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83화
시몬은 모든 상황을 대공에게 이야기했다.
"네가 본 건 삼형제급 개체가 틀림없어 보이는구나."
대공이 말했다.
원래부터 북신이 '넷째'까지 쓸 수 있었는지, 혹은 삼형제가 죽은 뒤에 안배해 놓은 시체를 넷째로 만들어 빌케노스에 보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대공이 광풍의 활의 사거리를 속였던 것처럼 북신 또한 숨겨놓은 수가 몇 가지나 있었던 것이다.
"내가 경솔했다."
그녀가 입술을 비틀었다. 두 주먹은 으스러져라 쥐고 있었다.
"시간을 더 들여서 장기전까지 준비했어야 했거늘."
"아, 아니에요! 대공은 그 상황에서 최선의 판단을 하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피어가 팔짱을 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냐? 군단장들. 선택의 시간이다.]
"......."
대공은 눈을 감고 깊게 고민했다.
넷째가 텅 빈 빌케노스를 공격하고 있다. 그리고 북신이 있는 곳은 여기서 산맥 몇 개를 넘어가야 하는 위치에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고민은 한참 길어졌다. 그녀는 고개를 젖혔다가, 주위를 한 바퀴를 돌았다가, 이를 악물기도 했다.
일분일초가 아까운 시점이었지만 그만큼 한 번의 결정에 북부 전역의 운명이 달려 있는 상황. 심사숙고할 수밖에 없었다.
대공은 여러 경우의 수를 놓고 고민했고. 마침내.
"결정했다."
그녀의 입이 열렸다.
"빌케노스로 돌아간다."
"자, 잠깐만요!"
시몬의 눈이 커졌다.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여기까지 왔잖아요! 이렇게 그냥 돌아가겠다고요?"
"넷째를 내버려 두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희생을 치르게 된다."
현재 빌케노스에는 집사 고드릭이 이끄는 소수의 방어병력밖에 없다. 그리고 북신이 죽었을 때 통제가 풀린 언데드들이 날뛸 것을 대비해, 북부 대부분의 인구가 빌케노스에 피신해 있는 상황.
이대로 넷째가 도시에 들이닥치면 대학살이 일어난다.
"내 의무는 북신을 제거하는 게 아니라, 북부를 지키는 것이니라."
그녀가 눈을 감았다.
"설령 북신을 제거한다고 한들, 북부에 살아갈 백성들이 없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느냐. 나는 의무에서 눈을 놀릴 수 없다."
가만히 듣고 있던 에르제베트가 어깨를 으쓱했다.
[모든 전력이 빠르게 프로스트 필드로 나아가서 북신을 제거하는 계획은 어떤가요?]
"그것도 불가능하다, 에이션트 언데드."
북부군의 상태는 두말할 것 없이 최악이었다. 급하게 준비한 출군이고, 식량이나 방한용품은 이제 곧 바닥난다.
딱 프로스트 필드로 가서 북신을 처치하고 돌아올 만큼만 준비한 상황.
그런데 지금 여기서 피로가 쌓인 군대를 이끌고 산맥을 넘어 새로운 어비스에서 전투까지 벌인다면?
"전멸하겠지. 북신과의 전투에서 이겨도 돌아갈 수 없다."
대공은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렸다. 어비스 위에 있는 언데드들의 사념에 접속하는 것 같았다.
"눈보라가 치는구나. 북신에게는 기상을 조종하는 능력도 있지. 악천후에는 통신이나 텔레포트 마법진은 물론, 외부의 지원도 기대할 수 없다."
손을 내린 그녀가 쓰게 웃었다.
"체크메이트구나. 인정하기 싫으나 이번 출정은 실패한 출정이다. 북신은 우리보다 몇 수는 더 앞서 있었다. 그뿐이다."
"......대공."
그녀가 망토를 펄럭이며 등을 돌렸다.
"후퇴한다. 가니로 대장군에게 병력을 수습해서 순차적으로 퇴각하도록 하겠다. 나는 헤이트와 팬텀 나이트들과 함께 먼저 빌케노스로 달리겠느니라."
"......."
"결국 나도 놈의 숨통을 끊지 못하고, 프로스트 필드까지만 도달한 대공으로 남는구나."
바로 그때.
"아뇨."
시몬이 한 걸음 다가왔다.
"북신을 치겠습니다. 7군단 단독으로."
그녀가 걸음을 멈추고 놀란 눈으로 시몬을 돌아보았다.
다른 에이션트 언데드들도 모두 시몬을 주목했다.
시몬 또한 한 사람의 군단장.
대공의 지시를 따르고는 있었지만, 결국 별개로 움직일 권한은 있었다.
"건방진 것. 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고나 있는 게냐?"
