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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691화 (691/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91화

프로스트 필드.

"계속 몰아붙여!"

"죽을 힘을 다해 휘둘러라!"

가니로 대장군이 이끄는 북부군은 퇴각을 보류하고, 북신의 언데드 군대를 끈질기게 묶어두고 있었다.

"대장군! 우측 부대가 뚫렸습니다!"

"이탈병들이 너무 많습니다!"

나쁜 소식이 이어졌다. 이미 전사들의 체력은 한계였고, 언데드들의 반격도 거겠다.

하지만.

"전진하라!"

가니로가 피를 토하며 소리쳤다.

"싸우다 죽어라! 어쭙잖은 상처로 죽는다면 사후 북신의 노리개로 조종당할 뿐이다! 목이 잘리고 심장이 뚫릴 때까지 싸워라! 왕국군 놈들처럼 순순히 언데드가 되겠느냐!"

오오오오!

"끝까지 싸워......!"

"대장군!"

그때 부관이 달려와 소리쳤다.

"기, 긴급 보고드립니다! 우리 군을 치던 북신의 언데드들이!"

"뭐냐!"

"모든 움직임을 멈췄습니다! 후퇴하는 게 아닙니다! 완전히 멈췄습니다!"

사실이었다.

북부군의 포위를 좁혀오던 모든 언데드들이, 파문이 번져나가듯 하나둘씩 행동을 정지하기 시작했다.

"뭐야. 이게."

"더, 덤벼라! 아, 안 덤비냐 이것들!"

전사들은 당황한 반응이었다.

이 중에서 가니로만이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해낸 건가!'

* * *

빌케노스에서는 넷째를 쓰러트리는 데 성공했지만, 혼란은 가중되고 있었다.

흑마법으로 일어난 언데드들은 넷째가 파괴되며 무력화됐으나, 넷째가 무너뜨린 성벽 틈으로 영지 밖에 있던 북신의 언데드들이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좀비들은 도시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인간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무, 물러나라!"

넷째를 쓰러트리는 데 모든 힘을 쏟아부은 빌케노스 방어군은, 도심 내에 걸어 다니는 시체들을 막을 여력이 없었다.

거기에 대공의 성 지하 대피소가 꽉 차는 바람에, 도심지 곳곳에서 흩어져 있던 사람들은 모두 위기에 빠졌다.

-어어어어!

여기서도 좀비 떼가 길을 막고 몰려들고 있었다.

부상당한 북부의 전사들은 숨을 헐떡이며 창끝을 휙휙 흔들고 있었다.

"어, 어쩝니까?"

"뱀파이어 아가씨는?"

전사가 고개를 돌렸다. 한 병사의 품에 안겨 있는 교복 차림의 소녀가 색색거리며 힘들어하고 있었다.

"상태가 나쁩니다. 빨리 치료받아야 하는데."

"제기랄, 여기서 어물쩍거릴 시간이 없어!"

한 전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외부인이 아무 연고도 없는 우릴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워줬다. 우리가 다 뒈지더라도 저 아가씨만큼은 무조건 탈출시키자. 불만 있냐?"

전사들이 시선을 맞추고 결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 하나 둘 셋 하면 간다!"

"셋에 가는 거유? 셋이 끝나면 가는 거유?"

"당연히 셋에 가야지! 간다! 하나, 둘......!"

털썩.

전사들이 뛰쳐나가려는 그 순간.

갑자기 한 좀비가 바닥에 엎어졌다.

풀썩!

털썩!

그것을 신호로, 모든 좀비들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지기 시작했다. 뛰쳐나가려던 전사들은 멍청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유?"

"......뭐."

카미바레즈를 안고 있던 전사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흐린 하늘, 빼곡하게 휘날리던 눈보라가 점점 가시며 청명한 푸른 하늘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다 뒈질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넷째가 조종하고 있던 언데드는 물론, 무너진 성벽으로 넘어오던 북신의 다른 언데드들까지 모두 통제력을 잃고 움직임을 정지했다.

이게 뜻하는 바는 하나.

북신이 죽었다.

시가지 곳곳에서 승리를 직감한 주민들의 함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가씨. 괜찮아?"

그때 마침 카미바레즈도 눈을 떴다.

바닥에 쓰러져 가는 좀비들과, 환호하는 북부인들을 바라보던 그녀는 힘겨운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분명......."

"음?"

"분명 시몬이 해낸 거예요."

* * *

같은 시각, 어비스.

시몬은 손을 탁탁 털고 기지개를 쭈욱 켜고 있었다.

그러다 더 견디지 못하고 벌러덩 어비스 바닥에 드러눕고 말았다.

"......죽을 것 같아. 진짜 꼼짝도 못 하겠어."

[크흐흐! 수고했다 소년!]

"피어도 고생했어요."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기분이 어때? 자이로스."

시몬이 그렇게 묻자, 아무것도 없던 어비스의 벽면에 커다란 눈이 튀어나왔다.

북신이었다.

하지만 시몬과 피어는 더 이상 북신을 경계하지 않았다.

[기분 나쁜 몸이긴 하지만, 움직이는 건 편하군.]

