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97화
에이젤과의 이야기를 마치고, 시몬은 학생회실로 들어왔다.
"아."
"왔어?"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학생회 멤버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자기 자리에서 일을 하고는 있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에이젤 선배님이 뭐래?"
부회장 메이린이 대표로 물었다.
"오늘 바로 싸우는 건 아니죠?"
카미바레즈가 두 손을 꼭 맞잡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설사약 준비할까?"
딕이 음침하게 눈을 빛내며 물었다. 시몬은 고개를 내저었다.
"제인 교수님이 조금 힘을 써주신 것 같아. 에이젤 선배와의 결투는 기말고사 뒤로 미뤄졌어."
"그, 그럼!"
"기말고사 끝나기 전까지는 같이 있어도 되는 거죠?"
"당장 안 헤어져도 된다!"
와아-!
멤버들이 환호성을 질러댔다. 메이린과 카미바레즈는 손바닥을 서로 맞부딪힌 채 폴짝폴짝 뛰었고, 딕은 책상 위로 올라가 휘파람을 불며 교복 재킷을 흔들어댔다.
'저렇게 좋을까.'
구석 자리에서 조용히 있던 말콤은 픽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무시간이라 일하러 간다."
"응, 수고해."
말콤이 시몬의 어깨에 툭 손을 얹고는 학생회실을 나섰다.
시몬도 학생회장 코트를 옷걸이에 걸어놓고 자리에 앉았다.
"참."
시몬의 그 말에 모두의 고개가 불안한 듯 돌아갔다. 돌아가던 말콤도 바로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기말고사 이후에도 우리 자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
그 말에 모두가 짠한 표정으로 시몬을 보았다. 메이린이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미소 지었다.
"아, 됐어. 우린 신경 안 써. 그런 것보다 네 2학년 1위 자리를 유지하는 게 더 급선무 아냐?"
"그렇긴 하지만......."
"2학기가 아니더라도, 조금 쉬었다가 3학년 때 다시 만날 수 있잖아요! 저는 그것도 좋아요!"
메이린이나 카미바레즈나, 시몬의 실력을 못 믿는다는 게 아니라 그저 시몬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저렇게 말해주는 거였다.
두 사람의 따뜻한 마음씨가 느껴져서 시몬은 고마움을 느꼈다.
"아니, 진짜. 시몬이 에이젤 선배한테 이길 수도 있지! 진지하게!"
딕이 눈치 없이 말했다. 메이린이 지그시 그를 노려보자, 고양이에 겁먹은 생쥐처럼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평민 네가 제일 나빠! 알아?"
"내, 내가 뭘!"
시몬과 카미바레즈가 마주 보며 웃었다.
복귀 첫날 하루는 그렇게 학생회실에서 저물어갔다.
* * *
딕이 학생회 존속 기념으로 로체스트에 놀러 가자며 난리를 치는 바람에, 기숙사에 도착하는 게 조금 늦어졌다.
골렘의 핵을 회수한 시몬은 느긋한 걸음으로 소환학과 기숙사의 정문으로 걸어갔다.
낡았지만 멋들어진 나무집, 그 뒤로 그림처럼 펼쳐진 금지된 숲, 정원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작업용 뼈들과 입구에 있는 가고일 동상까지.
몇 주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 학교의 모든 게 정겹게 느껴졌다.
시몬은 재킷을 여미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타닥- 타닥-
실내는 따뜻했다. 모닥불 소리가 귀를 간질이고 오렌지빛 조명이 눈을 편안하게 했다. 몇 번을 와도 학생 기숙사가 아니라 드넓은 숲 어딘가에 있는 여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시몬이 기숙사 관리원에게 보고하러 가려는데.
"죽지도 않고 잘도 다시 기어들어 왔군."
저 멀리, 휴게실에 앉아 있던 헥토르가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저 험상궂은 표정은 변함이 없다.
시몬이 빙그레 웃었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 헥토르."
"죽고 싶나."
헥토르가 용처럼 입에서 열기를 흘리며 짜증을 냈다.
그르르- 하고 진짜로 용이 으르릉대는 소리가 들렸다.
"고작 특별수업 때문에 복귀일을 늦추다니, 키젠 생활이 만만히 보였나 보군."
그가 거만하게 팔짱을 꼈다.
