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74화
드디어 2군단의 관리자, '헤이트'가 빌케노스로 돌아왔다.
함께 움직였던 팬텀 듀라한의 수는 꽤 줄어 있었지만, 둘째를 죽이고 북신의 위치까지 찾아낸 건 대단한 성과였다.
북신의 위치는 1급 기밀이고, 지금 빌케노스에 들어와 있는 왕국군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카드다. 왕국군은 북부와 프로스트 필드의 지리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으니, 대공의 지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빌케노스에서는 바로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회의에 참가하는 사람은 대공 진 아르스칼트, 대장군 가니로, 집사 고드릭, 그리고 대공이 가장 신뢰하는 장군과 원로 한 명씩. 총 다섯 명이었다.
시몬은 대공이 아끼는 제자였지만 일단은 외부인이었기에, 고위 관계자들의 반대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안녕하세요~"
시몬이 성 창가 근처에 앉아 쉬고 있는데 한 여자가 다가왔다.
시몬이 칼로스 북부에 와서 처음으로 친해진 사람. 바로 우유장수 그레이슨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그레이슨."
"우유 드실래요?"
그녀는 다짜고짜 우유통을 내밀며 헤픈 미소를 지었다.
"시원섭섭한 일이 있으신가 봐요. 그럴 땐 순록 우유가 최고죠."
"......만능 특효약이네요."
"호호호! 맞아요!"
저 통에 담긴 우유를 혼자 다 마실 자신이 없어서 컵을 가져왔다. 각자 컵을 하나씩 들고 우유를 가득 채운 다음 창밖의 눈 내리는 북부의 풍경을 바라보며 마셨다.
순록 우유.
특유의 쌉쌀한 뒷맛이 시몬의 입맛에 맞지는 않았지만, 그레이슨의 저 헤픈 웃음 앞에서 결코 맛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열심히 마셨다.
"저는요, 매일매일 이 성에 와서 우유를 배달해요."
그녀가 말했다.
"그래서 그런지 성의 바뀐 분위기를 몸으로 체감할 수 있어요."
"그거 신기하네요. 오늘은 어떤데요?"
그녀가 살짝 눈을 감았다.
"얼마 안 가 전쟁이 일어나겠네요."
'!'
"칼날처럼 날 선 분위기. 이런 분위기가 성안에 흐르고 있고 나면 늘 큰 전투가 벌어졌거든요. 최근에도 이런 분위기가 흘렀다가 삼형제와의 전쟁이 있었구요."
시몬은 놀라는 와중에도, '전쟁'을 말하는 그레이슨의 표정은 무척이나 담담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북부인들은 하루하루가 전투의 연속이라 그런 걸까?
"시몬도 전쟁에 나가나요?"
불쑥 튀어나온 그녀의 질문에, 상념에 잠겨 있던 시몬은 얼른 정신을 차리며 답했다.
"네, 그럴 것 같네요. 저도 대공님의 제자니까요."
"무사히 돌아오시길 기원할게요! 아, 그리고."
그녀가 입가에 우유를 허옇게 묻힌 채 헤픈 미소를 지었다.
"전쟁 전에는 우유가 좋아요. 뼈가 튼튼해야 언데드도 잘 잡죠!"
그러고는 우유잔을 들어 올렸다. 시몬도 큭큭 작게 웃으며 잔을 맞부딪혔다.
"고마워요, 그레이슨."
* * *
긴급회의가 끝나고, 출정일이 정해졌다.
이미 대공은 시몬이 북부에 머무르는 기간 안에 북신과의 결전을 치르겠다고 공표한 상황. 출정은 사흘 후다.
그전까지 시몬은 어떻게든 군단장으로서의 역량을 올려야 했다. 비록 대공이 장군들 앞에서 당당하 말한 수만의 언데드 병력까지는 없지만, 그만큼의 역할을 해내야만 했다.
일정이 정해지니, 시몬도 시간을 조금도 허투루 쓰지 않고 노력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길을 따라 달리며 체력훈련, 내성에 들어간 뒤로는 대공의 훈련 루틴에 맞춰 최대한 비슷하게나마 따라 해보려고 노력했다.
'......괴물.'
