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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679화 (679/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79화

그날은 더운 여름밤이었다.

왕국 장교 교육대의 마지막 날.

생도들에게 있어서는, 2년간의 힘든 훈련을 마치고 처음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때였다.

천막 밖으로 나온 생도 가니로와 로마리오는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술잔을 부딪쳤다.

-들었다, 가니로.

까만 피부에 근육질의 몸을 가진 생도, 로마리오가 등을 기울이며 말했다.

-북부에 지원했다고?

-어.

-그렇게 위험하고 출세도 어려운 험지에 스스로 지원한 이유가 뭐지?

가니로가 꿀떡꿀떡 술잔을 비운 뒤 입가를 쓱 닦으며 말했다.

-좋든 싫든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니까. 난 옛날부터 북부를 지키기로 맹세했어.

-그러냐.

-넌 어때? 로마리오 수석.

-나는 교관님의 추천으로 중앙 왕도 수비대에 지원했다.

가니로가 낄낄 웃었다.

-높으신 나으리들이 가는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네. 역시 수석이야.

-네가 북부에 가면.

로마리오가 눈썹 사이를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왕국과 남부의 지원이 필요할 거다. 중앙의 귀족들은 북부를 좋게 보지 않으니, 안에서 움직일 사람이 한 명 정도는 있어야겠지.

-너.......

-내가 내부에서 널 떠받들어 주겠다, 가니로.

가니로가 감격한 눈으로 바라보자, 로마리오는 머쓱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사내놈의 감동 따윈 질색이다.

-닥쳐, 인마!

하하하하하!

두 청년 생도는 서로 어깨동무하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과연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얻게 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5년 뒤.

-프로스트 필드로 갔던 북부군이 전멸했습니다! 대공께서는 치명적인 중상을 입으셨습니다!

-2군단의 병력도 흩어졌소!

칼로스 북부는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다.

침공군에 합류하지 않고 빌케노스를 지키고 있던 가니로는 다급히 성내로 뛰어 들어왔다.

-대공 각하!

들것에 실려 온 검은 머리카락의 중년 남자가 숨을 위태롭게 헐떡이고 있었다. 붕대를 감고 있었지만, 옷 한쪽에는 피가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틀림없는 치명상이었다.

-아버지!

그 옆에는 대공의 어린 딸, '진'이 울먹이며 아버지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대공은 기운 없는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니로.

털썩.

가니로는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고 말았다.

자신의 영웅이자, 가장 존경하던 남자가 눈앞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내 말 잘 듣게나, 가니로. 북신의 언데드 병력이 빌케노스로 내려오고 있네.

-.......

-이제 지휘를 내릴 장군은 자네뿐일세. 백성들을 데리고 남부로 피난하게.

가니로는 차오르는 눈물을 꾹꾹 눌러 담고 충혈된 눈으로 대공을 보았다.

-부디 말씀을 거두어주십시오.

-가니로.

-제가 남부로 가겠습니다! 중앙의 귀족들을 설득해 원군을 데려오겠습니다!

-귀족들은 북부를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네. 그들이 와줄 리가.......

-중앙에는 제 친구가 있습니다!

가니로가 가슴을 쾅쾅 때리며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 녀석이 힘을 써준다면 가능할 겁니다! 부디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대공!

가니로는 그 즉시 말을 타고 빌케노스를 떠났다.

주군은 죽어가고 있고, 고향은 적의 군세에 짓밟히기 직전.

가니로는 한숨도 자지 않고 밤낮을 달려 칼로스 남부의 전선 사령부에 도착했다.

-원군을 보내주시오!

가니로가 퀭한 얼굴로 외쳤다.

-북부가 위험에 빠졌소! 곧 북신의 병력이 내려올 거요! 북부가 무너지면 다음은 남부라는 사실을 도대체 왜 모른단 말이오!

-진정하게.

한 장교가 길쭉한 콧수염을 붙잡아 당기며 말했다.

