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96화
에이젤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그는 연신 한숨을 푹푹 내쉬며 말했다.
"키젠에 들어오기 전에 다녔던 귀족 학교에서, 나는 따돌림을 당했어."
에이젤은 왜소한 체격, 소심한 성격, 그리고 사람의 눈을 보고 말하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쑥스러움이 많았다.
불량 학생들이 갖고 놀기 딱 좋은 장난감이었다.
학기 초에는 그럭저럭 적응하던 에이젤을 불량 학생들이 괴롭히기 시작하며, 에이젤의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친구들은 반에서 따돌림당하는 에이젤과 같이 다니면 같은 꼴을 당하는 게 아닐까 두려워했고, 자연히 에이젤을 욕하고 비웃는 무리에 동조했다.
시간이 지나자 교내에는 계급이 형성되었고, 이제 에이젤을 무시하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아이들도 사라졌다.
"......그러다가 난 가문에 뜻에 따라 코어를 개방하고 네크로맨서가 됐어."
안타까움에 가슴 졸이며 듣고 있던 시몬이 손뼉을 짝 쳤다.
"그럼 상황이 반전됐겠네요!"
"......아닌데?"
코어를 개방하면 뭐 하겠는가. 아무리 사소한 흑마법이라도 사람을 상대로 쓰면 즉각 퇴학조치였다. 상대방 가문이 들고일어날 건 물론, 키젠 입학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심지어 아이들은 무서워하지도 않았다.
-재밌는 묘기를 쓸 수 있게 됐다며? 에이젤.
-그래 봐야 에이젤이지.
괴롭힘은 더 심해졌다.
"그때 난 깨달았어."
에이젤이 주먹을 꽉 쥐었다.
"모든 문제는 사람들에게 비치는 내 모습이었다는 걸."
그래서 에이젤은 결의했다.
다음 학교에서는 절대로 얕보이지 않겠다고.
키젠 입학식 전에 말끔한 정장을 구매하고, 헤어 스타일도 바꾸고, 구두 안에 나무토막을 숨겨 키를 높이고, 엘리트 같아 보이는 안경을 썼다.
나는 지금부터, 엘리트다.
몇 번이고 자기 자신에게 세뇌하듯 되새겼다. 말투나 억양도 바꾸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키젠에 입학했는데.
"진짜로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진 거야!"
그렇게 말하는 에이젤의 두 눈에 환희가 깃들었다.
"아무도 날 무시하고 얕보지 않아. 때리지도 않아. 오히려 특례 입학생이라는 신분 때문인지 내게 먼저 말을 걸어줘. 같이 밥을 먹으러 가자고 제안해 줘. 심지어 상냥하게 웃어주기까지 해!"
그의 눈이 생기 있게 반짝였다.
"그때의 그 감격. 넌 이해할 수 있어?"
"물론 이해할 수 있죠."
"아하하."
에이젤이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폭 기대고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다 목소리가 조금 차가워졌다.
"문제는 그 이후였어."
에이젤은 스스로 만든 '새로운 자신'에 심취했고, 그가 만든 이미지는 더더욱 굳건해졌다.
-에이젤, 잘생기긴 했는데 키가 좀 작지 않아?
구두 안에 나무토막을 더 높은 걸로 교체했다.
-말투가 가끔 깨. 칼로스 사투리 같은 거.
매일 거울 앞에서 연습해서 말투를 뜯어고쳤다.
어떤 빈틈도 있어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얕보이면 바로 예전 학교 시절처럼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에이젤은 남들에게 비치는 자신의 이미지에 매몰되었다. 능력 밖의 것들도 겉보기엔 가능하도록 했다.
거기에 흑마법 실력은 원래부터 좋았으니, 실력만능주의의 키젠에서 에이젤은 일각 스타가 되었다.
친한 친구들은 물론, 여자애들, 선배들, 조교 선생님들, 교수님들, 심지어 총장인 네프티스까지 찾아오기도 했다. 언론에서는 연일 그를 찬양하는 기사가 도배되었고, 고향 왕국에서는 칼로스 최고 기대주 네크로맨서로서 국왕상까지 받았다.
