이 눈물 콧물 다 쏟으며 장바구니를 내팽개치고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

털썩!

시몬에게 대공의 화살을 유도한 기수가 얼빠진 얼굴로 바닥에 나자빠졌다.

"......미."

비상식이 일어났다.

산맥만 한 몬스터도 일격에 꿰뚫는 대공의 화살이.

북부 최강의 파괴의 상징이.

"......미친."

막혔다.

그것도 '인간'에게.

그의 바지가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하......."

멍하니 중얼거리던 그의 시야로, 구둣발이 보였다.

뻐억!

이마에 에르제베트의 구둣발이 떨어지는 것으로, 그의 의식은 날아갔다.

* * *

북부와 빌케노스에서는 하루아침 사이 새로운 전설이 생겼다.

일명 '대공의 화살을 막은 소년'.

북부인들은 시몬이 화살을 붙잡고 버티느라 바닥에 생긴 긴 자국을, 마치 성지투어라도 하듯 몇 번이고 돌아보았다.

"정말 기적이야, 기적! 대공님의 화살이 막힌 건 처음 아닌가?"

"그것도 외부인이라더군!"

한 마부가 시몬의 발이 남긴 자국을 지나가려고 하자, 북부인들이 불같이 화를 내며 돌아가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겨울의 정령이 도왔다.

북부의 선조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이번 사태에 여러 말이 오가는 가운데.

'크흡.'

정작 그 전설을 써내려간 장본인은 눈물을 글썽이며 침대에 앓아누워 있었다.

배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군단장님? 아~

에르제베트가 실실 웃으며 떠 먹여주는 죽을 먹고 아침 내내 쉬었다. 그러다 대공의 성으로 출근한 건 정오가 넘어서였다.

"허허허! 북부 전체가 공자님의 이야기로 떠들썩합니다그려!"

성에 들어가니 집사 고드릭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반겨주었다.

처음 왔을 때와는 완전히 태도가 바뀌어 있었다. 부르는 호칭도 극존칭인 '공자님'으로 바뀌었다.

시몬은 옆머리를 긁적이며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그...... 화살 맞고 쓰러진 일이 그렇게 대단한 건가요?"

"물론입니다! 대공의 화살에 맞고도 살아남은 전례가 없으니까요!"

"어머, 괜찮아요? 소문은 들었어요."

날마다 성에 우유를 공급하는 우유장수 그레이슨도 한걸음에 달려왔다. 그녀는 대뜸 우유 한 통을 시몬에게 쥐여주며 헤픈 미소를 지었다.

"뼈 상하진 않았어요? 여기요! 순록우유가 뼈에 그렇게 좋대요."

"자, 잘 먹을게요."

시몬은 우유통을 품에 안고 엉기적거리며 계단을 올라 대공의 집무실 앞에 도착했다. 그가 손등으로 노크했다.

"시몬입니다."

"들어오거라."

문을 여니, 오늘도 낯부끄러운 차림으로 트레이닝 중인 대공이 보였다.

오늘은 아예 물구나무서기 자세에서 손끝으로 전신의 무게를 견디고 있었다. 칠흑이 몸에 휘감겨 있는 걸 보니 무게까지 늘린 모양.

시몬은 자리에 앉아 훈련이 마치기를 기다렸다.

이내 그녀가 훈련을 끝마치고 수건으로 이마를 개운하게 쓸어내린 뒤 히죽 웃었다.

"조용하던 북부가 네놈이 들어온 뒤부터 시끄러워졌군. 전부 네놈 이야기뿐이다."

시몬이 머쓱하게 웃었다.

"자꾸 그렇게 되네요."

"화살에 맞았다던데, 몸은 괜찮느냐?"

"아침엔 죽을 것 같았는데 오후가 되니까 견딜 만해졌어요."

"그렇군."

그녀가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더니 시몬을 향해 턱짓했다.

"?"

시몬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았다.

그리고.

"아!"

입이 벌어졌다.

성 밖의 장대 위에, 시몬에게 대공의 화살을 유도했던 바로 그 '기수'의 머리가 베어져 놓여 있었다.

북부의 까마귀들이 까악 까악 소리를 내며 다가와 머리만 남은 기수의 눈깔을 파먹고 있었다.

"설마 처형을......!"

"그래."