시몬과 피어는 북신을 없애고, 그 자리에 군단화한 자이로스의 코어를 삽입했다.

본래 이론상으로는 불가능한 소환계 시술이었으나, 애초에 북신과 자이로스는 한 몸이나 다름없었기에 가능했다.

그동안 북신이 자이로스를 조종했다면, 이제는 자이로스가 북신의 몸을 조종하게 된 것이다.

스르르륵-

눈덩이가 다시 벽면으로 들어가고, 이번에는 바닥에서 촉수들이 솟구치더니 자이로스의 몸으로 변했다.

물론 진짜 본체는 아니었지만, 자이로스는 역시 예전의 몸처럼 다니는 게 더 익숙한 것 같았다.

[모든 언데드의 공격행위를 엄중히 중단하고, 어비스로 돌아오도록 지시했다.]

"수고했어."

그때 자이로스가 천천히 시몬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의 눈동자는 검푸른 칠흑이 번쩍였다.

[나의 주군이여.]

누워 있던 시몬도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똑바로 앉았다.

[지금 이 순간부터 나와 모든 북신의 언데드들, 그리고 프로스트 필드는 그대의 것이다. 우리는 그대의 명령만을 따르며 그대에게만 복종할 것을 영혼에 맹세한다.]

시몬이 쓰게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아하하, 그건 너무 거창한데."

프로스트 필드를 천 년간 지배해 왔던 전설적인 에이션트 언데드 북신.

그리고 그가 이끄는 병력들.

그 모든 전력이 7군단으로 들어왔다.

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전력의 증강이었다.

-[맹세는 개뿔!]

그때 그의 자이로스의 몸에서 새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인간을 없애야 한다! 모든 망자들이 힘을 합쳐야 해! 군단장 따위에 얽매이지......!]

퍽!

자이로스가 주먹으로 제 뺨을 때렸다. 그러다 목소리가 멈추며 다시 자이로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실례했다. 요나 님의 아들.]

"지, 진짜 괜찮은 거 맞아?"

[괜찮다.]

자이로스가 북신의 육체와 정신을 완전히 장악하는 과정에서, 북신의 잔류사념이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 때문에 자이로스가 이런 다중인격처럼 되어버렸으나, 말 그대로 잔류사념일 뿐. 더 이상 자이로스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끼칠 수 없다.

가끔 그 인격이 튀어나와 욕을 하고 난리를 칠 순 있겠지만, 딱 그 정도뿐이다.

[크흐흐!]

피어도 만족스럽게 시몬의 어깨를 두들기며 웃었다.

[리처드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구나. 조금 더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소년!]

"그런가요."

시몬이 다소 얼떨떨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거리고 있는데, 자이로스가 말했다.

[그럼, 이제 명령을 내려다오. 나의 주군이여.]

"음."

시몬이 조금 긴장한 얼굴로 북신이 된 자이로스를 바라보았다.

'이 녀석 성격을 생각하면...... 괜히 어중간한 명령을 내렸다간 이상한 사태가 벌어질 것 같은데.'

이 모든 일이 '북부를 지켜라'라는 리처드의 명령 때문에 벌어진 사태라고 생각하면 정신이 아찔해질 지경이었다.

시몬은 고민 끝에 말했다.

"이, 일단은 현상 유지!"

[......?]

"구체적인 사항들은 대공과 논의를 해봐야 할 것 같고. 일단은 앞서 말한 지침들을 유지하며 대기해 줘."

앞서 말한 지침은 특별한 건 없었다.

인간을 공격하지 말 것.

북부를 침공하지 말 것.

그 외에 중대한 결정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섣부르게 판단하기 이전에 자신에게 보고할 것.

자이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이 있다. 만약 우리가 인간을 공격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누군가가 어비스로 들어와 의도적으로 우리를 파괴하려 들면 어떻게 하지?]

"응? 그럼 당연히 쫓아내야지."

[그건 인간을 공격하지 말라는 지침에 위배되지 않나?]

시몬이 제 이마를 때렸다.

큰일 날 뻔했다.

자이로스는 융통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언데드였다.

"그럼 예외적인 상황을 두자. 안위에 직접적으로 해가 되는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그 해가 되는 행위는 어떻게 구별하지?]

시몬은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구별할 필요가 뭐가 있나. 죽여! 생자는 전부 죽여서 언데드로......!]

퍽!

그 와중에 또 자이로스가 자신의 얼굴을 때려 북신을 닥치게 됐다.

"......진짜 괜찮은 거 맞아?"

[괜찮다. 놈은 더 이상 내게 아무런 해를 끼칠 수 없다.]

시몬이 진땀을 흘렸다.

"당분간은 나한테 하나하나 보고하는 게 낫겠어."

[보고는 어떻게 하지?]

"방법이 있지."

시몬이 아공간을 열었다.

* * *

북부대공, 진 아르스칼트가 빌케노스로 복귀했다.

뒤이어 혹한이 걷히고 날씨가 맑아짐에 따라 북부군도 무사히 빌케노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주민들은 북신이 정말로 죽은 건지,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답해달라는 요구를 해왔다.

'골치 아프구나.'

