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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695화 (695/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95화

뚜벅-

뚜벅-

고매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학생회실 안으로 들어왔다.

깔끔하게 이마를 드러낸 머리, 교복 셔츠 위로 두른 멋스러운 회색 가디건이 바람에 살랑거리며 휘날린다. 매끄럽게 뻗은 검은 바지와 정장 구두, 그리고 차가운 눈동자가 안경 너머로 빛나고 있었다.

'이 사람이.'

시몬은 침을 꼴깍 삼켰다.

'키젠 최강이구나.'

정적인 분위기에 압도당한다.

마치 주위의 소리를 빨아들이는 것처럼 고요하다. 시몬이 세르네를 처음 봤을 때 이런 기분이었던가. 사람을 집어삼키는 어떤 카리스마가 있었다.

뚜벅.

뚜벅.

오만 생각이 머릿속을 맴도는 가운데, 에이젤이 시몬의 앞에 섰다.

주위의 메이린, 딕, 카미바레즈, 말콤까지. 모두 저주라도 걸린 것처럼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초면부터 기세로 지고 갈 수는 없었기에, 시몬은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는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선배님.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그 말을 들은 에이젤의 미간에 미세한 실금이 생겼다.

뒤에 구경 온 3학년들이 '미친놈'하고 웅성대기 시작했다.

'회장직을 돌려받으러 온 에이젤한테 대놓고 지르냐.'

'간 크네. 저 새끼.'

'개념이 없는 거지.'

같은 3학년이라고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에이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때 에이젤이 서서히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공격?'

하지만 어떤 칠흑의 움직임도 없었기에 시몬은 잠자코 기다렸다.

에이젤의 손은 길고 가느다랬다.

그러다.

슥.

검지로 뒤를 한번 가리키고는, 등을 돌려 걸었다.

걸음걸음마다 회색 가디건이 나풀거리며 좌우로 흔들린다.

"?"

시몬이 멀뚱히 있자, 3학년 중에 한 명이 튀어나왔다.

"따라오란 뜻이야."

교복 바지에 양손을 찔러넣은 채 히죽거리는 이 남자는 최근에 사령학과 대표가 된 3학년 전체 6위, 소타 프쉬케.

말 한번 나눈 적 없지만 얼굴은 알고 있다.

그도 그럴 게, 암흑제에서 나쁜 사건을 터뜨려서 학생회를 곤란하게 만들려고 한 의혹이 있는 인물이니까.

'넌 이제 에이젤한테 죽었다.'

그런 표정을 지으며 이죽거리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시몬은 속으로 한숨을 쉰 뒤.

"그러죠."

쿨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에이젤의 뒤를 따랐다.

"시, 시몬!"

학생회 멤버들이 얼른 시몬의 뒤에 따라붙었다. 3학년들도 에이젤에게 따라붙으려고 했지만 에이젤은 싸늘한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오, 나왔다!"

"얼음 눈빛!"

얼음 눈빛은 또 뭐야.

뒤쪽의 3학년 여학생들은 자기들끼리 에이젤의 행동을 분석하고 이름 붙이고 해설하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에이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둘이서 이야기하고 싶다."

잠시 정적이 일었다가, 3학년들이 꺅꺅거리며 대답했다.

"응응! 알았어!"

"살살해 에이젤!"

메이린이 옆으로 다가와 걱정스러운 얼굴로 속닥거렸다.

"괜찮겠어? 몰래 따라붙을까?"

"괜찮아. 별일 없을 거야."

에이젤과 시몬은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 * *

어디 멀리 가진 않았다.

도착한 곳은 학생회관 건물 2층의 공용 휴게실.

교내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커피를 들고 잡담을 나누고 있다가, 에이젤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허겁지겁 자리를 비켜주었다.

에이젤은 괜찮다고 했지만, 그들이 오히려 더 야단법석이었다.

지켜보던 시몬은 옆머리를 긁적였다.

'나도 학생회장이지만 직원들한테 저런 대접을 받은 적이 없는데.'

역시 사람들은 '에이젤'을 키젠 최강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실력만능주의 키젠에서는 가장 강한 자가 학생회장이다. 그런 인식이 강한 게 현실이었다.

