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85화
대공이 빌케노스로 떠나고, 북부군도 뒤따라 퇴각을 시작했다.
그사이 시몬은 남은 7군단의 병력을 수습해서 뒷길로 빠져나가 산맥 뒤편에 자리 잡았다.
에르제베트가 빈틈없이 결계를 펼쳤고, 이곳에서 한동안 쥐 죽은 듯이 대기했다. 모든 정찰은 송장거미들로만 이루어졌다.
그러다.
[군단장님!]
에르제베트가 새로운 보고를 해왔다.
[드디어 북신의 언데드 병력이 움직였사와요! 퇴각하는 북부군을 노리고 몰려들고 있다네요!]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지금이 공격할 타이밍이네."
북신의 병력이 북부군에 집중하는 사이, 7군단은 산맥을 넘어 단숨에 북신이 있는 '진짜 어비스'까지 도달한다는 게 계획의 골자였다.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부탁할게, 헤르세바."
헤르세바가 하늘에서 공중제비를 돌며 나타났다.
[나한테 맡겨. 꼬맹아!]
지팡이에서 모래가 흘러나와 여성의 형태로 변했다. 그녀가 팔을 뻗었고, 시몬 또한 팔을 뻗었다.
두 팔이 맞닿았고, 두 사람은 눈을 감았다.
두근-
헤르세바에 사념에 접촉하는 순간 칠흑의 고동이 느껴진다.
회상에 잠긴 그녀의 감정이 파도처럼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그리움.
동경.
사무치는 마음.
시몬은 그녀의 모든 감정을 긍정했다.
'가라, 헤르세바.'
그리고 사념으로 자신의 상상력도 보탰다.
그녀가 말했던 기억의 조각들. 더욱 잘 떠올려서 다시금 펼쳐낼 수 있도록.
쿠구구구구구구구구!
도화지 같은 하얀 설산의 벌판 위로, 깨가 뿌려지듯 금빛 모래가 뒤덮는다. 그리고 출렁출렁 파도처럼 흔들리더니 이내 지붕의 형상들이 곳곳에서 솟구치고 있었다.
[오호.]
[대단한데! 모래 아줌마!]
곁에 있던 에이션트 언데드들이 탄성을 흘렸다. 시몬의 입가에도 미소가 맺혔다.
'모래의 세계의 확장.'
헤르세바의 권능인 '모래의 세계'는 타인을 자신의 던전에 초대한 뒤에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번에 그녀는 엄연히 현실에서 자신의 이능을 '모래의 세계'급으로 확장해 가고 있었다.
쿠구구구구!
눈보라가 몰아치는 프로스트 필드 한복판에, 모래로 이루어진 사막 도시가 펼쳐진다.
어느 정도 규모를 구축하자, 모래도시는 섬처럼 뚝 떨어져 공중으로 올라가려 했다.
시몬이 달려가 건물의 지붕 하나를 붙들며 신이 난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이야! 모두 올라타!"
언데드들도 기다렸다는 듯 우르르 몰려들었다. 이내 군단의 남은 병력이 모래의 도시에 올라타고, 도시는 공중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에르제!"
[맡겨주시와요!]
도시의 가장 끝에 매달린 그녀가 손을 움켜쥐었다. 결계를 이루고 있던 거미줄이 움직여 도시섬의 아래쪽에 치덕치덕 달라붙었다.
이내 섬의 아랫부분이 거울처럼 바뀌어 하늘과 같은 색으로 변했다.
에르제베트가 평소 즐겨 쓰는 일종의 '보호색' 기능이다. 아래에서 위를 내려다보면 제대로 분간하기 힘드리라.
물론 비행형 언데드들이 정찰하고 있다면 바로 들켰겠지만, 지금 북신의 비행형 언데드들은 없다.
그레이슨이 7군단으로 들어오기 전에, 자신의 영향권 안에 있던 모든 비행형 언데드들의 통제권을 끊고, 해방시켰기 때문이다.
'당신 덕분이에요. 그레이슨.'
시몬은 속으로 감사를 표하며 팔을 뻗었다.
"출발해, 헤르세바!"
[간다!]
헤르세바가 도시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깎아지른 듯한 설산들이 쭉 내려다보인다. 걸어서 가면 몇 날 며칠이 걸릴지 모르지만, 이 비행요새라면 북신이 있는 곳까지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는다.
[다들 조심해. 버틸 수 있는 무게가 아슬아슬하니까!]
헤르세바의 말에 날뛰던 언데드들이 바로 조용해졌다. 실제로 모래가 계속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자. 대장들 모두 모여."
시몬이 짝짝 손뼉을 쳤다.
"어비스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전투가 벌어질 테니까 임무를 분배하자."
[분배?]