에이젤은 뒤늦게 '잘못됐다'는 걸 인지했지만, 이미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컨셉에 잡아먹히게 된 거구나.'
시몬이 애매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컨셉이라도 갑자기 성격이 외향적으로 바뀐다거나, 못하던 말을 잘하게 되거나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 물음에 에이젤이 쩝 하고 머리를 긁적였다.
"아까 너한테 말 걸었던 애 기억나? 사령학과 대표."
"아, 소타 프쉬케 선배님 말씀이시죠? 전체 6위의......."
"그래, 걔가 문제였어."
그가 한숨을 푹 쉬며 말을 이었다.
"1학년부터 나랑 같은 반이었는데, 친구인 내 이미지와 권위를 이용하려고 날 미친 듯이 떠받들었어. 말문이 막혀서 가만히 있으면 지가 알아서 부정의 의미니 얼음의 침묵이니 떠들어대고, 에이젤이 화났다느니 막 그러고."
"......아하."
교내에서 너무 대단하고 위대한 이미지가 구축되다 보니, 이제는 에이젤이 뭔가 실수나 잘못을 해도 대중들이 알아서 끼워 맞춰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이 아는 에이젤은 한없이 완벽한 존재였으니까.
"나는 방이나 기숙사에서도 마음 편히 있어 본 적이 없어. 가는 곳마다 방음 마법진을 까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야."
에이젤이 다리를 웅크려 가슴에 붙이고는 빨대로 음료수를 쪽쪽 빨아 먹었다.
어쩐지 온순해진 3학년 선배의 모습에 시몬은 빙그레 웃었다.
"저는 에이젤 선배님이 대단하다고 느낀 게, 전대 학생회장 판타서스 선배님이 워낙 엄청나셨잖아요."
"맞아. 역대급이셨지."
"그래서 전대와 비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에이젤 선배님은 그 의문 어린 시선들을 정면돌파하려고 1년 전 판타서스 님이 도전했던 장기임무를 하겠다고 나섰......."
그 말을 들은 에이젤이 펄쩍 뛰었다.
"아니야!"
"네?"
"그거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거 아니라고!"
* * *
실제로는 다음과 같은 전개였다.
올해 학기가 시작되기 몇 개월 전, 학사일정 회의 당시.
-어째섭니까!
이번에도 발단은 그 소타 프쉬케였다.
-왜 작년 학생회장이 했던 일정들은 다 빼시는 거죠? 에이젤을 무시하는 겁니까?
본부 직원은 난감한 듯 웃었다.
-아니, 판타서스가 어디 좀 특별해? 그 녀석이니까 네프티스 님이 임의로 넣은 일정이고, 재작년처럼 보통 일정으로 돌아오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문제야?
당시 에이젤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직원님.
-우리 에이젤도 판타서스 선배님에 비해 전혀 뒤처지지 않습니다!
제발 닥쳐줘 소타.
가만히 있어줘.
-그만해 소타.
동기인 여학생이 소타의 팔을 붙잡고 말렸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이거 놔봐! 댁들이 뭔데 에이젤을 마음대로 평가해? 댁들이 키젠 학생일 때 에이젤만큼 우수했어? 어? 말해보라고!
이제 3학년으로 올라갈 동기들은 물론, 키젠 본부 직원들과 교수들, 심지어 원로들까지 다 있는 자리에서 소타는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네만.
나이 지긋한 교수가 서류를 들고 말했다.
-에이젤은 3대 네크로맨서 학교 방문과 카틴 던전 임무도 모두 본인 스스로 거절했네.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야 당연히 거절하죠! 저라도 화나서 거절하겠습니다!
하지만 소타는 물러서지 않았다.
-가장 첫 임무! 판타서스 선배님은 학생회장을 달기 전에 했던 SS급 임무를 에이젤에겐 배정하지도 않았으니까요!
-뭐?
-에이젤! 너도 네 입으로 말했잖아! 판타서스 선배님과 자꾸 비교되는 게 불쾌하다고!