직원들이 문을 닫자, 에이젤이 섬섬옥수 같은 손가락을 피아노 건반 치듯 움직였다.

달칵!

달칵!

휴게실의 모든 창문이 일제히 닫히고, 커튼이 드르륵 소리와 함께 내려왔다.

철컥.

문이 닫히고 안쪽에서 잠그는 잠금장치가 스스로 걸린다.

마지막으로 허공에 보이는 마법진들.

'방음 마법진이다. 어느 틈에 수식을 짠 거야?'

가히 무영창에 가까운 시전속도.

칠흑의 '기억하는 성질'을 극한까지 갈고닦은 게 틀림없었다.

"앉지."

에이젤이 말했다.

"네."

두 사람은 동시에 자리에 앉았다.

방 안은 꽤 습했다. 에이젤이 천천히 겉옷을 벗자, 시몬도 겉에 두르고 있던 학생회장 코트를 벗어서 옆에 두었다.

두 사람은 이제 서로를 바라보았다.

"전 판타서스 회장님과의 계약에 대해서는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빠르겠군."

극중 배우처럼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앉은 에이젤이 넥타이를 붙잡고 살짝 흔들었다.

"학생회장 자리를 걸고 결투를 진행한다. 결투가 끝나면, 계약대로 3학년 학생회장 자리는 너로 추천해 두마."

에이젤은 자신의 승리를 당연한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몬은 불쾌감을 느끼지 못했다.

'이 사람.'

바로 에이젤의 태도 때문이었다. 물은 흐른다 같은 이야기처럼,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당연하게 이야기하고 있었기에.

이건 자신감이나 자만의 영역이 아니라, 패배라는 개념 자체가 인지에 들어 있지 않은 사람 같았다.

그래서 조금 섬뜩했다.

"다만 제인 부총장님의 말씀이 있었다."

에이젤은 임무에서 복귀한 직후, 제인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현재, 시몬의 330기 학생회는 수준급의 업무역량을 증명했고, 교내와 본부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학생자치조직의 인선에 대해 교수가 왈가왈부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여러 일정들과 다가오는 기말고사들을 앞둔 지금, 학생회가 교체되는 건 좋게 보기 어렵다. 교내 업무에 큰 혼란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즉.

"제인 부총장님께서는, 정 학생회가 교체될 거라면 2학기부터 실무를 진행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아."

생각지 못한 흐름에 시몬이 눈을 깜빡였다.

지금 학생회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나 제인이 힘을 써줄 줄은 생각 못 했다.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테니 내가 이야기하는 건 적절하지 못하겠군요.

그때 제인이 했던 말은 이 의미였다. 이번엔 시몬이 물었다.

"그럼, 그 제안을 수락하셨어요?"

에이젤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총장님의 말씀이 맞다. 곧 학기 말 중대형 수행평가와 기말고사가 다가온다. 여기서 학생회 업무 인수인계까지 생각하면, 어차피 내가 실질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2학기부터겠지."

그가 손바닥을 펼쳤다.

"너만 좋다면, 결투는 기말고사 이후에 진행하는 것으로 제안하고 싶다."

시몬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학생회 멤버들과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을 수 있었고, 기말고사나 수행평가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며 인수인계도 용이해진다.

에이젤 또한 장기임무 때문에 거의 한 학기를 통째로 날린 상황. 당장은 교내 일정에 더 충실하고 싶을 것이다.

"저도 좋습니다."

"결정됐군."

에이젤이 몸을 일으켰다.

"결투 장소는 서로에게 지형적 메리트가 없는 곳으로 구해서 통보해도 괜찮겠나."

"네, 상관없습니다."

에이젤이 생각보다 말이 잘 통하고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 놀랐다.

지금까지 3학년들이 벌인 행적들, 그리고 2학년 학생회에 가진 열등감과 분노를 생각해 보면 당장이라도 학생회장 자리를 내놓으라고 노발대발하리라 생각했었는데.

"더 이야기할 사항은?"

"없는 것 같네요."

시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이젤은 여기 남아 조금 더 개인적인 용무를 하고 간다고 했고, 시몬은 밀린 학생회 업무 때문에 바로 학생회실에 돌아가야 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잠깐!"

