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82화
목이 타들어 간다.
근육이 삐걱대며 울부짖는다.
온몸이 녹초가 되는 한계 전투를, 지금 시몬은 경험하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 싸웠는지, 얼마나 언데드를 베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계속 갈 수 있겠느냐.]
이 와중에도 괴물 같은 체력과 정신력의 소유자인 대공은 아직도 호흡이 안정되어 있었다.
시몬이 없앤 것보다 몇 배는 많은 언데드를 쏴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시몬의 페이스를 맞춰주고 걱정하고 있었다.
이런데 어떻게 우는소리를 하겠는가. 시몬도 악에 받쳐서 외쳤다.
"죽어도 따라붙겠습니다!"
투구 너머로 그녀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흥, 그래도 눈빛만큼은 일류구나.]
어비스(Abyss).
어느 정도로 깊은 구멍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한없이 내려가고 또 내려가며 북신의 마지막 정예병들을 제거하고 있었다.
-끼이이이이이익!
아래만 보면서 미친 듯이 파멸의 대검을 휘두르고 있는데, 등 뒤에서 날개 달린 뱀 언데드들이 시몬을 덮쳐왔다.
'큭!'
시몬이 허리를 비틀며 검격을 후방으로 날리려는 순간.
[계속 가시와요! 군단장님!]
언데드들보다 더 빠르게 거미줄이 내려오며, 저 멀리서 에르제베트가 팔을 휘젓는 모습이 보였다.
뱀 언데드들의 몸이 모조리 동강 나며 갈라진 육편으로 변했다. 시몬은 그녀의 거미줄의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하임이 살짝 들어간 건가!'
시몬이 위를 보며 외쳤다.
"고마워! 에르제!"
[오호호! 전쟁이 끝나면 포상을 기다리고 있겠사와요!]
에이션트 언데드들의 분발은 탄성이 나올 정도였다. 뭔가 적이 나타난다 싶으면 에르제베트가 거미줄로 그어버리고, 아케뮤스가 날아와 벽면에 처박아 버렸다.
그들은 시몬과 대공을 뒤따르며, 어떻게든 두 사람을 북신이 있는 곳까지 데려다주고 있었다.
[계속 가!]
프린스가 '히든카드 펀치'를 외치며 대형 괴수 언데드를 날려 버리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과 대공은 무사히 어비스의 가장 밑바닥에 안착했다.
'바닥이다.'
시몬은 온전히 평지에 발이 딛는 이 감각이 그리웠다.
[이제 다 왔느니라! 가자!]
"네!"
어비스의 밑바닥에 도착한 시몬과 대공이 앞으로 뛰어나갔다. 투구 속에서 그녀의 눈이 빛났다.
[여기가 확실하구나! 선조들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북신의 방. 이야기로 들었던 흔적과 특징들이 보인다!]
그녀의 목소리에 활기가 생기고 힘이 돋는다.
살짝 감격도 섞인 것 같다.
정말 다 왔다.
긴 세월 동안 이어진 북신과 북부대공들의 기나긴 전쟁이, 이제 막 끝을 고하려 하고 있다.
[더 속도를 올리거라!]
"예!"
어비스의 밑바닥에 도착하자 더 이상의 공격은 없었다. 그저 바닥에 부풀어 있는 혈관들을 따라 달리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혈관이 집결된 곳. 북신의 방 앞까지 도착했다.
"......."
온통 선홍빛으로 시뻘겠다. 바닥과 벽면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꿀렁였으며, 전면에는 시뻘건 피막이 커튼처럼 내려와 있었다.
[조심해서 따라오거라.]
대공이 자신의 손바닥 위로 화살을 만들더니, 붙잡아 허공에 강하게 털었다. 스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창이 되어 그녀의 손에 잡혔다.
절그럭.
절그럭.
갑옷의 이음새가 흔들리는 소리를 내며 그녀가 걸음을 옮긴다. 시몬도 파멸의 대검을 치켜들고 뒤따랐다.
스르륵.
그녀가 붉은 커튼을 걷으며 먼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우뚝.
이내 그녀의 걸음이 급히 멈춰지는 게 느껴졌다. 시몬도 바로 옆에서 검을 앞세우며 돌진했다.
