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692화 (692/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92화

"늦어서 죄송합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카미바레즈의 눈이 감격으로 그렁그렁해졌다.

"시모온-!"

그녀가 두 팔을 벌리고 달려와 시몬의 품에 힘껏 안겼다.

'으, 응?'

시몬은 갑자기 달려든 소녀를 보고 당황했다.

익숙한 검은 교복에, 익숙한 정수리. 그리고 무엇보다 파닥 파닥 파닥 기쁨을 싣고 흔들리는 앙증맞은 박쥐 날개까지.

'카미가 왜 북부에 있어?'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던 시몬은, 별안간 자신의 가슴께가 촉촉해지는 것을 느꼈다.

"시몬."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던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감격으로 그렁그렁해진 큼지막한 눈망울이 보인다. 울먹이던 그녀가 시몬의 얼굴을 살펴보더니 이내 만개하는 꽃처럼 활짝 웃어 보였다.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아.'

시몬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으, 응."

그때 뒤에서 팔짱을 낀 채 다가온 대공이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구나. 여자친구냐?"

두 사람이 벌게진 얼굴로 돌아보며 외쳤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들의 반응에 대공은 소리 내어 웃었다.

"좋다."

그녀가 긴 머리를 흩날리며 등을 돌렸다.

"내 집무실을 빌려줄 터이니 회포를 풀 거라. 다 끝나면 성 밖의 연무장으로 나와라. 보고는 거기서 듣겠다."

"아, 넵. 감사합니다!"

* * *

시몬과 카미바레즈는 대공의 집무실에서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카미바레즈는 빌케노스에서 시몬을 기다리다가 엉겁결에 '넷째'와 싸웠던 이야기를.

시몬은 대공과 함께 북부군에 들어가서 북신과 싸웠던 이야기를.

물론 시몬은 군단장이나 자이로스에 관련된 부분은 제외해서 들려줄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 카미."

시몬이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나 때문에 괜히 사건에 휘말려서."

"아, 아니에요! 제가 멋대로 여기 오겠다고 고집을 부린걸요!"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앙증맞은 박쥐 날개가 뒤따라 파닥파닥 흔들렸다.

"그리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나쁜 언데드들을 잡는 건 네크로맨서의 본분이니까요! 저도 특별수업의 성과를 실전에서 바로 발휘하게 돼서 많은 공부가 됐어요!"

시몬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르며 상냥하게 웃었다.

"그런데 카미. 내가 칼로스 북부에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각 학생들의 특별수업 목적지는 대외비다.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되고, 같은 키젠 학생이라도 보안 때문에 비공개인 정보였다.

그런데 카미바레즈는 '시몬과 같이 학교에 돌아가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보안을 뚫은 것이다.

시몬의 물음을 들은 카미바레즈는 순진무구한 눈으로 날개를 파닥거렸다.

"저 네프티스 님이랑 통화했어요!"

시몬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프티스 님이랑? 직접?"

"네! 하수인 분들이 상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수정구로 연락했는데, 갑자기 깜짝 놀라는 거예요."

그녀는 그때를 상상하는 듯 눈을 감았다.

"알고 보니 네프티스 님이 연락을 받으신 거였어요! 몇 가지 물어보시더니, 시몬이 있는 장소는 칼로스 북부인데 괜찮겠느냐. 보내줄 수는 있지만 조심하라고 하셨어요!"

시몬이 당혹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늘 느끼는 거지만 네프티스의 행동은 예측 불가능한 범주에 있었다.

암흑제 때 7군단의 존재를 까발려 버린 것도 그렇고, 뜬금없이 특별수업 제도를 끌고 와서 시몬을 북부로 보내 버린 것도 그랬다.

결과적으로는 카미바레즈의 맹활약으로 빌케노스가 무사했지만, 일을 벌이는 상관 밑에서 수습하는 제인이 고생하는 모습이 눈에 훤했다.

"그래도 규정은 규정이니까. 내가 칼로스 북부에 왔다는 사실은 비밀로 해줄 수 있을까?"

"네, 물론이죠!"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반가움에 재잘재잘 수다를 떨었다.

키젠 복귀는 바로 내일이었다.