"네놈이 그동안의 수업 진도를 만회하는 동안, 나는 계속 치고 올라갈 거다. 이번 학기에 수석을 교체하겠다."
"기대하고 있을게."
헥토르가 다시 휴게실 쪽으로 몸을 넣으며 중얼거렸다.
"그나마 곧 회장직을 내려놓을 테니 여유가 생기겠군."
"아, 그거. 기말고사 전까지는 계속하기로 했는데?"
휴게실 쪽에서 쯧! 하는 혀 차는 소리가 큼지막하게 울려 퍼졌다. 시몬은 소리 내어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로비에 도착하니 기숙사 관리원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수고하십니다. 복귀 신고하려고요."
"여기 서명해 주세요. 파견 기간 동안 로비에 맡기신 물건이 있으시면 옆 칸에 체크표시해 주시구요. 아, 그리고 룸메이트의 동의하에 룸 클리닝 서비스는 내일 오전까지 예약하시면 가능합니다. 교복의 배리어가 고장 났거나 수선할 게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시몬은 배리어가 다한 교복들을 맡겼다.
그녀는 서비스라며 몸에 붙이는 의약품이나 피로를 푸는 팩 같은 것들을 챙겨주었다.
"그럼, 편히 쉬세요."
"감사합니다."
시몬이 짐을 챙기고 걸음을 옮겼다.
'다들 부상 없이 잘 있으려나 모르겠네.'
"아."
"회장이다! 돌아왔구나!"
로비에서 몇몇 학과생들이 아는 척을 하며 다가왔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다들 편한 옷차림이었다.
시몬도 동기들과 기쁘게 안부를 주고받다가 물었다.
"그런데 다들 뭐 하러 가?"
"내일 전공 수행평가 준비하러 지하 작업실에. 아라크니아 조립 과제야."
땋은 머리가 잘 어울리는 여학생이 손끝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곧 기말고사라서 배점 높은 수행평가가 쏟아지고 있거든."
"그렇구나. 알려줘서 고마워."
어쩐지 주위가 조용하더니 내일이 수행평가인 모양이었다.
'복귀하자마자 수행평가라니.'
시몬은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침대에 눕자마자 쓰러져 잘 생각이었는데, 최소한 교과서는 한번 훑어봐야 할 것 같았다.
"시몬?"
바로 그때.
검은 머리카락에 빨간 눈동자의 소녀가 걸어오고 있었다.
네프티스의 딸이자 차기총장, 로레인 아크볼드.
그녀의 등장에 주위의 학생들은 슬쩍 미소 지으며 알아서 자리를 비켜주었다.
"아, 로레인."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야."
그녀가 가슴에 손을 얹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막 샤워하고 온 건지 검은 머리에는 물기가 있었고, 은은한 비누향 같은 게 나고 있었다.
"다친 곳은 없어?"
그녀는 늘 그렇듯 어른스럽게 시몬을 걱정하며 상태를 살펴주었다. 다가올 때마다 비누향이 콧잔등에 맴돌았다.
그러다.
"복귀가 많이 늦었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시몬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예상가는 바가 있다는 듯한 눈빛.
그도 그럴 게 그녀는 시몬이 배신의 군단장인 걸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한참 배신의 군단 이슈로 연합 전체가 들끓고 있을 때, 네프티스는 예정에도 없는 '특별수업' 커리큘럼을 만들어 시몬을 사람들의 눈이 닿지 않는 지역으로 날려 버렸다.
다행히도, 현재 배신의 군단 이슈는 신성연방의 국경 도발 이슈로 한풀 꺾인 상태였다.
'또 엄마의 이상한 장난에 휘말린 건 아니지?'
로레인은 눈빛으로 그렇게 묻고 있었다.
하지만 시몬은 이런 곳에서 답변할 수 없었다. 시몬이 우물쭈물하자 그녀는 속눈썹을 내리깔며 새로운 제안을 꺼냈다.
"내일 같이 카페에 갈래?"
얼핏 보면 데이트 신청 같은 물음. 멀리서 눈치를 보고 있던 동기들이 상기된 얼굴로 웅성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로레인이 분발한다!'
'막 돌아온 지금이 기회지.'
'세르네는 어딨지? 웬일로 보고만 있나?'
시몬이 멋쩍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내일모레는 안 될까? 내일 일정은 보충수업으로 꽉 차서."
