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05화
끼이익 하고 문틈이 살짝 열렸다.
절커덩-!
그리고 문틈을 아주 살짝 남겨놓은 채로 문이 다 열리지 않고 멈췄다. 알고 보니 가느다란 사슬로 문이 고정되어 있었다.
뒤이어 문틈으로 느껴지는 건 틀림없이.
'칠흑.'
열린 문 너머로 짙은 칠흑이 느껴지고 있었기에, 시몬은 바짝 긴장했다.
잠깐의 대치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그때.
'!'
시몬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문에 눈알이 튀어나왔다. 핏줄이 시뻘겋게 일어난 충혈된 눈동자가 튀어나와 주위를 훑고 있었다.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 있는데, 그 눈이 다시 문 안으로 사라졌다.
스르륵-
이번에는 얼굴이 통째로 문을 통과해서 드러났다.
[학생회가 왜 여기에?]
시몬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상대를 보았다.
'혼령화다. 사령학과 전공자라고 했었지.'
학생회실 학생명부에서 열람했던 아우로르의 얼굴이 맞았다. 물론 사진보다 훨씬 핼쑥하고, 눈 밑에 그늘도 짙었지만.
시몬은 그녀가 놀라지 않도록 최대한 상냥하게 말했다.
"편지 보고 왔어. 이거 네가 도움 편지함에 넣은 거 맞지?"
[.......]
물끄러미 편지를 응시하던 그녀가 이내 다시 고개를 문 안으로 넣었다.
잠시 후 탁. 하고 발을 딛는 소리가 들리더니 열린 문틈 사이로 얼굴을 살짝 보였다.
"......내가 쓴 거 맞아요."
"다행이네. 도와주러 왔어."
"그런데 당신은 누구죠? 정말 학생회가 맞나요?"
여전히 잔뜩 경계하는 모습이다.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며, 시몬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미소 지었다.
"암흑제 때 학생 대표로 연설했는데, 본 적 없어?"
"......."
그녀는 물끄러미 시몬의 얼굴을 훑어보더니 '아'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파란 머리.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
"그래, 나야. 이제 열어줄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쑤우욱-!
시몬은 또 놀란 소리를 낼 뻔했다. 갑자기 벽면에서 아우로르의 팔이 튀어나오더니 문에 걸린 걸쇠를 붙잡고 열었다.
그녀에게 워낙 집중하고 있던 시몬은 뒤늦게 깨달았다.
'안에서 잠그는 게 아니라 밖에서 잠그는 거였어?'
너무 당연한 거라서 인지도 못 하고 있었다.
감옥도 아니고 이게 뭐야.
딸칵.
그녀가 문을 열고 옆으로 물러났다. 시몬은 긴장한 얼굴로 방 안에 들어왔다.
"실례할게."
내부의 열악한 상황이 보인다. 누런 벽지, 천장에 처져 있는 거미줄, 벽면 곳곳에 실금이 간 흔적도 있다.
반대편 벽면에는 새 벽지를 덕지덕지 붙인 게 보였다. 전부 누런 옛 벽지인데 저기만 하얀색이니 조금 이상했다.
"대접할 건 없지만."
테이블도 없어서 털썩 바닥에 앉은 그녀가 물이 담긴 컵 두 개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괜찮다면...... 마셔요."
시몬도 그녀를 마주 보고 자리에 앉았다.
"고마워. 그리고 같은 2학년이니까 말 편하게 해."
"......그러네, 알았어."
시몬은 물을 홀짝이면서 주위를 훑어보았다.
아우로르 세룸.
요주의 인물이다. 물어볼 게 너무 많아서 뭐부터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다.
당장 데바 여신에 대한 걸 물어보기보다는, 조금 더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오래된 집인가 봐."
시몬이 물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왜 깨끗한 기숙사를 두고 여기서 자취하는 거야?"
"......."
그녀는 조금 망설이다가 답했다.
"......실은 난 밴쉬 일족이야."
밴쉬 일족.
키젠에는 대륙 전역의 재능 있는 네크로맨서들이 모두 모인 곳인 만큼 다양한 이종족들이 있지만, 밴쉬 일족은 그중에서도 특별했다. 키젠 전교에서도 단 두 명뿐이었다.
진짜 언데드 밴쉬는 아니지만, 밴쉬와 닮고 밴쉬의 힘을 쓸 수 있는 인간들.
그들 일족의 강력한 힘은 늘 일류 네크로맨서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잠버릇이...... 좀 고약해. 같은 룸메이트들이 도저히 같이 못 지내겠다고 했어. 기숙사 측도 학생은 기숙사 생활이 어려울 것 같다는 통보를 해왔고."
"음."
"그래서 1학년 초부터 로체스트에 내려와 자취방을 잡은 거야."
그녀는, 자신의 종족적 특성상 같이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서 로체스트에서도 외곽지역에 방치된 오래된 집을 찾아냈고, 집주인에게 사정해서 월세를 내고 그곳에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학생명부의 종족란에는 그냥 '인간'이라고 기입했던데."