에이젤은 속으로 아차 싶었다.
그거 그냥 술자리에서 지나가는 말로 한 건데.
당시는 또 막 띄워주길래 그런 셈 친다고 했을 뿐인데.
에이젤은 당황하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안경테를 쥐었다.
그러자.
-긍정! 안경테 끝을 쥐는 건 긍정의 의미야!
-에이젤이 긍정했다!
관중들이 웅성거렸다.
또 그 그림이 형성된다.
-정말인가? 에이젤.
교수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물었다. 에이젤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 어린 시선이 자신에게 꽂히고 있었다.
-자네가 정녕 그렇게 생각한다면, 판타서스가 했던 장기임무를 전면에 넣지. 이후 일정은 그 결과를 보고 결정하겠네. 어떤가?
-.......
또 에이젤이 뭔가 일으키려고 한다.
역시 에이젤이다.
기적의 사나이.
328기의 희망.
수많은 기대감들이 맴돈다.
동시에 부정적인 의견도 많았다.
-에이, 아무리 에이젤이라도 그건 좀.
-무리할 필요 없어.
이야기를 듣던 시몬이 더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래서 뭐라고 답했는데요?"
"......."
잠시 망설이던 에이젤이 잘난 척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제게는 간단한 일입니다."
'니 잘못이잖아!'
시몬이 그런 눈으로 에이젤을 쳐다보자, 에이젤이 벌게진 얼굴로 손을 휙휙 저었다.
"어쩔 수 없었어! 어쩔 수 없었다고! 그 당시엔 내 귀족 학교의 과거가 소문처럼 돌면서 정체를 의심하는 애들도 있었고! 그땐 정말 조금이라도 실수하거나 내 이미지가 무너지면 끝장이었어!"
"......."
시몬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아마도 에이젤에게 있어, 과거의 일들은 인생 최악의 트라우마. 그는 지금의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불구덩이라도 들어갈 것이다.
"......그래도 그 어렵다는 장기임무는 정말로 해내셨네요."
"응. 해내긴 했지. 그런데 난 임무 내내 바빠서 학교 상황은 잘 모르고 있었거든? 그러다 소식을 듣고 눈앞이 캄캄해졌어."
에이젤이 장기임무를 맡은 이유는 '남들에게 보여지는 에이젤'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사실은 학생회장직을 죽어도 맡기 싫어서였다.
그런 중책을 맡을 자신도 없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거나 낭독문을 읽는 건 끔찍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핑계를 대고 빠져나갔지만, 학생회장이 되면 그런 핑계를 댈 수도 없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차석인 발락이나 다른 3학년들이 시몬의 학생회장 자리를 차지할 줄 알았다.
그러나 정작 발락은 '에이젤은 돌아온다'를 중얼거리며 시몬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았고, 다른 3학년들도 발락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결국 시몬이 쭉 학생회를 유지했고, 마침 또 암흑제였다.
지금 돌아가서 학생회장직을 맡으면 꼼짝없이 수만 관중 앞에 서야 했다. 그것만은 피하기 위해 에이젤은 시간을 질질 끌다가 암흑제가 끝난 뒤에 복귀한 것이다.
'그렇게 된 거구나.'
시몬이 이제야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에이젤이 고개를 쭉 내밀며 물었다.
"암흑제 때 연설, 네가 했지? 어땠어?"
"아, 네. 재밌었어요."
"......재밌었다고?"
그가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 앞에 서는 거 안 떨려?"
"당연히 떨렸죠. 그래도 막상 입을 떼니까 어떻게든......."
"대단해. 그게 그냥 마음먹은 대로 되는 사람도 있구나."
에이젤이 덥석 시몬의 손을 붙잡았다.
"역시 학생회장은 네가 적격이야! 왜 판타서스 선배님이 나 같은 바보를 후임자로 골랐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런 요직에 앉고 싶지도 않고 남들 앞에 서고 싶지도 않아. 최대한 조용히 있다가 졸업하고 싶다고. 넌 어때?"
