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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669화 (669/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69화

"아무래도 침실로 드셔야 할 것 같아요."

"뭐라......?"

아무래도 이 녀석은, 정말로 요나의 아들이 확실했다.

대공이 불쾌한 듯 인상을 확 구겼다.

"건방진 것, 보자 보자 하니 머리끝까지 기어오르는구나!"

그녀의 목청이 높아졌다.

"아무리 내가 술을 마셔서 약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들 침실을 운운해? 이 얼마나......!"

잠시 후.

그녀는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시몬이 이불을 사려 깊게 덮어주고는 빙긋 웃었다.

"그럼 편히 쉬세요. 밖에 사람들에게는 제가 말 잘해놓을게요."

타악.

시몬은 아무 짓도 하지 않고 문을 닫고 나갔다.

그녀는 묘하게 얼어붙은 표정으로 제 턱을 짚었다.

"요나의 아들이...... 맞나?"

* * *

술 취한 대공을 침실까지 데려다준 시몬은 다소 피곤한 얼굴로 앞머리를 매만지며 연회장으로 돌아왔다.

북부인들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대공이 떠났으니, 파티 분위기는 더더욱 개판이 되어가고 있었다.

벽에 도끼나 칼이 꽂혀 있는 모습이 보인다. 술에 떡이 되어 늘어져 있거나, 와인이 든 오크통에 얼굴을 처박은 채 자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첫째의 머리에 깃발을 꽂은 건 나다!"

라고 하면서 의자를 붕붕 흔들던 남자가, 옆에 서 있던 애꿎은 장군의 이마를 강타했다. 장군이 스르릉 검을 뽑는 모습이 보인다.

그렇게 만취한 북부인들을 지켜보던 시몬은.

"......."

이 파티에서 유난히 겉도는 사람을 한 명 발견했다.

그는 이 파티가 불편해 보였다. 가시방석에 앉은 듯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는데, 북부에는 보기 드문 마른 체구에 안경을 쓴 남자였다. 주위의 전사들은 그를 본체만체하거나 혹은 대놓고 경멸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시몬 같은 외부인인 모양이다.

"!"

그때 시몬과 그의 눈이 마주쳤다. 안경남이 갑자기 함박웃음을 지었다.

"?"

이번엔 지그시 아이컨택까지. 웃음은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 이내 시몬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그가 시몬에게 인사를 했다. 몇몇 북부인들의 살벌한 시선이 시몬에게 옮겨붙는 게 느껴졌다.

"아, 네. 안녕하세요."

그렇다고 한들, 건네오는 인사를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키젠에서 온 시몬 폴렌티아 학생 맞으시죠?"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아하하, 어떻게 알긴요! 현역 키젠 학생회장을 모를 리가 있나요."

이럴 수가.

이 사람 정말 외부인이 맞았다.

북부에서는 북부 밖의 신분이나 직위 같은 건 전혀 쳐주지 않으니까.

"여기."

그때 남자가 은밀한 동작으로 시몬에게 편지를 건네고는, 숨죽인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주인께서 보내신 겁니다. 꼭 좀 읽어봐 주십시오. 그, 그럼 저는 이만."

그가 북부인들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굽신거리며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시몬은 품에서 편지를 만지작거렸다.

'주인이 보냈다고?'

편지 겉면에 인장이 만져진다.

귀족이 보낸 것 같은데.

손가락으로 겉면을 슬슬 훑어서 인장의 생김새를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았지만 시몬이 아는 귀족들의 문장 중에서는 겹친 게 없었다.

'음.'

시몬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 * *

"건방진 것!"

벌컥!

파티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 때에, 갑자기 침실문이 열리며 훈련복 차림의 대공이 소리 질렀다.

"역시 지금 대답을 들어야겠다! 어디 있느냐?"

잠이 오지 않았다.

이야기하려면 지금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당장 올라오거라! 너의 아버지에 대해 물을 게 있다!"

그녀가 소란을 피우자 전사들의 시선이 모두 그쪽으로 향했다.

"오우."

술기운에 붉어져 있던 북부인들의 얼굴이 더더욱 붉어졌다.

"역시 대공!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지옥 끝까지라도 따라가겠습니다!"

갑자기 전사들의 충성심이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한 노년 전사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크흡! 아가씨께서 쪼끄마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정말 숙녀가 되셨습......!"

우드득!

그녀가 맨손으로 벽면의 자제를 뜯어내더니 냅다 던져 버렸다. 정면으로 얻어맞은 전사 한 명이 코에서 피를 뿜으며 나뒹굴었다.