-군을 움직이는 게 그리 간단한 줄 아는가? 세상 모든 일에는 절차가 있는 법일세. 내가 자네의 요청을 상부에 보고할 터이니 기다리게. 한 달이면 충분한 검토가 끝날 걸세.

-한 달? 한 달이면 빌케노스는 북신의 손에 떨어져!

가니로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그리고 밖에 병사들이 저리 많은데 무슨 절차가 더 필요해! 당장 병력을 집결시켜서 빌케노스로 가달라고!

-이보게.

-이거 놔! 답답한 당신들과는 이야기 안 해! 로마리오! 로마리오를 불러와!

-자네가 뭔데 참모장님 성함을 함부로 부르는......!

덜컹!

그때 참모실 문이 열리며, 제복을 입은 까만 피부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소란이냐.

-로마리오!

5년 만에 보는 로마리오는, 생도 시절 절친한 친구의 모습 그대로였다.

가니로가 감격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환한 목소리로 외쳤다.

-로마리오! 네가 이 깝깝한 꼴통들한테 시원하게 말해줘! 북부를 제때 구원하지 않으면......!

-예의가 없군.

일말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가니로의 안면을 때렸다.

-여기는 군대다. 계급에 맞는 격식을 취해라.

-로, 로마리오?

-그리고 귀관이 말한 북부의 사정은 딱하지만, 이쪽도 상부의 승인이 필요하다. 절차를 기다려라.

그때 같은 방에서 배가 불룩한 제복차림의 장년 남자와, 허리에 검을 찬 금발의 여자가 나왔다.

-무슨 일인가. 참모장.

-선배, 아는 사람이에요?

로마리오는 냉정히 고개를 돌려 방으로 돌아갔다.

-모르는 사람입니다.

쿵.

심장이 철렁이며, 가니로는 몸에 힘이 빠져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배신감에 몸서리쳐졌다.

-로마리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가니로는 선명히 떠올릴 수 있었다.

그때의 절망감을.

배신감을.

그리고.

-네가 북부에 가면. 내가 내부에서 널 떠받들어주겠다.

어깨동무하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던, 우리는 과연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생각하던, 생도 시절의 모습을.

"로마리오오오오오!"

눈보라를 가르며, 검은 벼락을 담은 검이 내리꽂혔다.

꽈르르르릉!

벽력과도 같은 충격음이 울려 퍼지고, 가니로의 검이 로마리오의 검에 부딪혔다. 말을 탄 로마리오가 버티고 있는 지반이 움푹 들어갔다.

"그게 대체 무슨 꼴이냐!"

바닥에 내려온 가니로가 핏발 선 눈으로 외쳤다.

"그딴 꼴이나 되려고 그렇게 아등바등 출세한 거냐!"

눈앞에는, 북신에게 조종당해 '둘째'가 된 친우가 보인다.

그것을 부정하듯 가니로가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다.

꽈릉!

꽈르릉!

검은 스파크가 연신 주위로 퍼져 나간다. 가니로의 공격을 막은 로마리오가 이번엔 검으로 바닥을 찔렀다.

칠흑 가시들이 바닥에서 삐쭉삐쭉 솟구쳐올랐지만, 가니로는 신들린 듯 질주했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피하고, 솟아오르는 가시를 밟아서 피하고, 다시 뛰어올라 로마리오에게 벼락 들린 검을 내리꽂는다.

"뭐라고 말이라도 해봐라! 로마리오!"

콰르르르르르릉!

지켜보던 전사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 역시 가니로 대장군!"

"삼형제를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아!"

크웁!

물론 몸에 무리가 가는 '체내 칠흑 분화'를 오래 유지한 대가로 그의 입가에서 검은 피가 흘렀다. 하지만 가니로는 멈추지 않았다.

[죽여줘...... 죽여줘...... 죽여줘.......]

로마리오의 몸에서 자라난 팔들이 일제히 칠흑 검을 만들어 손에 쥐었다. 도합 30자루의 검이 마주 돌진하는 가니로를 덮친다.