그러나 시몬의 걸음 또한 멈췄다.
두 사람의 동공이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게...... 뭔데?"
* * *
[하하하! 어떤 언데드든 이 프린스 님에게 걸리면 아무것도 아니지!]
무수한 북신의 언데드를 박살 낸 뒤로, 군단의 에이션트 언데드들이 나란히 걸어오고 있었다.
어비스의 밑바닥까지 내려오니 더 이상의 공격은 없었기에,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너도 꽤 잘 싸우더라? 2군단.]
헤르세바가 아래를 보며 말을 걸었다. 그 밑에는 파란색 토끼가 총총거리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당연하지! 묭묭!]
겉보기엔 그냥 파란색 토끼지만, 2군단의 에이스이자 강력한 에이션트 언데드.
설원의 괴묘라고 불리는 악명 높은 선봉장, '플루토'였다.
[너희들이야말로 아기 군단장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고생이 많아! 묭! 우리 대공의 칠흑으로 싸우면 훨씬 강할 텐데! 묭묭!]
[헛소리는 집어치우시게.]
아케뮤스가 서슬 퍼런 눈빛으로 말했다. 플루토는 태연하게 웃었다.
[농담에 정색하긴, 묭묭!]
[도련님은 앞으로 훨씬 더 위대해지실 거다. 네크로맨서가 되신 지 고작 1년 반 만에 이런 경지에 오르셨으니, 다음 1년 반이면 정점에 서실.......]
[잠깐만요.]
그렇게 말하던 에르제베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북신의 방에서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사와요.]
[가보자!]
먼저 뛰어나가는 프린스를 필두로 에이션트 언데드들이 달렸다. 그들도 붉은 피막을 걷고 북신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멀뚱히 제자리에 서 있는 시몬과 대공을 지나, 앞에 펼쳐진 광경을 목격했다.
[아!]
북신의 방.
북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건 '거대한 살덩이'였다. 힘 빠진 듯 축 늘어져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시체.
표피가 늘어진 채 색이 바랜 걸 보니, 움직이지 않게 된 지 오래된 것 같았다.
[뭐야 이거.]
프린스의 목소리가 떨렸다.
[북신이...... 이미 죽은 거야?]
대공이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고 투구를 벗었다. 이내 앞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직접 세세히 살펴보았다.
"이 껍데기는 북신이 맞느니라. 선조들께서 묘사한 것과 그대로다."
그녀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북신이 이미 죽었다면, 지금까지 우리는 무엇과 싸워왔던 거지?"
'......대공.'
시몬은 대공이 이렇게 흔들리는 모습은 처음 본다고 생각했다.
그야 당연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모든 진실과 상식이 송두리째 부정당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내가 직접 보겠다!]
촤르르르륵!
시몬의 몸에서 피어가 떨어져 나와 걸어갔다.
[진, 물러서.]
2군단에서는 헤이트가 나섰다. 두 관리자들은 천천히 움직이지 않는 북신을 천천히 돌면서 확인했다.
[흠!]
피어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게 북신이었던 건 확실해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게 없군!]
"중요한 것?"
[코어.]
목 없는 헤이트가 몸을 일으키며 대신 말했다.
이제 와서 알게 된 거지만, 여성형 언데드인지 목소리가 여자 쪽이었다.
[언데드 코어만 사라졌어. 부서지거나 파괴당한 흔적은 없어.]
[크흐흐! 그런 거지!]
피어가 팔짱을 끼며 대공을 바라보았다.
[그러니 껍데기만 봤다고 너무 의기소침해 있지 마라. 여자! 지금까지 북부가 싸워온 상대는 북신이 확실하니까.]
대공은 묵묵히 몸을 일으켰다.
"웃기지 말거라. 누가 의기소침해 있었다는 것이냐."
[크흐흐흐!]
시몬은 생각에 잠겼다.
이 상황이라면 크게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첫째로는 북신이 모두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거주지를 옮겼다.
둘째로는 누군가 북신의 코어를 탈취했고, 그 북신의 힘을 이용해 북부를 공격하고 있었다.
두 번째의 경우는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그냥 망상에 가까웠다.
가장 유력한 건 첫 번째 경우였으나.
