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00화
엄숙한 목소리로 다짜고짜 수업 시작을 알린 제인이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우웅!
허공에 마법진 한 장이 그림처럼 말끔하게 펼쳐진다.
"칠흑역학에서 파생되는 공격 마법은 대부분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가 손끝으로 마법진을 살짝 건드렸다.
"룬어, 수식, 회로, 라인. 그리고 네크로맨서는 체내의 마나를 칠흑으로 바꾸어 신체, 지면, 허공 등에 마법진을 펼치고 작동시키죠."
그녀가 마법진을 작동시켰다. 물처럼 흐르던 칠흑이 룬어를 통과해 응집되어 불꽃의 형태로 바뀌더니.
<다크 블레이즈>
쏘아져 나갔다. 검은 불덩이는 고약한 연기를 흩날리며 경기장 끝까지 날아가 결계에 부딪혀 사라졌다.
"바로 이렇게. 투사체의 형태로 날아가는 게 기본적인 사양입니다. 이유 없는 결과는 없죠. 이런 방식이 가장 쉽고 빠르며 효율적이기에 많은 네크로맨서들이 채용하고 있습니다."
시몬은 조금 황당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이제 와서 왜 그런 설명을?'
기본 중의 기본.
키젠 학생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투사체는 보고 피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녀가 허공에 새로운 마법진을 그리고는, 그 안에서 나비 한 마리를 일으켰다.
나비는 팔랑거리는 날갯짓을 하며 시몬에게 날아갔다.
"피해보세요."
시몬은 나비의 움직임을 보고는 몸을 기울여 간단히 피해냈다. 그를 지나쳐 가던 나비는 조금 뒤에 펑! 소리와 함께 폭발했다.
"잘했습니다. 그럼 이건 어떤가요?"
그녀가 또 다른 마법진을 그렸다. 시몬이 긴장한 얼굴로 마법진에서 언제 마법이 나올지 기다리고 있는 그때.
"......!"
갑자기 시몬의 목젖 바로 앞에서 나비가 나타났다.
'뭐야?'
퍼어엉!
나비가 폭발하며, 그 충격으로 시몬이 경기장 바닥을 나뒹굴었다.
"크으!"
방호슈트의 배리어 덕분에 아프진 않았지만 충격은 있었다.
제인은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보였습니까?"
바닥에 엎드린 시몬은 골이 울리는 충격에 이마를 짚으며 대답했다.
"아, 아뇨."
보였으면 당연히 보고 피했을 것이다. 나비가 갑자기 눈앞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만 같았다.
"그럼 보일 때까지 반복하는 수밖에요."
"네?"
제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비들이 시몬의 주위로 튀어나왔다. 전신의 털이 쭈뼛 곤두선 그가 즉시 몸을 던졌다.
퍼어어어어엉!
꽈아아앙!
연쇄폭발이 일어났다. 충격에 휘말린 시몬이 다시 경기장 바닥을 굴렀고, 일어날 틈도 없이 또 다른 나비가 머리 위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큽!"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는 스프링처럼 몸을 퉁기듯 해서 피했다.
퍼어어어엉!
꽈아앙!
'갑자기 이게 무슨 수업인데!'
그리고 제자가 죽어라 뛰는 모습을, 제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여, 여기 앉으세요. 교수님."
마침 조교 한 명이 의자를 가지고 왔다.
제인이 의자에 앉았다. 조교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공손히 서 있다가 이내 힐끗 제인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이번 교수회의에서 무슨 일 있었죠?"
"......."
"왜 시몬 학생만 따로 수업을?"
이건 아무리 봐도 보충수업이 아니라 '특훈'에 가까워 보인다.
물론 부총장 제인이 직접 지도하는 훈련은 황금 한 무더기를 가져다줘도 받기 힘든 귀한 시간인 건 맞지만, 강도가 지나치게 셌다.
퍼어엉!
퍼엉!
가만히 지켜보던 제인이 입을 열었다.
"이건 마투학 수업이 아닙니다, 학생회장."
나비를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던 시몬이 그 말을 듣고는 눈을 크게 떴다.
'그래! 분명.'
-보였습니까?
제인은 보였냐고 물었다.
나비는 보고도 피할 수 없을 정도의 지척거리에서 출현한다.
나비의 움직임을 보고 피하라는 게 아니다.
