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67화
앞이 제대로 분간이 되는 건 한참을 지나서였다.
폭발로 일어난 구름이 옅어지자, 시몬은 혼이 나간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고고고고고고―!
시체폭발에 직격한 '셋째'의 몸이 보인다. 제일 먼저 하반신의 긴 다리가 보이고, 엉덩이 위로부터는 아직도 상체 전체가 시꺼먼 연기 속에 뒤덮여 있었다.
'설마.'
시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방금 그걸로도 못 잡은 거야?'
프린스의 시체폭발로도 쓰러트리지 못한다면, 애초에 지금 시몬의 역량으로는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시몬이 군단에 일단 물러나라는 지시를 보내려고 하는데.
[크흐흐! 제대로 봐라, 소년.]
"네?"
시몬의 눈이 부릅떠졌다. 협곡에서 불어온 바람이 자욱한 연기를 밀어내자, 비로소 셋째의 상반신이 통째로 날아가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남은 것은 바닥에 박힌 두 다리뿐이었다.
기우뚱-
무게 중심을 잃은 두 다리가 풀썩 쓰러진다.
얼마나 강력한 폭발인지, 거대한 상체는 흔적도 남지 않았다.
셋째가 파괴됐다.
그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자신들을 지배하던 하이브 개체가 사라지자, 주위의 언데드들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기리리리리!
-끄르륵!
고장이 난 것처럼 제자리에 멈춰 있는 것들, 가장 원초적인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것들, 제약에서 풀려나 산으로 도망치는 것들, 근처의 다른 언데드를 물어뜯는 것들.
지휘체계가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셋째가 사라진 지금이 기회다! 소년!]
피어가 외쳤다.
[북신이 다시 병력의 지휘권을 가져오기 전에 제압해야 한다!]
"네!"
시몬이 군단에 돌격 명령을 내렸다.
휘청-
그런데 이번에는 시몬의 머리가 핑그르르 돌았다. 온몸이 진이 다 빠진 듯 후들거리고, 전신에 칠흑이 텅 비어버렸다는 것을 자각했다.
'아, 이거.'
카오스 듀라한을 썼을 때보다 더한 탈력감.
시몬의 의식이 흐릿해졌다.
'함부로 쓰는 기술이 아니구나.'
털썩!
[소년! 괜찮나? 소년!]
* * *
그 뒤로 시몬이 정신을 차린 건, 자그마치 다섯 시간이 지난 뒤였다.
적의 규모가 워낙 많았기에 셋째를 파괴한 뒤에도 전투는 계속되고 있었다. 북신의 언데드들은 지휘체계가 마비되어 전술적 움직임을 보이지는 못했지만, 공격에 따른 반격은 했다.
시몬이 정신을 잃은 동안 지휘는 피어가 맡았다.
적진 깊숙이 파고든 에르제베트가 거미줄을 움직여 수많은 언데드들을 한 번에 도륙했고, 아케뮤스와 헤르세바는 하늘을 날아다니며 네임드 언데드들을 무력화시켰다.
그렇게 시몬이 몸에 힘이 붙어 일어설 즈음.
[걱정했사와요! 군단장님!]
[승전 감축드립니다. 도련님.]
전투는 끝나 있었다.
북신의 세 개의 축 중 하나인 '셋째', 그리고 그가 이끄는 언데드 병력은 전멸.
몇몇 쓸모 있는 네임드들이나 언데드는 피어가 일일이 돌아다니며 군단에 편입시켰다.
"뭔가, 자고 일어나니 못 본 얼굴들이 많아졌네요."
무려 스무 기의 네임드 언데드들이 시몬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그중에 가장 먼저 손에 넣었던 '미식가'는 아직도 멀쩡한 모습이었다.
[꼬맹아, 프린스는?]
헤르세바가 시몬의 어깨에 내려앉으며 물었다.
"여기서 올 여력이 없나 봐. 나처럼 완전히 퍼진 것 같아."
시몬에 쓰게 웃으며 반지를 낀 손을 툭툭 두들겼지만 반응이 없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아주 좋은 성과다! 이걸로 7군단의 전력이 대폭 상승했군!]