이미 기존의 복귀 기간에서 꽤 늦어졌으나, 학교에서는 불가항력이었던 북부 사태에 대해 듣고 사정을 생각해 준다는 것 같았다.

'으, 밀린 숙제랑 과제들은 언제 하냐.'

전쟁 중에 밀린 과제는 오늘 밤을 새워서라도 하고 가야 할 것 같았다.

'아 참.'

그러다 시몬은 뒤늦게 대공이 보고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몸을 일으켰다.

북신이 어떻게 됐을지 무척 궁금해하고 있으리라.

"여기서 쉬고 있어. 대공께 경과를 보고하고 올게."

카미바레즈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시몬!"

* * *

성에서 빠져나와 정원을 조금 걷다 보면 대공의 연무장이 나온다.

시몬은 이제는 익숙해진 이곳을 느긋하게 걸었다.

여기서 대공과 훈련하던 때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가르쳐 준 걸 똑바로 못하면 화를 내고, 칼집으로 때리기도 하고, 그러다 갑자기 하늘을 보고 광풍의 화살을 날렸다가 다시 돌아오곤 했다.

이제는 그 모든 게 마지막이었다.

"아."

마침 대공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훈련복 차림으로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있었다.

평소 몸에서 잘 떼지 않던 광풍의 활도 풀밭에 내려놓았고, 주위에는 운동기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왔느냐."

그녀가 뒤를 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시몬도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단련은요?"

"여기오니 습관처럼 훈련복을 입고 운동기구를 들다가 깨달았느니라."

그녀가 묘한 회한에 젖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전쟁은 끝났고, 이제 더 할 필요가 없단 사실을."

"......아하."

"다친 곳은 없느냐?"

"크게 없습니다. 며칠 내로 다 나을 것 같아요."

"다행이구나."

시몬은 이어서 프로스트 필드에서 있었던 사건의 경과를 보고했다.

같은 군단장인 그녀에게는 자이로스와 군단장에 관련된 사태까지 모든 것을 보고할 수 있었다.

북부가 싸우던 북신의 정체는 사실 '자이로스'였다.

요나의 명령으로 북부를 지키는 수호자였던 그는, 시간이 지나 요나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해 정신이 갉아 먹혔고 요나의 명령에 매몰되었다.

약해진 마음의 빈틈을 북신이 파고들었다. 자이로스는 북신을 제거하고 스스로 북신이 됐다고 생각했었지만, 사실은 북신에게 조종당하는 꼴이 됐을 뿐이다.

그렇게 자이로스가 벌어준 5년 동안 성장해서 자리를 잡은 대공과, 북신이 된 자이로스의 혈전이 이어져 온 것이다.

"그랬군."

모든 진실을 알게 된 그녀는 생각이 복잡해 보였다.

고개를 젖혀 하늘을 올려다본 그녀가 쓰게 웃었다.

"자이로스에게는 면목이 없구나."

시몬은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숙적으로 싸워온 상대였으니, 북신은 사라졌어도 자이로스에 책임을 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녀가 미안한 감정을 내비친 것이다.

"내 어찌 자이로스를 원망하겠느냐. 그는 지난 수년간 북부를 지켜준 우리의 은인이다."

그녀의 목소리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내가 조금 더 자이로스에 신경을 썼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5년간,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대공으로서의 업무, 군단장으로서의 단련, 분열된 북부를 통합했으며 좌절감에 젖은 주민들에게 긍지를 불어넣어야 했지. 나는 이 한 몸 건사하는 것으로 바빴다."

"......대공."

그녀가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 또한 변명이겠지. 나와 북부는 자이로스의 희생으로 얻은 평화를 누리기 바빴느니라."

그녀가 들어 올린 손을 꾸욱 주먹 쥐었다.

"우리는 그 5년간, 평화는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고 오만했다. 그 대가를 오랫동안 치렀다. 대가 없는 평화는 없느니라."

시몬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두 사람은 프로스트 필드에 관해 몇 가지 협의를 하고 말을 맞추기로 했다.

북부대공은 북부만을 통치한다. 북신에게 빼앗겼던 북부의 원래 지역은 돌려받겠지만 프로스트 필드가 '7군단의 영역'이라는 걸 인정하고, 자이로스의 자치권도 인정했다. 그리고 주민들을 프로스트 필드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겠다고 했다.