시몬이 방을 나서려고 하자, 늘 태연했던 에이젤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시몬을 붙잡으려는 듯 팔을 쭉 뻗고 있다가, 이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팔을 내렸다.

"더 이야기할 사항은?"

없다니까.

시몬이 애써 웃으며 말했다.

"선배님은 뭔가 더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시몬은 한순간.

철벽과도 같던 에이젤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없다."

그런데 정작 본인이 없다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시몬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가보겠습니다, 선배님. 기말고사 끝나고 뵙겠습니다."

"......음, 그래."

시몬은 그와 작별인사를 한 후, 휴게실 밖으로 나갔다.

3학년들은 모두 돌아간 것 같았다.

"빨리 가서 애들한테 말해줘야겠다."

당장 방을 뺄 필요 없고, 적어도 1학기까지는 우리가 학생회를 계속 이끌게 됐다고.

시몬이 빠른 걸음으로 학생회실로 향하고 있는 그때.

'아.'

뒤늦게 두고 온 물건이 떠올랐다.

'하필이면!'

학생회장 코트를 벗어놓고 왔었다.

이거 뭐 이상한 오해하는 거 아니겠지?

시몬이 다시 등을 돌려 빠르게 뛰었다. 그리고 휴게실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죄, 죄송합니다 선배님! 두고 온 물건이 있어서...... 응?"

시몬의 눈이 커졌다.

에이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

안경을 벗고 테이블에 머리를 박은 채 머리를 마구 쥐어뜯고 있었다.

그러다 그 동작 그대로 우뚝 멈춰졌고.

스으-

시몬을 보았다.

그렇게 위엄 넘치던 그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엄청난 비밀이라도 들킨 것 같은 표정.

"......가, 가보겠습니다."

시몬은 땀을 삐질 흘렸다. 못 본 걸로 하기로 하고 코트만 챙겨가려는데.

"잠깐."

에이젤이 말했다.

어느새 목소리가 살짝 앳된 느낌으로 바뀌어 있었다.

"......봤어?"

* * *

명실상부 키젠 최강.

3학년 수석의 에이젤 브링어는.

"......망했어, 난 망했어."

사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일면이 있었다.

"빌어먹을, 학생회장 같은 중책은 자신이 없다니까. 왜 다들 날 시키려고 안달이야?"

에이젤은 놀라울 만큼 소심한 성격이었다. 시몬은 극도의 이질감에 몸서리쳐야 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사람의 인상이 바뀌어 있었다.

이마를 말끔하게 드러낸 엘리트의 전형이었던 헤어 스타일은, 어느새 축 늘어져 눈썹을 덮고 있었고,

안경을 벗은 얼굴은 처음 봤을 때의 날카로운 느낌보다는 순한 미소년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사람, 키가 작아졌다.

신고 있던 구두는 키높이였고, 교복바지가 길었다.

"한심하다고 생각했지?"

에이젤이 늘어지듯 말했다.

"전체 1위란 놈이, 키젠에서 가장 강한 네크로맨서가, 사실은 이런 너드에 찐따남이라서."

시몬이 얼른 팔을 휘저었다.

"아, 아니에요! 오히려 인간적인 모습이 너무 좋은데요?"

"그 말."

에이젤이 둥글둥글한 미소년 같은 얼굴을 샥 시몬에게 들이밀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네, 네. 그럼요!"

그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되돌렸다.

"고마워. 나한테 빈말이라도 그렇게 말해준 사람은 없었는데."

그렇게 시몬은 에이젤이 진정할 때까지 그의 자존감을 채워주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그리고 에이젤이 진정하자, 시몬은 이 모든 사태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이쯤 되니 정말 그 유명한 에이젤 선배 본인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에이젤은 이마를 짚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남들이 바라는 '에이젤'을 연기하고 있었을 뿐이야."

암흑연합 최고의 명문, 네크로맨서 학교 키젠.

그 꼭대기에 앉은 자는 많은 것들을 기대받고 요구받는다.

에이젤은 그 능력에 있어서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강자였다.

하지만.

"제기랄, 성격은 죽어도 안 고쳐지는 걸 어떻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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