"다 뒈지고 싶더냐."

전사들이 술이 확 달아난 얼굴로 기립자세를 취했다.

"고드릭! 내 제자는 어디 있느냐!"

"아, 대공."

집사 고드릭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밖으로 나간 것 같습니다. '그자'의 하인에게 뭔가를 건네받는 걸 보았습니다."

대공이 인상이 굳어졌다.

"뭐라?"

* * *

성 밖으로 빠져나온 시몬은 편지에 적힌 주소로 걸어가고 있었다.

<시몬 폴렌티아 경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북부의 비밀에 대한 내용입니다. 조용한 장소에서 이야기하시죠. 토링던 볼드몬트 드림.>

어차피 시간이 많이 남았다. 무기가 날아다니는 연회장에 있다가는 목숨이 두 개라도 모자랄 것 같았기에, 시몬은 자신을 찾는 그 사람을 만나보기로 했다.

목적지는 대공의 성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위치한 널찍한 저택.

호화로움만 따진다면 대공의 성보다 훨씬 더 좋았다. 곳곳에 경비들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는데 깔끔하게 면도한 얼굴에 좋은 갑옷을 입었다. 북부인들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볼드몬트 백작가에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용무로 오셨습니까."

시몬이 다가오자 두 명의 경비가 창을 교차한 채 정중하게 물었다.

'백작가였네.'

시몬은 말없이 편지를 내밀었다. 편지에 붙어 있는 인장을 본 그들이 창을 내리고 몸을 숙여 인사했다.

"들어가시죠."

시몬이 정원으로 발을 들여놓기 무섭게, 한 무리의 집사들과 하인들이 일제히 허리를 꺾어 인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백작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북부에 와서는 처음 받아보는 융숭한 대접이었기에, 시몬은 괜히 쑥스러워졌다.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보통 백작이라면 한 영지의 영주다. 그런데 칼로스 북부는 진 아르스칼트 대공의 확고한 영토고, 백작이나 되는 귀족이 따로 대저택까지 세우고 들어와 있을 이유가 없다.

'만나보면 알겠지.'

시몬이 편지를 품고 넣고 집사들의 안내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백작님. 시몬 폴렌티아 경께서 방문하셨습니다."

"응, 들어오시라고 해."

쾌활한 목소리가 들린다.

문이 열리고, 시몬은 안으로 들어갔다.

무척이나 잘 꾸며진 실내, 곳곳에 화분이 있고 벽에는 값비싼 명화들이 걸려 있다. 한쪽에는 고서들이 꽂혀 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유쾌하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남자.

'생각보다 어리다.'

머리까진 배불뚝이 아저씨를 생각하고 왔는데 생각보다 앳된 얼굴. 시몬과 같은 연령대거나 한두 살 정도 많아 보였다.

시몬은 제왕학 시간 때 배운 칼로스의 예법에 따라 인사했다.

"볼드몬트 백작님을 뵙습......."

"아. 그렇게 예를 차릴 필요 없어. 앉아, 앉아."

백작이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뭐라도 마실래? 따뜻한 차? 아니면 음료나 와인?"

"그러면 차로 부탁드립니다."

시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열리고 하인이 카트를 끌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은 그 뒤에 카트를 붙잡은 하인들이 몇 명이나 대기하고 있는 걸 보고 놀랐다.

하인이 찻잔을 시몬의 테이블 앞에 내려놓고 공손하게 따라주었다. 생동감 넘치는 주황색이었는데, 살짝 과일향이 났다.

시몬은 그것을 들고 한 모금 마셔보았다.

'오.'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맛있었다. 북부의 씁쓰레한 냉차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다.

"입맛에 맞는 것 같아 다행이네."

시몬이 달달한 차를 홀짝거리고 있자, 볼드몬트 백작이 웃으며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올해로 몇 살이야?"

백작씩이나 되는 귀족이 묻기엔 다소 뜬금없는 질문.

시몬은 찻잔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18살입니다."

"아, 그럼 뭐 친구나 다름없네! 내가 한 살 더 많긴 한데, 그냥 서로 말 편하게 하자. 좋지?"

"하지만......."

"괜찮다니까."

볼드몬트 백작이 말을 편하게 해달라고 계속 조르는 바람에, 시몬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시몬이 준비된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슬슬 나를 부른 이유가 궁금한데."

"그야 정말 만나고 싶었으니까!"

백작이 눈을 빛냈다.

"키젠 학생이! 그것도 학생회장이 북부에 올 줄은 몰랐어. 진짜 2학년에 학생회장인 거야? 대단하네!"

