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88화
북부의 승리의 상징.
저 멀리 산맥 너머로 검은 화살이 날아오고 있었다. 그것은 산들을 순식간에 넘어-
퍼어어어어억!
넷째의 가슴 정중앙에 정확하게 틀어박혔다.
콰콰콰콰콰!
화살의 출력 때문에 넷째의 몸이 도심지의 건물을 부수고 끝없이 밀려났다. 한쪽만 남은 발로 멈추려 했지만, 브레이크가 전혀 걸리지 않았다.
[크읍!]
넷째가 다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바로 등 뒤에 대공의 성이 보였다.
[안 돼애애애애!]
으적!
끔찍한 소리가 대기를 흔들었다.
합금으로 세워진 대공의 성벽.
바로 그 성벽을 찌그러뜨리며, 검은 화살이 넷째의 코어를 관통하고 들어갔다.
넷째가 유지하던 검은 폭풍이 가라앉고, 주변을 배회하던 언데드들도 술사를 잃고 보통의 시체로 돌아왔다.
"네, 넷째가!"
"죽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거대한 환호성이 빌케노스를 뒤덮었다.
"대공 만세!"
"우르슬라 만세!"
모두가 환호했다.
쓰러진 카미바레즈의 곁으로 북부의 전사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 뛰어오고 있었다.
"...다행이다."
카미바레즈는 흐려지는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힘내요, 시몬."
후우우우우우웅!
주위의 흙먼지가 불어닥쳤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대공이 광풍의 활을 쥔 손을 늘어뜨렸다.
"맞췄나."
탈력감에 지쳤지만, 그녀는 고개를 젖히며 버텨냈다.
지독하게 쏟아지던 눈보라가 그쳐가고, 희끄무레한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다.
"다른 변수는 없다. 이제 모두 네 손에 달렸다. 시몬."
* * *
시몬과 피어는 새로 들어온 어비스의 깊은 곳까지 내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어비스에서는 언데드들의 공격이 드물었다. 시몬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언데드가 거의 없네요. 여기도 꽝일까요?"
[크흐흐! 오히려 내 생각엔 당첨일 가능성이 더 커진 것 같다만.]
누가 미리 처치해 둔 것도 아닌데, 지금까지 내려오는 동안 언데드의 공격은 일절 없었다. 가끔 보이는 언데드들은 고장 난 것처럼 제자리에 멈춰있었다.
마치 북신이 내려오라고 말하는 것처럼.
시몬은 기꺼이 아래로 내려갔다.
타닥.
이내 두 발바닥이 지면에 닿았다. 파멸의 대검을 치켜든 시몬은 어비스에 나 있는 혈관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찾았다.'
처음 갔던 어비스 때처럼 붉은 피막이 보인다.
그리고 그 너머로,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소름 끼치도록 불길한 칠흑이 느껴진다.
긴장한 시몬의 목울대가 꿀렁였다. 그는 붉은 피막을 들추고 앞으로 나아갔고.
'!'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얼어붙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무수한 생체 조직들이 심장처럼 펄떡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곳곳에 자라난 혈관들이 피와 칠흑과 영양소를 끝도 없이 생체기관에 운반하였고, 이는 어비스 전역으로 뻗어나가 있었다.
제일 처음 대공과 갔었던 망가진 옛 어비스를 그대로 복원한 듯한 모습. 하지만 전이 고장 난 공장이었다면, 이번엔 작동 중인 공장이다.
그리고 이 생체시설의 중앙에는 끔찍한 혈관 등으로 뒤덮인 왕좌가 있었다. 그 위에 뭔가가 앉아 있다.
'설마 저게......!'
처음에는 인간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마르고 큰 체형에, 뼈 성분으로 이루어진 흰 외골격이 갑주처럼 몸을 감싸고 있다. 가슴 중앙에는 괴물의 눈 같은 게 달려 있었으며, 그 주위로 복잡한 혈관들이 이어져 있다.
머리 또한 외골격으로 보호받고 있다. 그 안으로 보이는 안면에는 곡선으로 휘어진 특이한 주름이 잡혀 있다. 턱이 길쭉하고, 주둥이가 튀어나왔다.
마치 외계에서 온 존재 같았다.
'저게 북신이라고?'
그동안 여러 어비스나 북신의 언데드들로부터 느꼈던 칠흑과 가장 흡사한 '원천'에 가까운 칠흑이 느껴진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동안 여러 대공들이 묘사해 왔던 북신의 외모와는 차이가 있었다.
[왔구나.]