"피어."
시몬이 그를 올려다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아버지도 프린스의 시체폭발을 쓴 적이 있었죠?"
[크흐흐! 눈치챘군. 사실 프린스가 다시 7군단에 들어오는 조건으로, 자신의 시체폭발에 대해 절대로 네게 이야기하지 말라는 조항을 붙였다. 그래서 입 다물고 있었을 뿐이다.]
프린스가 그렇게까지 했었다니.
하지만 프린스도 이번에 계속 셋째에게 밀리다 보니, 내가 쓰러지더라도 이겨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아직 모든 조건을 완전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런 프린스의 의지가 시체폭발의 중요한 키라는 건 확실했다.
피어가 클클 웃었다.
[내가 봤을 때, 리처드가 쓴 프린스의 시체폭발보다 화력의 기댓값이 훨씬 크다.]
"정말인가요?"
[그래. 리처드가 쓴 것과는 궤가 달라. 아직도 더 강한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여지가 보인다!]
피어가 제 두개골에 손을 올렸다.
'아직은 섣부른 추측이겠지만, 어쩌면 시체폭발이 '게하임'의 형태로 발현했을지도 모르겠군.'
* * *
전쟁이 끝났다.
가장 먼저 빠르게 삼형제 중 하나를 잡은 시몬은 병력을 수습해 북부의 수도 빌케노스로 돌아왔다.
아케뮤스가 남아서 이번에 붙잡은 네임드들을 관리하고, 전투의 뒷수습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대공과 장군들은 이겼을까?'
시몬이 셋째를 잡았지만, 첫째나 둘째 둘 중 하나라도 살아남으면 북신 공략에 큰 차질이 생기게 된다.
시몬이 참을성을 가지고 내성에서 집사 고드릭과 함께 기다리고 있는데.
-보고입니다!
전령이 뛰어들어왔다. 시몬과 고드릭이 동시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고, 성의 식솔들도 고개를 내밀었다.
-대승! 대승입니다! 혈전 끝에 대공의 화살이 '첫째'의 미간을 꿰뚫었고, 2군단의 언데드 기사들이 '둘째'의 목을 베었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보고를 듣는 모두가 두 팔을 번쩍 들며 함성을 부르짖었다. 고드릭은 그대로 풀썩 무릎을 꿇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주군! 보고 계십니까? 우리 아가씨께서 해냈습니다! 주구우우우운!"
시몬도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하고 있는데, 한 식솔이 흥분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갔다. 그는 단걸음에 내성의 꼭대기로 올라가 뿔피리를 불었다.
뿌우우우우 뿌우우우-!
특정한 박자로 계속해서 뿔피리를 불었다. 그러자 빌케노스 도시 곳곳에서.
뿌우우우우 뿌우우우-!
뿌우우우우 뿌우우우-!
똑같은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멀리서 떠들썩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북부인들이 문을 박차고 거리로 뛰어나와 얼싸안았다.
"삼형제가 죽었다!"
"대공께서 승리하셨다!"
승전 소식이 칼로스 북부를 뜨겁게 달궜다.
그렇게 시간이 더 지나서 대공과 대장군의 병력이 귀환했다.
사람들은 빼곡하게 모여들어 그들의 귀환을 환영했다. 꽃잎이 바람결에 휘날려 바닥에 떨어졌다.
군의 가장 앞에는, 검은 갑옷 차림에 사령마에 탄 대공이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이내 그들이 성에 도착했다. 그녀가 말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대공 각하! 대승을 감축드리옵니다!"
"감축드립니다!"
전사들과 식솔들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절그럭! 절그럭!
걸음마다 갑옷의 접합부가 흔들리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내 그녀가 집무실의 문을 열었다.
휘이이이잉-!
집무실에 열린 무수한 창문 사이로 바람이 불어와 휘몰아친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서 태연하게 차가운 얼음 차를 마시는 푸른 머리의 소년이 보인다.
"아."
소년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몸을 일으켰다.
"오셨습니까."
스르륵.
대공이 투구를 벗었다. 풍성한 검은 머리가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희뿌연 얼굴이 보인다.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건방진 것."