프린스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가왔다.
뾰옹 뾰옹!
2군단의 파란 토끼, 플루토가 깡충거리며 뛰어와 시몬의 어깨에 폴짝 앉았다.
[알겠다 묭! 네가 본 기억에서 어비스가 10개나 있다고 있지? 묭묭!]
"맞아."
피어가 크흐흐! 하고 웃었다.
[아마 그중에 단 하나만 진짜겠지!]
"네. 북신은 공격자가 포기하고 돌아가길 바랐겠지만 저는 10개 모두 싹 뒤져서라도 찾아낼 생각입니다."
시몬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 녀석이 누굴 적으로 돌렸는지, 확실히 깨닫게 해주죠."
시몬의 그 한마디에, 모든 에이션트 언데드들의 사념에서 강렬한 투지가 일어났다.
* * *
"후방에서 공격이다!"
"제기랄! 산에서도 계속 내려와!"
빌케노스로 퇴각하는 북부군은, 북신이 보낸 막대한 언데드들과 맞닥뜨려야 했다.
패전의 아픔을 달랠 새도 없이, 집요한 북신의 언데드들은 끝도 없이 몰려들었다.
"이젠 끝이야."
한 전사가 절망에 빠져 중얼거렸다.
최후의 결전지라고 생각했던 어비스에서는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이끌어줄 대공도 없고, 식량이나 보급품도 턱없이 부족하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우리도 왕국군처럼 되는 건가."
패색이 짙어지며 지독한 절망만이 맴도는 그때.
"정신 차려라!"
파지지지지지지직!
검은 번개를 일으키며, 최선두에서 병사들을 이끄는 대장군 가니로가 소리쳤다. 그의 검이 허공을 그을 때마다 북신의 언데드들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검을 잡아라! 고개를 들어라! 북부의 긍지는 어디로 갔나!"
그러나 한번 꺾인 사기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북부군은 풍부한 전투 경험은 둘째치고, 특유의 열정과 불같은 사기가 특징이었다. 한번 사기가 꺾이니 속수무책이었다.
가니로는 탄식했다.
'대공께서는 손짓 한 번으로도 병사들을 일깨우셨거늘. 나와 대공 각하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하지만 흔들리는 것도 잠시. 가니로는 대공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더 이상 그 어떤 희생도 있어서는 아니 된다.
퇴각은 희생을 동반하는 일이다.
퇴각하면 북신의 병력이 뒤를 칠 거라는 건 당연한 사실. 북신은 늘 그래 왔고, 그 사실을 대공이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공은 희생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녀는 늘 그런 사람이었다. 손에 닿지 않는 사람들까지 구하려 온 힘을 다했다.
광풍의 화살이 그랬고, 드넓은 범위를 커버하는 2군단 언데드들도 그랬다.
대공은 우리를 버림수로 쓰는 게 아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백성을 살릴 길을 찾는 게 진 아르스칼트가 아닌가.
"대공 각하를 믿어라!"
가니로가 하늘로 뛰어올랐다. 검에 칠흑이 거칠게 스파크를 튀겼다.
콰르르르르르르릉!
그가 검을 내리긋자, 검은 벼락이 언데드 진형 한가운데에 떨어졌다. 그 강렬한 빛에 병사들이 고개를 들어 가니로를 보았다.
"이제 곧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가니로가 번개를 머금은 검을 머리 위로 치켜세웠다.
"모두가 살아날 길은 있다. 대공을 믿고 앞의 적을 쳐라!"
"대장군! 이제 와서 무슨 말을......!"
바로 그때.
거짓말처럼 모든 언데드들의 공격이 멈췄다.
"?!"
모든 행동을 중지하고 멍하니 있던 북신의 언데드들이 갑자기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부, 북신의 언데드가 물러간다!"
"......살았다!"
곳곳에서 안도의 한숨과 함께 바닥에 철퍼덕 쓰러지는 전사들이 속출했다.
가니로가 입가를 벌리며 웃었다.
'역시!'
북신이 자신의 병사들을 되돌리고 있다.
누군가 북신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쪽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
"도망가는 놈들의 뒤를 쫓아라!"
가니로가 앞장서 달려가며 말했다.
"퇴, 퇴각하는 게 아니라요?"
"끝까지 물고 늘어져라! 우리는 패전군이 아니다!"
가니로가 목이 터져라 외쳤다.
"지금! 북신의 목이 코앞에 있다! 우리의 역할이 중요하다!"
* * *
몇 개의 설산을 넘어, 마침내 시몬의 7군단이 올라탄 모래의 도시가 어비스에 도착했다.
그레이슨이 보여준 광경 그대로였다.
붉게 물든 지형에, 열 개의 구멍이 보인다.