가니로의 눈이 벌게졌다.

"그래, 그게 네 마지막 부탁이라면!"

아래에는 가시들이, 위에는 서른 자루의 검이 몰려왔지만.

가니로가 손에 쥔 건 한 자루의 검뿐이었다.

"친우로서, 내 손으로 직접 목을 베어주마!"

<가니로 오리지널 - 백절>

검을 '번개'로 바꾸는 비기.

한계치까지 인챈트된 검이 번개가 되어 흩어진다. 몰려오던 가시와 검들은 수천 갈래로 뻗어 나가는 전격에 부딪혀 깨져 나가고, 그 틈을 기민하게 파고든 가니로가 허리춤의 단검을 뽑았다.

"이만 눈 감아라! 로마리......!"

푸욱!

가니로의 몸이 덜컥이며 멈췄다. 공중에 떠오른 두 다리가 바닥에 닿지 못하고 덜렁였다.

쿨럭!

가니로가 피를 토했다.

바닥에서 솟구친 가시 하나가 그의 옆구리를 깊이 관통한 것이다. 가시에는 독이 묻어 있는 듯 몸을 꿈쩍도 할 수 없었다.

로마리오는 자신의 앞에 멈춰 있는 가니로를 덤덤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그의 안면을 붙잡아 들어 올렸다.

가니로는 저항하지 못했고, 로마리오는 두 개의 팔을 하늘로 치켜세웠다.

우우우우우우웅-!

칠흑으로 이루어진 가시검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

가시검이 가니로를 양단하기 위해 지면을 향해 내려왔다.

다가오는 죽음에 절망하는 그 순간.

[누구 허락을 받고 벌써 쉬고 있느냐? 대장군.]

감미로운 음성과 함께 가니로의 눈이 번쩍 뜨였다.

내려오는 거대한 가시검이 혜성처럼 날아온 화살에 꺾이고, 어느새 옆에는 전신을 갑주로 뒤덮은 검은 기사가 서 있었다.

[나는 아직 휴식을 허락하지 않았느니라.]

가니로의 눈이 그렁그렁해졌다.

"대, 대공!"

그러는 사이, 로마리오가 또 다른 검들을 움직였지만.

투쾅!

난데없이 화살이 그의 안면에 처박혔다.

-[?]

심지어 대공은 화살을 쏜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아래로 축 처진 대공의 손이 활의 시위를 튕겼다.

투쾅!

활의 시위가 흔들리기 무섭게, 이번에는 로마리오가 타고 있던 말의 몸통에 화살이 꽂혔다.

투쾅! 투쾅! 투쾅!

그녀의 손에 들린 활이 들썩일 때마다 로마리오는 정신없이 얻어맞았다.

붙들려 있던 가니로가 바닥에 떨어지자, 그녀가 손을 뒤로 뺐다.

샤아아아아악-!

대공의 손에 칠흑으로 이루어진 화살이 들렸다. 그녀는 어깨에 광풍의 활을 멘 뒤, 손에 쥔 화살을 한번 강하게 털었다.

촤랑-!

감미로운 소리와 함께 화살이 길어지며 '창'의 형태로 변했다. 그녀가 즉시 돌진했고, 로마리오도 무수한 팔에서 칠흑검을 뽑아내 대응했다.

슉!

창끝이 떨리자, 10개의 손목이 잘려나갔다.

슈슉! 슉! 슉!

한 번 떨릴 때마다 20개, 30개의 손목이 절단됐다. 단숨에 공격체계를 무력화시킨 대공이 나비처럼 날아올라.

푸우우욱!

창끝으로 로마리오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녀가 했기에 간단해 보였지만, 반격할 여지조차 주지 않는 정밀하고 군더더기 없는 일격.

창을 손에서 놓고 떨어지며 몸을 한 바퀴 회전한 그녀가 순식간에 어깨에 멘 활을 뽑아 들어 화살을 쐈다.

슈쾅!