"네."
시몬은 대공의 입장을 이해했다.
그녀는 북신의 제거보다 북부의 수호가 우선이다.
만에 하나 시몬과 대공이 힘을 합쳐 빠르게 북신을 없앤다고 해도, 넷째는 멈추지 않는다. '삼형제' 같은 하이브 개체일 경우 넷째 스스로 자립하고 판단해 움직일 수 있다. 빌케노스는 확정적으로 파괴된다.
그러니까.
"7군단 단독으로 치겠단 겁니다."
"무모하다!"
그녀가 성큼성큼 다가와 시몬의 어깨를 붙잡았다.
"프로스트 필드의 험준한 산맥은 어떻게 넘을 생각이느냐?"
시몬은 씩 웃으며 옆을 가리켰다.
"헤르세바의 '게하임'으로요."
옆에는 지팡이 위에 올라간 모래 여인이 후후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었다.
시몬은 이번에 개방한 헤르세바의 게하임에 대해 설명했다.
"......."
대공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하지만 어비스의 구멍이 열 개라고 했는데, 그곳들을 네 군단으로만 전부 공략할 수 있겠느냐?"
"물론이죠."
시몬이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께 물려받은 군단에는 에이션트 언데드가 많으니까요. 이번에야말로 제가 북부를 해방하겠습니다."
그녀의 동공이 흔들렸다.
'요나.'
북부에 와서 북신의 병력을 궤멸시키고 자신을 구해줬던 그 남자.
그녀가 입술을 꾹 깨물다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
"전략은 네 에이션트 언데드에 의지하는 것뿐이냐?"
"대공과 북부군에도 의지할 겁니다."
"뭐라?"
시몬이 손바닥을 펼쳤다.
"북신은 대공의 칠흑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하셨죠? 대공이 '넷째'를 잡으러 떠나고, 북부군도 퇴각하기 시작한다면 북신은 어떻게 나올까요?"
그녀는 더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퇴각하는 우리의 등을 치겠지. 북신은 늘 그런 전술을 펼쳐왔으니."
"네, 자신을 지키던 병력 일부를 보낼 겁니다. 북부군을 궤멸시킬 절호의 기회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시몬이 자신의 발밑을 가리켰다.
"지금 우리는 함정에 빠진 게 아니에요. 엄연히 어비스를 '함락'시킨 겁니다. 북신의 병력을 많이 소모시킨 것도 사실이죠."
시몬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위기는 기회. 북신의 진짜 본진을 칠 가장 좋은 찬스는 지금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공은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입을 열었다.
"아직 못 미덥구나."
파이팅 넘치는 포즈를 취하고 있던 시몬이 움찔하며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허, 허락하시지 않는 건가요?"
"우리는 동등한 군단장이니라. 네가 출전을 결정했다면 나로서는 말릴 수 없다. 다만-"
대공이 고개를 돌렸다.
"플루토, 따라가라."
[어? 애 보는 일이야. 묭?]
"중요한 일이다. 7군단의 지시를 따르도록."
[하는 수 없지. 묭묭!]
플루토가 폴짝폴짝 뛰어오더니, 시몬의 어깨에 착 올라갔다.
[잘 부탁해! 묭!]
시몬의 눈이 커졌다.
"...플루토를 이쪽에 보내주셔도 되는 거예요?"
"물론이니라. 넷째의 상대는 나와 헤이트만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펄럭!
그녀가 아공간을 열더니 뭔가를 꺼내 들었다.
시몬의 눈이 커졌다.
그것은 황금의 깃발.
북부의 기수들이 쓰는 깃발이었지만, 보통의 깃발들과는 뭔가 달랐다.
"아직 내게도 마지막 한 수가 남아 있느니라."
그녀가 깃발을 바닥에 꽂았다.
"이, 이건?"
"내 힘의 5할을."
그녀가 광풍의 활을 들어 올렸다. 즉각 헤이트가 움직여 그녀의 몸과 활을 휘감았다.
"여기에 쓰겠다."
휘오오오오오오오오!
그녀가 광풍의 활을 어비스의 하늘을 향해 겨누고는 쏘아 보냈다.
몰아치는 후폭풍에 시몬은 물론 주위의 에이션트 언데드들까지 물러섰다.
'우와아!'
시몬이 식은땀을 흘렸다.
지금까지 본 대공의 화살 중 가장 강력한 화살.
그것은 어비스에서 쏘아올려져 하늘 끝까지 날아가다가 이내 반짝이며 사라져 버렸다.
"네가 위기에 빠지는 순간에 이 깃발을 써라."
그녀가 깃발을 뽑아 시몬에게 건넸다.
"북신이든 그 어떤 강대한 적이든, 이 깃발을 쓰면 파괴할 수 있을 거다."
