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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676화 (676/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76화

인류에게 허락되지 않은 비밀의 땅.

프로스트 필드.

거칠게 몰아치는 혹한과 거센 눈보라를 뚫고, 한 무리의 군대가 능선을 넘고 있었다.

"으하하하! 즐겁구만! 즐거워!"

거대한 '언데드 게'에 올라타 있는 크로노스가 광소를 터뜨렸다. 몸을 들썩이며 웃을 때마다 언데드 게도 집게발을 찰칵찰칵 움직였다.

"지금쯤 북부놈들은 난리가 났겠지? 대공의 썩은 표정을 상상하니 내 마음이 다 설레는걸!"

"크로노스 경."

그의 옆으로 볼드몬트 백작이 걸어와 말했다.

"병사들이 지치고 동사하고 있어요. 너무 급히 행군하시는 게 아니신지."

"하하! 병사 한둘 가지고 유난 떨지 마, 백작!"

크로노스가 유쾌하게 웃으며 손바닥 위에 새로운 마법진을 펼쳤다.

"언제 대공의 추격대가 올지 모른다고? 후딱후딱 가서 북신을 잡고 프로스트 필드를 차지해야지. 웃차!"

방금 만들어낸 마법진을 만족스럽게 훑어보던 그가,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공중으로 띄웠다.

마법진은 마치 풍선처럼 두둥실 공중으로 올라갔다. 백작의 고개도 자연스레 위로 향했다.

고고고고고!

행군하는 왕국군 군대의 머리 위는, 마치 인공 태양을 연상케 하는 초대형 마법진이 펼쳐져 있었다. 방금 만들어진 크로노스의 마법진이 올라가 초대형 마법진의 빈공간에 부착되었고, 회로들이 마법진에 연결되었다.

마치 맞물리는 장치처럼 각 수식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선물이야, 얘들아!"

크로노스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그냥 통각 대부분을 마비시켰어! 이젠 추위도 느껴지지 않을걸?"

마법진의 색이 더더욱 시뻘겋게 변했다. 병사들의 몸에도 불그스름한 기운이 생기더니, 움직임이 더더욱 빨라졌다.

"근데 조금 의외네, 백작."

크로노스가 볼드몬트 백작을 돌아보며 말했다.

"난 저주의 세부 컨트롤 같은 귀찮은 건 질색이라, 나랑 로마리오 외에 모든 인간에게 저주를 거는 게 디폴트거든. 그런데 어떻게 멀쩡하게 움직이는 거야?"

"저주저항이 깃든 아티팩트들 덕분입니다."

백작이 코트를 벌리자, 무수한 장신구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크로노스 경을 만나뵙기 위해 준비했습니다."

"하하하하! 듣던 대로 준비성이 철저하네! 이거 한 방 먹었는걸."

백작이 진지하게 눈을 빛냈다.

"이번 일이 끝나면, 약속대로 북부 영지의 통치권은 제가 받아가겠습니다."

"그럼, 그럼. 어련하겠어? 그러라고 있는 게 '감시자'인데."

그렇게 말한 크로노스가 턱을 쓱쓱 쓸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보다 이제 슬슬 추격대가 올 때가 됐는데~"

"대공은 오지 않을 거다."

앞에서 가고 있던 사령관 로마리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섣부르게 움직여 일을 그르칠 인간이 아니야. 우리는 북신의 파괴에 집중한다."

"그래, 그래."

볼드몬트 백작이 지도를 펼쳐 들고 나침판을 확인한 뒤 앞을 가리켰다.

"바로 저깁니다."

왕국군은 마침내 산꼭대기를 넘어 아래를 보았다. 로마리오와 크로노스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오싹하군."

로마리오가 말했다.

"황홀한데."

크로노스가 말했다.

두 사람의 상반된 반응을 보며, 백작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저곳이 천 년 이상 프로스트 필드를 지배한 북신의 은거지. '어비스'입니다."

산 아래에 보이는 건 시뻘건 바닥이었다.

어비스는 프로스트 필드의 산악에서 중간이 텅 빈 분지에 펼쳐져 있었다. 온갖 언데드 둥지들이 만들어져 있었고, 둥지에서 막 빠져나온 개체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둥지들 사이에서도 정중앙, 땅에 뻥 뚫려 있는 거대한 구멍이 보였다.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깊고 어두운 구멍이었다.

"저 안에 북신이 숨어 있다 이거지?"

크로노스가 혀끝으로 입술을 훑으며 실실댔다. 그때 어비스를 보고 있던 로마리오가 조용히 뒤를 돌아보았다.

"온다."

"어, 뭐가? 대공의 추격대가?"

"아니."

쿠르르릉!

산 전체가 들썩였다. 곳곳에 그림처럼 솟아 있는 무수한 산등성이에서 눈사태가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 모든 눈사태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방향을 움직여 왕국군 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스릉!