그 순간, 시몬을 발견한 그 존재의 눈이 번쩍였다.
[요나 님의 아들.]
혈관의 왕좌에 앉아 있던 그것이 몸을 일으켰다. 압도적인 칠흑이 이 공간에 흘러넘치고 있었다.
시몬의 눈이 게슴츠레 떠졌다.
'방금 뭐라고? 요나 님의 아들?'
[보고도 믿기 힘들군.]
그때 피어의 한탄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설마설마했지만, 이럴 수가. 네놈이 어떻게 여기에 있나!]
시몬은 피어의 사념으로부터 커다란 혼란과 충격을 전해 느꼈다. 늘 냉정했던 피어가 이렇게 흔들리는 건 처음이었다.
[설귀 부대의 대장, 자이로스!]
그 말에 시몬도 덩달아 몸에 소름이 끼쳤다.
부대의 대장?
북부를 천 년 넘게 괴롭혔던 '북신'이 사실은 7군단의 에이션트 언데드였다고?
[오랜만이다 피어.]
자이로스의 눈이 번쩍였다. 두 언데드는 이미 구면인 듯했다.
시몬은 혼란에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잠깐만요, 피어! 자이로스는......!"
[그래.]
피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리처드가 북부를 지키라고 명했던 바로 그 에이션트 언데드다.]
20년도 더 전에, 리처드가 어린 나이의 대공과 만났던 그 날.
-내가 지금부터 북신의 전력을 궤멸시킬 거야. 향후 5년간은 꼼짝도 못 하도록 내 에이션트 언데드도 두고 갈 거고. 하지만 지켜주는 건 딱 5년뿐이야.
리처드는 막 아버지를 잃은 어린 나이의 진 아르스칼트와 만나 5년간 북부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 역할을 맡은 에이션트 언데드가 바로 자이로스 본인이었다.
[네놈이 왜 이곳에 있나! 분명 북신과 싸우다......!]
[싸우다 죽었다. 인간들 사이에선 그렇게 알려져 있겠지.]
자이로스의 손에서 칠흑이 일렁였다. 그에 반응하듯 어비스의 생체기관들이 펄떡펄떡 뛰었다.
[하지만 반대다. 나는 북부를 지키라는 요나 님의 명령을 뛰어넘어 홀로 북신을 없앴고, 그 힘을 내게 이식했다!]
그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등에는 펄떡거리는 북신의 생체기관이 붙어 있었다. 끔찍한 눈동자가 꾸르륵 움직이며 그들을 보았다.
[이제는 내가 새로운 북신이다.]
퍼억!
퍽!
곳곳에 뛰고 있던 생체기관이 터져나가며 그 안에서 갓 변이된, 액체가 흥건한 언데드들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언데드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군단장을 배신했는가! 자이로스!]
피어가 소리쳤다.
[배신?]
순간 자이로스의 눈이 사납게 번뜩였다. 그의 팔에서 혹한이 몰아치며 순식간에 7미터가 넘는 대검의 형태로 변했다.
[먼저 배신한 건 요나 님 쪽이다!]
자이로스가 움직였다.
'빨라!'
시몬은 식겁하며 대검을 휘둘렀다.
까아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시몬의 몸이 밀려났다. 손끝에 저릿저릿한 감각에 동공이 뒤흔들렸다. 일검만 나눴을 뿐인데 깨달았다.
'이 자식! 무지막지하게 강해!'
북신은 전투능력이 전무하다고 했던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까아아앙!
까앙!
깡!
북신이 가진 전투능력의 전부라는 삼형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시몬이 '큭!' 소리를 내며 비틀거렸다. 파멸의 대검이 서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조심해라 소년! 자이로스가 내뿜는 냉기에 직접 닿으면 위험하다!]
그 말대로였다.
파멸의 대검이 무거워질 뿐만 아니라, 칠흑의 전달률이 극도로 떨어졌다. 시몬은 이를 악물고 손잡이를 강하게 틀어쥐었다.
'부탁해! 칼!'
스르르르르르!
대검이 거무죽죽한 녹색으로 물들더니, 독액이 방울지며 검을 뒤덮었다. 동시에 자이로스의 대검에 밀리지 않는 길이로 변했다.
"하아앗!"
시몬과 자이로스가 동시에 대검을 휘둘렀다. 녹색과 청색의 궤적이 서로 부딪힌다.
꽝! 꽝! 꽝!
터져 나오는 굉음.
액체와 기체가 연달아 부딪히고, 녹색과 푸른색이 스파크를 튀기며 얼리고 녹인다.