즉시 활 끝이 떨리며 화살이 날아갔고.

콰아아아아앙!

화살이 창끝에 부딪히는 순간, 창은 로마리오의 몸에서 기다렸다는 듯 폭발했다.

가히 완벽에 가까운 연계.

걸레짝이 된 로마리오의 몸 파편이 바닥에 떨어졌다.

우와아아아아!

싸우면서 지켜보던 북부의 전사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사뿐하게 지면에 착지한 대공은 폭발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질기구나. 언데드.]

텁!

뿌연 폭발연기 속에서 로마리오의 손이 튀어나와 대공의 투구를 억세게 붙잡았다.

텁! 터업!

걸레짝이 된 로마리오의 또 다른 손들이 그녀의 팔과 어깨를 잡았다.

"아!"

"대공이 붙잡혔다!"

그 모습을 본 전사들이 기겁하며 달려왔다. 로마리오가 비틀거리며 끔찍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죽여...... 줘.]

그녀는 투구 속에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널 죽이는 건 내가 아니다."

기척을 느낀 언데드 로마리오가 뒤를 돌아보았다. 폭연을 뚫고 나타난 가니로가 거꾸로 떠오른 채 그의 등 뒤에 나타나 있었다.

"로마리오오오오오!"

콰르르르릉!

번개로 바꾼 그의 왼팔이 로마리오의 목을 깨끗하게 절단하고 지나갔다. 그제야 코어와 머리를 모두 잃은 로마리오의 몸이 축 늘어졌다.

쿠당탕!

제 일격의 힘조차 이겨내지 못해 바닥을 구르던 가니로는 근처의 나무에 부딪히고 나서야 겨우 멈추고서 숨을 골랐다.

"흐헉! 헉!"

그가 가슴을 들썩이며 숨을 쉬었다. 검이 없어서 급한 대로 번개로 바꾼 왼팔은 새까맣게 말라붙어 있었다.

투둑- 툭-

뒤늦게 굴러떨어진 로마리오의 목이 가니로의 옆으로 다가왔다.

가니로는 그 목을 보았다.

[가니.......]

그 목은 말하고 있었다.

[안...... 하다.......]

꾸욱!

가니로가 이를 악물었다.

'제기랄! 이제 와서......!'

사실 짐작은 하고 있었다.

로마리오도 그때 북부를 도우려고 했었다는 사실을.

-귀관이 말한 북부의 사정은 딱하지만, 이쪽도 상부의 승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중앙의 귀족들. 그리고 더 위의 명령 때문에 병력을 움직일 수 없었을 뿐이었다.

원래 군이란 게 다 그렇지 않은가. 뭘 더 기대했단 말인가. 저기서 로마리오가 뭘 할 수 있겠는가.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용서하기 힘들었다.

"망할! 망할!"

그렇게 악을 지르던 가니로가 이내 체념한 사람처럼 축 늘어졌다.

그러다 이제는 쓰지 못하게 된 까맣게 물든 팔로, 로마리오의 눈을 천천히 감겨주었다.

"그래, 다 이런 거지."

친구 버리고 아득바득 출세하려던 놈도.

험지에 구르면서 성격이 개판 난 놈도.

결말은 같다. 다 이렇게 한 줌 먼지로 돌아갈 뿐이다.

친구라 부르기엔 아까운 놈이지만.

"잘 가라, 망할 자식."

마지막 가는 길에, 명복 정도는 빌어주기로 했다.

저벅 저벅.

대공이 절그럭거리는 갑옷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마음은 다 정리했느냐.]

"......대공."

그가 쓴웃음을 흘렸다.

"절 도우러 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상대하고 있던 크로노스 놈은요?"

[꺾었다. 꽁지 빠지게 도망치긴 했지만. 달도 모두 떨어뜨렸느니라.]

가니로가 하늘을 보았다.

언데드들을 강화하던 붉은 달이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져 있었다. 역시 말도 안 되는 힘이었다.

[이제 명하겠다. 휴식을 취하라.]