'나비가 나오기 전에!'
부릅떠진 눈이 허공을 잽싸게 훑는다. 전신의 감각이 주변의 칠흑을 감지한다.
불쑥!
그러나 나비는 아무런 기미도 없이 허공에서 튀어나와 시몬의 가슴을 들이받았다.
콰아앙-!
시몬의 몸이 살벌한 기세로 날아가 바닥에 쿠당탕 부딪혔다.
"아으으, 어떡해."
지켜보던 조교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제인은 여전히 무뚝뚝했다.
"후우, 하아."
숨을 거칠게 몰아쉬던 시몬이 눈을 빛냈다.
단숨에 손바닥에 마법진을 그리고는 팔을 휘둘렀다. 칠흑이 연기처럼 주위에 넓게 퍼졌다.
'!'
뭔가를 감지한 듯, 시몬이 앞으로 몸을 던졌다. 뒤이어 나비가 허공에서 불쑥 튀어나왔지만, 시몬은 이미 나비를 지나친 뒤였다.
"아!"
조교가 기뻐하며 제자리에서 두 손을 짝! 맞잡았다.
"방금 보고 피했죠? 보고 피한 거 맞죠? 교수님!"
그제야 무표정하던 제인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슬슬 감을 잡고 있군요."
시몬은 생각했다.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흑마법이 튀어나올 리가 없다고. 마법이 발동하려는 '전조'가 틀림없이 있어야 한다.
다만 그 전조가 너무 작거나 희미해서 눈치채기 힘들 뿐.
그래서 시몬은 기껏 끌어모은 칠흑을 허공에 퍼뜨려 버리는 다소 아까운 짓을 저질렀다.
그제야 감지할 수 있었다.
자신의 칠흑을 비집고 느껴지는 아주 작은 '점'을. 시몬은 점의 위치를 파악하고는 그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뛰어넘어 피했다.
'좋아. 조금씩 익숙해져.'
전신의 감각이 극도로 민감해지고 있다.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묘한 위화감이 느껴지는 부분을 캐치하고 물러서면 열에 일곱은 정답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성공률도 높아졌다.
"좋습니다."
드디어 제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비들의 공격이 사라지자, 시몬은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조교가 달려와 물통과 수건을 건넸다.
"어땠습니까."
5분간의 휴식 후 제인이 물었다. 시몬이 대답했다.
"이런 흑마법을 실전에서 만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네요."
제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스륵 들어 올렸다.
'!'
식겁한 시몬이 턱을 치켜세웠다.
감지했지만 피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나비들이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와 달라붙은 것이다.
"이런 흑마법류를 우리는 '풀고르(Fulgor)'라고 부릅니다."
"......풀고르."
시몬이 따라 중얼거렸다. 제인이 손끝을 흔들자 나비들이 먼지처럼 사라졌다.
"그럼 교수님처럼 숙달된 풀고르 사용자를 만나면 질 수밖에 없는 건가요?"
"그럴 리가요."
파직!
그녀의 손끝에 아주 작은 마법진이 펼쳐지더니, 이질적인 전류가 흘렀다.
"새로운 공격기술이 생기면, 그에 따른 대처법도 생기는 법입니다."
파직- 파직-
일반적인 전격계 칠흑 마법은 아닌 것 같다. 각지지 않은 둥글둥글한 전격이 파스스 일어났다가 흩어진다.
"잘 보십시오."
그녀는 허공에 나비를 꺼내기 위해 '전조', 즉 아주 작은 점을 일으켰지만.
파지지지직!
전격이 점을 스치고 지나가자, 마법이 취소되었다.
"풀고르가 발동되기 직전, 해당 범위에 칠흑으로 살짝만 자극을 줘도 막을 수 있죠."
단번에 10개의 풀고르를 취소시키는 모습에 시몬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가 시몬을 돌아보았다.
"원리를 알면, 같은 계열의 백마법을 사용하는 프리스트에게도 유용하죠. 배워보겠습니까?"
시몬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는 제인이 갑자기 풀고르 대처법을 가르쳐 주려는 이유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당장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을 뿐.
"네! 가르쳐 주세요!"
* * *
이어지는 다음 보충수업은 마투학이었다.
"하나!"
마투학의 수석조교가 큰소리로 외쳤다.
"얍!"
"하앗!"