"그냥 웃기만 했을 뿐인데요."
"아직 좋아하기는 이르니라."
"네, 이제 한 걸음 남았네요."
시몬이 근사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학교에 돌아가기 전까지, 반드시 북부의 해방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그녀가 푸핫 웃으며 다가왔다.
"그리 건방지니 건방지다고 하는 것이니라. 건방진 것."
그러고는 시몬의 손을 강한 힘으로 꾹 붙잡았다.
서로를 바라보는 두 군단장의 눈에 강한 신뢰감이 깃들었다.
* * *
혹한이 심해져서 대공과 인간들은 돌아오고, 에이션트 언데드인 헤이트와 팬텀 듀라한들은 프로스트 필드에 남았다.
언데드는 식량이나 보급이 필요 없다. 이제 삼형제가 없는 텅 빈 프로스트 필드를 조사해 북신이 머무르는 '어비스'로 향하는 길목을 찾아낼 것이다.
길을 알아내는 즉시, 모든 병력이 북신을 향해 나아가기로 했다.
물론 그 전에.
"마시자! 오늘만큼은 마시고 죽자!"
"오오오오오!"
대공의 성에서 승전파티가 열렸다. 북부에서 내로라하는 장군들과 베테랑 기수들, 그리고 각 분야에서 북부를 지탱하는 거물들이 모두 모여 즐겼다.
하하하하!
북부답게 품위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테이블에 한가득 음식을 쌓아놓고, 맥주를 들고 자기 머리에 퍼붓거나, 닭 다리를 쥐고 질겅질겅 씹으며 걷거나, 툭 하면 다 함께 노래를 부르고 엉덩이를 흔들며 춤추었다.
술김에 얼굴에 벌게진 전사들이 바닥을 뒹굴어대고, 바지를 내린 채 해괴한 포즈로 다녀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곳곳에서 토마토가 날아다니고 얼굴에 음식이 잔뜩 묻어도 큰 소리로 껄껄 웃어댄다.
"오늘에야말로 승부를 내야지!"
"아하하! 마침 딱 7승 7패 아닌가?"
밖에는 결투가 한창이었다. 음주 후 결투는 금지지만, 대공이 오늘 하루만큼은 무기 없이 다투는 것 정도는 허용해 주었다.
승자는 커다란 환호성을 받으며 성으로 돌아왔고, 패자는 코피를 줄줄 흘리고 이빨 하나가 빠졌지만 뭐가 그리 좋은지 낄낄 웃어댔다.
'......그다지 끼고 싶지는 않네.'
시몬은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맥주만 홀짝이고 있었다. 조용히 혼자 있고 싶었지만, 시몬도 화제의 인물이었기에 온갖 사람들이 말을 걸어왔다.
일절 사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않던 북부대공이 삼은 유일한 제자.
거기에 북부에 온 첫날부터 기수 후보를 두들겨 패고, 둘째 날에는 기수까지 패다가 깃발에 맞았지만 대공의 화살을 맞고도 살아남은 소년이다.
물론 사람들이 모르는 이면에는 셋째를 잡은 기록까지 세웠지만, 그런 것까지 알면 곤란했다.
"수염 없이 매끄럽고 반반한 얼굴도 나쁘지 않은데."
"귀엽네. 누나랑 같이 여관이나 갈래?"
여전사들이 가끔 추파를 던지곤 했다. 북부인들은 의사표시가 무척이나 직설적이었기에, 시몬은 얼굴만 벌게지며 낯선 문화에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다.
"그런데 오늘의 주인공께서는 왜 안 나오시나?"
"고리타분한 갑옷 말고 드레스 같은 거 쫙 빼입고 오셨으면 좋겠는데."
"하하하하하하! 보나 마나 갑옷 차림으로 오시겠지!"
전사들이 킬킬거리며 집무실 쪽을 보았다.
그때 마침.
쾅!
집무실 문이 열리며 대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오!"
드레스는 아니더라도 깔끔한 검정 제복을 입고 내려오는 모습.
이곳에 있던 모든 전사의 시선이 단번에 빼앗겼다.
저벅 저벅.