"......숨기고 싶은 비밀이었으니까. 하지만 바로 들켜서 쫓겨났지. 신입생 때의 치기 어린 욕심이었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시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때다.
"편지에 이렇게 썼더라."
<살려주세요. 데바 여신이 저를 죽이려고 해요.>
"......."
그녀가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실은-"
* * *
같은 시각.
학생회실.
팔랑 팔랑-
늦은 저녁, 책상에 앉은 딕이 피로에 전 표정으로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눈은 피곤해 보였지만 입가는 실실 웃고 있었다.
"가관이네, 이거."
그때 드르륵 하고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어, 평민?"
메이린이었다. 그녀도 피곤한 듯 눈을 비비고 있었다.
"아직도 퇴근 안 하고 뭐 해?"
"보면 모르셔? 일하고 있잖아."
딕이 클클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시몬이랑 심각한 사건 하나 맡아서 해결하고 있어. 으흐흐, 간만에 사람 불타오르게 하는 건이야."
메이린은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네가 호들갑 떠는 거 보니까 또 쓸데없는 일이겠지."
"의뢰에 정확히 이렇게 적혀 있었다."
딕이 팔을 뻗어 이동형 칠판을 붙잡고 편지 내용을 그녀에게 보였다. 메이린의 무미건조한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고. 그녀가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입을 틀어막았다.
<살려주세요. 데바 여신이 저를 죽이려고 해요.>
"노, 놀랬잖아아! 븅딱아아!!"
그녀가 빼액 소리 지르며 근처의 쿠션을 집어던졌다.
"아이 진짜! 너 땜에 잠 못 잘 것 같다고!"
암흑연합에선 이런 반응이 보통이었다.
심지어 키젠 학생들은 성녀 사태에 광신도 에버 키레 사태까지 겪었으니 그 공포심은 더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쪼그려 앉은 메이린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장난친 게 아니라 진짜 이렇게 왔어."
딕이 지금까지 조사한 자료들을 꺼내 보였다.
"지금 현장에 시몬이 가 있거든? 곧 돌아오면 자료 취합해서 교수님들께 보고하려고."
메이린이 새삼 심각해진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딕의 자료를 빼앗아 들었다.
"3학년들이 장난친 거 아냐? 그런 거면 진짜 나 가만히 안 있을 거야!"
"에헤이, 장난칠 게 따로 있지. 시몬이 갔으니까 곧 어떻게 됐는지 밝혀질 거야."
서류를 빠르게 넘겨보고 있던 메이린의 표정이 굳었다.
"의뢰자가 기숙사에서 쫓겨난 사람이네? 사유는 잠버릇. 자다가 비명으로 룸메이트 귀에 피를 흘리게 했다는데? 뭐야 이 기록."
"밴쉬 일족이야."
딕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 사실을 숨기고 기숙사에 들어갔다가 난리가 난 거지."
"흐으음."
서류를 쭉쭉 넘겨보던 그녀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거기에 작년 정화의 성녀 습격 피해자, 올해 에버 키레 사태 생존자."
"그래, 그거야. 그림이 딱 그려지지 않냐?"
딕이 두 팔을 들어 올렸다.
"트라우마겠지!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다가, 결국 멘탈 나가서 데바 여신이 날 죽이려 한다는 망상에 빠진 거겠지! 이건 우리가 해결할 일이 아냐. 교수님들께 보고해서 정신 상담 치료를 받게 해야 해."
메이린이 하아 한숨을 쉬고 자료들을 내려놓았다.
"응. 그래도 어떻게 아우로르를 정신 상담받게 하면 끝은 나겠네. 하는 김에 내 건도 조사해 줘, 평민."
"뭐?"
"그나마 네 쓸모는 정보조사뿐이잖아! 이럴 때라도 일해!"
딕의 등을 찰싹 때린 그녀가, 본인 의뢰자가 쓴 편지를 딕에게 보였다.
내용을 훑어본 딕의 표정이 묘하게 굳었다.
"오호, 이쪽도 이쪽대로 문제구만."
그가 입맛을 다시며 턱을 슥슥 쓸었다.
"기말고사에 집중해야 할 때에 이런 중대한 사건들? 나 너무 즐거워서 어쩌지? 이러니 내가 공부를 할 수가 없어."
"꼭 사건이 없을 땐 공부한 것처럼 말한다? 400등 주제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메이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학생회장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럼 나 먼저 기숙사 간다."
"넵, 바이."
드르륵.
문을 별고 밖으로 나가려던 메이린이 멈칫했다.
"......."
늦은 밤이라 그런지 건물의 불이 다 꺼져 있었다.
그 모습은 무척이나 을씨년스러웠다.
"간다더니 거기서 뭐 해? 똥 마렵냐?"
딕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메이린이 문을 붙잡은 채 시선을 돌렸다.
"......야."
"뭐."
"나 그......."
빨간물이 뚝뚝 떨어질 만큼 빨개진 얼굴의 그녀가 이내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거, 건물 밖까지만 같이 가주면 아, 안 되냐."
"!"