시몬은 공손히 그것을 받아 들었다.
대공은 에이션트 언데드 플루토를 보내주고 힘의 절반까지 썼다.
사실상 시몬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다.
그녀의 깃발을 받는 순간, 그녀의 의지가 전달되어지는 것만 같았다.
"시몬 폴렌티아. 북부의 명예 기수로 임명하마."
황금 깃발을 든 시몬이 결연한 눈으로 미소 지었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터업.
그녀가 대뜸 다가와 시몬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댔다. 시몬은 깜짝 놀랐지만, 그녀의 진중한 표정을 보고는 물러서지 않았다.
"......고맙다."
그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무수한 감정이 전해져 왔다.
북신을 눈앞에 두고도 물러서야 하는 분함.
희생된 병사들에 대한 슬픔.
시몬에 대한 걱정.
그리고 나서주겠다고 말한 커다란 고마움까지.
시몬도 애써 감격으로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씩씩하게 웃었다.
"제게 맡겨주세요."
* * *
빌케노스.
"비상! 비상이다! 적습이다!"
"계속 달려! 아이들을 데리고 대피소로 가!"
갑작스러운 '넷째'의 공격으로, 빌케노스는 대혼란에 빠졌다.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집에서 뛰쳐나온 사람들이 대피소로 도망치고 있었고, 대공의 성으로 향하는 좁은 길목에는 사람들이 붐볐다.
전사들은 무기를 들고 성벽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쿵-!
쿵-!
쿵-!
성벽이 뒤흔들리고 있다. 넷째가 거칠게 머리로 성벽을 들이받고 있었다.
후두두둑-
성벽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넷째의 모습을 묘사하자면, 신체 미성숙아가 거인이 된 형상을 하고 있었다. 거인이지만 덜 발달된 듯한 두 팔, 가느다란 다리. 그리고 비정상적으로 크기만 한 머리.
다행스럽게도 넷째의 신체 능력으로는 성벽을 올라오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그냥 힘으로 박살 내려는 것 같았다.
"막아! 어떻게든 막아!"
북부의 전사들이 성벽으로 뛰어들어와 화살을 쏴냈다. 피부에 부딪혀 튕겨 나가는 게 태반이었지만, 넷째는 따끔한 통증을 느끼는 듯 홱홱 짧은 두 팔을 움직였다.
"저놈, 보기보다 별거 아닌 것 같은데?"
"그래, 삼형제를 만들려다 실패한 실험체 같군."
터업.
그때 넷째가 비대해진 제 얼굴을 붙잡았다.
불룩- 불룩-
그러자 머리가 심장처럼 불끈불끈 뛰기 시작했다. 머리카락 없는 두상에 혈관이 두드러지고 희미하게 뇌의 형상이 두드러졌다.
불룩- 불룩- 불룩- 불룩-
넷째의 몸 곳곳에 칠흑이 흘러나와 마법진의 형상을 이루었다. 전사들이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고는 뒷걸음질 쳤다.
"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뒤를 봐! 도, 도시가!"
뿌드드드득!
콰직!
빌케노스의 도심지의 집들이 하늘 위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무수한 집들이 모조리 고공에 멈춰선 채 고정되었고.
"떨어진다!"
그 모든 파편들이 쏟아져 내렸다.
북부에서 가장 큰 도시인 빌케노스 한복판에 일어난 대재해. 사람들이 뛰쳐나와 도망치기 시작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늦었다.
콰아아아아아-!
그 순간, 붉은 파도가 몰아닥쳤다.
"?!"
공중에서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붉은 파도들이 떨어지는 커다란 잔해들을 치워 버렸다. 심지어 흩어져 있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우산을 펼치거나 떨어지기 전에 구출하기 시작했다.
"괜찮으세요?"
차악.
붉은 파도에서 떨어진 건 연보랏빛 머리카락의 소녀였다.
"이 틈에 얼른 도망치세요!"
"고, 고맙소!"
전사들이 모두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피로 몸을 감싸더니 무너진 건물의 기둥 위로 올라와 넷째를 응시했다.
"그만하세요. 더 이상 사람들을 해치는 건 용서 못 해요!"
그녀가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러나 넷째는 다시 한번 흑마법을 발동하며 주위의 건축물들을 공중으로 뽑아내려 하고 있었다.
카미바레즈는 자신의 복부에 손을 대고,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이번 특별수업의 성과.
그녀의 동공이 점점 붉게 물들었다.
"계속 사람들을 해치겠다면......!"
북신이 간과한 사실 중 하나.
그건 바로.
"저도 북부와 시몬을 위해 싸우겠어요!"
빌케노스에는 우르슬라의 뱀파이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