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93화
"교육."
시몬은 갑자기 뒤통수와 등짝이 아파오는 걸 느꼈다.
"......."
시몬이 해괴한 답이라도 들은 표정이자, 대공은 눈을 가늘게 떴다.
"뭐 불만이라도 있느냐?"
"아, 아닙니다!"
그렇게 무섭게 노려보니 불만이 있어도 쏙 들어갈 수밖에 없다.
대공은 흠. 하고 거만하게 팔짱을 꼈다.
"포위진만 짜게 하면 구멍이 숭숭 뚫리고, 툭하면 방전과 전전을 헷갈리는 멍청이를, 2주간의 훈련만으로 사람 구실하게 만들어서 북신을 베게 했느니라. 내 교육자로서의 능력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만."
시몬이 웃으며 자신을 가리켰다.
"그건 그냥 학생이 유능한 덕분 아닐까요?"
"마지막 날이라고 끝없이 기어오르는구나."
"저도 할 말은 해야죠."
두 사람은 잠시 숨죽여 큭큭거리다가 눈을 맞추었다.
그녀는 습관처럼 시선이 흔들리다가, 이번엔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시몬을 응시했다. 그게 기뻐서 시몬은 다시 웃으며 농담을 했다.
"애초에 학생을 폭행하는 것부터가 교육자 실격인 거 아시죠?"
"교정과 교화를 목적으로 한 적절한 수위의 체벌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만."
"키젠에선 그러면 큰일 나요! 고위 귀족 자제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초원에서 오신 교수님들도 그렇게는 안 해요."
그녀가 가소롭다는 듯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나는 대공이니 왕족만 조심하면 되는 것 아니냐. 부모의 신분이 공작 이하면 모두 짜지라고 하거라."
"......그런 마인드 자체가 교육자 실격이라니까요."
두 사람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시몬은 즐겁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이게 그녀와의 마지막 시간이란 게 아쉬웠다.
"뭐, 신분으로 찍어누르겠다는 건 농이었느니라."
그녀가 머리를 흘려넘기며 말을 이었다.
"북부 밖으로 나가면 북부 밖의 법을 따라야겠지."
시몬은 그보다 그녀의 교육 이야기가 농담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런데 왜 갑자기 교육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거예요?"
"솔직히 말하자면 너와 카미바레즈가 인상 깊었다."
북부에서도 코어를 개방할 수 있고, 평생 전쟁을 겪으며 단련된 우수한 전사들이 많다. 하지만 키젠에서 온 어린 네크로맨서들의 역량은 대공이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키젠이 어떻게 이런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죽이는 일 말고, 더 생산적인 일.
자신은 교육을 받지 못했으니까. 독학으로 죽도록 노력해서 얻은 경험과 노하우를 기꺼이 공유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도 지켜보고 싶구나.'
그녀가 시몬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네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
시몬이 멀뚱히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빙그레 웃어 보였다.
대공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콧잔등을 감싸 쥔 채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그저 이성을 밝히기만 하던 요나에게서 이상한 요소들이 추가됐군.'
"대공 각하! 제자님!"
고드릭이 북부의 명물인 냉차를 가지고 와서 이야기는 잠시 중단되었다.
시몬은 쌉싸름한 냉차를 홀짝거리며 놀랐다.
'첫날보다.'
맛있었다.
재료가 바뀌지는 않은 것 같은데.
키젠에 돌아가면 이 중독적인 쌉싸름한 맛이 계속 떠오를 것 같았다.
"몬스터 건도 그렇고, 새로운 북신이 된 자이로스 쪽과는 계속 소통해야 할 것 같다만."
찻잔을 든 대공이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네가 키젠으로 돌아가면 자이로스와 연락은 어떻게 하지?"
"연락책이 있어요. 북부에 머물면서 대공과 자이로스를 이어주는 역할을 할 거예요."
"그게 누구지?"
시몬이 미소 지었다.
"그레이슨이요."
"......그 우유장수 말이군."
대공은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냉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레이슨의 일은 유감이니라."
"네."
"그녀는 지금 어디 있지?"
* * *
빌케노스 근처의 작은 외곽 마을.
[웃차! 일하자 일!]
언데드가 된 그레이슨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밀린 일을 시작했다.
농장을 청소하고, 순록들의 배설물을 치우고, 바닥에 깨끗한 볏짚을 깔았다.
말라붙은 물을 채워놓고, 먹이도 채워주었다.
며칠간 내버려 둬서 굶어 죽은 건 아닐까 생각했더니, 순록들은 영리하게도 농장의 담을 넘어 밖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그러다 그레이슨이 돌아와서 먹이를 채우자 제 발로 농장에 돌아왔다.
