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99화
그날 오후.
정규수업 일정이 모두 끝났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하교하는 중이었지만, 이번에 '특별수업'으로 외부에 파견됐던 학생들은 예외였다.
아직 보충수업이 남아 있었다.
시간표를 확인한 카미바레즈는 상기된 얼굴로 날개를 파닥거리고 있었다.
'기다렸다가 시몬이랑 같이 가야지.'
시몬과 카미바레즈는 둘 다 바힐의 일반 저주학 수업을 들었고, 이번 보충수업도 같이 들을 예정이었다.
그녀가 저주학과 건물 앞에서 시몬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카미바레즈 학생."
저주학 수석조교인 체헤클이 다가왔다. 카미바레즈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수석조교 선생님!"
"보충수업은 제가 진행하게 됐답니다. 여기서 뭘 하고 있나요? 같이 들어가죠."
"네? 아, 그게."
카미바레즈가 힐끔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 모습을 본 체헤클이 말했다.
"겸사겸사 카미바레즈 학생의 저번 수행평가 객관식 답안에 대해 이야기할 것도 있고요."
"아, 네에! 그러시다면......."
체헤클은 카미바레즈를 데리고 강의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우우웅!
복도의 뒤편에 몸을 숨긴 채, 흑마법을 발동하고 있는 또 하나의 체헤클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진짜였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건지. 미안해요, 카미바레즈 학생.'
그녀가 한숨을 푹푹 쉬었다.
카미바레즈를 이끌어 강의실로 보내자마자, 마침 타이밍 좋게 저주학과 건물 안으로 시몬이 들어오고 있었다. 체헤클이 얼른 앞으로 나가서 맞이했다.
"시몬 학생."
"아, 체헤클 조교 선생님!"
시몬도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왔다.
"특별수업에서 무사히 복귀했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다행이에요."
"감사합니다. 체헤클 선생님도 별일 없으셨죠?"
"걱정해 준 덕분에요. 같이 올라갈까요?"
"네!"
시몬과 체헤클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계단을 올랐다.
두 사람은 학기 초의 바힐 건으로 안면이 있었기에, 서로를 편하게 대하고 있었다.
"어?"
그런데 체헤클은 시간표에 공지된 강의실과는 다른 곳으로 가고 있었다. 시몬이 그 사실을 깨닫고 물었다.
"보충수업 강의실은 3층이지 않아요?"
"네, 그렇죠."
그녀가 한숨을 푹 쉬었다.
"사실 바힐 교수님께서, 시몬 학생은 자신이 직접 지도하겠다고 하시네요."
시몬이 눈을 깜빡였다.
"바힐 교수님이 직접이요?"
* * *
그렇게 잠시 후.
"???"
안내받은 강의실로 들어온 시몬은 당황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뭐야 여기.'
강의실이 아니라 호화로운 고급 레스토랑 같은 곳이었다. 화려한 실내 디자인에, 향기로운 냄새가 났고, 무대 위에서는 악사 없이 공중에 둥둥 뜬 악기들이 클래식을 연주하고 있었다.
당장 고위귀족들이 연회가 열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이 넓은 곳에, 시몬은 덩그러니 놓인 책상 앞에 앉아 교과서와 깃펜을 꺼내놓고 있었다. 정말로 이런 좋은 장소를 강의실로 쓸 건지 앞에 칠판도 있긴 하다.
"물입니다."
웨이터 복을 차려입은 정체불명의 남자가 다가와 시몬의 테이블에 잔을 내려놓고 물을 따라주었다. 시몬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시몬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입가를 축이고 있는 그때.
저벅 저벅.
드디어 저주학 교수, 바힐 아마가르가 나타났다.
이곳의 분위기에 어울리게 말끔한 고급 정장 차림이었다.
"내 강의실에 어서 오십시오, 시몬."
바힐이 빙글빙글 웃으며 칠판 앞에 섰다.
시몬은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바힐 교수님. 이게 다 뭔가요?"
"보다시피 보충수업입니다만."
아무리 봐도 보충수업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아서 묻는 거였다.
시몬은 바짝 마른 입가를 물로 축였다. 심지어 시몬이 물 한 모금 마시자마자, 옆에 웨이터가 칼같이 다가와서 '물입니다.'를 중얼거리며 더 채워주었다.
"그럼, 수업을 시작하죠."
바힐이 손짓하자 웨이터가 밖으로 나갔다. 그는 오늘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 보였다.
바퀴 달린 칠판을 옆으로 끌고 오고는 교과서를 펼쳤다.
"교과서 145페이지를 펼치세요."
* * *
생각보다 수업은 평범하게 진행되었다.
"로토스 수식에 대해 말해보십시오."