[북신이 의도적으로 장소를 옮겼다는 것도 납득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군!]
피어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손으로 북신의 방 벽면을 훑었다.
[북신은 신체가 둥지에 고정되어 있는 언데드다! 최소 천 년간은 이 자리에 있었겠지! 그런데 이 정도로 잘 갖춰진 둥지를 버리고 언제 올지도 모르는 북부군을 함정에 빠트리려 했다라. 앞뒤가 안 맞는군! 그 여력으로 언데드 병력을 더 만드는 편이 낫다.]
"그렇다면요?"
[장소를 옮겨야 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겠지. 이유는 북신만 알고 있겠지만 말이다.]
에르제베트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건 뭐가 됐든 좋아요. 그럼 북신은 지금 대체 어디에 있는데요?]
[.......]
"......."
그 대답은 아무도 할 수 없었다.
장소를 옮겨간 북신의 진짜 위치.
적어도 프로스트 필드 어딘가에 있는 건 확실했지만, 이 넓은 프로스트 필드를 샅샅이 뒤질 수는 없었다.
"피어, 저 북신의 껍데기에서 정보를 얻어낼 수는 없을까요?"
시몬의 물음에 피어가 제 두개골을 슥슥 쓸었다.
[크흐흐! 코어도 없는 껍데기로는 불가능하지! 다른 언데드들도 지배를 받고 있을 뿐이니 정보를 얻을 수 없다!]
이번엔 헤이트가 말했다.
[본체와 직접 연결된 하이브 개체 정도는 붙잡아야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진.]
"그렇다면 삼형제인가."
프린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그 크로노스인가 뭔가 하는 녀석 남아 있잖아! 그 자식 말도 잘하고 머리도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고! 당장 쫓아가서 잡아야 해!]
[하지만 어디로 도망친 줄 알고요?]
모두가 고심에 빠져 있는 그때, 시몬이 손을 들어 올렸다.
"사념으로 그레이슨이 절 부르는 것 같은데, 잠깐만요."
[오! 셋째가 벌써 회복된 거야?]
시몬이 아공간을 열었다.
연결된 사념으로 느껴지는 그레이슨의 상태는 아직 좋지 않아 보였다.
그야 당연했다. 북신의 언데드였다가 시몬의 언데드로 군단화되는 과정을 겪었으니, 전신이 통째로 뜯어 고쳐지는 충격을 받았으리라. 회복하는 데는 제법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런데.
끼루루루룩-
아공간에서 처음 보는 언데드 까마귀 한 마리가 빠져나왔다.
그것은 바닥에 내려와 총총거리며 걷더니, 이내 시몬을 보고 푸드득 날아올라 그의 어깨에 앉았다.
"그레이슨이 보낸 거야?"
시몬이 그렇게 물으며, 까마귀와 사념을 연결했다.
그 순간.
'!'
머릿속에 어떤 '광경'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흑백화면처럼 무척이나 흐릿한 광경이었다.
'여긴......?'
어비스의 경관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건 하늘을 날고 있는 새의 시점에서 보는 광경이었다.
펄럭!
시야가 움직이는 걸 보니, 새는 계속 하늘을 날아가고 있는 듯했다. 거친 맞바람 부는 소리가 들린다.
'어비스,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이네.'
어비스에는 언데드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아직 북부군과 7군단이 들어오기 전의 시점인 것 같았다.
'어어? 어디까지 가는 거야?'
새는 이곳 어비스에서, 북쪽으로 더 멀리 떨어진 곳까지 날아갔다.
그렇게 몇 개의 산맥을 넘은 끝에 비로소.
'!'
또 하나의 어비스가 보인다.
시몬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아마도 북신이 옮겨 간 곳으로 보이는 이 새로운 어비스에는 구멍이 10개나 뚫려 있었다.
'저기가 진짜인가.'
치직!
칙!
시야가 바뀌었다.
다시 옛 어비스 근처의 하늘을 비행하는 새의 시점이다. 저 멀리 산맥을 막 오르려 하는 인간들이 보인다.
'아, 우리들이다!'
북부군의 모습, 그리고 7군단도 보인다.
시몬은 멀리서 대공과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얼마 안 된 비교적 최근의 기억이었다.