[안녕, 다들 잘 있었어?]
더러워진 순록의 털을 씻기고, 젖이 부풀어 오른 순록들의 우유를 짜 주었다. 우유를 통에 꽉꽉 채워서 빈 마차에 실어놓고 종이에 글을 써서 붙였다.
<최근 사정 때문에 제때 우유를 공급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평소보다 더 많이 채웠어요.>
상인들이 거래를 끊어도 할 말이 없었지만, 최근에는 빌케노스 전체가 난리가 났었으니 용서해 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레이슨이 순록들을 향해 걸어갔다.
[자, 너희들도 밥먹...... 아.]
몇몇 순록들이 담장에 붙어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을 잘 따르던 순록들이었는데, 그레이슨이 다가오자 빠르게 흩어져 도망쳤다.
[미안, 시체 냄새 고약하지?]
그녀가 헤픈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팔을 코에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당연히 후각이 살아 있지 않으니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녀는 강가에 가서 물을 길어오는 중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았다.
눈 한쪽이 없었다.
하얗던 뺨은 썩어 문드러져 있었고, 움푹움푹 구멍이 뚫려 있다. 어깨 옆으로는 뼈가 휑하니 보인다.
끔찍한 몰골.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더 보지 못하고 외면하듯 고개를 돌렸다.
-언데드(UNDEAD)는 아직 완전히 죽은 존재가 아니에요.
자신을 구해준 네크로맨서 소년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소년은 말했다.
자신이 아버지를 위한다면, 북부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면, 스스로 해결하라고.
하지만 착각해서는 안 되었다.
나는 이제 인간이 아니다.
더 이상 우유배달을 하러 대공의 성에 갈 수도 없고, 우유를 구매하러 온 상인들과 대화를 할 수도 없다. 오늘 번 돈으로 빌케노스에 들러서 빵을 살 수도 없고, 또래 친구들과 수다를 떨 수도 없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대신해 조용히 농장일을 해놓고 사라지는 것뿐.
-미련이 없어지면 그때 이야기해요.
소년은 그렇게도 말했었다.
그렇게 말해주어서 마음이 편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창고를 정리하러 밀대 자루를 가지고 가는데.
[아.]
한 노인이 집 밖으로 나왔다.
흐리멍덩한 눈에, 하얗게 센 머리, 비쩍 말라비틀어진 팔다리가 보인다.
무엇보다 딸인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물론, 자신의 이름 석 자도 기억하지 못하는 중증의 치매를 겪고 있는 사람.
바로 그레이슨의 아버지였다.
[아버지! 밖에 나오시면 어떻게 하......!]
그러다 우뚝 걸음을 멈췄다.
버릇처럼 말하다가 놀라서 멈춰 섰다.
이런 몸으로 가까이 갈 수 없었다.
그녀가 등을 돌리는 순간.
"그레이슨?"
그녀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그레이슨이니?"
그녀가 떨리는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썩은 몸뚱이, 부패한 얼굴, 앙상한 뼈가 드러난 몸.
하지만.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게냐."
어떤 사람에게는 똑같아 보였다.
[아버지.]
그녀가 다가갔다.
[저 기억나세요? 제 이름이 기억나세요?]
"그럼 기억하지. 내가... 지어준 이름인데."
[아버지 이름도 기억 못 하시잖아요.]
"남이 지어준 이름은 기억 못 혀도, 내가 지어준 이름은... 기억허지."
아버지가 웃었다.
"그레이슨. 내 딸."
그녀의 어깨가 들썩였다.
고장 나 눈물도 나지 않는 몸뚱이.
하지만.
'고마워요, 고마워요 시몬.'
이런 몸뚱이로도.
이곳에 남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기회를 줘서 정말 고마워요.'
* * *
다음 날.
시몬과 카미바레즈는 떠날 채비를 마치고 대공의 성의 마당으로 나왔다.
여느 때와 같은 눈보라나 혹한은 없었다.
화창하게 갠 푸른 하늘.
로브를 뒤집어쓴 키젠의 하수인 두 명이 마당에 텔레포트 마법진을 펼쳐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두 분 학생."
"이동 준비가 끝났습니다."
하수인들이 인사했다. 시몬과 카미바레즈가 그들을 따라 텔레포트 마법진을 향해 걸어가는 길.
마지막으로 두 사람을 보러 온 북부의 인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있었다.
'와.'
시몬은 밝게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2주하고 조금 더 넘는 기간 동안 익숙해진 얼굴들이 많았다.
술집에서 만나기만 하면 치고받고 싸우던 전사들, 여관 부부, 북부의 장군들, 회의장에서 깽판 부렸던 젊은 기수까지.
모두 손뼉을 치고 환호해주었다.