북부에서 예습했던 내용이다.
시몬이 총명하게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약화 마법진의 범위를 지정하고, 마법진 외면의 부식을 막아주는 역할입니다."
"그럼 판테라 수식."
"......아, 그."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시몬이 이마를 감싸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혼날 것 같다.
특별수업으로 정규수업을 빼먹은 것도 문제인데, 그나마 해왔다는 예습도 영 시원치 않았으니까.
하지만.
"괜찮습니다."
저주에는 늘 엄격한 바힐이었으나, 의외로 빙긋 웃고 있었다.
"피교육자에게 '암기'란 가장 단순한 노동에 불과합니다. 당신의 진가는 조금 다른 곳에 있지요. 누구나 노력만 하면 가능한 암기를 몇 개 못 했다고 해서 내가 화를 낼 이유는 없습니다."
이 교수님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유하지?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바힐을 보고 있는데, 그가 손짓하며 말했다.
"그래도 일단은 교과서에 실린 내용이니 다음 시간까지는 다 외우길 바랍니다."
"네! 죄송합니다!"
"그보다."
"?"
바힐은 덮은 교과서를 책상에 내려놓으며 눈을 빛냈다.
"뭔가 고민이 있는 것 같군요."
시몬이 멈칫하며 입을 벌리자, 바힐은 '역시'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3학년의 에이젤 학생이 돌아왔다고 하던데, 학생회장 건은 어떻게 됐지요?"
마치 이쪽의 마음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듯한 투.
시몬은 침을 꿀꺽 삼키며 기말고사 이후 결투로 정하기로 했다고 사실대로 대답했다.
"그리 대단한 고민도 아니군요."
바힐은 정말로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손에 든 분필을 휘리릭 돌리다가, 칠판의 정중앙에 방점을 찍으며 말했다.
"내가 이기게 해줄 수 있습니다."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3학년 최강 에이젤 브링어. 내가 이기게 해줄 수 있습니다. 그 정도야 간단하지요."
시몬은 당황했다.
지금 이 사람,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고는 있는 건가?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칠판을 보던 바힐이 입꼬리를 올렸다.
"저주학을 전공하십시오. 시몬 폴렌티아."
시몬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교, 교수님. 실례지만 지금 전과를 말씀하시는-"
"나는."
그가 완전히 등을 돌려 두 손을 칠판에 대고 시몬을 보았다.
"교육자로서 시몬 폴렌티아, 당신이 안타깝습니다. 아, 물론 당신이 지금까지 소환학으로 이룩했던 빛나는 성과들을 모욕할 생각은 아닙니다. 아론 선배의 소환학이 지금의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를 만들었다는 건 확고한 사실이지요."
타악.
탁.
그가 흰색 분필과 분홍색 분필을 들고는 칠판 아래에 두 개의 방점을 찍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위로 올렸다.
지이이이익-
"분명히 당신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당신은 뭘 해도 올라갔을 겁니다. 멍청한 마투나, 저급한 맹독학 같은 걸 전공했어도 올라갔겠죠. 하지만 먼 미래에 당신의 성과를 돌아본다면."
타악.
탁.
바힐이 칠판을 긋고 있던 두 분필을 떼어냈다.
"차이가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칠판에 그려진 건 두 개의 선.
흰색은 위로 올곧게.
분홍색은 옆으로 살짝 기울어진 채 그어졌다.
"이 두 선은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했고, 똑같은 시간 동안 위로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차이는 명백하죠."
바힐이 분홍색 선이 마지막에 도달한 점 끝에 선을 쭉 그어서 흰색 선에 맞닿게 했다.
그러니 흰색이 더 높게 올라가 있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보였다.
"시간이 갈수록 뼈저리게 실감하게 되겠지만, 소환학에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학문의 올드함과 트렌디함 같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건 바로."
바힐이 입꼬리를 올렸다.
"소환수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
"!"
"타 개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소환술사의 한계입니다. 심지어 소환수의 성능은 한번 제작하면 어느 정도 정해지게 되지요. 의존하는 마음은 네크로맨서를 약하게 만듭니다. 한계를 스스로 긋기도 하죠. 강력한 네크로맨서는 한계를 초월하여 모든 걸 바꾸는 자입니다."
바힐이 눈을 번뜩였다.
"이미 만들어진 순간부터 한계가 있는 소환수라는 장난감을 잘 쓰게 연구하는 학문으로,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까."
"지, 진정하세요."
시몬이 애써 웃으며 손바닥을 펼쳤다.
바힐의 지적은 전부 옳진 않아도 타당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군단장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바힐이 빙긋 웃으며 다시 내려놓은 교과서를 펼쳐 들었다.