펄럭-
새는 북부군의 모습을 보여주고는, 다시 움직인다.
그리고 남서쪽으로 한참을 비행해서.
톡.
눈 내린 하얀 벌판.
그곳에 홀로 있는 나무 한 그루에 내려앉았다.
'여긴 왜 보여주는 거지?'
시몬이 의아한 생각을 하며 새의 시점에서 보고 있는 그때.
퍼억!
'우왁!'
갑자기 거대한 팔이 튀어나와 새를 붙잡았다. 동시에 나무가 뽑히고 지반이 큼지막하게 일어나더니 거대한 몸뚱이가 튀어나왔다.
시몬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저건......!'
거인이었다.
그것도 언데드 거인, 시몬이 상대했던 셋째와 흡사하게 생긴 개체였다.
스으-
거인이 새를 입에 넣어버리는 것으로 시야가 끊긴다. 으적으적하는 소리와 함께 소름 끼치는 감각이 몸을 타고 흐른다.
그리고 잠시 후.
조금 더 멀리 떨어진 새의 시선으로 바뀌었다.
거인은 새를 잡아먹고는 다시 눈 속으로 들어갔지만, 바닥의 눈길이 들썩거리는 것으로 이동으로 방향을 대략적으로는 추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거인이 향하는 저 방향은.
'설마!'
회상이 끝났다.
다시 주위에 대공과 에이션트 언데드들의 모습이 보인다.
"건방진 것! 무엇을 보았느냐!"
대공이 초조한 듯 말했다.
시몬은 숨을 헐떡이며 조금 진정한 뒤 말했다.
"새로운 어비스의 위치를 찾아냈어요. 그리고."
"그리고?"
시몬이 대공을 보며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삼형제 중 하나로 보이는 언데드 개체가, 빌케노스로 가고 있습니다."
그 한마디에 모두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 * *
"이것도 먹어봐, 외부인 아가씨."
"네, 고맙습니다!"
이곳은 빌케노스.
어느새 북부에 적응이 끝난 카미바레즈가 의자에 앉아 냠냠 간식을 먹고 있었다.
외부인에 대한 경계심이 강한 북부인들이지만, 이상하게 카미바레즈 앞에선 달랐다.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외모 때문은 아니었다.
순수하게 선한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그런 분위기를 풍긴다고 하던가. 그녀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어본 북부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 대한 경계를 풀게 되었다.
"너무 맛있어요!"
간식을 먹은 그녀가 날개를 파닥파닥 흔들며 기뻐했다.
"감사해요! 북부분들은 다들 친절하시네요!"
"입에 맞다니 다행이군!"
그녀의 평가가 나올 때까지 긴장하고 있던 전사들이 비로소 손뼉을 쳤다.
저 우락부락 근육질의 전사들이, 자신들의 가슴팍까지 오지도 않는 신장을 가진 소녀에 행동 하나하나에 쩔쩔매고 있었다.
카미바레즈는 다리를 번갈아 흔들다가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빨리 시몬이 돌아왔으면 좋겠다.'
특별수업이 일찍 끝난 그녀는 빨리 키젠에 돌아갈 수 있었지만, 잠시 북부에 들러 시몬과 함께 가기로 했다.
하수인들은 상부의 허락을 받아 이를 수락했고, 눈보라가 잠시 그쳤을 때 북부로 향하는 텔레포트 마법진을 열어주었다.
빌케노스는 눈보라 때문에 바로 갈수 없었다. 인근 도시에 도착한 카미바레즈는 상인들의 마차를 빌려 타서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특별수업을 다녀온 지방에서 시몬에게 줄 특산물 선물도 샀다.
"잘 곳이 없다면 성에 들어와 있게."
집사 고드릭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비상시라 여관은 다 찼을 거야. 성 내에 대피실을 만들었으니 거기서 묵게."
"감사합니다!"
휘이이이이잉.
그녀의 보랏빛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흔들렸다. 샌드위치를 다 먹은 그녀가 콩 하고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녀가 코를 킁킁거리다가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나?"
"저어."
그녀가 손을 뻗었다.
"저건 북부의 흔한 몬스터인가요?"
빌케노스 성벽의 끝.
"!!"
성벽 위로 한 거대한 얼굴이 그들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