물론 십수 년간 같은 루틴을 수행해 온 대공의 훈련량을 똑같이 따라 하는 건 불가능했다. 대공의 광범위 통제능력보다 시몬은 이쪽이 더 불가사의하다고 느낄 지경이었다.
체력훈련을 마치면 바로 군단장 수업이었다. 삼형제를 잃은 북신이 자신의 구역인 '어비스'로 모든 전력을 집결시키는 바람에 언데드 침공이 사라졌고, 훈련대상도 없다.
하는 수 없이 대공은 자신의 언데드로 훈련을 시켜주었다.
2군단과 7군단의 친선 훈련이다.
[크하하! 지지 마라 소년! 2군단 놈들을 쓸어버려라!]
경쟁에 불붙은 피어가 외쳤다. 시몬은 땀을 뻘뻘 흘리며 두 팔을 뻗고 있었다.
'계속 전진해!'
스켈레톤들이 따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적진으로 돌진했다. 구성은 소환형 언데드 11기와, 군단형 언데드 30기.
이내 대공의 스켈레톤 부대와 맞섰다.
탓!
그때 스켈레톤 라이더 한 기가 뒤로 우회해서 시몬의 얼굴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시몬이 눈을 번뜩이며 후방의 스켈레톤에 지시를 내렸다.
후방에 있던 스켈레톤이 스켈레톤 라이더의 창격을 방패로 받아내고는, 자신의 창으로 라이더의 가슴을 찔러 흩트려 버렸다.
'막았어!'
"제법이구나."
대공이 팔짱을 낀 채 씩 웃으며 다가왔다.
"이걸로 12기겠지?"
"아, 네!"
북부에 와서 시몬의 최대 컨트롤 가능한 소환형 언데드의 수는 크게 늘었다. 9기에서 12기로.
'이 정도면 본 드래곤도 컨트롤할 수 있어!'
시몬이 기쁨에 주먹을 움켜쥐었다.
대공은 병력을 물리며 휴식을 선언했고, 두 사람은 잠시 근처의 바위에 앉아 수통의 물을 들이켰다.
"......."
"......."
승전 파티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여전히 서먹했다.
처음에는 시몬이 어색한 걸 견디기 힘들어했지만, 이제는 대충 적응이 됐는지 불편하진 않았다. 훈련이 워낙 힘들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건방진 것."
오랜만에 대공 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왔다.
"물어볼 게 있다."
그것도 질문.
시몬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말씀하세요."
"너희 아버지......."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녀가 갑자기 슬쩍 시선을 피했다.
"네 아버지는......!"
그러고는 '하.' 하고 짧게 한숨을 쉬더니 옆에 내려놓은 투구를 붙잡아 썼다. 갑옷 뒤로 몸을 숨긴 뒤에야 안정을 되찾은 듯, 투구 사이로 안광이 번뜩였다.
[정녕 네 아버지가 '요나'가 맞느냐?]
"......."
잠시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던 시몬이 몸을 일으켰다.
[!]
바짝 다가온 시몬이 대공의 투구를 두 손으로 붙잡아 조심스레 벗겼다. 투구가 올라가며 그 사이로 긴 머리카락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린다. 다소 상기되어 있는 두 뺨이 보인다.
시몬이 사근사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맞아요."
"!"
그녀의 얼굴이 전보다 더더욱 달아올랐다.
"그리고 제가 계속 말씀드렸죠?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해 달라니까요?"
"거, 건방지다!"
투구를 빼앗아 든 대공이 당황하며 조금 더 옆으로 물러서 앉았다.
저절로 시선이 옆으로 돌아가려는 걸 자각한 그녀가, 이내 눈에 힘을 주고 시몬을 똑바로 보았다.
"요, 요나는 살아 있느냐."
"네."
그녀의 얼굴에 환희가 일었다.
"그럼 그...... 결혼은 했느냐."
"네."
시몬이 미소 지었다.
최근에 피어로부터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가 아버지를 알고 있으리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리처드는 북부에 온 적이 있다.
시몬이 그녀와의 관계가 나아지지 않는다고 하소연하자, 피어가 말한 답이었다.
그 말을 들은 시몬은 아버지와 대공이 어떤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했었다. 그녀가 앞서 시몬에게 아버지는 누구시냐고 물어본 것도 중요한 힌트였다.