[기대에 턱없이 못 미치는구나.]
자이로스가 시몬의 대검을 가볍게 쳐내며 전진해, 비어 있는 반대쪽 손으로 시몬을 후려쳤다.
꽈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날아간 시몬이 어비스의 벽면에 부딪혔다. 그가 크헉! 소리를 내며 입가에 피를 토했다.
[소년!]
[정말로 그분의 아들이 맞는지 의아할 지경이군. 역시 너는 요나 님을 대체하지 못해.]
자이로스가 혹한으로 만든 검을 허공에 스스로 흩뜨리더니, 자리에 앉는 시늉을 했다.
꾸르륵!
아무것도 없던 어비스의 바닥에서 혈관들이 올라와 왕좌의 형상으로 변했다. 그가 자리에 앉는 순간, 북신의 힘이 발휘되며 어비스 곳곳에서 눈 달린 수백 개의 촉수들이 벽, 천장, 바닥을 가리지 않고 꿀렁거리며 올라왔다.
[아들을 죽이면-]
왕좌에 앉은 그가 팔을 들어 올렸다.
[요나 님도 이곳에 찾아오진 않고선 못 배기겠지. 안 그런가?]
꽈르르르륵!
꾸르르륵!
그가 손짓하자 촉수들이 뻗어오고, 기다리던 언데드들도 덮쳐왔다.
"아까부터!"
콰악!
시몬이 거칠게 바닥을 짓밟으며 허리를 돌렸다.
"무슨 소릴 지껄이는 거야!"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힘껏 당긴 대검을 내질렀다. 은빛 검격이 촉수들과 언데드들을 베어 넘기며 뻗어나갔고, 자이로스는 앉은 자세에서 팔을 올렸다. 바닥이 벽처럼 일어나 그 공격을 받아냈다.
"제대로 설명해! 왜 아버지가 배신자라는 건지! 날 죽여서 아버지를 북부에 불러들이겠다는 게 무슨 소린지!"
대검을 고쳐 잡은 시몬이 척! 하고 자이로스 쪽을 가리켰다.
"전부 아버지에 대한 복수가 목적이야?"
그가 왕좌에 팔꿈치를 얹고 깍지를 끼더니 턱을 괴었다.
[내가 대답할 필요가 있나?]
"있어."
시몬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리처드 폴렌티아의 아들, 시몬 폴렌티아다. 동시에 현 7군단장이기도 하다. 네가 아버지의 것이었다면."
시몬의 눈이 번뜩였다.
"너는 내 소유다."
[하하하하하하하!]
자이로스가 들썩이며 웃었다.
[잘난 건 그분의 피를 물려받은 것 하나뿐이면서 참으로 기고만장하군! 심지어 아주아주 불쾌한 피가 섞인 놈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야."
시몬이 으르릉거리며 말했다.
"아버지의 유산이라면 내가 가지겠어. 그만큼 당연히 아버지의 죄도 내가 감당할 거다."
[아들 따위가 어딜. 너는 요나 님의 티끌만큼도 대체하지 못한다!]
자이로스가 팔을 다시 들어 올리자, 북신의 힘이 발휘되기 시작한다.
[내가 원하는 건 오로지 요나 님뿐이다!]
촤아아아아악!
촤아아아악!
무수한 촉수들이 올라오고, 곳곳에서 언데드들이 나타났다.
[에이션트 언데드의 정신이 왜곡되어 있다면, 대화는 기본적으로 무의미하다. 소년!]
피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 에이션트 언데드를 다루는 게 군단장이니까, 해내야죠.'
[크흐흐! 꼴을 보아하니, 자이로스 본인은 자신이 북신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내 생각엔 거의 북신에게 조종당하고 있다.]
'네.'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잡아당겼다.
목표는 두 가지.
'자이로스도 가져가고, 북부도 해방하겠습니다.'
당당하게 선언했지만, 시몬도 슬슬 한계였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너무 많은 칠흑과 체력을 소모했다.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혹한이 치는 날씨에서 야영만 하느라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다.
그리고 북신의 힘까지 손에 넣은 자이로스는 시몬만으로 이기기 벅찬 상대.
그 점을 인정하고.
우웅!
시몬은 아공간을 열었다.
결국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아껴둔 무기.
펄럭!
자이로스의 표정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시몬은 오른손에는 파멸의 대검을, 왼손에는 황금의 깃발을 기울이며 자세를 낮췄다.
"시간이 없어. 여기서 승부를 내자, 자이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