로마리오가 검을 뽑았다.

"북신의 군대다."

실제로 쏟아지는 눈사태 곳곳에 크고 작은 '눈동자'들이 보이고 있었다. 크로노스가 킬킬거리며 양 손바닥에 마법진을 펼쳤다.

"보여주지!"

그가 마법진을 공중으로 띄워서 하늘의 마법진에 장착시켰다. 붉은빛이 더더욱 거세지며 병사들의 눈이 불타올랐다.

"만군의 네크로맨서! 나 크로노스가 매복에 대처하는 법을 말이야!"

* * *

북부는 왕국군을 쫓지 않고, 예정된 시일에 움직이기로 했다.

대공 또한 이 이틀 동안은 시몬의 훈련을 봐줄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았다. 헤이트를 회복하고, 2군단의 전력을 재건하는 데 힘을 쏟아야 했다.

시몬도 개인훈련을 시작했다. 대공이 2군단을 회복하러 가기 전에 훈련 일정을 디테일하게 짜주었기에 거기에 맞춰 훈련하면 되었다.

그리고 틈틈이 시간이 남거나 휴식일 때마다, 에이션트 언데드들의 '게하임'을 찾아내는 데 집중했다.

[요즘 나랑 자주 놀아주네? 꼬맹아.]

헤르세바가 말했다. 공중에 둥둥 떠 있는 지팡이 위로 모래로 이루어진 긴 머리의 여성이 걸터앉아 있었다.

[오늘은 무슨 훈련할 거야? 미라 컨트롤? 아니면 오랜만에 모래의 세계나 열어볼까?]

"그거 엄청 힘을 소모하잖아. 이제 곧 출전인데."

시몬이 걸음을 멈추고 바위에 걸터앉아 가방을 뒤적거렸다.

"오늘은 훈련보다 이야기를 하려고."

[무슨 이야기?]

"네가 언데드가 되기 전의 삶에 대해."

시몬이 가방에서 꺼낸 건, 다름아닌 그림을 그리는 도구들이었다.

달칵거리며 고정대 다리를 펼쳐서 바닥에 놓고, 캔버스를 위에 올렸다.

"그리고 네가 살았던 곳에 대해."

[저번에 말했잖아? 기억이 잘 안 난다니까!]

"그럼 이 기회에 느긋이 떠올려보면 되겠네."

시몬이 가방에서 색료를 꺼내 들었다.

[근데 그림 그리려고?]

"겸사겸사. 이건 그냥 신경 쓰지 마."

이 캔버스는 원래 키젠 제왕학 시간에 썼었다. 각국의 특이한 필기체를 익히기 위한 준비물인데, 시몬은 필체보다는 그림에 더 관심이 있어서 색료도 샀다.

물론 그림을 잘 그리진 못하지만, 한가한 레스힐에 있을 때 풍경화 같은 걸 그린 경험이 있었다.

[그림을 그리겠단 거야? 내 이야기를 들어주겠단 거야?]

"둘 다."

시몬이 흰 캔버스에 대강 휙휙 밑칠했다.

"언데드가 되기 전에는 왕으로 군림했다고 했지?"

[그럼! 많은 백성들을 이끄는 왕이었지!]

헤르세바가 재잘대기 시작했다.

그녀는 언데드가 되기 전에는 '던전주'였다. 하지만 왜 자신이 던전에 있었는지, 어떻게 그곳의 왕이 됐는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럴까. 그녀는 과거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면 다소 낯부끄러워하는 반응이었다. 기억도 안 나고, 딱히 좋은 기억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자꾸 묻느냐며 툴툴댔다.

하지만 시몬은 그녀의 목소리에서 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바로 '그리움'.

시몬은 그 감정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왕이 된 지는 얼마나 됐어?"

[몰라. 그땐 시간 개념이 없어서...... 느낌상 엄청 오랫동안 군림했던 느낌?]

"그렇구나. 왕이었을 땐 기분이 어땠어?"

그녀가 이전의 삶에 대해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기에, 시몬은 그녀의 감정에 대해 주로 물었다.

[글쎄?]

그녀가 곰곰이 고민하다가 말했다.

[외로움?]

"외로웠다고?"

깜짝 놀란 시몬이 붓을 멈췄다.

"왕은 많은 사람들을 다스리는 직책이잖아. 보통은 외로울 틈도 없지 않아?"

[그게.......]

그녀가 무안한 듯 옆머리를 긁적였다.

[기억이 흐릿하긴 하지만- 우리 백성들은 쫌, 그랬어.]

"뭐가?"

[반응하질 않았어. 기계 같다고 해야 하나? 막 먼저 내게 뭘 해주고 그런 게 없었어. 그냥 딱딱 자기 할 일만 했지.]

그녀의 목소리에 힘이 떨어졌다.