"작은 시골 영지에서 결혼하셨고, 두 분이 절 낳으셨어요. 지금도 잘살고 있고요."
"......그래."
그녀의 떨림이 조금씩이나마 멎어갔다.
"그랬느냐."
대공은 천천히 긴 숨을 내쉬었다.
후련했다.
갑갑했던 것들, 궁금했던 것들, 그리고 이런저런 불필요한 감정들을 이제야 편히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 더 빨리 물어보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었다.
"아버지랑 무슨 일 있었어요?"
시몬이 물었다.
"별거 아니니라."
그녀가 후련한 미소를 지었다.
"자기 멋대로 떠들다가 내게 일을 떠넘겼지."
두 사람은 리처드라는 공통주제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람 다 리처드가 괴짜라는 사실에 말을 맞추고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럼요, 맨날 엄마한테 혼난다니까요."
미친 듯이 지휘에 집중하던 군단장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또래 아이처럼 웃으며 가족 이야기를 하는 시몬을, 대공은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랬느냐."
대공은 마지막.
요나와 결혼한 사람이 누군지까지는 묻지 못했다.
그래도 그 악명높은 요나를 휘어잡고, 그의 피를 진하게 물려받은 시몬을 정상적으로 키운 사람이니, 보통 여자는 아니겠구나 생각할 따름이었다.
"잡담은 여기까지. 다시 훈련이다."
"네!"
그래도 생각했다.
요나가 자신에게 기회를 준 만큼. 자신도 그의 아들에게 더 성장할 기회를 줘야겠다고.
* * *
빌케노스의 호화로운 저택.
북부의 감시자. 볼드몬트 백작이 뒷짐을 쥐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방 밖에서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끼이익.
문이 열리고 한 여성이 방으로 들어왔다. 백작이 뒤를 돌아보더니 이내 슬며시 웃으며 몸을 돌렸다.
"기다리고 있었어."
그녀는 다름 아닌 매일매일 대공의 성에 우유를 나르는 상인.
"그레이슨."
우유장수 그레이슨이었다.
그녀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다가왔다.
"치, 친애하는 볼드몬트 백작님을...... 뵙, 뵙습니다."
"그래."
백작이 두 팔을 벌렸다.
"그런데 조금 격식이 부족한 것 같네. 내 앞에서는 어떻게 예를 취하라고 했지?"
"......."
그녀가 망설이자, 백작의 눈매가 묘하게 일그러졌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자네의 순록농장을 네 대에서 끊을 수는 없지 않을까? 아, 연로하신 아버지는 잘 계시고?"
그녀가 입술을 콱 깨물며 바들바들 떨었다. 그러다 천천히 바닥에 엎드렸다.
"친애하는 볼드몬트 백작님을...... 뵙습니다."
백작의 눈이 환희로 번들거렸다.
"그래, 그래! 바로 그거야!"
그는 와하하하! 웃으며 손뼉을 치고는 제 방을 돌아다녔다.
"나는 말이야! 북부인이 내 앞에서 머리를 조아릴 때마다 묘한 쾌감을 느껴!"
그가 제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북부인들은 통제되지 않은 야만인들이잖아? 나만 보면 약골이라며 시비를 걸고, 맥주를 머리에 쏟으려 드는 그 북부인들이 말이야. 내 앞에서, 내 권력에, 내 재력에, 고개를 조아리고 있잖아!"
그가 흥분한 얼굴로 저벅저벅 걸어와 그레이슨의 턱을 붙잡아 올렸다.
슬픔으로 점철된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이게 당연해! 이게 보통인 거야! 남쪽에서는 누구나 신분과 재력이 높으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다고! 이 당연한 것들을 너희 북부인들만 하지 않지!"
그가 그레이슨의 턱을 놓아주며 성큼성큼 제 방을 돌았다.
"내 꿈은 새로운 북부를 만드는 거야! 전쟁이 끝나면 북부인에게 교양을 가르칠 거다! 조금 상스럽게 표현하자면. 그래, '사육'이라고 해도 좋겠군! 당연히 주인에게 복종하는 방법도 가르쳐야겠지!"
그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그레이슨을 돌아보았다.
"모든 북부인들이 내 발밑에 엎드리게 될 거야! 너는 그 시작이고!"