대공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놈은 목을 베었고, 놈의 부하들도 노예로 전락시켜 죽도록 굴리다가 몬스터의 미끼로 쓸 거다."

어쨌거나 시몬 자신은 무사하고 죽은 사람도 없다. 조금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도 싶었지만 대공은 싸늘한 반응이었다.

"지금은 전쟁 중이고, 규율은 무엇보다 중하다."

그녀가 주먹을 꾹 쥐었다.

"북부에서 결투는 오랜 전통이 있는 문화고, 나도 멋대로 싸우도록 내버려 둔다. 하지만 결투에서 진 패자가 추하게 내 화살을 사적인 이유로 유도해?"

쾅!

그녀가 주먹으로 벽을 내리치자 쩌저적 금이 가며 성 전체가 뒤흔들렸다.

"백번 죽어 마땅하다."

기수가 깃발을 꽂으면 대공은 화살을 쏜다.

이는 북부의 절대적이고 지엄한 규칙이며, 지금까지 어떤 기수도 사적인 이유로 깃발을 쓴 적이 없었다.

물론 그녀 또한 화살이 날아갈 방향이 시가지인 걸 눈치채고 적절하게 힘조절은 했으나, 기수를 믿었기에 화살을 보내준 거였다.

그런데 믿음의 결과가 이렇다니, 그녀는 분을 참기 어려운 듯했다.

현재 그녀는 모든 기수들에게 근신 명령을 내린 상태였다. 의자에 걸터앉아 다리를 꼰 그녀가 턱을 괴며 긴 숨을 내뱉었다.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겠지. 네놈도 참여하거라."

"어디에요?"

그녀가 아래를 가리켰다.

"북부의 작전회의."

* * *

대공의 성에는 큼지막하게 마련된 회의장이 있었다.

커다란 원탁 중앙에는 대공이 앉았고, 그 주위에 거리를 두고 다양한 개성 있는 차림새를 한 남자들이 앉아 있었다.

시몬은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 사람들이 장군급이구나.'

북부의 군 체계는 간단히 설명하면 전사, 기수, 장군, 그리고 가장 꼭대기에 대공이 존재한다.

물론 계급 사이 사이에 '상급 전사'라든가, '선임 기수'라든가, 장군 사이에서도 '대장군' 같은 직책도 존재하긴 하지만 크게는 이 세 가지 분류다.

지금 회의실에 모인 모두가 장군급 이상. 부대를 넘어서 군대를 지휘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강하다.'

최근에 상대해 본 기수와는 그 격이 까마득하게 달랐다.

전원 코어를 개방하고 실전에서 구르고 구른 백전노장, 한눈에 봐도 왕국급 강자들이었다.

"이 꼬마는 뭐요?"

회의장에 낯선 소년이 있자, 한 장군이 턱짓했다. 반대편에 앉은 붉은 수염의 장군이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대공의 화살을 막았다는 그 친구인 것 같은데."

"재미있군!"

호기심 어린 시선과, 외부인에 대한 경계감이 반반쯤 느껴진다.

그때 마침 집사 고드릭이 의자 하나를 더 들고 헐레벌떡 다가왔다. 장군 한 명이 인상을 구겼다.

"이보게 고드릭. 북부의 운명을 결정지을 회의에 저 꼬마의 자리도 마련하는 겐가? 화살 좀 빗맞은 것 가지고 무슨......."

"잡담은 다 했느냐."

대공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하자, 장군들이 긴장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의자를 가져오는 고드릭을 향해 손짓했다.

드르륵.

시몬은 회의에 참여해 원탁에 앉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

심지어 대공의 바로 옆자리였다.

몇몇 장군들의 심술과 질투 섞인 시선이 시몬에게로 향했다. 못마땅한 듯 쯧 하고 혀를 차는 장군도 있었다.

"대공, 그 아이는 누굽니까."

북부에서 대공 다음의 권력자, 대장군 가니로가 물었다.

"아, 이 녀석?"

대공이 친근하게 시몬의 목에 팔을 두르며, 보란 듯이 자신 쪽으로 당겼다.

"다들 깍듯이 인사하도록. 이번에 들인 내 제자다."

제자라는 말에 장군들의 입이 벌어졌다.

대공 진 아르스칼트는 결코 사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제자라니?

시몬이 부끄러움에 버둥거리자, 대공은 큭큭 웃으며 시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아이가 이번 계획에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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