대공이 이마를 짚었다.

모든 언데드의 움직임이 멈췄다면, 시몬이 북신을 해치운 게 확실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헤어지기 전, 시몬은 미리 말해두었다.

-제가 북신을 파괴하건 7군단에 종속시키건, 제 공으로 발표하진 말아주세요.

특별수업으로 인한 파견은 대외비고, 시몬이 칼로스 북부에 와 있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이번 북신 토벌은 대륙 전체에 알려질 만한 빅뉴스였다. 거기에 시몬이 북신을 잡거나 종속시켰다는 사실이 퍼진다면 의심할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시몬 폴렌티아가 배신의 군단장이라는 사실을.

현재는 7군단 이슈로 대륙 전체가 민감한 상황이었으니 더욱 조심해야 했다. 당분간은 최대한 여지를 주지 않고 몸을 사리는 게 현명했다.

'하는 수 없지.'

"대공!"

집사 고드릭이 문을 열고 들어와 활짝 웃는 얼굴로 말했다.

이번 전쟁에서의 부상으로 전신을 붕대로 두르고 있었지만 표정 하나만큼은 좋았다.

"모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

대공은 고드릭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집무실에서 복도를 지나, 이내 테라스에서 창문을 열고 앞으로 나갔다.

"대공께서 나오셨다!"

"대공 각하!"

창밖 아래로, 발 디딜 틈 없이 모여 있는 무수한 북부인들이 보였다. 성 내부는 물론, 성 밖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 북부인들은 들어라."

그녀가 고드릭으로부터 받은 확성 수정구를 들고 입을 열었다.

"우리는 강맹한 전사들과 충직한 2군단, 그리고 명예로운 조력자들과 함께 프로스트 필드에 진출했느니라. 앞서 명령을 어기고 불법 출전했던 왕국군이 전멸해 북신의 졸개가 되어 앞길을 막는 등 사소한 어려움이 있었으나."

곳곳에서 긴장한 정적이 퍼져 나갔다.

"우리는 그 왕국군마저 전멸시키고 어비스로 진입. 천 년 넘게 싸워왔던 북신을 축출하는 데 성공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곳곳에서 뜨거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현장에 있었던 몇몇 전사들이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하, 하지만 그때 어비스에서 축출한 건 가짜 북신이 아니었습니까?"

"언데드들은 계속 움직였었는데."

"아니, 그곳에 있던 건 진짜였다."

대공이 눈을 감았다.

"놈은 우리의 공세에 겁을 먹고 코어만 빼돌린 채 꽁무니를 뺐을 뿐이다. 놈은 도주를 시도했지만, 군단은 북신을 끝까지 추적해 완전히 멸하는 데 성공했다."

그녀가 눈을 치켜뜨며 팔을 세웠다.

"지금 이 자리에서 선언하마. 우리 모두는 천 년이 남는 악연을 끊고, 북신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 북부에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선언하겠느니라!"

와아아아아아아아아!

환호하는 백성들을 뒤로하고, 그녀는 긴 머리를 흩날리며 등을 돌려 걸어갔다.

성안에는 가니로와 장군들, 원로들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감축드리옵니다 대공!"

"음."

그녀는 사람들과 악수를 하며 걸어가다가 낯선 얼굴을 발견했다.

박쥐 날개가 달린, 연보랏빛 머리카락의 뱀파이어 소녀였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그녀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키젠의 카미바레즈 우르슬라라고 해요!"

"이야기는 들었느니라."

대공이 반갑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내 제자의 친구라지. 북부를 위해 함께 싸워줘서 감사와 경의를 표하는 바다."

"아, 별말씀을요! 인류의 영웅을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그 유명한 북부대공이 눈앞에 있었다. 카미바레즈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그녀와 악수를 했다.

"키젠에는 그대와 같은 대단한 학생들이 많은가."

대공이 물음에 카미바레즈의 뺨이 발갛게 물들었다.

"대, 대단하다뇨! 저는 그냥 그...... 보통이에요!"

'뱀파이어의 로드의 딸이 키젠에서는 보통이라.'

그녀가 입꼬리를 올렸다.

'이렇게 젊고 유능한 네크로맨서들을 보유한 키젠은 어떤 곳일까.'

"그리고 저어......!"

카미바레즈가 망설이듯 눈썹을 모았다가, 이내 용기를 내어 말했다.

"시몬은 함께 오지 않은 건가요?"

그 질문을 들은 그녀는 잠자코 고개를 들어, 성의 뒷문을 바라보았다.

"이제 오겠구나."

"?"

덜컹-

성의 뒷문이 열렸다.

모두가 뒤를 돌아보았다.

다소 어두웠던 성안이 햇빛으로 밝아지며, 그 너머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나.

"아까 나더러 인류의 영웅이라고 했나."

대공이 카미바레즈를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나는 그 이름을 짊어지기엔 택도 없느니라. 진짜 인류의 영웅은 저 녀석이지."

저벅- 저벅-

푸른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소년이, 위풍당당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빙긋 웃는 미소로 말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카미바레즈의 눈이 감격으로 그렁그렁해졌다.

"시모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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