"......."
"나의 충실한 부하 그레이슨, 정보는 구했나?"
그녀가 덜덜 떨며 손끝으로 쪽지 한 장을 내밀었다.
그 안에는 북부의 회의내용에 대한 세세한 정보들이 적혀 있었다.
"네 이능은 볼수록 감탄이 나와."
그가 입술을 혓바닥으로 훑었다.
"새들을 조종하는 이능. 이 귀한 힘을 왜 북부인들을 몰라볼까?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그저 천한 것으로 취급하지. 안 그래? 나만이 자네를 알아본 거야!"
그는 왕의 칙서라도 받은 것처럼 귀중하게 쪽지를 펼쳐서 읽었다.
"큭!"
쪽지를 읽는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어깨를 들썩이며 웃어대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의 농장은 자유야. 아버지도 곧 병세에서 회복되시겠지."
"감사...... 합니다......."
그녀가 죄책감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백작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뭘, 자네가 내가 복종하는 건 시작일 뿐이야. 약속하지. 자네가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될 북부를 내 손으로 만들겠네. 모두가 자네처럼 될 거야."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저벅저벅 걸어갔다.
"집사장."
"예!"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집사장이 걸어왔다.
백작이 음침하게 웃었다.
"지금 당장 로마리오 사령관과 크로노스 경을 뵈어야겠습니다."
* * *
다음 날 이른 아침.
털털털-
북부의 상인들이 각종 채소와 고깃덩이를 든 수레를 밀고 있었다.
그들이 가는 목적지는 왕국군의 야영지였다.
"제기랄, 식량 아깝게 왜 고기까지 가져다주라는 거야?"
"내 말이."
상인들이 나란히 걸으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형식상으로는 국왕이 북부를 위해 친히 보내준 원군이었으니, 기본적인 지원도 없으면 나중에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중앙 귀족들이 원군이 겪은 처우를 엮어서 폐하에 대한 모욕이니 반역이니 지껄일 게 불을 보듯 뻔했다.
"더러워도 정치가 다 그런 것이니 참아야지."
"말도 말게."
북부의 상인들은 골목을 지나 왕국군이 진을 친 막사에 도착했다.
"나 참."
왕국군 병사들이 막사에 진 채 멍한 얼굴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이들은 여전했다. 멍한 눈에 힘 빠진 얼굴, 좀비 같은 걸음걸이까지.
"사람이 와도 본 척도 안 하네."
"그러려니 해. 오늘치 식량이오! 가져가시오!"
상인이 큰 소리로 외쳤지만 왕국군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가져가라니까!"
"아, 그냥 가자고. 크로노스가 병사놈들한테 귀가 안 들리는 저주라도 걸었나 보지!"
"......."
그때 한 상인이 예리하게 눈을 빛내며 영지를 훑어보았다.
불어닥치는 혹한에 왕국군의 깃발이 휘날리는 모습이 보였다.
"잠깐, 뭔가 이상한데?"
워낙 두 진형 간 분위기가 흉흉해서 왕국군에 가까이 가지도 말라는 명령이 떨어졌지만, 상인은 빠른 걸음걸이로 야영지를 향해 걸었다.
"이보게! 가까이 가면......!"
상인은 동료를 뿌리치고 계속 걸었다.
"아무리 봐도 이상하지 않나?"
"뭐가 말인가!"
"바람의 방향이 반대야."
지금 바람이 북서풍으로 불고 있는데, 눈앞의 깃발이나 천막은 반대쪽으로 불고 있었다.
상인들이 걸어갔지만, 왕국군 병사들은 말리는 척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었다.
그들이 병사들을 지나 야영지에 도달하는 순간.
"어?"
호수에 떨어뜨린 돌이 파문을 일으키듯, 허공이 출렁거리며 주위의 환경이 바뀌었다.
뒤따라온 상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어어?"
뭔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었다.
휘이이이이이이이잉―
왕국군이 있어야 할 야영지가 텅 비어 있었다.
막사에는 아무도 없었다. 방금 전만 해도 바글거리던 사람들이 유령처럼 사라진 뒤였다. 그들이 급히 고개를 움직였다.
"와, 왕국군이......!"
상인들의 입이 벌어졌다.
"왕국군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