[놀아달라고 하면 놀아주고, 안아달라고 하면 안아주고, 명확하게 명령을 해야만 움직였어. 결코 내게 먼저 다가와 주지 않았어.]

"......."

[그래서 난 차라리 지금이 좋아.]

그녀가 고개를 들어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피어의 잔소리를 듣고, 에르제베트랑은 맨날 싸우고, 프린스와 모래성을 쌓으면서 같이 놀고, 아케뮤스도 무뚝뚝하지만 상냥해. 가만히 있어도 다들 먼저 내게 다가와 줘. 내가 바라지 않은 행동도, 내가 예상치 못한 행동도 해. 가끔은 화가 나지만-]

그녀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서 좋아. 이 새로운 삶이.]

시몬도 빙긋 웃었다.

"그거 다행이네."

시몬은 계속 그녀에게 과거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헤르세바는 기억을 더듬어가며 생각나는 대로 쭉쭉 말해갔다.

시몬은 이런 인상을 받았다.

그녀가 자신의 도시에 대해 말할 때의 감정은 틀림없이 분명 그리움과 아련함, 그리고 동경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던전주였을 때의 삶을 만족스러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던전주 시절을 만족스러워하지 않으면서도 동경하고 그리워한다고?'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

하지만 헤르세바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묘한 인상을 받았고, 마침내 시몬은 깨달았다.

그녀가 그리움을 느끼는 건 던전주의 생활이 아니다.

'그보다 더 뒤.'

왜 던전주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던전주가 되기 전에도, 어떤 생활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녀의 이능을 생각하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동경하는 삶을 모래로 만들어 구축하는 이능을 가졌다. 백성들이 반응하지 않았던 것도 아마도, 그녀의 이능으로 구축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습지?]

그녀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기억나지도 않는 한 자락의 꿈을 그리워한다는 게.]

그녀는 그 생활이 자신이 겪었던 것인지, 자신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허구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기억나지도 않은 삶에 얽매여 있는 본인 스스로가 우습다고 생각하지만.

"실체가 있고 없고는 중요한 게 아냐."

시몬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네가 어떻게 생각하고, 네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가 중요하지. 그래서 난 더욱 네 이야기가 궁금해져."

탁.

마침내 그림을 다 그린 시몬이 붓을 내려놓았다. 그러곤 조금 부끄러운 표정으로 캔버스를 들어서 헤르세바에게 보였다.

[아.]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헤르세바가 모래의 세계로 만든, 황금의 도시였다.

하지만.

"네가 생각한 고향을, 조금 더 다채로운 색상을 써서 그려봤어."

황금의 도시는 온통 모래로 만들어졌다. 단색이다.

하지만 시몬이 그린 도시는 달랐다.

나무집과 벽돌집이 공존하고, 풀과 나무가 자라나 있고,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아.]

솔직히 썩 잘 그린 결과물은 아니었지만, 열심히 그린 흔적이 보인다.

그녀의 몸이 떨려왔다.

[아아.]

그녀는-

울었다고 생각했다.

모래의 몸이라 눈물이 나올 리가 없었지만, 감정은 있었다. 육체가 있었다면 눈물이 나올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시몬이 다가와 그녀의 눈가를 손끝으로 닦아주었다.

기뻤다.

있지도 않은 것을 인정해 주고, 존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고...... 마워.]

그녀의 감정을 대변하듯, 헤르세바의 몸에서 서서히 칠흑이 솟구쳐오르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구구!

그녀가 '황금화' 마법을 시전하고 있다. 방금 시몬이 그린 도시를 재현하려는 것이다.

움찔.

시몬은 뒤로 물러나며 묘한 고양감에 빠졌다.

이건 마치.

'프린스가 시체폭발을 쓸 때의 느낌과 비슷해......!'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헤르세바가 황금화를 시전하고, 지금껏 모래의 세계 밖에서 만든 그 어떤 도시보다 거대한 도시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아아아!]

솟구치는 건물들을 보며 시몬은 확신했다.

'이게 바로.'

헤르세바의 게하임이었다.

[앗!]

쿠르르릉!

직후, 그녀의 새된 목소리와 함께 헤르세바의 도시가 바닷가 모래성 허물어지듯 무너져 내려버렸다.

지켜보던 시몬이 쓰게 웃었다.

'아직은 갈 길이 먼 것 같지만.'

[아으!]

그녀가 아쉬움에 몸을 흔들었다.

"왜 갑자기 실패한 거야?"

[상상력이 부족해! 도시의 중앙은 잘 짓겠는데, 외곽 부근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

"그쯤이야."

시몬이 팔을 걷어붙이며 다시 캔버스 앞에 앉았다.

"그림은 얼마든지 그려줄 수 있어. 다시 해보자! 도시에 대해 뭐 떠오르는 거 뭐 없어?"

그렇게 긴 시도 끝에.

북신과의 전쟁을 앞둔 직후, 헤르세바의 게하임이 준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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