"응, 그럼 그때 기대하고 있을게."
그녀가 등을 돌리며 시몬 쪽을 향해 미소 지었다.
"피곤할 텐데 붙잡아서 미안, 잘 자."
시몬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더워지는 것을 느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녀도 수행평가를 준비하러 가는지 지하 작업실로 내려갔다.
그녀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본 시몬은 다시 짐을 챙겨 들고 걸음을 옮겼다.
로레인이 사라지자 긴장감이 사라지고, 다시 피로와 피곤함이 쭉 몰려들었다.
'주, 죽겠다.'
이대로는 수행평가 전 교과서를 훑어보기는커녕 그대로 베개에 머리를 박자마자 기절할 것 같았다.
시몬은 기숙사 방으로 향하는 나무 계단을 올랐다.
끼익-
끼익-
피곤해서 그런지 시야가 출렁출렁 흔들린다.
시몬은 힘겹게 계단을 모두 올라와 방 앞에 왔다.
똑똑.
"토토, 나야. 들어갈게."
토토의 대답은 없고, 작게 물소리만 나고 있었다.
'씻는 중인가 보다.'
시몬은 문을 열고 기숙사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방 화장실 문에서 씻는 소리가 들린다. 시몬은 침대 위에 짐을 풀고는 잠깐 퍼질러 누웠다.
방에 오니 긴장이 완전히 풀리며 몸이 노곤해졌다. 금방이라도 잠들어버릴 것 같았다. 이대로 눈을 감고 뜨면 바로 다음 날 아침이리라.
'아니지, 잠들면 안 돼.'
시몬이 힘겹게 졸음을 참으며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아라크니아라고 했지? 이 녀석도 거미쪽 언데드인가?'
그리고 목차에서 아라크니아 페이지를 찾고 있는데.
똑똑-
화장실 쪽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는 문이 살짝 열리더니 뭔가를 요구하듯 손이 튀어나왔다.
"뭐 필요해?"
시몬이 물었다.
이내 손이 쏙 들어갔다가 젖은 수건이 툭 하고 나왔다.
수건이 없나 보다. 시몬은 피곤했지만 마른 수건 하나를 들고 걸어갔다.
벌컥!
그때 갑자기 화장실 문이 크게 열렸다. 시몬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 엎어지고 말았다.
뿌연 수증기 너머로 누군가가 보였다.
"!"
토토보다 키가 컸다.
아니, 그 전에.
"??!"
남자가 아니었다.
시몬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흠~"
시몬이 가져다준 수건을 몸에 두른 그녀가 사뿐한 걸음걸이로 걸어 나왔다. 시몬은 황급히 고개를 옆으로 꺾으며 소리쳤다.
"자, 잠깐만! 네가 왜 내 방에......!"
"네? 무슨 말씀을."
백금발 머리카락의 소녀가 웃었다.
"여긴 제 방인데요?"
촤르르르르-
촤르르르-
그러자 주위의 벽면과 벽지의 형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어느새 시몬과 토토의 기숙사 방이 낯선 방으로 변화했다.
시몬은 뒤늦게 벽면에 꽂힌 흰 깃털들이 공기 중에 녹아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증거 인멸이었다.
'그럼 설마!'
상아탑의 공식 후계자.
수건으로 몸을 가린 세르네 아인다르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무리 간만이라도 그렇지. 그렇게 내가 보고 싶었어요? 시몬."
잠이 싹 달아난 시몬이 벌게진 얼굴로 외쳤다.
"세르네! 왜 이런 짓을......!"
그녀는 태연하게 웃으며 자신의 침대에 앉았다.
그러고는 주스가 든 잔을 들어 올렸다.
"키젠의 학생회장이 여학생 방에 몰래 들어와서 훔쳐보다니. 이 사실이 알려지면 학교가 꽤 시끄러워지겠네요. 안 그래요?"
시몬이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이러는 목적이 뭐야?"
"그냥 시몬이 보고 싶어서?"
그러면서 생긋하고 웃는 모습을 보니 시몬은 머리가 더더욱 지끈거렸다. 그녀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왜 질투 나게 그 인간이랑-"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세르네가 다리를 꼬고 앉으며 손끝을 들어 올렸다.
"그럼 대가로 나한테 먼저 알려줄래요? 북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