"잘 가, 브라더! 언제든 북부에 놀러 와!"
"함께 싸울 수 있어서 영광이었네!"
처음 칼로스 북부에 도착했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대접이었다.
"카미! 잘 가!"
"못 잊을 거야!"
"감사해요! 피 고마웠어요!"
카미바레즈도 눈물을 글썽이며 그간 정든 사람들과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었다. 근육이 우락부락한 콧수염 아저씨들이 달려와 그녀가 맛있다고 말해준 음식들로만 만든 도시락을 건네기도 했다.
조금 더 걸으니 익숙한 얼굴들이 보인다. 집사 고드릭과 가니로 대장군이다.
"북부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자님. 카미바레즈 님.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늘 심술궂은 얼굴이었던 고드릭이 눈물을 글썽이며 두 사람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시몬은 그와 인사를 나누고 대장군 가니로를 보았다.
"팔은 괜찮아요?"
"하하! 괜찮습니다. 이깟 팔쯤이야."
북부가 해방되고, 다소 히스테릭하던 가니로는 성격이 시원시원하게 변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텔레포트 마법진 앞에 서 있던 대공이 히죽 웃으며 턱짓했다.
"자네가 한마디 하지, 대장군."
"예! 모두 들어라!"
신이 난 대장군이 앞으로 나와 팔을 들어 올렸다.
"북부는 버림받은 땅이었다! 그 누구도 우리와 함께 싸워주지 않았다! 원군은 외면당했으며, 감시자는 우릴 이용하려 했다. 이에 우리는 이를 악물고 다짐했다!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으니 우리들의 힘만으로 싸울 것이라고! 하지만!"
그가 팔을 뻗어 시몬과 카미바레즈를 가리켰다.
"우리를 도와준 사람이 있었다! 태어난 곳이 북부가 아니어도, 북부인이 아니어도! 생판 타지인인 그들은 목숨을 걸고 우리와 함께 싸워주었다!"
오오오!
전사들이 호응했다. 대장군이 두 팔을 벌렸다.
"그대들은 우리의 친구다! 키젠으로 돌아가서 무슨 일이 생기든, 북부는 오로지 그대들의 편이다! 우리는 대륙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한이 있더라도 기꺼이 친구를 위해 밖으로 나가 싸울 것이다!"
와아아아아아아!
흥분한 전사들의 입이 걸걸해졌다.
그럼그럼!
다 덤비라고 해!
싸우자!
모두가 환호했다. 대공도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전사들은 또 싸울 태세였다.
가니로가 힘차게 숨결을 토해내며, 등 뒤의 검을 뽑아 들어 올렸다.
"북부는!"
스릉! 스릉!
곳곳에서 무기가 올라왔다. 전사들뿐만이 아니었다. 상인들은 화살을, 여인들은 단도를, 기수들은 북부의 깃발을 하늘 높이 드높여 휘날렸다.
"그대들이 보여준 '긍지'를 잊지 않겠다!"
시끌벅적한 환호가 사라진 뒤의 정적.
남아 있는 건 신뢰 어린 눈동자들뿐.
하지만 완벽한 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몬은 미소 지으며 주먹을 쥐어 하늘로 높이 올렸고.
카미바레즈도 감격으로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다른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아무런 영문도 모르는 하수인들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세, 세상에. 여기가 진짜 그 꽉 막힌 칼로스 북부 맞나?'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시몬과 카미바레즈는 인사를 마무리하고 마지막으로 대공의 곁으로 다가갔다. 대공이 삐딱하게 웃으며 두 사람의 어깨를 껴안았다.
"어린 너희들이 이해해라. 대장군도 나이가 들었는지 허파에 힘이 들어가면 주책이니라."
"아하하."
"북부에 와줘서 고맙다."
그녀가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두 사람이 힘차게 대답했다.
"네!"
대공이 시몬을 보았다.
"건방진 것."
"네, 대공."
"아버지께 안부 전해주거라. 그리고."
그녀는 잠시 망설이듯 우물쭈물하다가, 이내 흠. 하고 어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펴, 편지해도 되겠느냐?"
시몬이 빙긋 웃었다.
"기다릴게요!"
북부의 마지막 날.
첫날과는 다른 화창한 날씨, 따뜻한 사람들, 그리고 무수한 박수갈채와 환호성을 받으며, 시몬과 카미바레즈는 당당히 학교로 귀환했다.
* * *
키젠에 복귀한 뒤.
모든 게 좋아 보였다.
"둘 다 왜 이렇게 늦었어! 큰일 났어!"
학생회실에 돌아가기 전까지는.
하늘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메이린이 큰 소리로 외쳤다.
"에이젤 선배님이 돌아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