"급하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니,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 수업을 계속하죠."
* * *
저주학과 교수, 바힐의 수업은 어느 때보다 화려했다.
이미 보충수업의 수준이 아니었다.
특히 바힐은 시몬이 가장 자신 있어 하고, 가장 관심 있어 하는 저주인 '슬립'에 각종 조언을 더해주고 있었다.
"자. 정면으로."
바힐이 테이블 하나를 세웠고, 시몬이 뛰어들어 테이블에 손바닥을 내질렀다.
<판타서스 오리지널 - 슬립>
테이블에 손바닥을 내질렀을 뿐인데, 테이블을 통과해 타깃에 슬립이 걸렸다.
"훌륭합니다, 다음."
다음은 슬립의 응용 버전이었다.
시몬이 슬립을 움켜쥐고 허공에 퍼뜨렸다. 슬립이 곳곳에 퍼져 나가며 타깃에 모조리 슬립을 걸었다.
"와아!"
"도는 수식, 체티니를 더하면 이런 현상을 만들어낼 수 있죠."
바힐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꺾는 수식 판테라, 휘는 수식 아비소, 도는 수식 체티니. 모두 배워야겠죠?"
시몬이 힘차게 대답했다.
"네! 전부 배우겠습니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
시몬의 품에는 온갖 서적과 수식의 두루마리들이 품에 안겨 있었다.
"다음 수업까지 세 가지 모두 숙지해 오길 바라겠습니다. 이상입니다."
고강도의 과제 폭탄을 안긴 바힐이 손에 장갑을 끼며 빙긋 웃었다.
본인이 한다고 말했으니 다른 말도 하지 못할 테고, 아론 선배가 끼어들 여지도 없었다.
"다음 시간이 기대되는군요."
"수, 수고하셨습니다, 교수님."
바힐이 먼저 걸음을 옮겨 호화로운 강의실을 나갔다.
저벅 저벅.
강의실 밖으로 나온 바힐의 눈동자가 돌아갔다. 이미 다른 학생들 보충수업을 마치고 온 체헤클이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교수님."
그녀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체헤클도 수고했습니다."
"시몬 학생과의 수업은 어땠나요?"
바힐의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했다.
"근래 들어 최고의 시간이었습니다."
더 이상 바보 같은 다른 학생들의 수준에 맞춘답시고, 교과서를 보고 진도를 나갈 필요가 없다.
오로지 시몬 폴렌티아를 위한 수업.
만약 아론 선배가 없었다면, 하루하루마다 즐겼을 행복한 일상들.
이제는 불가능해진 일상들.
동시에 미래에는 가능할 일상이었다.
"특별수업으로 시몬을 밖으로 보내준 네프티스 님 덕분에 재미난 시간을 보내게 됐군요."
바힐은 이 합법적인 1:1 보충수업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보다요."
체헤클이 걱정스럽게 눈썹을 모으며 말했다.
"그 에이젤을 이겨주겠다는 제안은요? 진짜 한 거 아니죠?"
"제안했습니다. 물론 바로 먹히진 않았습니다만."
"바힐 교수님!!"
바힐의 입꼬리가 의미심장하게 올라갔다.
모든 상황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제인도, 홍펭도 움직이고 있다.
"조금만 더 지켜보죠.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올 테니."
* * *
보충수업.
말 그대로 정규수업을 듣지 못한 학생들에게, 그 내용을 보충해 주는 목적의 수업이다.
하지만 보충수업의 본래 목적과 다른 취지로 이용하는 사람은 바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다음 날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
이번에는 칠흑역학 보충수업.
시몬은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라는 통보를 받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다들 교복 차림으로 강의실에 공부하러 갔는데, 시몬만 경기장에 나왔다.
'여기 오랜만이네.'
결투평가 시즌 때 쓰이는 실내 경기장이다.
시몬이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칠흑역학 조교가 다가와 말없이 그에게 배리어 마법이 걸려 있는 방호슈트를 입혀주었다.
"수, 수업 잘 받으세요. 시몬 학생."
조교가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도망치듯 빠른 걸음으로 총총 사라졌다.
우두커니 남겨진 시몬은 아무도 없는 텅 빈 경기장에서 몇 분 정도 멍하니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우웅-!
웅!
경기장 곳곳에 불이 들어왔다. 결계가 펼쳐지고, 방호슈트도 작동되는 게 느껴진다.
또각- 또각-
저 멀리서 절도 있는 구두굽 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지고 있다.
2학년 칠흑역학과 담당 교수이자, 키젠의 부총장인 제인 올리비아가 걸어오고 있었다.
"제, 제인 교수님?"
어쩐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럼 보충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학생회장."
그녀가 손가락을 튕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