[정말 병력이 싹 빠져 있사와요! 군단장님!]
에르제베트가 두 손을 감싸 쥐며 외쳤다.
북부군을 쫓으러 본진의 방비가 약해진 상황. 피어가 클클클 웃었다.
[북신은 이곳에 있는 게 확실하군! 아주 끔찍한 칠흑의 흐름이 느껴진다.]
대장들의 보고를 들은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한 번에 들어가죠. 힘들겠지만 부탁해 헤르세바!"
[알겠어!]
헤르세바가 권능을 다시 한번 발동하자, 커다란 모래 도시가 여섯 갈래로 흩어진다.
피어의 스켈레톤 부대.
에르제베트의 송장거미 부대.
프린스의 좀비 부대.
아케뮤스의 스컬윙 부대.
플루토와 2군단의 잔존 병력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몬과 군단의 네임드 언데드들까지.
총 여섯 부대의 구성이다.
"어비스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북신이 있는지 확인해야 해! 확인을 마친 대장들은 올라와서 다음 어비스에 들어가 줘! 북신을 먼저 찾는 쪽은 신호를 보내고."
[알겠다!]
시몬은 정말로 모든 어비스를 뒤질 생각이었다. 그가 손 끝을 들어 올려 적진을 가리켰다.
[진격하라.]
여섯 갈래로 갈라진 모래성들이 어비스의 위에서 무너져 내렸다. 군단의 모든 병력들이 어비스의 구멍 안으로 내려갔다.
"헤르세바! 이리로 와!"
시몬이 떨어지면서 팔을 뻗었다. 헤르세바는 다소 지친 표정으로 공중에서 내려와 그의 손안에 들어왔다.
"미안한데, 조금 더 싸울 수 있겠어?"
[뭐어? 힘들어 죽겠다고!]
"알아. 하지만."
검은 구멍으로부터 북신의 언데드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시몬이 지팡이를 휘둘렀다.
"북부에서의 마지막 전투야. 한계까지 끌어내서 싸울 수밖에 없어!"
<황금화>
시몬이 어비스의 벽면에 헤르세바를 휘두르자, 벽면이 금빛으로 변하고 그 안에서 생긴 작은 통로에서 미라들이 쏟아져 나왔다.
"가자! 미라들!"
시몬과 미라 부대, 그리고 그동안 북부에서 차지한 네임드 언데드들이 함성을 지르며 쏟아졌다. '미식가'가 발톱으로 지렁이 언데드들을 찢어버리고, '외눈박이'가 커다란 팔로 언데드를 짓누르는 모습이 보인다.
"흡!"
시몬도 지지 않고 지팡이를 휘둘렀다. 사념에 연결된 미라들이 일제히 붕대를 날렸다.
휘리리리릭!
단번에 몰려오던 북신의 언데드들이 붕대에 묶여 벽에 부딪혔다. 미라의 공격을 피한 언데드는 시몬이 직접 뛰어올라 상대했다.
<홍펭 오리지널 - 취타>
쩌어어엉!
마투로 언데드의 안면을 박살 내고, 몸을 빙글 돌려 팔을 세운다.
뼈들이 착착 그의 오른팔에 맞춰진다.
<본 아머 - 핸드건 모드>
투다다다다다다다!
사출구로부터 뼈 탄환이 언데드의 몸에 연달아 구멍을 뚫었다.
오른손으로는 학교에서 배운 기술들. 그리고 왼손으로는 헤르세바의 권능을 사용한다. 오른손으로 아공간을 열고, 왼손으로 헤르세바를 휘둘러 미라들을 조종한다. 미라들의 붕대가 아공간으로 들어가 좀비들을 끄집어내, 정면으로 날려 버렸다.
시몬이 핸드건 사격을 중지하고 쫙 펼친 손바닥을 움켜쥐었다.
<시체 폭발>
콰콰콰콰콰쾅!
전면에서 일어나는 자욱한 먼지구름을 뚫고 치열하게 달리며, 시몬은 왼손에 쥔 지팡이를 벽면에 연달아 두들겼다.
촤르르르르르!
벽면에 황금 미끄럼틀이 생겨났다. 시몬이 두 발을 딛고 빠르게 내려갔다.
[꼬맹아! 전면에 대규모의 언데드야!]
"응."
이제야 본격적으로 북신이 병력을 보내고 있었다. 상당한 수였고, 느껴지는 칠흑으로는 정예병이었다.
'이건 꽤 벅찰 것 같은데.'
시몬이 뒤로 오른손을 뻗었다. 곧 아공간에서 금빛 깃발 하나가 손에 착 들어왔다.
'대공의 깃발.'
깃발을 앞세운 시몬의 눈이 예리해졌다.
'지금이 써야 할 타이밍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