무표정한 얼굴로 계단을 내려오는 대공의 동작에는 절도가 있었다. 걸음 하나하나에 일말의 군더더기도 없었다.
계단을 내려와 부하들을 쭉 둘러본 그녀가 손을 들어 올렸다.
착!
집사 고드릭이 기다렸다는 듯 와인잔을 건네주었다.
"긍지 높은 북부인들이여!"
그녀가 잔을 들어 올렸다. 모든 전사들이 술기운이 싹 가셨는지 굳은 얼굴로 절도 있게 잔을 높였다.
"명예로운 조력자들이여!"
그녀가 시몬을 보았다. 시몬도 웃으며 잔을 들었다.
"기념할 만한 승리다! 북신이 소멸하기까지 단 한 걸음 앞이니라.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터전을, 북부를 해방시킬 것이다!"
오오오!
"다음 출전에는 더 많은 피를 흘리겠지. 하지만 우리는 나아갈 것이다!"
와아아아아아!
"우리 대에서 이 증오의 사슬을 끊고, 우리의 아이들에게 평화로운 북부 터전을 선물할 것이다! 그것이 이 땅에 살아온 수많은 조상들의 숙원이니라!"
그녀가 잔을 끝까지 드높였다.
"건배."
건배!
모든 사람들이 잔을 들이켰다. 대공도 마찬가지였다.
"대, 대공!"
와인을 원샷하는 모습을 보며 고드릭이 덜덜 팔을 떠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은 왜 저러나 싶은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크흫. 후후."
시몬은 술에 벌게진 대공을 어깨동무한 채 집무실로 데려가고 있었다.
'그 유명한 북부 대공이 술에 약하다니.'
"이거 놓거라! 건방진 것! 나는 아직 더 마실 수 있느니라!"
정확히 아까 그 와인 한 잔만 마시고 저렇게 됐다. 딸꾹질하는 그녀를 끌고 집무실에 들어온 시몬이 일단 대공을 소파에 눕혔다.
"하아. 일단 좀 쉬세요."
힘들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낸 시몬이 뒤늦게 책상을 보았다.
"?"
선반 위에 네프티스의 편지가 그대로 있었다. 시몬이 깜짝 놀라서 말했다.
"아니! 이거 아직도 안 읽어봤어요?"
"멍청한 것. 내용이야 뻔하지 않느냐."
술기운에 얼굴이 벌게진 그녀가 손을 휘저었다.
"그리고 내가 그 마녀의 세 치 혀에 당한 게 어딜 한두 번인 줄 아느냐."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네프티스 님이 보낸 건데 읽어는 보셔야죠!"
"알겠다. 알겠다."
고드릭이 말하길, 대공은 의무 때문에 하루에 정해진 루틴을 정확히 수행할 뿐이지, 기본적으로는 게으른 인간이라고 했다.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그녀를 알아갈수록 그 말이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몬은 소파 위에서 눈이 감기려는 그녀에게 담요를 덮어주고는 그 위에 편지를 내려놓았다.
"꼭 읽어요!"
문을 닫기 전, 시몬이 고개를 빼꼼 내밀며 그렇게 말하고는 문을 닫고 나갔다. 그녀는 몸을 돌려 멍한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툭-
몸을 돌리다 네프티스의 편지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가 만사 귀찮은 표정으로 곯아떨어지려는데.
-그래도 네프티스 님이 보낸 건데 읽어는 보셔야죠!
그녀가 하는 수 없이 한숨을 푹 쉬고는 편지를 들었다. 그러고는 대강 봉인을 뜯고 편지를 펼쳤다.
"......."
졸린 눈으로 글을 읽어가던 그녀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표정이 점점 굳어지다 못해 심각해졌다. 이내 편지를 다 읽을 즘에는 어딘가 넋이 나간 얼굴로 시몬이 나간 문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팔이 파르르 떨렸다.
"설마......."
그녀는 눈이 벌게질 만큼 힘을 주고는 다시 한번 편지를 확인했다.
"건방진 것, 저 녀석이......!"
네프티스가 보낸 편지 내용은 단 한 줄이었다.
「시몬은 요나의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