가니로는 팔을 쭉 늘어뜨리며 눈을 감았다.

"감사합니다."

들것을 든 위생병들이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 * *

가니로와 로마리오가 치열하게 싸우는 가운데, 다른 전장의 상황도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가장 문제는 '셋째'가 있는 곳이었다.

"하아 하아."

시몬이 숨을 헐떡이며 손에 쥔 검을 늘어뜨렸다.

그의 상대가 바로 셋째, '그레이슨'이었다. 그녀가 두 팔을 들어 올리자 등 뒤의 구멍에서 무수한 언데드 새들이 끝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레이슨......!'

놀랍게도 그녀는 왕국군에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더 큰 의문이 있었다.

'북신은 왜 하필이면 그레이슨을 셋째로 삼은 거지? 전사도 아니고 그냥 일반인인데?'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녀에게 어떤 숨겨진 능력이 있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많은 죽은 새들을 지휘하는 걸 봐도 그렇다.

그때 피어의 목소리가 들렸다.

[셋째를 군단에 들이는 건 단념하는 게 좋다!]

"피어!"

[삼형제는 북신이 자신의 힘을 부여해 직접 계약한 개체다! 다른 네크로맨서가 끼어들 여지는 없어.]

"......."

시몬이 고개를 들어 그레이슨을 보았다.

이렇게 그냥 단념해야 하는 건가?

[시몬, 미안해요.]

그녀가 팔을 휘저었다.

[나, 북신에 거역할 수 없어요.]

흘러나온 새들이 이제는 시몬을 향해 쏟아졌다. 시몬이 검을 앞세우며 전투 자세를 취했다.

'일단 가까이 접근해야 해.'

시몬과 친위대들이 청록빛 궤적을 남기며, 그레이슨이 보낸 새떼들을 향해 돌진했다.

촤악!

촥!

시몬과 친위대가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며 새떼를 돌파해 갔다. 그레이슨과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갔지만.

'수가 너무 많아!'

검은 새들의 부리는 날카로운 단검과도 같았다. 주위의 친위대들이 무너져 내리고 시몬도 타격을 받았다.

[미안해요.]

셋째 그레이슨이 두 손을 포개는 자세를 취했다. 새떼가 중앙으로 뭉치더니 장창처럼 돌진해 시몬을 들이박았다.

쾅!

아슬아슬하게 전면에 칠흑방패를 펼친 시몬이 수 미터를 날아가 바닥을 긁으며 멈춰 섰다.

이 와중에도 그레이슨은 등에서 계속 새를 꺼내는 중이었다.

"하나만 물을게요, 그레이슨! 왜 왕국군에 있었던 거예요?"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며 순순히 대답했다.

[볼드몬드 백작이 저를 협박해서...... 미안해요. 어쩔 수 없었어요.]

아마도 볼드몬트 백작과 같은 편이었던 모양이다. 어비스의 위치 정보가 새어나간 건 그레이슨 때문이었으리라.

그때 그녀가 윽! 하고 머리를 붙잡았다.

[제발 도망치세요! 시몬! 나-]

그녀가 피눈물을 줄줄 흘렸다.

[더 이상 자신을 제어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녀는 딱 봐도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시몬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갔다.

'첫째인 크로노스와는 상태가 조금 달라. 크로노스는 언데드가 됐어도 자신의 의지로 북신에게 협조했다면, 그레이슨은 명백히 북신에게 저항하고 있어.'

시몬의 시선이 움직였다.

'둘째인 로마리오 사령관. 그 사람도 죽여달라는 말만 반복했었지. 사람에 따라 북신의 능력이 다르게 적용되는 건가?'

더 생각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그레이슨의 새떼가 재차 시몬에게 몰려들고 있었다.

피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가고 있으니 너무 무리하지 마라, 소년! 상대는 셋째다!]

'네.'

시몬이 경건하게 긴 숨을 내뱉으며 전신의 감각을 날카롭게 세웠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습니다.'

물론, 물러설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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