딕은 우주적 통쾌함을 느끼며 푸하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무섭냐? 무서워? 설마 아까 그거 보고? 캬하하하하하! 찔려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키젠의 부회장이? 이 정보는 전교생에게 뿌려야......!"
"다, 닥쳐! 이 새끼야악!"
그녀가 양손에 쿠션을 들고 달려들었다.
* * *
시몬은 아우로르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었다.
1학년 시절, 정화의 성녀를 직접 목격하고 그 힘에 휘말려 정신을 잃었던 이야기.
그리고 에버 키레가 계획을 꾸몄던 '발케제 경기장'에서 직접 경기를 뛰던 이야기.
심지어 아우로르는 에버 키레가 십자가에 매달려 자해하는 꼴까지 봤다.
"아직도 그 광신도의 기억이 생생해."
그녀가 제 머리를 붙잡았다.
"붉은 십자가, 흰자를 드러낸 두 눈덩이, 하늘로 비쩍 솟은 뻣뻣한 혀, 가시 때문에 상처 입은 전신에서 피를 질질 흘리면서 여신의 이름을......."
"됐어, 됐어. 거기까지만 들어도 알겠네."
이야기하는 그녀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졌기에 시몬이 얼른 말렸다.
"그런데 그 일들이 데바 여신이 널 죽이고 있다는 거랑 무슨 관계가 있어?"
"그건......."
암흑제가 끝나고 약 일주일 뒤.
그녀는 가위에 눌리기 시작했다.
밴쉬 일족의 특성상 잠버릇이 심하긴 했지만 경우가 더 심해졌다.
"......천장에서 데바 여신이 피눈물을 흘리며 날 노려보고 있었어."
시몬은 예전에 에버 키레가 만든 여신을 머릿속에 떠올리고는 움찔했다.
레테와 함께 있어서 그나마 나았지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이긴 했다.
"그뿐만이 아니야. 건물 벽을 긁게 하고 물어뜯게 하고, 자다가 일어나면 내 목을 스스로 조르게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냐."
그녀가 목을 감싼 옷을 내려서 맨목을 드러냈다. 시몬은 깜짝 놀랐다. 선명한 붉은 피멍이 손가락 모양으로 나 있었다.
"너무 무서워."
그녀가 눈물을 줄줄 흘렸다.
"진짜 데바 여신이란 게 실존해서 날 죽이려고 하나 봐. 어쩌지? 어쩌면 좋지?"
"......."
시몬은 잠자코 눈을 감고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것뿐이야?"
"어?"
"할 이야기는 그게 다야?"
시몬이 추궁하듯 물었지만, 그녀는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몬이 그녀의 눈앞에서 편지를 흔들었다.
"왜 우리 학생회에 편지를 보냈어? 담당 교수님께 알리고,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현실적으로 더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그, 그건......."
그녀가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일을 겪었다는 사실을 밝히면 교수님이 날 안 좋게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아우로르."
시몬이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성녀 사태와 에버 키레 사태를 겪은 학생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데, 도움은커녕 편견으로 안 좋게 평가할 교수는 적어도 키젠에는 없어."
"그,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어른들한테는 이야기하지 말아줘. 알았지?"
시몬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았어."
"...고마워."
"그럼 지금부터 조사를 하려고 하는데. 괜찮을까?"
"응?"
시몬이 성큼성큼 방 끝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불안한 아우로르의 시선의 시몬의 등 뒤를 따른다. 잠시 아무것도 없는 방을 가만히 훑어보던 시몬이 벽에 손을 짚었다.
그러곤.
지지지지직!
누런 벽지 옆으로, 새로 붙인 하얀 벽지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잠깐! 잠깐만!"
식겁한 아우로르가 자리에서 일어나 뛰어왔지만, 그 전에 시몬은 벽지를 모두 벗겨냈다.
'역시.'
시몬이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게 뭐야?"
"......!"
처음엔 자해 현장이라도 벽지로 덮어놓은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벽지에 불그스름하게 보이는 흔적을 확인한 시몬은 흰 벽지를 뜯어냈고, 그 안에 드러난 건 다름 아닌.
십자가.
데바 여신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온갖 마법진 같은 게 핏물로 그려져 있었다.
<본 아머>
시몬이 팔을 움직이자 몸에 숨겨둔 뼈들이 쏜살같이 날아갔다.
"자, 잠깐만!"
뼛조각들은 허름한 자물쇠를 뜯어내고 선반을 열었다.
놋그릇 등이 와르르 쏟아졌다.
"이거."
시몬이 본 아머가 가져온 놋쟁반을 붙잡아 흔들었다.
"놋쟁반은 의식용으로 쓰는 물건인데 왜 네 방에 있어? 거기에 양초도 구식 밀랍으로 만든 물건, 암흑연합에서는 자주 쓰지 않는 물건인데 어떻게 구했지?"
"그, 그건!"
"아우로르."
시몬이 팔을 늘어뜨리며 차분한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암흑연합에서, 그것도 로크섬 한복판에서 데바 여신에 대한 제물 의식을 치르는 건 중죄야."
그녀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뒷걸음질 쳤고, 시몬은 천천히 말했다.
"학생회장으로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야겠어."