시몬 또한 학생회장직이라는 권력을 유지하는 것에 그렇게 큰 집념이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 한여름 밤의 꿈 같은 나날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공부하고 잠잘 시간도 줄이고, 밤새워서 암흑제 같은 굵직한 행사도 치르고 사람들의 평판도 좋게 유지했는데! 이제 와서 우리 성과를 다 빼앗겠다고? 너무한 거 아냐? 선배면 다야?
멤버들의 얼굴을 떠올린 시몬이 입을 열었다.
"네, 가능하다면 계속 학생회장직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좋아, 좋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네."
에이젤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하지만 문제는 결투야. 학생회장 자리를 놓고 우리가 결투해야 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잖아."
"그럼 선배님이 제게 져주시는 건......."
"맘 같아선 그러고 싶지만, 난 학생회장직을 하기 싫은 것 이상으로 이 에이젤의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어. 아니, 반드시 유지해야만 해."
시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에이젤의 최우선순위겠지.
그리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에이젤 브링어의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그가 2학년에게 져주거나 기권하는 행동양식은 불가능하다.
"혹시 제가 실력으로 이기는 그림은......."
"응?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빠직.
이번에는 조금 열받은 시몬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 1%라도 가능성이 있을 순 있죠."
"불가능해."
에이젤이 가늘어진 눈으로 덤덤히 말했다.
역시. 저건 자신감의 영역이 아니었다.
저 소심하고 유약한 성격의 인간이, '승리'에 대해서 만큼은 확신하고 있다.
자신이 이기는 건 만고불변의 법칙. 자신감이 필요한 영역이 아닌 것이다.
"어쨌거나 결투는 진행될 거고, 최대한 내 이미지를 해치지 않으면서 네게 회장직을 승계하는 방안이 필요해. 만약 결투에서 네가 기대 이하라면, 네게 회장직을 승계하는 게 내 품위와 이미지를 훼손할 정도로 네가 약하다면-"
그의 표정이 사라진다.
"난 전교생 앞에서 널 철저하게 짓밟는 쇼를 할 수밖에 없어."
유약한 키젠 최강.
작은 악마, 에이젤 브링어.
적어도 실력에 있어서는 의문이 붙을 여지가 없다. 시몬은 자신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역시 이 사람도 정상인은 아니었다.
"난 모두가 행복한 길을 찾고 싶지만, 3년간 쌓아온 에이젤의 품격이 훼손되는 건 죽어도 싫어. 차라리 퇴학하거나 목매달아 죽는 편이 나아."
"......확고하시네요."
에이젤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기말고사가 끝나는 결투 당일까지 계속 생각해 봐. 어떻게 하면 좋을지. 좋은 방법이 있으면 따를게."
"......알겠습니다."
"그럼."
에이젤이 손짓하자, 테이블에 놓여 있던 가디건이 바람에 날아와 입혀졌다.
그리고 양말 차림으로 소파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벗어놓은 신발 앞으로 딱 멈춰 섰고, 바지가 발을 덮어서 내려왔다. 시몬의 입이 당혹감으로 커졌다.
'저거, 바람으로 떠 있는 거였어?'
손끝을 움직이자 바람이 불어서 머리끝이 빳빳하게 세워지며 이마를 드러낸 엘리트 머리 스타일로 바뀌었다.
마지막으로 바닥에 놓인 안경을 쓰자 유약한 이미지가 깨끗하게 사라지며, 다시 날카롭고 각진 외모로 돌아왔다.
보통 안경이 아니라, 마법이 걸려 있는 아티펙트 같았다.
"앞으로 기대하겠다."
언제 그랬냐는 듯 냉랭한 목소리로 말한 에이젤이 등을 돌렸다. 한 손은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다른 한 손으로는 뒤를 돌아보며 손짓했다.
"시몬 폴렌티아."
철컹! 철컹!
휴게실의 모든 창문이 다시 열리고, 커튼이 드르륵 하고 쳐졌다. 모든 방음 마법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시몬이 문밖으로 배웅하러 나갈 즈음, 에이젤은 바람처럼 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