시몬의 눈이 진지해졌다.

이곳에 온 이유 중 가장 큰 이유.

"내가 시몬 폴렌티아고, 학생회장인 건 어떻게 알았어?"

시몬은 특별수업으로 칼로스 북부에 파견 와 있다.

시몬의 이름과 신분을 모두 정확히 아는 사람은 대공이나 집사 고드릭 같은 몇몇 대공의 관계자들뿐이다. 나머지는 그냥 시몬을 '제자'나 '외부인'으로 부를 뿐이다.

그런데 자신의 정체를 정확히 아는 자들이 불쑥 나타나서 만나자고 한다. 시몬은 간단히 넘어갈 수 없었다.

"그냥, 친구에게 들었지."

볼드몬트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시몬은 대공의 인사 중에 볼드몬트 백작과 긴밀하게 연결된 사람이 있다는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보다! 키젠 이야기 좀 들려주지 않을래?"

볼드몬트 백작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난 가문의 가정 교육만 받아와서 네크로맨서 학교가 어떤 곳인지 정말 궁금해! 로망이 있거든! 정말 애들을 섬에 가둬놓고 서로 싸우게 시켜?"

"그런 것도 있긴 해."

시몬은 간단한 키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볼드몬트 백작은 무척이나 만족스러워했다. 특히 암흑제 이야기를 해주었을 때는 와- 하고 탄성을 지르며 손뼉까지 쳤다.

"아, 진짜 재밌겠네."

볼드몬트 백작이 아련한 눈으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나도 가문의 일만 아니면 네크로맨서 학교에 들어갔었을 거야."

"사실 그거 궁금했는데."

시몬이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칼로스 북부는 대공의 영지잖아. 왜 볼드몬트 가문이 여기 와 있는 거야?"

백작은 올 게 왔다는 듯 쓰게 웃었다. 그러곤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나는 감시자야."

왕국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칼로스 왕국에서 '대공'이라는 직위는 해당 영지에서 왕과 동등한 존재다.

현재의 4왕국 체계가 자리잡히기 전, 북부는 칼로스에 속해 있지 않은 독립된 지역이었다. 아르스칼트 가문은 사실상 북부를 지배하는 국왕이었다.

칼로스는 북부 영지를 어떻게든 합병하고 싶었지만, 전쟁을 일으켜 북부를 빼앗기에는 메리트에 비해 리스크가 지독하게 컸다.

빼앗는다고 한들 밀려드는 몬스터와 언데드는 어떻게 막을 것이며, 어떤 귀족이 북부의 촌락까지 기어들어 가서 싸우겠다고 하겠는가. 무엇보다 그 어떤 귀족도 아르스칼트 가문처럼 북부를 완벽하게 지켜낼 역량이 없었다.

결국 칼로스 왕국은, 아르스칼트 가문에게 지역 내에서는 왕과 동등한 '대공' 직위를 제안했다. 사실상 영토만 칼로스 왕국으로 색칠하는 느낌이고 북부의 온전한 지휘권은 대공이 쥐는 셈이다.

물론 합병을 진행해 준다면 왕국에서는 남부의 비옥한 땅에서 나오는 식량을 사계절 내내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당시 극도의 식량난으로 어려워하던 아르스칼트의 가주는, 주민들이 굶어 죽어가는 꼴을 참다못해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칼로스로 들어갔다.

"하지만 칼로스의 귀족들은 늘 북부의 군사력을 두려워했어."

볼드몬트 백작이 말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있기를 원했지. 그게 바로-"

"감시자구나."

시몬이 맞장구를 쳐주자 볼드몬트 백작은 눈에 띄게 좋아했다.

"맞아! 백작 이상의 가문이 북부에 직접 주둔하고, 북부의 지원과 감시를 맡는 거지."

"......음, 다른 가문들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아 할 것 같은데."

"사실 그래."

자기 영지를 다스리고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백작들 중에서, 어느 누가 이 험난한 북부에 오려고 하겠는가. 북부의 감시자는 사실상 중앙 정치전에서 패배한 귀족들의 유배지와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자원했어."

볼드몬트 백작이 손에 깍지를 끼며 눈을 빛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내가 백작이 된 순간부터, 국왕 폐하께 우리 볼드몬트 가문이 북부의 감시자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부탁드렸지."

"...어째서?"

"여긴 기회의 땅이야! 다들 뭘 모르니까 유배지니 뭐니 떠드는 거야."

입꼬리가 올라가며, 볼드몬트 백작의 가면이 순간적으로 벗겨졌다.

"사실 북부엔 숨겨진 비밀이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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