다만 지금 주민들은 승리에 심취해 있으니, 그들이 프로스트 필드에 들어가지 못하게 할 확실한 이유가 필요했다.

"이유야 특별히 떠올릴 필요도 없느니라. 프로스트 필드에는 언데드만 있는 게 아니니."

"몬스터를 말씀하시는 거네요."

"그래."

프로스트 필드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몬스터들이 사는 곳이다.

사실 북신이 북부에 무조건 나쁜 영향만 끼친 건 아니었다. 무분별하게 늘어나는 몬스터의 개체수를 통제하는 역할도 해왔다.

실제로 과거에는 북신보다 몬스터의 세력이 더 강성했던 때도 있었으니까.

몬스터의 개체수가 통제 불가능해질 만큼 폭발적으로 늘어나거나, 언데드의 세력이 강성해지거나. 어느 쪽이든 인간들이 사는 북부에 피해가 온다. 언데드와 몬스터들의 균형은 중요했다.

"빌케노스로 돌아오기 전에, 자이로스도 말하더라고요."

시몬이 팔짱을 꼈다.

"죽음은 생명을 이기기 힘들다고."

"사실이니라."

프로스트 필드의 몬스터들은 미친 듯한 번식력과 개체수를 자랑한다. 특히 배란기가 되면 새끼들을 셀 수도 없을 만큼 낳고, 새끼들은 성체가 되는 데 몇 년 걸리지도 않는다. 곧 몬스터의 수가 산을 덮을 정도로 불어난다.

"자이로스와 공조해서 몬스터의 개체수를 줄여나갈 생각이다."

대공이 태연하게 말했다.

"물론 그 정도야 북신과의 전쟁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지."

"네, 그러네요."

평화.

한 가지 확실한 건 북부는 확실히 평화를 되찾았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나 자이로스가 북신으로서 자리를 확고하게 잡으면, 북부로 내려오는 몬스터도 줄어들 것이다. 그때는 정말로 북부의 태평성대가 올지도 몰랐다.

"전쟁이 끝났어요. 북부는 평화를 찾을 테고."

시몬이 기지개를 쭉 켜며 말했다.

"대공도 의무에서 조금은 해방되겠죠."

"그렇구나."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글쎄."

그녀가 눈을 감았다.

"나도 계속 그걸 고민하는 중이다."

진 아르스칼트는, 오로지 북부를 지키고 북신을 없애기 위해 살아왔다.

하지만 평화의 시대가 오면, 그녀는 아르스칼트의 의무에서 자유로워진다.

"북부대공이 아니라, 이제는 인간 '진'의 삶을 살아보는 건 어때요?"

시몬의 물음에 그녀는 조금 낯부끄러워진 듯 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시몬이 다시 물었다.

"뭔가 하고 싶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느니라. "

"그럼 흥미를 가지고 있는 거나, 취미 같은 건요?"

"없다."

본인의 의무에 모든 인생을 갈아 넣은 사람은, 정작 여유가 찾아와도 자신이 뭘 좋아하고, 뭘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 점이 시몬은 안타까웠다.

"뭐."

그녀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웃음이 맺혔다.

"왕국의 정계에 진출하는 것도 재밌겠구나. 중앙 귀족들 놈들의 콧대를 꺾어버릴 수 있으니."

"아하하! 그러네요."

북부대공이 북부에서 눈을 떼서 중앙에 관심을 가지면, 칼로스 왕국의 정계는 커다란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귀족들이 우려하던 바로 그 상황이다.

시몬이 옆머리를 긁적거렸다.

"하지만 그건 대공이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그냥 귀족들이 싫어서 하는 일이잖아요."

"그렇지. 사실 정치는 질색이니라."

그녀는 눈을 감고 잠시 생각하다가 시몬을 보았다.

"?"

말똥하게 눈을 뜬 시몬을 보며 그녀가 입을 열였다.

"생각해 보니, 최근에 흥미를 가진 일이 하나 있긴 하다."

"뭔데요?"

그녀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렸다.

"교육."

시몬은 갑자기 뒤통수와 등짝이 아파오는 걸 느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