체육복을 입은 학생들이 마투학의 수석조교를 따라 봉을 휘두르고 있었다.
칠흑을 실은 무기술 훈련이었다.
"자, 봉은 모든 장병기의 원형입니다! 뭐라고?"
"원형!"
"맞습니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길쭉한 물건을 주워서 칠흑만 입히면, 그 어떤 종류의 싸움에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봉술의 기본은 회전입니다! 뭐라고?"
"회전!"
"맞습니다! 유연한 회전을 위해서는 다리가 이렇게 딱딱하게 굳어서는 안 됩니다!"
조교가 지나가면서 봉으로 학생의 허벅지를 탁탁 때렸다. 한 학생의 몸이 기우뚱했다.
"내려치기부터 해보겠습니다! 이렇게 뒷다리를 축으로 잡고, 허리와 골반으로 축을 비틀면서 봉을 내려칩니다! 다섯 번 하겠습니다! 시작!"
체육복 차림의 카미바레즈도 날개를 파닥거리며 봉을 휘두르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시몬은 어디 갔지?'
쏴아아아아아아아!
로크섬 서쪽의 폭포.
바로 그곳에.
달달달-
시몬이 정좌 자세로 폭포에 들어가 있었다. 입술이 달달달 떨렸다.
'이게 무슨 보충수업이야!'
바로 그 옆에는 태연하게 정좌를 튼 채 앉아 있는 마투학 교수 홍펭이 보였다.
그녀가 빙긋 웃었다.
"앞으로 20분만 더 버텨요! 지몬!"
"교, 교수님!"
시몬이 진저리치며 말했다.
"복습할 수업 내용은 칠흑봉술 아닌가요? 그거 안 배워도 되는 건가요!"
"괜찮아요! 나중에 알려줄게요!"
그녀가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그렇게 폭포 속에서 몸을 풀고, 시몬과 홍펭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평평한 풀밭으로 왔다.
'칠흑 봉술 배우고 싶었는데.'
시몬이 코를 훌쩍거리며 뒤따랐다.
"자아! 주업하죠!"
두 사람이 마주 보았다.
나무가 많아서 그런지 하늘에서 예쁜 꽃잎이 떨어지고 있었다.
'바힐 교수님도 그렇고, 제인 교수님도 그렇고, 왜 나만 보충수업을 이상하게 하는...... 응?'
싱글싱글 웃던 홍펭이 다리를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가볍게 바닥에 발을 구르자.
꿍-!
내려오던 꽃잎들이 파스락! 소리를 내며 찢어지더니 후두둑 바닥에 쏟아졌다. 시몬은 갑자기 바짝 긴장감이 올라오는 걸 느끼며 자세를 잡았다.
"여기 주먹이 있어요!"
그녀가 오른손을 들어 올려 주먹을 쥐었다.
"이걸 움직이지 않고 적에게 맞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네?"
시몬이 눈을 깜빡였다.
'착검' 같은 원거리 공격기술도 아니고, 움직임 없이 상대에게 주먹을 맞춰야 한다고?
"정답은-!"
쏴아아아아아아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시몬은 인지하지도 못했다.
마투는 마법진을 쓰지 않는다. 육체와 칠흑의 조화. 그것이 마투다.
그리고 시몬은 지금.
투욱-
그녀의 주먹에 턱이 살짝 맞닿아 있다.
털썩하고 주저앉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홍펭을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하면 돼요! 참 쥡죠?"
"......."
시몬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다가온 게 아니라 자신이 끌려온 거였다.
"한번."
홍펭의 표정이 진지해지며 자세를 잡았다.
"배워보겠어요?"
이거 뭐야.
'마투의 세계도 정말 끝이 없구나!'
뭐에 당한지도 모르겠지만, 시몬은 피가 들끓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워보겠습니다!"
* * *
다음 날 오후.
2학년 캠퍼스 공원 앞.
"......."
앞서 로레인과 이야기했던 카페 약속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로레인은 말끔한 사복 차림이었다.
"미안! 많이 기다렸어?"
시몬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녀가 밤하늘 같은 검은 머리를 흩날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너 꼴이 왜 그러니?"
온몸을 붕대로 둘둘 두른 시몬이 아하하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녀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혹시 싸운 건 아니지?"
"아냐 아냐, 보충수업을 좀 하다 보니."
그녀의 표정이 애매하게 변했다.
"...보충수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